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효율적으로 더 재미있게 말을 하는 재주는 딱히 필요 없었다. 정확하고명료하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 오늘 강의에서도 그저 정확하고 명료하기만 해도 될까. 승우는 오늘 자기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 전혀 알He수 없는 기분이었다. - P217

"여행지에서 모르는 길을 걸을 때의 기분이 나더라고요. - P221

동네 서점을 운영하는 건 길 없는 길을 걷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영주는 생각했다. 어떻게 운영해야 좋을지, 그 누구도 확신에 차조언해줄 수 없는 사업 모델. - P189

다시 읽어보지도 않고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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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여기, 창가에서 사랑을 다시 배워본다.
가만히 바라보는 사랑을,
눈으로 쓰다듬는 사랑을. - P126

그치기를 기다리는 사람, 함께 울어주는 사람의입김이 만든 공기는 11월의 맛, 냄새. - P111

극이 끝났고, 하얀 조명도 꺼졌다. 어둠 속에 남은것은 소리 없는 먼지뿐이었고, 내게는 그것이 모조리다 타고 남은 재 같았다. 그날 연습을 끝내고 숙소로돌아오는 길에 함박눈을 맞았다. 시골 극장은 눈에파묻혀 하얗게 뒤덮였고, 우리는 그 광경을 몇 번이고돌아봤다. 함께 걷던 누군가가 말했다.
"뜨거운 풍경이네." - P105

새벽 여섯 시, 이제 곧 해가 뜬다. 처음 눈에 들어온것은 어둠에 가려진 옅은 실루엣이었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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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동혁 씨는 요즘 어떨 때 기뻐요? 난그런 순간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몇 년 전, 행복하지 않아도되니 불행하지 않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 기도가몇 년 만에 이루어진 것 같다.

어떤 사람은 그런 말을 했다. 쓸 것이 병밖에 없냐고. 나는아직, 함께 병을 재우고 깨우던 아이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는것만으로 시간이 부족하단 생각이 든다. 내 시가 파생된곳은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던 곳이다. 그곳에서 비슷한기도를 하던 아이들이 나의 시를 쓴다. - P73

병원 교회 목사님은 "다음 주엔 만나지 말자"고 하신다.
병실에서의 정든 얼굴들에게 다시는 만나지 말자며 떠나도기어코 다시 마주치는 사람들. 혹은 마주치지 못해 영영꿈에서나 마주치는 사람들. 궁금하고 그리워 퇴원 때 받아놓은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려 해도 혹시 무슨 일이 생기진않았을까 망설이게 되는 이곳의 사람들. - P73

중환자실을 나가면 아빠가 너 갖고 싶은 차 꼭 사 줄게.
아버진 중환자실에서 인공심폐기를 끼고 있는 내게 약속을했다. 수술하고 오랫동안 누워 있는 바람에 살 뿐만 아니라근육까지 빠져 체중은 39킬로그램이 되었다. 처음엔 보조기구 없이 걷지도 못했다. 어렵지만 가족 덕분에 천천히회복을 했다. 어렵게 한 수술이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퇴원후에도 회복에 힘을 쏟았다. - P75

많은 장애인이 죽음으로, 투쟁으로 이뤄 놓은 것들 위에서살고 있다. 감사하다는 말도 적절치 않고, 죄송하다는 말도적절치 않다. 적절한 말을 찾기 어렵다. 어떤 시도, 글도,
이런 삶 앞에선 침묵케 한다. 그럼에도 쓰는 이유는, 그들이이곳에 있다는 것, 우리가 이렇게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싶어서이다. - P79

화자와 청자의 경계가 모호한 말이 필요하다면. 그 말은위로가 되길. 함께 어울리며 함께의 공간이 함께 운동하며밀려가며 괜찮아지는 것. 뚜렷한 방향보다는 커다란 굴레가생겨 함께 머무는 것. 괜찮아? 괜찮아. 부호가 필요 없는 곳.
괜찮아 - P81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고 오는 것, 그것이 목표였다 - P88

어린이 병동을 다니며 한동안 스티커를 챙겨 다니곤 했다.
간호사 선생님의 명찰에 아이들이 붙여 준 스티커를자주 본다. 아이들에겐 스티커가 사랑의 표현 방법이다.
감사하게도 내 노트북엔 같은 병실에 있던 아이가 붙여 준 두개의 스티커가 있다. 은색 별과 파란 하트, 작고 반짝이는 내부적. - P102

십이월 일정 중 하나가 병원 건너의 마로니에 공원 지하홀에서 시 낭송을 하는 거예요. 횡단보도 하나를 넘는 일이참 어렵네요. 느리고 귀여운 속도네요. - P109

