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을."
프레임이 없다면 프레임에 발을 찧을 일도 없을 것이고, 프레임아래로 동전이 굴러들어가는 일도 없을 것이고, 매일 방바닥에 머리를 붙인 채 프레임 밑으로 팔을 뻗어 걸레질을 할 일도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프레임을 버리는 것을 집주인이 허락할 리 없었다. - P75

우리는 사료를 천장으로 던지며 입을 크게 벌렸다. 입으로 늘어오지 못한 사료 알갱이가 방바닥 여기저기에 토끼똥처럼 흩어져있었다. - P73

지은이 노트를 꺼냈다. 첫 장을 넘기자 방의 도면이 나타났다.
두번째 장을 넘기자 방의 도면이 나타났다. 똑같은 도면이 그려진페이지를 지은은 넘기고 또 넘겼다. 빈 페이지에 방의 도면을 능슷하게 그려나갔다. 옮길 수 없는 것을 가장 먼저 표시했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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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순간 해미는 자세를 바로 하더니 오늘은 한 시간만 수업하고 다음 주에 보강을 하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다. 경진은못 이기는 척 승낙한 뒤 10시쯤 나와 서둘러 집에 돌아왔다. - P12

해미 소식은 아직입니다.
찾으면 선생님께도 연락드릴게요. - P18

앞으로의 고생이 훤히 보인다는 듯 역술인은 안타까워했다. 다만 두 사람 사이에 자식복은 매우 좋다고 덧붙였다. 특히 첫째가 야무진 데다 속정이 깊어서 자랄수록 엄마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리라는 것이었다. - P23

"이삼 분만 더 끓여서 드시면 돼요. 반찬 좀 더 가져다 드릴까요?"
언제나처럼 미소 띤 얼굴로 사장님의 아들이 물었다. - P35

경진이 고개를 저었다. "조용히해. 남들도 지금 너 보면서저 여자는 무슨 사연으로 눈이 띵띵 붓게 울었을까, 저러고서두루치기 잡수러 왔을까 할걸."
"하긴." - P37

경진에게 그 여행에 관한 기억은 종일 소주에 취해 있던아빠의 모습이 거의 전부였다. 뭐든지 필요 없다며 손사래를치던 엄마의 고집도 피로감을 더했다. - P41

서울 타워 아래 산등성이와 성곽, 그 곁으로 난 산책로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마치 싱싱한 브로콜리의 윗부분처럼 남산은 신록으로 촘촘히 싸여 있었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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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람에 나는 혓바닥을 씹었다. 어떤우리가 탄 트럭을 따라오면서 비눗방울을 불었다. "정말, 정말 좋았어요. 그 순간이요." 나는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자요?" 한참후에 나는 아빠를 불러보았다. "아니." 아빠가 대답했다. 나는 첫눈이 내리면 그때도 이렇게 같이 침낭에서 잠을 자자고 말했다. - P223

모든 일은 그 망할 놈의 옆집 할아버지가 넘어졌기 때문이라고 오빠는 술에 취하면 전화를 걸어 말하곤 했다. 부모님이 시골로 내려간 것은 십년전쯤이었다. 시골로 내려가기 전에 아버지는 우리 삼 남매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이자 갚는 것도 지쳤다.
이제 그만 집을 팔련다." 나는 부모님이 노후 자금을 모으지는 못했어도 빚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아버지는 자동차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의 관리부에서 삼십 년을 근무했는데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퇴직금도 받지 못하고 퇴직을 했다. - P227

여냄비에 사골 국물을 넣고 가스레인지에 올려놓았다. 국이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새해 인사를 했다. 아침은 드셨냐고 물었더니 아버지가 선지해장국을 사러 가서 그걸기다린다고 했다. 동네에 있는 선지해장국집은 부모님 두 분 다좋아하는 곳이어서, 어머니는 밥하기 싫은 날이면 늘 그곳에서 해장국을 포장해왔다. 나도 먹고 싶다. 내가 말하자 어머니가 웃으면서 기다릴 테니 먹으러 오라고 했다. 내가 사는 곳에서 부모님집까지는 차로 두 시간이 넘게 걸린다. 나는 어차피 다음주에 집에 갈 거니 그때 사달라고 말했다. - P259

그런 생각을 해보는데 동생이 어디서 찾았는지 커다란 부채를 들고 왔다. 그리고 아빠 옆에 앉아 아궁이를 향해 부채질을 했다. 나는 황토방에 들어가 엄마 옆에 누웠다. 이내 등이따뜻해졌고 깜빡 잠이 들었다. - P293

눈 위에 만우절이라는 낙서가 그려져 있었고, 거짓말이라면 그 정도는 되어야지. 사 년 동안 타이어 칠십 개를 날랐다는 남자를 생각하자 도어록을 본드로 붙여버린 일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가족들에게 그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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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홀린 듯 집을 나선다. - P11

겨울을 겨울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 당연한 듯해도, 돌이켜보면 그런 시선을 갖지 못한 적이 더 많다.
봄의 마음으로 겨울을 보면, 겨울은 춥고 비참하고 공허하며 어서 사라져야 할 계절이다. 그러나 조급해한들,
겨울은 겨울의 시간을 다 채우고서야 한동안 떠날 것이다. 고통이 그런 것처럼. - P19

그렇게 생각할 때, 나와 생각 사이에 또 행복 같은것이 있었다. - P33

자신의 존재를 걸어 말하는 이는 당연히 많은 말을 할 수 없다. 그의 시는 점점 짧아지고 침묵의 비중이커진다. 각각 다른 두 편의 짧은 시에서, 나는 유서와도같은 구절을 찾았다. - P41

지금도 종종 아저씨들의 안부가 궁금하다. 과일 아저씨는 어느 동네에 트럭을 세워둘까, 다리는 괜찮아졌을까, 담배 아저씨는 여전히 애연가일까, 의지할 짝지는 생겼을까. - P55

살아서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마지막은 기필코 바다에서 바다까지 머무르기를. - P79

신호등의 초록색이 사라지기 전에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기까지는 반년, 떠나려는 버스를 잡으려고 약간달음박질을 할 수 있기까지는 1년, 발목을 접어 앉을 수있기까지는 2년이 걸렸다. 긴 회복기였지만 조바심내지않고 보냈다. 마음에서 두려움이 사라지는 만큼, 내 발목이 조금 더 어려운 일을 해내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고도 지금까지 남은 미미한 통증은, 그 끈기를봐서라도 몸에 머무르게 해줘야지 어쩌겠어.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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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말과 생각은 얇고 흰 원단을선명하게 물들이는 염료처럼 내게 스며들었다. - P21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그러니까엄마와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공간, 엄마와 내가살았다고 할 수 있는 공간은 ‘뒤쪽이었다. - P22

어떻게 그처럼 처절하게 분열된삶에 당신의 모든 감정을 쏟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그러니 나라고 무슨 수로 엄마의 감정에 감정을 쏟지 않을수 있었겠는가? - P26

"내가 샀다니까. 그 딸을 샀어. 유대인들은 사랑하는이가 죽게 생겼으면 그 사람을 팔아. 그래야 악마의시야에서 벗어나니까." 엄마는 웃었다. "내 사람이 아니면그 사람한테 나쁜 일이 안 일어나는 거야." - P34

우리는 엄마와 딸이 맞고, 거울처럼서로를 반영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혈연이니 효니하는 단어는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반대로가족이라는 개념, 우리가 가족이라는 사실, 가족의삶이라는 것 모두 해석이 불가능한 세계처럼 느껴지기시작한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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