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아버님."
"어허,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른다니까." - P166

상수는 화장실에서 속을 게워내고, 챙겨 온 숙취 해소제를 하나 더 털어 넣고 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미경의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 세 번째 술병을 땄다. "자, 이제노래제대로 마셔 보자." - P169

미경의 아버지는 상수를 똑바로 봤다. "결혼을 한다는건 말이야, 그 향긋한 똥밭에 알몸으로 뒹굴어도 하지 말아야 할 게 생긴다는 뜻이야. 제 아비, 어미는 몰라봐도제 마누라, 자식새끼는 몰라보지 말아야 한다는 거네. 힘든 일이지. 결혼이 그래서 어려운 걸세" - P174

택시가 떠나고 상수는 터덜터덜 집으로 걸었다. 어쩐지아주 작고 초라해진 집으로 바라던 것을 얻은 셈이었다.
하지만 뿌듯하거나 보람된 기분은 느낄 수 없었다. 속이울렁거렸다. 취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 P180

회사에서처럼 모든 일과 관계에서 결과가과정을 정당화하는 것이라고 자신을 윽박지르고싶었다. 하지만 그렇게되지가 않았다. 속이 울렁거렸다. - P181

종현과 함께 있는 시간 동안 수영은 아무 위로도 구할 수없었다. 억지로 웃고 떠들어 봐도 종현은 다른 곳에 있었다. 더 깊고 어둑한, 지켜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답답해지는 곳에. - P182

"양 과장은 정말 족보 하나는 타고났구나. 나중에 감사실하고라도 엮이면 그야말로 로열패밀리에 언터처블이겠구만. 휠체어를 타고 가도 포르쉐보다 빠르겠다." - P185

술집이 즐비한 거리를 무심히 바라봤다. 유흥 주점 여자들이 사탕바구니를 들고 돌아다녔다. 왁자지껄한 회사원들이 날파리 떼처럼 뭉쳐 비틀거렸다. 고깃집 한 귀퉁이화로에 불을 지피는 곳에서는 부지깽이를 든 남자가 목장갑 낀 손으로 권태롭게 담배를 피웠다. 모두 함께 뒤섞여흘렀다. - P188

‘힘내, 우리 예쁜이. 가끔 하늘 대신 거울을 보고, 나도그렇게 버텼다." 서 대리는 올 때처럼 슬그머니 다른 자리로 갔다. 커다란 엉덩이를 느긋하게 흔들거리며, 외로워보이는 뒷모습이었지만 이내 왁자하게 떠드는 자리에 쑥끼어 들어가 앉아 웃고 농담하고 마셨다. 불 꺼진 유원지에서 혼자 팝콘을 튀기는 기계처럼. - P191

"없는데요." 두 사람 대화가 못 들어 주겠던 수영은 냉랭하게 대꾸했다.
"만나는 사람은?" 이 과장의 눈빛이 은근해졌다. "만나는 사람도 없어?"
"없습니다." - P194

"그 말씀은 사과가 아니잖아요. 제가 불편하다고 하니까 사과해 준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네가 예민해서 그렇다니까 그렇다 치고 넘어가자 그 소리랑 뭐가 달라요?" - P195

"정말이에요. 난 속물이거든요. 팔랑팔랑 하얀 A4용지처럼 순결한 속물, 솔직하고 우아한 진짜 속물. 얻을 게이거나 손해 안 보기 위해서만 뭘 하죠."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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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날 - 김보희 그림산문집
김보희 지음 / 마음산책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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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하고 싶은 책, 누구에게도 가 닿을 아름다운 평화의 페이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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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랑을 겪고 품은 바다는 평온하다.
그 바다를 나는 그린다.

내 생애 첫 책을 낸다. 칠십이 되어 책을 내는 마음이 기쁘면서도 쑥스럽다. 오랫동안 숨어 지내듯 그림만 그리고살았다. 모교에서 교수 생활을 할 때도 크게 드러나지 않게제자들과 함께 그림에 몰두하며 살았다. - P7

제주도에서 내가 느낀 대로, 본 대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 그림들과 짧은 글들이 책을 받아든 사람에게 평화로운마음을 환기했으면 좋겠다. 복잡한 세상에서 이 그림산문집을 읽는 동안만큼은 맑고 은혜로운 기운을 받으셨으면 하고 간절히 바란다. - P9

2023년 3월제주도에서김보희 - P9

그 이름은 아들이 지었는데, 조단이 껑충껑충 점프를 잘하는 것을 보고 자기가 좋아하는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과 자신의 성인 조씨를 합성하고 응용하여 지은 것이다. - P27

레오는아빠가 돌아오기만을늘 기다린다. - P32

야자나무 씨앗들은 마당에서 새롭게 싹을 틔우며 잘 자라고 있다. 10여 년이 또 지나면 우리 자손들에게도 귀한 선물이 되지 않을까. - P63

초록 그림이 많아진 것은 자연스러운 삶의 반영이다. 그싱싱한 초록 속에 내가 살고 있다는 증거다. 큼지막한 초록잎을 시원하게 펼쳐 그릴 때면, 작은 체구의 나도 활짝 몸을 펴는 느낌이다. - P61

레오와 숲속 길을 산책하다가 만난 꽃인데 너무 아름답다. 색과 문양도 현대적이다. 천남성이라는 독풀인데, 이렇게 정겨운 모습의 들풀이 옛날에는 사약의 재료였다고한다. 꽃들도 이렇게 겉과 속이 다를 수 있나 보다. - P92

그림 그릴 때 내가 어떤 바다를 그리고 싶어 하는가가 중요하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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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야기를 지어내면서 그녀는 모슬포의 거리를 걸어갔다.
나도 두어 번 모슬포를 지나간 적이 있었다. 마음먹고 걷자면 시내 어느 곳이든 삼십 분이면 걸어갈 수 있을 정도의 소읍이었다. - P71

책의 맨 앞에는 ‘시간여행자를 위한 가이드북‘이라는 제목이 붙어있었고, 다음 페이지에는 "누구도 여기 기록된 사건들이 일어나는것을 막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문이 인쇄돼 있었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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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카메라로 충분할까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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