천국에선 친구들을 업고 뜀박질을 할 거다. 친구들이 등뒤에 업혀 꿀밤을 때려도 멍청하게 웃을 거다.
친구가 왔다 가면 방이 환하다. 친구가 두고 간 빛으로일주일을 지낼 걸 안다. - P115

어느 순간 사람들로부터 도망친 방랑자가 된 기분이야.
어디에도 정착할 수 없겠구나 느낄 때가 많아. 그래도 엄마.
난 참 자유로워, 대낮 텅 빈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기쁨을,
대낮에 미술관 앞에서 페도라를 쓰고 선글라스를 쓰고멍하니 있는 기쁨을 사람들은 잘 모를 거야. 일 년마다 집을옮겨 다녀도, 어른들이 벌이와 결혼에 대해 물어봐도 나는참 자유로워. 나는 충분히 방랑하고 있어. - P129

이제 꽃을 사지 않는다. 꽃을 사지 않은 지 꽤 된 듯하다.
꽃을 사는 일은 원고료로 할 수 있는 가장 값진 일이었다.
많은 꽃을 타인에게, 스스로에게 선물했다. 풍성한 꽃 한다발은 내 시 한 편의 고료 정도이다. 시를 꽃으로 바꾸는일, 그것이 시인이 하는 일이라 믿어왔다.
지난 반년, 병원비가 천만 원 정도 나왔다. 희귀 난치병이적용되어 많은 의료보험을 받고도 말이다. 여기서 더 이상나의 불행을 나열할 필요는 없다. 인간은 꽃만으로 살 수없다. - P148

서울을 떠나는 일. 그것이 나의 목표였다. - P171

친구를 생각하며 많은 글을 쓴다. 친구는 발표 전 내 원고를보는 유일한 사람이다. 오늘은 친구를 만났다. 그것만으로많은 것들이 괜찮아진다.
친구는 제철 과일을 먹어야 한다며 복숭아 주스를 시켜줬다.
그 구체적 말이 건강하자는 말보다 더 가깝고 다정하게느껴진다. 계절은 자주 바뀌는데 친구는 바뀌지 않아 좋다. -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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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는 특히 사람을 끔찍이 미워하게 됐다는 점이 힘들었다. 부장의 친절을 가장한 목소리만 들으면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고,
대리의 무능력한 얼굴만 보면 경멸감이 일었다. 그들이 히죽거리며복도를 거니는 모습을 보면 ‘나보다 잘난 것 하나 없는 새끼들이 어쩌다 좋은 자리를 꿰차고 앉더니 그 자리에서 떨려날까 봐 발악을
‘하고 있군 하고 생각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 P211

눈앞에 존재하지만 과거에 속해 있는 것 같은 동네의 분위기가 사람들을 휴남동 서점으로 불러들이는 것인지도.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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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계절의 첫 입김을 봤다. 엄마, 아빠, 아이가 나란히길을 걷다가 잠시 마스크를 내리고 호~호~ 하고 차마 마침표를 찍을 수 없어 줄을 바꾼다.
입김에 마침표는 어울리지 않으니까. 그런 건 물결표시가 적당하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멀리 퍼져나가서 공기가 되고, 공기의 결이 되고, 다시 다른사람의 숨이 될 수 있게, 호~ - P107

내가 머무는언어가 시소를이곳은 숨과 수플 사이, 두 개의타는 곳이다. - P108

좀 너무한다 싶은 날에는 올라가서 항의를해볼까 하다가도 아이들의 간지러운 웃음소리에 지고만다. 어쩔 수 없다, 아이가 그렇게 웃으면・・・ 아이의웃음소리를 막는 언어는 한국어로도 불어로도 배운적이 없으니까. 살면서 지금까지 어떤 어른도 내게
"웃음을 뚝 그치지 못할까!"라고 소리친 적은 없었다. - P109

창문 밖 나무 사이로 하얀빛이 쏟아졌다. 늙을 리 없는빛처럼 화가의 그림도, 숨결도 그대로 멈춰 있었다.
그곳에서는 오직 색채만이 시간을 받아들였다. 시간역시 색채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 P116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책을 마저 읽었다.
머릿속에서 책으로 만난 한트케의 엑상프로방스와내가 밟았던 장소들이 뒤섞였다. 그것은 세잔의시선과 한트케의 문장 그리고 나의 기억이 뒤섞이는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내가 본 것과 인식한 것사이에 작은 틈이 생겼고, 나는 그 틈 속에서 본다는것의 의미를 어렴풋이 이해했다. 하나의 장소는내면과 외면이 만나는 지점이고, 내가 본 그곳은 나의심상이며, 내가 쓰는 것은 그 심상의 언어라는 것을. - P120

"Enfin, c‘est le printemps."(마침내 봄이야) www불어로 말했더니 그제야 살짝 눈길을 준다. 그리고살포시 앉아 앞발을 내민다.
봄이고 뭐고, 간식 달라는 뜻이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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