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는 미경에게 더 잘했다. 자꾸 허해지는마음을 채우고 싶어서, 미경에게라도 자신이 꽤 괜찮은남자라는 것을 인정받고 확인받고 싶어서. - P56
회의실에서 나온 상수는 지점 밖으로 나갔다. 편의점에들어가 본부장 발표 준비로 고달팠던 며칠 동안에도 근근이 참아 낸 담배 한 갑과 라이터를 샀다. - P57
몇 곳을 그렇게 느닷없이 찾아가서 설명한 뒤, 입소문이 돌기 시작했는지 해당 상품을 문의하는 연락이 이어졌다. 지점장의 목소리는 나긋해졌고 수영의 일처리는 능숙해졌다. 수영은 정원이나 실내에 특별히 신경 쓴 듯 보이는 부분을 칭찬해 대화를 주도하고 반복해 나오는 질문에체계적이면서 알기 쉬운 설명을 준비했다. - P61
서툰 왈츠를 추는 한 쌍처럼, 미경이 물러서면 상수도물러섰다. 미경이 망설이다 다가서면 상수 역시 망설이다다가섰다. 서로 다정하게 바라보면서도 조금씩 엇갈렸고주위를 맴돌았다. 다르면서도 비슷한 각자의 이유로 상대방의 발을 밟지는 않은 채, 끊어질 듯하다가 다시 이어지고 멈춰 설 듯하다 다시 시작하는 춤을 췄다. - P63
을 미경이 무심히 던진 말에 수영은 다시 끌렸다. "나중에, 혹시 다른 거 하시게 되면 저 주세요. 그래야 제가 덜미안하고 더 고마울 것 같아요." 수영은 ‘더‘와 ‘덜‘을 강조해 말했다. - P67
"재밌는 거 알려 줄까?" 수영은 종현의 티셔츠 속으로손을 넣어 가슴팍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넓고 단단한, 대리석 같은 가슴. 일요일 오후의 햇빛이 두꺼운 커튼 사이를 지나 싱크대 위에서 어른거렸다. - P71
수영은 의자를 빙글 돌려 상수를 똑바로 봤다. "그럼한번 말씀해 보시죠. 그날 왜 안 나오셨는지." - P87
사실 수영의 말이 맞았다. 망설였다. 관계를 더 발전시킬지 말지. 수영이 텔러, 계약직 창구 직원이라는 것, 정확히는 모르지만 변두리 어느 대학교를 나온 듯한 것, 다걸렸다. 일도 잘하고 똑똑한 사람이라는 것을 누구보다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랬다. 그 두 가지가 상수 자신의밑천이었기 때문에, 상수가 세상에서 지금까지 따낸 전리품이자 직장과 일상생활에서 그 위력과 차별을 나날이 실감하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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