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에게 주어져야 할 것은 체포영장이 아니라 노벨평화상입니다." - P208
"내가 저 일을 하면 자랑스럽겠구나 생각했어요. 폼 나잖아요, 용접공. 저는 그냥 한진중공업 노동자 김진숙이 좋아요. 나의 삶을 규정할 수 있는 건해고자의 삶이었으니까." - P200
"나는 돈도 필요 없다. 하루를 일하더라도 내 발로 걸어 나오고 싶은 게 내 꿈이라고 말했죠. 조합원들에게 그 말을 이해시키는게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2011년에 자기들이 해고돼보니까 왜 굳이내가 그렇게 복직을 하려고 그러는지 알겠다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 말들이 참 고마웠습니다." - P205
서로가 서로의 결을 지킨다면 가난해도 살 수 있다는 것을 김종미는 기찻길 옆 공부방이란 한결 같은 풍경에 속함으로써 보여주고 있다. - P137
"우선은 회복에 집중하리다. 삶이란 게 자학에 가까웠어서 몸에게 용서받는 시간들이라 여겨주시구려." - P218
김진숙은 2022년 2월 25일 복직했다. 1986년 7월 해고된 지 37년만이었다. 이미 정년 기한을 넘긴 그는 이날 명예복직과 동시에 퇴직했다. 이후 김진숙은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다. - P219
전선에 서긴 했는데 확 불태워지질 않았다. 내 싸움이어서였을까. 큰 싸움들이 도처인데 한 사람의 복직이라는 작은 싸움이어서였을까. 자꾸 쭈뼛거리던 와중에 인터뷰가 이루어지고울고 웃으며 폭포처럼 생애를 쏟아내고 그걸 글로 보니, 아, 이건 꼭 해야 하는 싸움이구나 하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 복직투쟁의 전선이 제대로 쳐진 건 이 인터뷰 기사가 나가고나서다. 그리고 나는 2022년 2월 25일 마침내 37년 만의 복직을 이루어냈다. 은유 작가의 힘이 컸다. - P219
‘며느라기‘란 사춘기, 갱년기처럼 시가 식구들한테 예쁨 받고싶고 칭찬받고 싶어 과도하게 희생하며 무리하는 시기를 뜻한다. - P223
아프면서 시간의 유한성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어요. 작업을 시작하면 2년 정도 걸려요. 준비하고 연재하고 책으로 내기까지. 내가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서 2년을 보내는 게 싫은 거예요." - P228
수신지 작가가 원한도 후회도 없이 자기 조건에서 즐겁고 멋지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존경심이 들었다. 진지하되 심각하지 않음. 비단하되 비관적이지 않음. 투철하되 과격하지 않음. 그가 아름다운 것큰 자신의 힘을 풀어내는 속도와 방식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 P233
"어둡고 무거운 건 피해자의 삶이 아니라우리 사회가 굴러가는 방식이그렇다고 생각해요." - P234
한국성폭력상담소는 1991년 설립된 단체로 성폭력 피해 생존자 상담뿐 아니라 의료·법률 지원을 하고 자조모임과 보호시설을 운영한다. 29년 동안 약 8만 5000건의 성폭력 상담이 이뤄졌다. 2003년부터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 ‘들어라 세상아 나는 말한다‘ 를 해마다 개최해 미투운동의 오랜 토양을 다졌다. 여성운동 단체중에서도 성폭력 대응으로 특화된 단체다. - P238
"우리가 가장 상처 입기 쉬운 상태를 드러내어 보여주는 일은또한 우리에게 가장 큰 힘을 부여하는 원천이기도 하다"라고 시인오드리 로드는 말했다. "상처와 힘은 같은 원천"임을 시인 에이드리언 리치도 노래했다. - P241
2018년 3월 5일부터 2019년 9월 9일까지 554일이다. 싸움이꽤 길었다.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었을까. - P240
"자기가 겪은 일은 정말 겪은 거잖아요. 오랫동안 성폭력에 대한 자각이 없는 사회는 자기가 자기 자신을 속여요. 별일 아냐, 그런일은 없었어, 힘들어하지 마. 그러다가 이 일은 부당하고 처벌해야하는 거구나 판단하죠. 수없이 진술하고 공격에 맞서서 끝까지 말하는 자체가 보통 일이 아니죠. 피해자가 중간에 좌절하지 않고 겪은 일을 겪었다고 끝까지 말하도록 주변에서 진짜 많은 이들이 도와야 해요." - P242
"우리 힘으로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게 주는 엄청난 건강함이있어요.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 힘이 돼요. 제가 어릴 때부터 잘 안아팠어요. 체력이라는 기본 요소가 있어서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었죠. - P243
어떤 상황에서 피해가 발생했더라도 ‘그것은 당신의 잘못이아닙니다. 상담소와 활동가들은 언제든 당신과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 P244
1. "어렸을 때 뭐가 되고 싶었어요?" 물었더니 "지휘자요"라고 하길래 "아, 정명훈 같은"이라고 했더니, 그는 "음, 장한나 같은 지휘자요"라고 했다. - P246
한국은 ‘유가족이 할 일이 너무 많은 나라‘라는 슬픈 말이 있다. 가족을 잃고 활동가가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소중한 가족을 잃지않기 위해서는 세상 돌아가는 일에 ‘직업적으로‘ 관심 갖고 목소리를내는 사람이 늘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공무원이나 교사 같은 안정된 직업을 선호하는 사회가 아니라 어떤 직업이라도 안정된 일자리가보장되고, 인간다움이 지켜지도록 싸우는 활동가가 대접받는 사회가더 좋은 사회라는 생각을, 김오매 인터뷰를 통해 믿게 됐다.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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