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들 순간들 배수아 컬렉션
배수아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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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의 문장이 하나씩 자라서 가늠할 수는 있으나 닿을 수 없는 우듬지로 아른거리는 풍경. 호수에도 숲에도 책의 더미에도 기꺼이 빠져드는 이들을 위해 그가 써내린 신비한 가이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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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합격, 계급 - 장강명 르포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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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만이 할 수 있는 도전은 아니었겠으나 여전히 유일하게 장강명만이 해내는 영역 흥미진진하고 대담한데다가 진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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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뒤에는 내가 읽던 책이 무엇인지 기억하지 못하는채로 또다른 책을 들고, 어디에선가 벤치에 앉아 이 책을 읽게되리라는 기대로 설레며 산책을 나서기 때문이다. - P88

자신에게 한국은, 그 무엇보다도 인적 없는 공원의 벤치에 앉아 눈 속에서 게르하르트 마이어의 책을 읽었던 겨울날로 기억될 것이라고. - P91

나는 체념하고, 포기하고, 굴복하고, 인정하고, 마침내 울 것이다. 그리고 눈물과 함께 마지막 문장을 쓸 것이다. 아니, 눈물이 곧 마지막 문장이 될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나는 잘 울지 않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고, 마지막 문장은 영영 나타나지 않는다 - P94

하지의 저녁, 길고도 느린 구릿빛 그늘이 테라스의 장작더미 위에, 유리구슬에, 거울 조각에, 공작새의 양철 날개 위에한없이 오래 머문다. 그러다 묽은 어둠이 고이듯이 하지의 밤이 온다. 정원 나무들은 검은 그림자로 우뚝 서 있는데, 하늘에는 빛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 P94

우리의 기대는 참으로 나이브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가선택한 경로는 오직 숲을 관통하는 길이었고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단 한 번도 숲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카페는커녕 단 하나의 벤치도 없었으며, 이곳 건너편의 숲은 깊고 울창한데다 호수로 이어지는 산책로가 아니라서 단 한 사람의 산책자도 만날 수 없었다. - P96

지금도 나는 기억한다. 오랫동안 음습한 숲속을 헤매던 우리의 눈앞 저멀리에서부터, 우거진 나뭇가지 사이로 환한 빛이 쏟아지는 들판 한 귀퉁이가 나타나던 순간을 나는 사막에서 신기루를 발견한 사람처럼 그곳으로 걸어갔다. - P99

아프다, 이게 바로 나야!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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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조잡하고 초라하고 볼품없는 귀가 꿈속에서 어떤 소리를 들었는지 꿈 밖의 (더이상 거대한 귀가 아닌) 나로서는 기억해낼 재간이 없었다. - P75

아버지의 불륜이 들통나고 내가 그곳에 머물게 되었을 때, 어머나는 더이상 임시 거처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 "이제부터 여기가 내 집이야." 어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 P80

아버지의 빈정거림이 무색하게 떡은 서서히 구워졌다. 잠시 후,
어머니는 찬기가 가신 떡을 내 입에 넣어주었다. 여전히 딱딱하긴했지만 나는 곡물의 고소한 맛을 느끼며 꼭꼭 씹어 넘겼다. 어느아버지도 젓가락을 가지고 와서 떡을 다른 촛불 위에 굽기 시작했다. - P89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나는 그 이야기가 끝난 후에도 거기에머물러 있었다. 언제나 그랬다. - P100

그해 여름, 나는 그렇게 틈만 나면 옥상으로 올라가서 불장난을했다. - P120

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것 같았고, 앞으로의 삶에 항구적인 영향을 끼치리라고 호들갑스럽게 기대했던 순간들이 그저 일시적이고 잠정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시실에 나는 어쩌면 상처를 받았는지도 모른다. - P128

나는 원고지를 덮었다. 선생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해 있었다.
아이들은 어리둥절해하며 내 얼굴과 선생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세상의 비밀 하나를 알게 되었다고 느꼈다. 누구도 가닿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도달했다고. 그 세계는 터무니없이 치명적이고 통렬하면서 동시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연약해서 내 마음속에 꼭꼭 새겨두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그런 생각은 시간이 흐른 후에 착각, 기만, 허상에불과하다는 판명이 날 것이었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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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영 씨!" 상수는 수영을 노려봤다. 적개심이나 경멸감은 아니었다. 후회하고 창피스러워하는, 쓰라림이 있었다. "관두죠." 불분명하게 내뱉고, 상수는 가방을 챙겨든 다음 그대로 나갔다. - P91

수영은 의자를 빙글 돌려 상수를 똑바로 봤다. "그럼한번 말씀해 보시죠. 그날 왜 안 나오셨는지."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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