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커피는 평소보다 예민하게 마셔봐줘요.
판도가 바뀔 수도 있는 원두라서 그래요."
"판도가………… 바뀌어………?" - P22

어린 시절 동네 친구가 어른이 되어 다시 동네친구가 되기는 쉽지 않다. 서울 부동산은 그렇게만만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경과 지나에게 그런 일이 벌어지자, 한껏 기뻤던 나머지 한사람은 두 아들을 키우느라 육아휴직 중인 공무원, 한 사람은 비혼의 전업 작가라는 간극에도 불구하고 둘은 급격히 가까워졌다. - P28

지나는 더 이상 밤거리가 두렵지 않은 것이 한시적인 착각임을 알고 있다. 그 착각이 어른이 되어서도 차 안에 있어서도 아니고 두 사람이어서비롯되었다는 것도. 그래도 좋았다. 동네 친구라니, 역시 기적 같다고 생각했다. - P32

아라는 이 사회가 연애소설의기반을 흔들 만큼 역겹게 뒤틀린 것에 깊게 탄식했다. 인터넷이 빨라서 인터넷 범죄도 빨랐다. 예상치 못한 끔찍함이었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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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말을 그에게 전부 털어놓는다. - P89

주석으로 만든 주전자에 빛을 드리우는 태양.
테이블 너머, 뼈만 앙상히 남은 한 남자가 앉아시계를 고치는 중. - P121

황망함 속에서몇몇 여인들이 서둘러나를 대신했다. - P127

그는 그 조각배에서 탈출했다.
세상으로,
영원이 아닌 이곳으로, - P133

일어나라. 감사의 인사를 전하라. 작별하라.
복도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여행객들을 스쳐 지나가면서그곳을 떠나라. - P141

고대의 신이여, 석고상 안에 갇혀버린 것을 후회하라.
고전주의여,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이반신상부족을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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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엄마의 재를 땅에 묻는 일은 나에게 중요했다. 꽃을 가져와 놓아둘 공간이 필요했다. 쓰러질 수 있는 땅이, 주저앉을 바닥이, 아무 철이고 와서 눈물을 흘릴 풀밭과 토양이 필요했다. - P268

"은미 이모가 돌아가시고 나서 엄마가 이걸 저한테 사주셨어요. 똑같은 걸 하고 있으려고요. 이제 엄마가 가셨으니 이모가 나머지 하나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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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고통은 다 장애다. 개인적 일들은 다 비극이다.
나는 이런 단순하고 분명한 정의를 갖고 있다. 고통에는크고 작음이 없고 높고 낮음도 없다. 그것은 한 개인에게절대적이다.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고 공유되지도 않는다.
때문에 ‘나‘는 ‘너‘의 고통을 결단코 다 알 수 없다. 내 고통의경험으로 남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혹자는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믿기도 하겠지만, 아니다. - P69

이길 수 없는 싸움이 아닙니다.
그것과 함께 얼마든지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마차기를 돕는 다양한 말하기가 있습니다. - P73

차라리 A가 겪은 것과 겪으면서 느끼게 된 것들을 해석 없이설명 없이 가감 없이 보여 주고 싶다. A를 알고 싶어서 A를찾는 과정은 소설을 쓰기 위한 가장 중요한 쓰기다. 쓰기를위한 쓰기랄까. - P75

낙서하고 스케치할 때는 행복하다. 망상과 몽상으로마음은 부풀어 오른다. 이 이야기를 잘 쓴다면, 이 인물을잘 그려 낸다면, 정말 멋진 소설이 될 거야. 구체가 없는막연한 큰 그림은 흐릿하게 뭉개진 예술 사진처럼 모호하고예뻐 보인다. 통제받지 않은 단어와 문장들은 시적이고음악적이다. - P75

어떻게 소설을 쓰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머릿속에 있는것을 쓰는 것도 아니고 막 쓰다 보면 써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소설을 쓰려고 시간을 갖고 애를 쓰고 그앞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닫힌 문도 열리고 보이지않던 길도 보인다는 것이다. - P80

이렇게 끝내면 안 될 것 같다. 아픈데, 어떻게, 얼마나아프냐면 말이야, 묘사하고 보여 주는 것보다는, 어찌하여이렇게 됐는지를 생각하게 됐다고 할까. 인과, 고통의 전후,
슬픔의 전후에 대해 생각했고 소설이 끝난 이후 계속 살아 낼그의 삶을 고민했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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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손등을 다 덮을 때까지 물을 채우라고!" - P236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엄마가 전화로 갈비 요리법을 알려준 적이 있다. 엄마는 필요한 재료를 되는대로 읊었다. - P235

"어떻게 지냈어?" 시어머니는 두 팔 벌려 나를 꽉 끌어안으며 안부를 물었다. 시어머니 품에 안기니 마치 내 근심이 이여인의 근심이고 내 고통이 이 여인의 고통인 양 느껴질 만큼따뜻했다. - P237

엄마는 아무 지적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약간 멍한 표정으로웃고만 있었다. 어쩌면 약에 취해 제대로 분간을 못하게 된건지도 모른다. 아니면 사소한 비판이 더는 중요하지 않다고 내심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 P241

"여태까지 나는 내가 결혼이란 걸 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 하지만 지난 6개월 동안, 상대가 기쁠 때나괴로울 때나 함께 있어준다는 약속을 지킨다는 게 어떤 뜻인지 직접 겪고 나서 보니, 그 말을 온전히 이해한 내가 이렇게여기에 서 있게 됐구나." - P243

결혼식이 끝나고 일주일쯤 지났을 때, 계씨 아주머니는 그제야 휴식시간을 가졌다. - P247

"어렸을 때 넌 우리가 어딜 가건 주야장천 내 옆에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었어." 엄마가 힘겹게 입 밖으로 소리를 내어 속삭였다. "근데 이리 나이를 먹고도 여기 이렇게 나한테 찰싹 달라붙어 있네." - P248

"엄마, 제발 눈 좀 떠봐." 나는 엄마를 깨울 작정이라도 한듯이 소리쳤다. "나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제발, 엄마. 나 아직준비가 안 됐어. 엄마!엄마!" - P258

나는 엄마의 언어로, 모국어로 절규했다. - P258

전혀 누군가가 죽은 날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 P266

그것은 엄마의 묘비명에 새겨넣기에도 딱 알맞은 단어였다. 자애로운loving 엄마는 남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이지만 사랑스러운lovely 엄마는 온전히 자신만의 매력을 지닌 사람이니까.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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