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누구를 죽이려는 게 아니고 누가죽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것은 복수의 마음인가, 도안주려는 마음인가 판단할 수 없었다. - P101

그것이 안 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이힘든 사람이 있다고. "말을 할 수 있으면서 왜 제대로 말할 순없어?"라는 말에 잘못이라도 한 사람처럼 더듬거리며 아무 대답도 못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이 있다고 아무리 말하고 외치고 소리쳐도 그게 무슨 말인지조차 모를 테지만. - P117

24번은 한참 동안 말없이 운동장을 바라봤다. 나도 운동장에 시선을 두고 가만히 있다가 허공에게 말하듯 작은 소리로SK말했다. - P125

대답도 하지 마. 그냥 고개만 끄덕여 알았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P135

장의자에 앉아 멍한 눈으로 허공만 바라보던 할머니가 발소리도 없이 남자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고 책상에 있는 선인장 화분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남자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 P143

그래서 짜증나게, 자꾸 눈물이 흘렀다. 무슨 감정이 눈에서 눈물을 만들어 냈는지 알 수 없다. 모르겠다. 모르겠어.
중얼거리다가 정신을 잃었다. - P146

아니, 뭐.
원장님웅.
할머니가 엄마예요?
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왜왜 말 안 해 줬어요?
안 물어봤잖아. - P148

허무했으나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까맣게 채워 넣으면 하얗게 지워지는 날들이었다.
그는 하나의 진실을 깨닫게 된다.
문장을 바꾸면 사실이 달라진다.
표현을 수정하면 감정이 나아진다.)문단을 옮기면 과거와 현재가 바뀐다.
다음을 쓰면 미래는 생겨난다. - P162

그런데 너 진짜 말 잘한다. 너처럼 말 잘하는 사람 처음 봐나는 어이가 없어 아무 말도 못 했다. 처음엔 놀리는 줄 알고 마음이 딱딱하게 굳는 느낌을 받았지만 선행상의 눈은 진지했다. 장난도 아니었고 거짓도 아니었다. - P158

뭘 썼나 보자. - P148

하나도 잊지 않을 거다. 어떤 기억도 희미해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거다. 때문에 써야 했다. 기록해야 했다. 그것들은 콸콸 쏟아지는 물 같아서 작은 두 손과 평평한 종이에담아 내려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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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최희서 씨는 어떤 사람인가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첫 번째로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연기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요. - P5

최희서. 1986년, 12월 24일생.
다른 이름으로 저장. ‘2019년 최희서 프로필.pptx.’이렇게 나의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 P13

"아니 그렇잖아. 기사에도 품절녀, 유부녀 대열 합류, 이런 헤드라인 나오면 안 좋지 않나."
"뭐가 안 좋다는 거야. 결혼하는 게 무슨 죄야? 왜 숨겨야 돼?" - P15

ㅇ내 이름은 경이고 최희서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배우다. 1986년 12월 24일에 태어났다. 2019년인 지금은 서른넷, 만 서른들이다. 나는 4년 동안 나이를 속여왔다.
하지만 이제 그러지 않을 것이다.
나의 이야기는 내가 서른이 되었던 2015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직은 ‘20대 여배우이고 싶었던 그해 87년 1월 7일생이라는 거짓된 생년월일로 나의 이력서를 고쳤먼 바로 그날부터 시작된다. - P17

부토니에를 단 흰 셔츠에 땀자국이 번진 신랑의 목덜미를 바라보며, 나는 문득 언제부터 우리가 서로를 생각해왔는지 궁금해진다. 2010년 봄, 스물다섯의 우리가 과연 9년 후 오늘 제주도 김녕 해변에서의 셀프 웨딩촬영을 상상이나 했을까. 지금이라도 그날, 아침 햇살에 눈을 찌푸리며 편의점을 찾아 끼니를 때우던 S와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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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가을 나는 원했던 대로 대학원에 입학했다. - P19

다시 봄이 오자 안개비가 시도 때도 없이 내렸고, 한낮에도 하늘은 납빛으로 어두웠다. 집안에 언제나 떠다니던 차고 습한 기운이 나를 짓눌렀다. 이웃집에 살던 아랍 사람들은 이사를 갔고, 나는 여전히 마늘을 쌓고 멸치를 다듬었다. - P27

지금도 그날을 추억하면 빗속을 뛰어가는 언니와 나의 모습은 손끝에 닿을 듯 생생하고, 그러면 나는 어김없이 울고싶어진다. - P39

새벽의 기차역 풍경을 알고 있지요? 우리가 오래전 처음 헤어졌던 곳도 새벽의 기차역이었어요.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채 국경을 건너는 기차에 올라타려던 내게 당신 부부가 작별의 말을 건네던 장면을 떠올릴 때가 있습니다. - P43

한스가 물었습니다.
"난, 관광객들이 없으면 그 아이들이 상대적 빈곤을 느끼지는않아도 됐을 거라고 생각해요.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 달러를 벌기 위해 구걸하듯 돈을 달라고 해야 하는 삶에 익숙해지지는않아도 될 거라고 말이죠."
"당신, 취했어? 왜이래?" - P63

죽은 고양이를 처음 본 것은 내가 열여덟 살에서 열아홉 살로넘어가던 겨울이었다. 눈 소식이 유난히 없었던 그해 겨울, 잣눈,
싸라기눈, 눈, 국어사전에서 눈을 가리키는 서로 다른 이름들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눈이 오길 기다리는 마음으로 노트에 베껴 적으며 지루한 겨울을 나고 있었다. - P75

"세상에.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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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레 희자를 얼마나 아끼는지도 다 안다.
-아즈마이, 내레…- 기냥 울어버리라우. - P203

"귀리는 좀 어때?"
나는 정자 쪽으로 걸어가서 할머니 곁에 앉았다.
"안 좋아요. 오늘은 고개도 잘 못 들더라구요. 밥을 못 먹은 지도꽤 됐어요. ‘ - P211

-기계 언제 적 일인데, 기억도 잘 안나.
-거짓말 마라.
어마이 우리 지나간 일 잡고 살지 맙시다. 개성에서의 일 난다잊었어 - P217

"얼마 전에 할머니 꿈을 꿨어."
엄마가 이어서 말했다. - P328

-그래, 그래.
희자와 증조모, 그리고 경순이 방으로 들어가 담요를 같이 덮고서새비 아주머니를 바라봤다.
- 이틀째 드신 게 없어요. - P290

나는 여전히 그런 일들을 잊지 못한다. - P282

"어떻게…… 너한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니."
엄마가 힘없이 물었다. 마치 내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어서묻는다는 듯이.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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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
"희령이다." - P139

- 아이고, 희자야. 우리 이제 다른 이야기 할까.
그러자 희자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 언니는 다 잊었구만.
-잊기는, 모두 기억한다. 근데 희자 너레 그때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니까. - P148

나는 공터 뒤로 펼쳐진 바다를 바라봤다. 세 살 때 나는 증조할머니와 할머니와 엄마와 함께 지금 공터가 된 이 자리에 있었다. 같이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웃었겠지. 나는 세 살의 내가 머물렀던 할머니의집을 그려볼 수 있었다. 그리고 늘 함께 붙어다녔던 언니의 모습도. - P169

엄마가 멕시코에서 돌아온 주 주말에 서울에 올라갔다. 그날은 장시간 운전할 자신이 없어서 시외버스와 택시를 갈아타고 집으로 갔다. 엄마의 피부는 보기 좋게 그을었고 표정도 예전보다 밝아 보였다.
"엄마 귀 뚫었어?"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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