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은 어쩜 이렇게 무구한 존재일까, 미움이 스며들틈이 없네. 그러곤 절단면을 보며 환호했다. 단호박과 치즈가 어쩜 이렇게 꽉꽉 들어차 있는지! - P161

글탕종이라는 말의 비밀스러운 느낌은 오래도록 내곁에 남아 있다. 비록 단호박크림치즈 탕종식빵은 하루도 못 가 사라져버렸을지라도. 탕종, 탕종. 나는 단어 하나로도 나를 지킬 수 있다. 단어가 빵처럼 부풀고 종처럼 울려 한 사람의 집이자 우주가 된다는 것.
참 따뜻한 움막이다. 뜻밖의 신비다. - P163

꼭두‘의 마음으로 말이다. 꼭두는 상여를 장식하는 나무 조각상을 이르는 말로, 이승과저승, 꿈과 현실을 잇는 존재다. 망자에게 길을 안내하고,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영혼을 위로하는 역할을 한다. 꼭두는 언제나 선두에 있다. 꼭두새벽이 아주 이른 새벽을 부르는 말이듯이 꼭두는 언제나 맨앞에서 길을 내고 불가능한 문을 열며 나아간다. - P167

존재가 깃털 같아지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그럴 때 인간은 아주 작은 입김에도 날아갈 수 있다.
날아오르는 게 아니라 날아가버린다. 그럴 때 한 편의 시가 당신의 누름돌, 당신의 한 점이 되어줄 수는없을까.
한 점. 딱 한 점만 보고 걷는 것이다. 나도 이쪽에서 딱 한 점만 보며 걸을 것이다. 그쪽의 당신도 그렇게 와주었으면 한다. - P168

내가 쓴 문장들이 징검다리가 될 때가 있다. 과거의 문장을 딛고 현재의 문장을 내려놓는다. 현재의문장을 딛고 미래의 문장을 내려놓는다. 그렇게 간신히 한 걸음씩 나아간다. 망망대해 같은 바다를. 말과 사람이 함께, 느리더라도 함께.
그러니 하던 걸 하자. 이런 노래는 이런 노래고,
탁성은 탁성이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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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짜 욕망에 휘둘렀던 것일까? - P166

또한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때로는 살다 보면 내가주체적으로 선택을 내리는 게 아니라 저쪽에서 나를 선택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 P172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자신이 못 하고 있는 것을 남이 하고 있으면‘ 그것을 말리고 싶어 한다. - P178

나는 그것이 가장 확실한 영역은 오로지 내재능을 활용하고 경제적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일‘이라고생각한다. - P62

단순하게 보면 리스본 여행에세이라 할 수 있는 『다정한 구원』은 리스본에 가기 전에 초고를 다 써놓고 갔다.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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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번에 구득 가겠습니다." 드라마 <슬기로운의사생활>을 보던 중 흉부외과 레지던트 도재학 선생의 말에 붙들렸다. 구득. 처음 듣는 단어였다. 구득은 말 그대로 구하여 얻는다는 뜻으로 도재학 선생의 그 말은, 곧 있을 장기이식 수술을 위해 뇌사자로부터 장기를 받아 오는 역할을 자신이 도맡겠다는의미였다. - P127

그곳은 누구에게나 있다. 누구에게나 반드시 있다. 당신의 삶이 완전히 망가져버렸다고 생각될 때에도 당신과 보이지 않는 실로 묶여 끝끝내 반짝이는 세계, 당신의 빈야드가. - P126

더 오랫동안, 더 멀리에서 담는다. 두눈물은 같은 눈물이지만 완전히 다른 눈물이다. 구할 수 없는 것을 구하는 자의 눈물은 또 다른 의미로그토록 깊다. - P131

그 시간을 관통해온 앨리의 마음에 불투명한 욕망보다 사랑이 차지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우세했음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누군가를 통해, 무언가를 딛고, 지금에 이른 것이 아니었다.
그저 어떤 시간 속에 자그마한 불씨가 있었고, 그 불씨가 불길로 번졌고, 맹렬하게 타오르던 불길은 순리에 따라 잦아들었으며, 밤은 새벽으로 흘러 남은재 위엔 새벽이슬이 맺혔을 뿐. - P141

어제는 문득 이런 것이 궁금해졌다. 사람들은 시든꽃을 어떻게 버리는 걸까.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면 된다는 현실적인 답변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고,
꽃을 버릴 때의 기분과 손에 남은 감촉을 어떻게들감당하며 사는지가 궁금했던 것이다.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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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내야, 이 굳어버린 외곬을 어찌해? 어쨌든 자넨 날 참아낼 거야. 그렇고 말고. 자넨 언제나 나의 가장 훌륭한 독자이니까. - P139

우재는 정말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하며 자조적으로 웃곤 했지만 나는 사람이 겪는 무례함이나 부당함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물에 녹듯 기억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침전할 뿐이라는 걸 알았고, 침전물이 켜켜이 쌓여 있을 그 마음의 풍경을 상상하면 씁쓸해졌다. - P142

"어떤 사람을 찾고 있어."
"누구?"
"독일에 살 때 알고 지내던 파독간호사 이모 일기장에 등장하는사람." - P143

그게 그렇게 좋고, 우재의 말이 잎을 모두 잃은 겨울나무 같은내 마음을 미풍처럼 흔들고 지나갔다. - P147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의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빛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게 한다. 게다가 가을비는 쓸쓸히 내리는데 사랑하는 이의발길은 끊어져 거의 한 주일이나 혼자 있게 될 때.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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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아직 이름을 완성하지못한 그녀들이 힘을 낼 수밖에 없겠다. 최소 이십 년은 이름을 불러줄 이모가 같은 편이니 겁먹을 필요는 없다. - P295

확실한 한 가지는, 담배 맛이 좋았던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없었다는 것. 담배는 맛이 좋아서 피우는 게 아니라는 것. 담배의맛이라는 게 무엇인지 윤다영은 알지 못했다. - P277

……매우 그렇다. - P249

세상이 이렇게 조화롭고 아름다운데.
그리고 그녀는 상냥하고 아름다운 얼굴로 늙어갈 것이다. 다른 얼굴은 그녀의 인생에 결코 들이지 않을 것이다. - P237

길현씨가 낮게 코를 골기 시작했을 때, 괘종시계가 울렸다. 깊고 묵직한 자정이었다. 종소리가 멈추자 사방이 고요해졌다. 고요가 다정하고 편안했다. 갓난애 옹알이 소리가 간간이 묻어오는봄밤이었다. - P197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말이에요.
애 맡기고 도망갔을 때 말이냐? 그래서 우리가 배를 놓쳤잖니. - P185

어이어이 부르는 소리가 엄마 엄마 소리와 비슷했다.
꿈이었다. 할머니가 죽었다. 엄마는 엄마를 잃었다. - P181

-엄마, 엄마. 내 얘기 들려? 눈 한 번만 떠봐봐. 나 좀 봐봐엄마. - P165

남자가 재촉했다. 그녀는 자신의 차례를 남자가 끝내려 한다는걸 알았다. 그녀가 황급히 말했다. - P204

우리는 왜 그렇게 행복하기만 했던 걸까요.
우리는 왜 그렇게 서로에게 사랑스럽기만 했던 걸까요.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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