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지로 창틀을 닦던 할머니가 휴지를 동그랗게 말아 손에쥐고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원장은 검지로 시계를 가리켰다.
작은 바늘이 시잖아. 큰 바늘이 분이고. 얇고 긴 붉은 바늘은 초. - P96

24번, 오늘은 드디어 스피치다. 준비해.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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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최소한 2년은 살기로 한 제주도에서 1년 만에 짐을 싼 것은, 집안에 생긴 피치 못할 이유도 있었지만, 그해 겨울이 너무 추워서였습니다. 그런데 서울에 올라오고 나서 뒤늦게 알았습니다. 겨울이 지나면 곧 봄이 되는데………….
도시인은 자연을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지, 체득하고 있지는못합니다. 바보죠.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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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감사일기를 적을 때는 물질적인 것들을 많이 썼다. 무엇을 사서좋았고, 뭐가 생겨서 좋았다는 등의내용이었다. 하지만 계속 쓰다 보니점차 물질이 아닌 것에서 의미를 찾게 되었다. 오늘은 비가 와서 감사했고, 아이가 나에게 사랑한다고 이야기해서 감사했고, 읽은 책의 어떤문장이 감동적이어서 감사했다. 물질 외의 것에 감사하는 비중이 늘어나니, 내 삶이 이미 많은 것들로 차있다는 사실이 가까이 느껴졌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어린 나를 대면하는 일이기도 하다. 아이의 모습에서 나를 보고 나의 아픔을 본다.
아이가 울 때 안아주며 어린 시절혼자 울던 나를 함께 안아준다. 우리 부모님은 하굣길에 비가 와도 결코 데리러 온 적이 없었다. 친구들의 우산을 쓰고 가거나 다 맞고 집으로 가는 게 일상이었다. 그때마다다짐했다. 나는 아이를 키우면 비오는 날 꼭 데리러 가야지. 함께 집에 돌아와 따뜻한 코코아를 같이 마셔야지.

한국에서 이렇게 열심히 준비해 간물건이지만, 나이로비에 도착하니내 태도가 조금 달라졌다. 도시 공간이 주는 압박과 유혹은 분명 존재한다. 제주도에서는 여유롭게 걷지만 서울에 가면 비싼 음식을 허겁지겁 먹는 우리 모습에서, 다이소에가면 별로 필요하지 않은 물건도 마구 사고 면세점에서는 괜히 필요치않은 립스틱이라도 사는 것에서 알수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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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에서 산 옷은 아무래도 마리한테 어울리지않았다. 마리는 관측을 마치고 들어올 때마다 로비의 거울을 보고 깜짝깜짝 놀랐다. 혼자 재난물에 출연하는 사람처럼 불쌍해 보였다. 외국인이유난히 그렇게 보이는 것은 사실 돈이 없어서이기보다는 어디서 무슨 옷을 사야 하는지 적응을못 해서일 때가 많다. 본인만 그렇게 생각한 것은아니었던지, 자꾸 동료들이 회식비를 빼주거나덜 받았다. 마리는 옷을 새로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 P60

"여기 높아, 배고파?"
배고파서 이렇게 높이 온 거니, 하고 묻고 싶었지만 마리의 한국어는 짧았다. 재인 씨와는 잠깐잠깐밖에 못 만났고 향수병도 도져 마리는 조금외로웠다. 숙소에 동물을 들이면 안 되지만 수건 - P62

늦봄에 마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소백산에서는아니었지만 돌아가 소행성을 하나 발견했다. 반점 같은 크레이터가 많은 소행성이었기 때문에,
마리는 ‘살쾡이 클레어‘ 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이름의 기원을 아는 사람도, 제대로 발음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마리와 마리의 친구들만 알고 부른다.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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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지부진하게 ‘플랜‘에만 머무르던 때라 초조함도 늘어갔다.
23번 버스를 몰며 시를 쓰고 삶의 밸런스를 훌륭하게 유지하는<패터슨>2016의 패터슨 씨(아담 드라이버)처럼 매일의 반복이일상의 루틴이자 시가 되는 삶이었으면 좋았겠건만. 나는 도래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시간을 향해 계획표를 짜는 것이 그렇게갑갑할 수가 없었고, 스스로도 놀랄 만큼 어느 날 갑자기 사표를 던지고 퇴사했다. - P59

하지만 엄마는 사람의 가슴을 손으로 갈라서 심장을 빼는 장면이 있는 영화를 아이와 보러 가야 할 정도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 P69

어느 날 <주말의 명화>에서 데이비드 린의 <아라비아의로렌스〉1962를 방영했다. 세 시간이 넘어가는 그 영화를 나는숨도 쉬지 못하고 봤다. 갑자기 주인공이 촛불을 불어서 끄자사막의 여명 장면으로 화면이 바뀌었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깨달았다. 이것이 영화구나. 이것이 편집이구나. 촛불을 불어서끄는 장면 뒤에 사막 장면을 이어서 붙인 것이구나. 세상에서가장 위대한 비밀을 알아챈 것처럼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 순간에 나는 알았던 것 같다. 나는 아마도 영화에 관련된 일을 하게 되겠구나. 마침내 나에게는 꿈이 생겼다. - P72

지금은 세상에 없는 내 아빠(아버지라고 부른 적이 거의 없으므로 아빠라고 적는다)는 클래식마니아였다. 우리가 가곡이라고부르는 음악도 좋아했다. 노래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내 기억에 음치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어디 가서 뽐낼 만한 가창력을들려주신 적도 없었다. - P73

복수를 완성하는 것이 중요했다. 적어도 당시 내게는 남북통일보다 반청 복명이 더 중요한 화두였다. 영화란 결국 누군가가죽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었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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