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남편이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 - P115

이제 땡이에요. 그래서 나도 청년에게 말했다. 자네도 땡.
그러니 이제 집에 가요. - P111

빗방울이 이마에 떨어졌다. 비를 맞자 웃음이 났다. 쌤통이다. 쌤통이야. 차라리 비가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P107

암이 폐로 전이되었다는 말을 들은 날 영순은 택시 기사에게 욕을 했다. 의사 앞에서는 담담한 척을 했지만 병원을 나서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택시 정류장에는 모범택시밖에 없었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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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 절정일 때 어쩌면 다른 남자 이름을 부를지도 모르는데, 상관없어?"라고 그녀는 물었다. 우리는 알몸으로 이불 속에있었다. - P11

하지만 아무튼 그것은 훗날에 남았다. 다른 말과 생각은 전부먼지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 P25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수를 세는 데 집중하느라 정신이 들때까지 시간이 걸렸다), 내 앞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군가의시선이 가만히 나를 향해 있다―그런 느낌이 들었다. 나는 신중하게 천천히 눈을 뜨고, 고개를 살짝 들었다. 맥박은 아직 약간불규칙했다. - P41

노인은 침묵한 채 가만히 내 쪽을 보았다. 좀더 그럴듯한 의견을 내주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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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 손끝이상하는 날이 이어졌다 - P34

내연이라는 어려움과외연이라는 다름을 오래 생각했다 - P25

경을 처음 외우는 동자들처럼떠듬떠듬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 P21

그래서 지금은냉이꽃이 소복을 입은 듯 - P20

서향집의오후 빛은 궂기만 하고 - P15

어제 입고 개어놓았던옷을 힘껏 털었고 - P13

밀어도 열리고당겨도 열리는 문이늘 반갑다 - P11

나의 무렵을걸어 내려가고 있는당신의 걸음은 빠르기만 했다 - P47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오면동네의 개들이 어제처럼 긴 울음을 내고 - P62

무엇을 기다리는 일은시간이 아니라 공간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 P63

아욱 줄기가 연해지기 시작하면우리의 제사도 머지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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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은 신혼집을 얻기 위해 무리해서 대출을 받았다. 회사에서차로 삼십 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전원주택을 샀다. 똑같은 모양의 땅콩집이 수십 채 모여 있는 단지였다. "너무 똑같잖아." 아내의 말에 정민은 입구에 앵두나무를 심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 P163

교도소에 도착하고서야 공휴일은 면회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 양말은 전해줄 수 있나요? 나는 민원실 직원에게 딸기가 그려진 분홍색 양말을 보여주었다. 교도소에서 신기에는 다소 민망한 디자인이라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오늘은 새해 첫날이니까. 막냇삼촌은 틀림없이 웃어줄 것이다. 양말은 반입 금지 품모입니다. 직원이 말했다. - P263

아버지가 말했다. 니가 그나마 가장 가까운 곳에 살잖니. 그 말은사실이었다. 차가 막히지 않으면 사십 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나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오전 열한시 삼십분이었다. 그럴게요. 제가 갔다 올게요. 나는 말했다. 착하다. 아버지가 말했다. 아버지가 착하다고 하니 이상하게도 착하다는 말이 다시 듣기 싫어졌다. - P263

아버지는 깁스를 풀기 전에 넘어져서 골반을 다쳤다. 막걸리 를마시고 화장실에 갔다가 슬리퍼를 잘못 밟아 넘어졌는데, 어머니가 외출을 하는 바람에 몇 시간 후에야 발견되었다. 아버지는 화장실에서 목이 쉬도록 사람 살려달라고 외쳤다. 하지만 그 소리- 옆집까지만 들렸고, 옆집은 할아버지가 허리를 다친 뒤 요양원에 들어가서 비짐이었다.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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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이렇게 말하기로 했다고 한다. - P37

그러면 아버지가 이렇게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이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다. - P37

아버지의 시나리오는 무용했다. 누구도 이유를 물어오지 않았으니 아버지도 어머니도 대답할 기회조차 없었다. 같은 목적을 가진 부부들이 한방에 모여 차례를 기다리다가 이름이 불리면 판사앞으로 나가 이혼을 확정받는 것이 전부였다. 한 쌍도 아니고 네쌍씩 일렬로 서서, 성적표를 받듯 확인서를 받아 챙겼다. 그걸로끝이었다. 오십 년 결혼관계가 그렇게 끝을 맺었다. 낙제점을 받고도 합격증을 챙긴 셈이었다. - P38

이럴 땐 꼭, 느이 아빠구나, 딱 네 아빠야. - P43

넌 네 엄마 인생이, 그렇게 정리되면 좋겠니?
어머니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 P43

어머니가 여고 졸업 후 서울로 떠나면서부터 할아버지는 어머니에게서 온 편지를 벗삼아 술상 위에 펼쳐놓고 술을 마셨다 한다. 한 줄 읽고 한 잔, 두 줄 읊고 한 잔. 그렇게 편지와 주거니 받거니 술을 마시다보면, 내 어머니가 금방이라도 소주 됫병을 옆구리에 끼고 걸어들어올 것 같다고, 할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보내는편지에 마지막 인사처럼 덧붙이곤 했다. - P59

‘삼칠일 지나 오니라.
할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 P54

얼마나 재미가 나던지, 참 좋다, 참 좋다, 참 좋다, 계속 그러면서 앉아 있었지 뭐야. 다시 배 타고 나오면서 우리 또 오자 약속했어. 뭐가 그리 좋았는지는 가물가물한데, 그 느낌은 두고두고 기억이 나. 아 좋다, 참 재미나다, 우리 다시 오자. - P48

그냥 같이 삽시다, 명자씨. - P51

골목을 돌고 돌아 집까지 꼬박 열두 시간이 걸려 도착했다. 보따리만 이고 지고 다섯 개였다. 전에 몇 번이고 와본 사람처럼 능숙하게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선 증조할머니는 우렁차게 어머니를 불렀다. 명자야, 할미 왔다 명자야. - P53

다시 절을 올리고 서울로 떠나던 날, 할아버지는 그제야 어머니의 이름을 불렀다. 명자야, 하고 불러세운 다음, 어머니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네가 저 사람 아버지가 되어줘라. - P61

난 희생한 적 없어. 하루하루 사랑하면서 살았을 뿐이야. 내가할 수 있는 걸 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어서. 그걸 하며 살아온 거야. 네가 그걸 그저 희생으로만 생각한다면, 네 말대로 그 모든 게 그저 희생과 인내였다면, 내 인생이 그런 거였다면,
난 정말 슬픈 거 같어.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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