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동혁 씨는 요즘 어떨 때 기뻐요? 난그런 순간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몇 년 전, 행복하지 않아도되니 불행하지 않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 기도가몇 년 만에 이루어진 것 같다.
어떤 사람은 그런 말을 했다. 쓸 것이 병밖에 없냐고. 나는아직, 함께 병을 재우고 깨우던 아이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는것만으로 시간이 부족하단 생각이 든다. 내 시가 파생된곳은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던 곳이다. 그곳에서 비슷한기도를 하던 아이들이 나의 시를 쓴다. - P73
병원 교회 목사님은 "다음 주엔 만나지 말자"고 하신다. 병실에서의 정든 얼굴들에게 다시는 만나지 말자며 떠나도기어코 다시 마주치는 사람들. 혹은 마주치지 못해 영영꿈에서나 마주치는 사람들. 궁금하고 그리워 퇴원 때 받아놓은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려 해도 혹시 무슨 일이 생기진않았을까 망설이게 되는 이곳의 사람들. - P73
중환자실을 나가면 아빠가 너 갖고 싶은 차 꼭 사 줄게. 아버진 중환자실에서 인공심폐기를 끼고 있는 내게 약속을했다. 수술하고 오랫동안 누워 있는 바람에 살 뿐만 아니라근육까지 빠져 체중은 39킬로그램이 되었다. 처음엔 보조기구 없이 걷지도 못했다. 어렵지만 가족 덕분에 천천히회복을 했다. 어렵게 한 수술이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퇴원후에도 회복에 힘을 쏟았다. - P75
많은 장애인이 죽음으로, 투쟁으로 이뤄 놓은 것들 위에서살고 있다. 감사하다는 말도 적절치 않고, 죄송하다는 말도적절치 않다. 적절한 말을 찾기 어렵다. 어떤 시도, 글도, 이런 삶 앞에선 침묵케 한다. 그럼에도 쓰는 이유는, 그들이이곳에 있다는 것, 우리가 이렇게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싶어서이다. - P79
화자와 청자의 경계가 모호한 말이 필요하다면. 그 말은위로가 되길. 함께 어울리며 함께의 공간이 함께 운동하며밀려가며 괜찮아지는 것. 뚜렷한 방향보다는 커다란 굴레가생겨 함께 머무는 것. 괜찮아? 괜찮아. 부호가 필요 없는 곳. 괜찮아 - P81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고 오는 것, 그것이 목표였다 - P88
어린이 병동을 다니며 한동안 스티커를 챙겨 다니곤 했다. 간호사 선생님의 명찰에 아이들이 붙여 준 스티커를자주 본다. 아이들에겐 스티커가 사랑의 표현 방법이다. 감사하게도 내 노트북엔 같은 병실에 있던 아이가 붙여 준 두개의 스티커가 있다. 은색 별과 파란 하트, 작고 반짝이는 내부적. - P102
십이월 일정 중 하나가 병원 건너의 마로니에 공원 지하홀에서 시 낭송을 하는 거예요. 횡단보도 하나를 넘는 일이참 어렵네요. 느리고 귀여운 속도네요. - P109
천국에선 친구들을 업고 뜀박질을 할 거다. 친구들이 등뒤에 업혀 꿀밤을 때려도 멍청하게 웃을 거다. 친구가 왔다 가면 방이 환하다. 친구가 두고 간 빛으로일주일을 지낼 걸 안다. - P115
어느 순간 사람들로부터 도망친 방랑자가 된 기분이야. 어디에도 정착할 수 없겠구나 느낄 때가 많아. 그래도 엄마. 난 참 자유로워, 대낮 텅 빈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기쁨을, 대낮에 미술관 앞에서 페도라를 쓰고 선글라스를 쓰고멍하니 있는 기쁨을 사람들은 잘 모를 거야. 일 년마다 집을옮겨 다녀도, 어른들이 벌이와 결혼에 대해 물어봐도 나는참 자유로워. 나는 충분히 방랑하고 있어. - P129
이제 꽃을 사지 않는다. 꽃을 사지 않은 지 꽤 된 듯하다. 꽃을 사는 일은 원고료로 할 수 있는 가장 값진 일이었다. 많은 꽃을 타인에게, 스스로에게 선물했다. 풍성한 꽃 한다발은 내 시 한 편의 고료 정도이다. 시를 꽃으로 바꾸는일, 그것이 시인이 하는 일이라 믿어왔다. 지난 반년, 병원비가 천만 원 정도 나왔다. 희귀 난치병이적용되어 많은 의료보험을 받고도 말이다. 여기서 더 이상나의 불행을 나열할 필요는 없다. 인간은 꽃만으로 살 수없다. - P148
서울을 떠나는 일. 그것이 나의 목표였다. - P171
친구를 생각하며 많은 글을 쓴다. 친구는 발표 전 내 원고를보는 유일한 사람이다. 오늘은 친구를 만났다. 그것만으로많은 것들이 괜찮아진다. 친구는 제철 과일을 먹어야 한다며 복숭아 주스를 시켜줬다. 그 구체적 말이 건강하자는 말보다 더 가깝고 다정하게느껴진다. 계절은 자주 바뀌는데 친구는 바뀌지 않아 좋다. - P19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