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작품을 보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 글을 쓰고 싶어진다. - P5

그러는 동안 아마도생이 유예되었다. - P5

보았던 무대, 걸었던 풍경, 만났던 사람, 못 지킨 죽음, 읽었던 말들과 불렀던 노래가 담겨 있다. 이는 그 모든 지나간 것들에 대한 뒤늦게 쓰인 비평이다. 당신에게 닿기를 바라 유예되고 간직되었던. 어쩌면 삶도 한 편의 공연처럼 흘러가면 그만이기에. - P7

극장이라는 공간은 오묘하다. 실시간으로 눈앞에 펼쳐지는가상의 세계를 만나러 우리는 그곳에 간다. - P11

그러나 존재는 몸이라는 물성을 입고 있기에 단지 바라봄만으로 충분치 않을 때가 있다. - P13

목정원서울대 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렌느대학에서 공연예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여러 대학에서 공연예술이론 및 예술학일반을 가르치며,
변호하고 싶은 아름다움을 만났을 때 비평을 쓴다.
가끔 사진을 찍고 노래 부른다.

육신은 거기 그대로 묻혀 있으나 그림자는 공간을 떠나버린일을 우리는 죽음이라 부른다. - P17

만일 그가 춤만 추었더라면, 왕자이거나 광대이기만 했으면,
세상은 그를 사랑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날아오르기를 멈추고 땅을 굴렀으므로 세상도 그에 대한 사랑을 멈췄다. - P25

를 응시함에 다름 아니다. 영화가 편집될 수 있는 몸의 이미지를 대상으로 한다면, 춤은 쪼개질 수 없는 몸이라는 덩어리를주제 삼는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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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는 아주 어릴 때부터 할머니가 끓여준 청국장에 출생배추를 먹으며 자랐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세 번째갔을 때는 작은 교자상에서 노트를 반으로 접으면두 사람이 충분히 숙제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고,
오징어집과 자갈치를 섞으면 바다칩이 된다는 것을깨달았다. - P47

한국어 초급반인 반려인마르땅은 그 암호 같은 말들을 이해할 수 없을것이고, 반려견 이안이는 글씨를 읽지 못하니까. 나는비밀을 마음껏 펼쳐놓을 수 있다. - P51

"아니야, 유진 빼고 유진 식구들은 다 소리를 내면서밥 먹어."
마르땅이 말했고, 나는 그 순간 그의 입에 팔뚝만한 바게트 하나를 쑤셔넣고 싶었다. - P62

나는 모자라게 사랑해서 슬펐다. 죽었다 깨도엄마만큼 사랑할 수 없어서. 그까짓 신발, 안 맞으면바꾸거나 버리면 그만인데 왜 그 자리에서 사지않았을까. - P69

어떤 글은 나를 뿌리째 옮겨심기도하니까. 페소아는 내가 어디에 있든 단숨에 나를리스본으로 데려간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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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렸다. 길이 미끄러우니 내일 가라고 붙잡았다. - P131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했다. 그러자 이모든 게 내가 어젯밤 꾼 꿈처럼 느껴졌다. - P139

나는 0부터 9까지 천천히 숫자를 세면서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숨을 멈추고 온 힘을 다해 역기를 든다. - P195

여름방학 내내 나는 옥상 평상에서 잠을 잤다. - P199

눈이 내리면 그때도 이렇게 같이 침낭에서 잠을 자자고 말했다.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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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평생 교육자로 사셨어요. 책을 엄청나게 좋아하셨죠. 책을 많이 수집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할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성격이 밝은 분이 아니었거든요. 게다가 저를 보면 붙잡아놓고 늘 책 얘기만 하시니까요. 그래서 명절 때 집에 가면 일부러할아버지 가까이 가지 않으려고 했어요. 이제 돌아가실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요. 어쩌면 지금 찾으시는 이 책이 마지막 책이될지도 몰라요. 그래서 이렇게 사장님을 뵈러 온 거예요. 무슨 책이든 다 찾아주신다는 소문을 들었거든요." - P77

