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떻게 해야 되니?" 미경이 말했다.
그걸 왜 자기한테 묻냐는 듯 경필은 미경을 쳐다봤다.
"모르겠어서 그래, 정말 모르겠어서, 모르겠어 미치겠어서 그래." - P320

사랑했지만 사랑을 믿지는 않았다. 사랑을 원했지만 사랑만 원한 것은 아니었다. - P328

종현은 수영의 손목을 움켜쥐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
수영은 뺨을 부여잡고 있었지만, 따라갔다. 끌려가는 것이 아니었다. 두 사람이 유리문으로 나가자 무슨 일이냐,
말려야 하지 않냐, 경찰에 신고해야 하지 않냐 여기저기서 웅성거렸다. - P332

미경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주방으로 들어갔다. 냉장고를 열어 차가운 물을 컵에 따랐다. 마셨고 한 잔 더 따라상수에게 건넸다. - P339

* 카페는 북적거렸다. 수영은 아직이었다. 상수는 카페라테 두 잔을 시켜 들고 창가 자리가 나기를 기다렸다. 잠시후 알콩달콩하던 연인 한 쌍이 자리를 비우고 나갔다. 상수는 자리에 앉아 수영을 기다렸다. - P345

"종현이랑은 어떻게 됐어?" 왜경필이었는지 물어 볼까하다 튀어 나온 말이었다. - P346

수영은 잠시 망설이다 공동 현관 비밀번호를 눌렀다.
열리지 않았다. 수영은 혀를 삐죽 내밀고 웃었다. 민망하기도, 아쉽기도 하다는 듯. - P349

"좋네." 탄식처럼, 상수는 수영을 보지 않은 채 말했다.
두 사람은 가느다란 쇠난간에 우산을 받친 채 풍경을바라봤다. 가는 빗방울이 우산 위로 떨어졌다. - P350

이야기를 써 나가면서 사랑이 다른 감정과 다르다면결국 우리를 벌거벗게 만들기 때문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사랑의 징후인 두려움과 떨림도, 보상인 환희와 자유로움도 그래서 생겨나는 것 아닐까 하고, - P361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말하기는 민망하다. 쓰고고쳐 쓰다 보니 그런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어떤 것도 주장하고 싶지는 않았고 그럴 수도 없다. 사랑은 각자의 것이고 그래야 하니까. 마찬가지로 내가 생각하기에 사랑이란 이런 감정과 감각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 있었고 그것을 단어와 문장, 이야기로 체험할 수 있게쓰려고 애썼다. 초고를 읽은 편집자와 만나 한 얘기도 그것이었다. 창피하게도 그 초고는 사랑에 대해 뭐라도 그럴싸한 말을 써 보려 안간힘을 짜낸 것이었지만 - 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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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황한 이야기였지만 수영은 한번 끊지도 않고 들었다.
주저하다 물었다. "그러니까 CPA보다 두 단계쯤 더 높다는 거지?" - P212

"내가 오히려 사내게시판에 올릴게. 우리 지점 안 주임께서 인감도 못 챙기던 어리바리계장 하나 얼마나 고생고생해서 사람 노릇 하게 만들어 주셨는지." 상수는 웃는 수영을 바라봤다. 정말 기분 좋은 웃음이었다. 종현에게 지어 주던 그 광채 같은 웃음은 아니었지만. - P264

"진짜. 너한테는 다 얘기할 수 있거든. 잘난 거, 못난 거그런 생각 안하고, 이런 척 저런 척 안 해도 되고." 미경이떠올라 상수의 표정이 씁쓸해졌다가 다시 웃었다. "어설프게 척하면 당장 들키니까." - P263

작고 정갈해 보여서 가끔 일본 여자처럼이기도 하는 미경이 프랑스어 발음을 능숙하게 하면 상수는 넋을 잃고 바라봤다. 당장 침대로 업어 가고 싶었다.
그래도 오후까지 공부하며 저녁을 기다렸다. - P267

