내가 읽어본 조세희 작가의 소설집은 《난장이가 쏘아올린작은 공》한 권이다. 이후에 사진 산문집과 단편집을 냈지만적어도 ‘그런‘ 작품은 다시 쓰지 않았다(혹은 쓰지 못했다).
짐작하건대 그에게 그 한 번의 소설 쓰기는 지섭이 단 한 번사용했던 지식인의 언어와도 같았을 것이다. - P121

사용언젠가 인터뷰에서 왜 작품 활동을 계속 하지 않느냐는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 바 있다. "글 쓰는 것은 늘 싸우는느낌이라, 침묵은 싸움에서 패배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죠. 작가에게 제일 어려운 것은 좋은 글을 쓰는 것이고, 그다음에 어려운 것이 안 쓰는 것, 세 번째로 어려운 것이 침묵인것 같습니다. 난 침묵을 즐겁게 받아들였습니다." - P121

말하자면 그것은 ‘담아냄의 윤리‘가 아닐까. - P126

나는 기쁘지 않았다. 거대한 간판 뒤에 가려진 부서진판잣집들이 떠올랐다. 아름다운 도시라는 것은 어떤 삶들을감추고 치움으로써 만들어지는 것이구나. - P134

대학 시절, 모교에서 ‘부르주아 동아리‘의 양대산맥으로 거론되던 것이 스키부와 관현악단이었다. 이들에관한 짓궂은 유머가 난무했다. 가령 스키부는 막걸리 대신찹쌀동동주 마시고, 관현악단은 여름 합숙 가면 아침 식사로염소치즈와 크루아상을 먹는다는 식이었다. 경사진 눈길에서 왜 굳이 긴 신발 신고 미끄러지나 싶어 스키부는 부럽지않았으나 오케스트라는 남몰래 동경했다. 염소치즈 때문은아니었고, 여러 악기 소리들이 모여 선율을 만드는 것이 멋져 보였다. - P137

그래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정치 관련 기사를 읽고, ‘법과
‘사회‘를 공부하고, 그들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려고 노력했다. 그러한 작은 하루, 몇 시간이 나에게는 잊지 못할 일이 되었고, 그때 자신 있게 촛불을 들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며 지금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역사 속에서 내가 바뀌며, 결국에는 이러한 미시사를 가진 개인 하나하나가 모여 역사를 바꾼다고 생각했다. - P136

관계의 밀도가 영원히 동일하지 않다고 해서기억들이 휘발되는 것은 아니다.
즐거움은 즐거움으로,
고마움은 고마움으로 영원히 남는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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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그 섬은 그저 그랬어요. 뾰족뾰족한 가문비나무 숲에둘러싸인 채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외딴섬이었지요. 뒤쪽 만에는다른 섬들이 떠 있었고, 그 너머로는 앞서 이 가족이 살던 육지와항구 마을 ‘그린 하버‘가 있었어요.

하지만 마타이스는 영원히 작은 아이로 머물지 않았어요.

"만 너머 바깥세상을 보는 건 좋은 일이지. 그러면 네 마음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 알게 될 거야."
할아버지 마타이스가 말했어요.
"난 벌써 다 알고 있는걸요." 꼬마 마타이스가 말했어요.
"두고 보면 더 좋을 거야." 하고 할아버지가 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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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자영업자입니다
이인애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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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인사말이 이렇게까지 슬프게 들릴 일인가 반갑습니다 우리는 같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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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 말기의 비밀경찰 비즐러는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옴직한 냉혹한 자다. 윗선의 명령으로 그는 당시동독의 최고 극작가 드라이만과 그의 연인인 여배우 크리스타의 일상을 도청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비즐러는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예술적 열정과 뜨거운 사랑에 감화된다. 종국에는 자기 신념을 바꾸고 직업을잃는 것까지 감수하며 이들을 위해 희생한다.‘ - P113

비즐러의 눈에는 그 고민과 갈등마저 무대 위 배우의 그것처럼 멋지고 아름답게 보였을 것이다. 드라이만과 크리스타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감시카메라로 훔쳐본 비즐러는그날 밤 휑하고 투박한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와, 성매매 여성과 비굴하고 초라한 섹스를 한다. 아마 그는 이때 아프게깨달았을 법하다. 욕망하는 대상을 모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바꿔 말해 자신은 결코 드라이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 P115

"포장해드릴까요?" 묻는 계산대 점원에게 비즐러가 아니오. 이건 나를 위한 것입니다"라고 답하는 마지막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나를 위한 것‘이라는 그 말이 이토록 윤리적일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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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여덟 번이던 술자리 또한 네 번으로, 두 번으로, 한 번으로 줄어갔다. 남준과 함께 사계절을 보내는 동안 저절로 많은친구들이 정리되었다. 주말이면 남준의 차를 타고 함께 남양주나양평, 파주에 있는 카페 같은 데를 다니며 커피를 마시고 서로의사진을 찍어주는 (그러나 절대 함께 사진을 찍지는 않는) 뜨뜻미지근한 연애가 이어졌다. - P85

성격이 곧 운명이다. - P88

-- 이걸 춤천지라고 부른대ヲヲヲヲヲヲヲヲヲヲヲヲ채팅방 사람들이 연신 웃어댔다. 나는 전혀 웃기지 않았다. 저무대 위 사람들이 구애를 위한 몸짓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다. 그것은 차라리 일주일 내내 구겨져 있던 이들이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추는 살풀이에 가까워 보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창을 닫아버렸다. - P104

"혹시 격리 장소에 함께 사는 가족이 있나요?"
나는 잠시 주저하다, 없다고 대답했다. 함께 살던 사람이 있었으나, 가족은 아니었고, 심지어 지금은 함께하지 않으니 거짓은아니었다. 직원은 키트 속에 포함된 체온계로 매일 체온을 재서하루 두 번 앱에 기록해야 하며, 고열이 반나절 이상 지속되면 곧바로 연락을 하라고 강조했다. 나는 알겠다고 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 - P111

티타임이 끝나기 무섭게 나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 P125

지금까지 리나 이모를 리나, 라고 부르는 사람은 전 세계에서한영이 유일했다.
리나 이모는 한영의 모든 것을 알았다. - P136

"저 사람 뭐가 그렇게 좋아?"
"그냥 무난해서."
"그게 뭐야. 티셔츠 고르는 것도 아니고." - P143

"그러겠지."
"있잖아 한스, 나 임신했대."
"뭐?" - P159

"저희 가족은요, 평생 동안 여기 신흥동에서 살았어요."
그녀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게 Y의 삶을 단칼에 규정했다.
"다 거짓말이에요." - P185

"저 사람들도 답답하겠지. 우리처럼."
내가 눈치 없이 말하자 순간 정적이 일었다. - P208

"누군 오고 싶어서 온 줄 아니? 그저께 꿈을 꿨다. 불구덩이 속에서 니가 울고 있더라. 손을 뻗어도 너무 멀어서 닿지가 않아 구할 수도 없었어. 깨보니 영 찝찝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마침 새집으로 이사도 했다고 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불안해서 그냥 내려갈 수는 없더구나." - P238

일상을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 이야기가 가닿기를 바란다. -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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