천천히 책장을 살피며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모은 책을 눈에 담았다. 과연 노인은 무슨 책을 찾고 싶은 걸까? 어쩌면 그 책은 그가 마지막으로 손에 쥐고 싶은 책일수도있다. 영상 속 노인의 눈빛에서 나는 그걸 느꼈다. 삶의 마지막을 가장 아끼는 책과 함께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내게 전해졌다. 그건 나의 오해이며 과도한 의미부여일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거대한 장서들을 마주하면서 한 번도 실제로 만나보지 못한 한 노인의 인생을 경험하는 듯한 감동을 전해 받았다. - P80

모든 책은 인생과 마찬가지로 아이러니하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책을 쓴 사람의 갖가지 인생 이야기가 거기 오롯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 P83

아무래도 작전을 바꾸는 게 좋을 것 같다. 기억이 흐릿한 책을 찾을 때는 그 책을 읽었을 때의 추억을 말하도록 이끄는 것도 좋은방법이다. 딱히 책 얘기가 아니더라도 그즈음에 있었던 기억에 남는 사건이나 친구들 얘기를 하다 보면 갑자기 잊고 있던 책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일이 있다. 나는 K씨에게 그 책을 어떻게 알게 됐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다행히 그녀는 책 이외의 일들에 대해선제법 구체적인 기억이 있었다. - P86

"책은 제가 찾았지만, 이 책이 나타날 마음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도 어느 도서관 책 무더기 사이에서 헤매고 있었을 겁니다."
"책이 자기 스스로 나타나줘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 P90

동생은 계속해서 공부하고 싶어 했고○씨는 그깟 공부를 해서 무얼 하냐며 언성을 높였다. 두 사람은 워낙 다른 길을 걸어가고있었기에 제대로 말이 통할 리 없었다. O씨는 화를 참지 못해 어느 날 동생이 쓰는 방에 들어가 책장에 있는 책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동생은 그런 형의 행동에 어쩌지도 못하고 바닥에 엎드려 널브러진 책을 끌어안고 서럽게 울었다. - P98

"아뇨. 인생의 답은 마치 우주에 있는 외계문명을 찾는 것과 비슷합니다. 엄청나게 많을 수도 있지만, 없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철학은 답을 찾는 게 아니라 그걸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러셀은 말하고 있습니다. 동생분이 힘겹게 찾으려고 했던 것도 답이아니라 거기로 향해 가는 길일 겁니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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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자들의 죄가 크다. 우리는 오랫동안 자연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며 피도 눈물도 없는 삭막한 곳으로 묘사하기 바빴다. 그리고 그 죄를 죄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에 뒤집어씌웠다. ‘적자생존은 원래 다윈이 고안한 표현도 아니다. 다윈의 전도사를 자처한 허버트 스펜서 Herbert Spencer의 작품인데 앨프리드 윌리스Alfred Wallace의 종용으로 다원은 <종의 기원> 제5판을 출간하며 당신 이론의 토대인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을 대체할 수 있는 개념으로 소개했다. 그러나다윈의 죄는 거기까지다. <종의 기원>은 물론,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과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서 그는 생존투쟁ruggefor existence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오로지 주변 모두를 제압하고 최적자the fittest가 돼야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다양한 예를 들어풍성하게 설명했다. 그의 후예들이 오히려 그를 좁고 단순한 틀 안에 가둔 것이다. 이 책은 그 틀을 속시원히 걷어낸 반가운 책이다. - P6

나는 이 책이 특별히 반갑다. 조금은 외롭던 차에 학문적 동지를 만나 기쁘고, 인류의 기원과 보편적 인간성에 관한 참으로 탁월한 분석을 맞이해 더할 수 없이 반갑다. 아직도 성악설과 성선설 사이에서 흔들리는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한다. 조간신문과 저녁뉴스가 들려주는 사건, 사고 소식에는 인간의 잔인함이 넘쳐나지만, 진화의 역사에서 살아남은 종들 중에서 가장 다정하고 협력적인 종이 바로 우리 인간이다. 정연한 논리로 이처럼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책은 참 오랜만이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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