상수는 망연히 미경을 안고 있었다. 작고 연약한 몸의절박한 떨림이 전해졌다. 뜨끈거리는 눈물이 살갗에 툭툭떨어져 시트로 흘러내렸다. 식어 갔다. - P272

"안 받으려고 했는데, 여자 친구도 있고 부담스러워 못받겠다고 했는데 주고 가 버렸어요. 자기 쓰던 거라고, 싫으면 버리라고 하면서. 아직 한 번도 안 썼어요. 돌려주려고 가지고 있던 거예요." - P278

버스가 왔다.다버스가 갔고, 두 사람은 정류장에 남았다. - P283

"끝이지. 그게 끝인 거야." 수영의 손이 재빠르게 음들을 짚어 냈다. "한 번, 섬광처럼 반짝이지만 그대로 끝이나고 연극의 암전처럼 곡은 닫히지."
짧은 침묵이 있었다.
***
"크리시오 이런게 들으 거 처음이야 엄청나게 - P303

봄이 막바지인 것을 알리는 듯한 바람이 포근히 불던저녁, 두 사람은 신촌에 있는 상수의 대학교를 함께 걸었다. 무성하고 두꺼운 잎들이 짙은 그늘을 드리우며 흔들렸고 성당으로 이어지는 오르막에는 철쭉들이 가득히 피어 있었다. 도서관 쪽으로 걸어가자 아래쪽 운동장에서야구 하는 대학생들의 고함 소리가 멀찍이 들렸다. -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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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랫동안 이런 대화의 방향을 바꾸어 내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 법을 익혔다. 그래서 이런 말이더 나오지 않고, 다른 말들에 달라붙지 않고, 잔여물을만들지 않을 수 있도록. - P245

작가 발레리 마틴(Valerie Martin)은 기질에는 세 가지가있다고 말했다. 좋은 기질, 나쁜 기질, 그리고 작가의 기질. 이 단순한 문장을 기억하는 건, 작가 기질 혹은 예술가 성향이 특정성격들의 융합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들 특성 가운데 하나라도 빠지면, 섬세한 장치 전체가 결국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 P249

글을 쓰는 삶에는 위험이 가득하다. 기꺼이 다시 또다시 처절히 실패하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되는 창작의 위험이 있고, 한편으로는 현실적인 위험도 있다. - P250

어머니와 나의 평생에 걸친 싸움이 언제 시작했는지는모르겠지만, 끝난 순간은 안다. 어느 아름다운 늦봄의저녁, 현관진입로에 차를 댄 나는 현관 앞 포치에 서서핸드폰을 들고 있던 마이클을 보았다. 차창을 내리자 그가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을알아차렸다. - P254

마음속 풀리지 않는 문제들과 더불어. 어느 날 우리도세상을 떠난다는 걸 안다. 이 결정권이 찰나만 유효하다는 것. 이 결정권이 실은 결정권이 아니라는 것. 하지만이것이 우리가 가진 전부다.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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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진이 후쿠다에게 물었다.
"몇 년 전부터 한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일본말을 할 줄 아는걸 보니까 제가 찾는 사람이 거의 맞는 것 같습니다." - P169

목이 마른지 그는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물을 마셨다. 그러더니물잔을 내려놓고 옆에 놓인 위스키잔을 들어 향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마셨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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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책 읽기를 좋아한다. - P41

겨울이었다. 하얗고 탐스러운 눈송이가 가로등 아래로 흩날렸다. - P45

나는 그것을 몇 분간 바라보았다. 맞지 않았다. 한 단어를 더했다. - P49

종이를 구기고 뭉쳐 바닥에 버렸다. 물을 끓였다. 밖을 보니 비가 그쳤다. 창틀에서 비둘기가 구구거렸다. 몸을 부풀리고 앞뒤로행진하더니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를테면, 새처럼 자유롭게 타자기에 다른 종이를 끼워넣고 글자를 쳤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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