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누군가‘가 되기 위함이 아니라살다 보니 ‘나‘라는 존재가 된 것처럼허락된 날까지나를 찾아가는 작업을 멈추지 않는 것.
주인공의 꿈은 이 크고 넓은 세상에서 나 자신만이라도 온전히 알고 죽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의 인류가 그래왔듯자신 또한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소멸해갈 것을 안다. 그럼에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나를 더 잘 알기 위해 글을 쓴다. - P8
동화작가였던 할아버지는 언제나 2층 다락에서 글을 썼다. 다락은 사방이 책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바닥에도 어른 무릎에 닿을 만한 높이까지 책이 쌓여 있었다. 종유석 밑, 자라나는 석순처럼. - P24
"그림은 안 돼. 배고파. 차라리 글을 쓰렴." - P27
길의 끝은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여행에서 돌아온 자는 아직 없다두려워 말라젊은이여그 길은 너의 것이다" - P30
"너 그러다가 진짜 죽어." 그러다가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스무 살 언저리. 나는 대학 시절 가죽보다 청테이프 지분이 더 많았던 동아리방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워댔다. 담배 연기가눈에 들어갈 때면 마스카라로 정성스레 칠해 올린 속눈썹을 찡그리며. - P49
아이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보다 더 나쁜말은 없다는 아동 전문가의 단호한 음성이 뇌리에 스쳤기 때문이다. 자존감, 자기효능감 같은 것은 사소한 집안일을 성공하면서 생기는 거라고. 아이의 사소한 집안일 때문에 겨우청소한 주방은 엉망이 되었지만. - P54
까울 거라 생각했다. 별 기대 없이, 그를 기다렸다. 그가 평소입던 파란색 파카 대신 감색 블레이저를 입고, 눈이 무릎 위로 쌓인 겨울에 작정하고 구했을 빨간 장미를 내밀기 전까지는 그 약속을 데이트라고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 P65
"오늘은 마취 선생님이 안 오시는 요일이에요. 무통주사는 못 맞습니다." 경상북도, 바닷가 동네. 나는 출산일을 그 지역에 단 한 명뿐인 마취과 의사의 출근 요일에 맞추지 못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무통 주사는 못 맞을 거라 예상했다. 그 대신 촉진제를 맞았다. - P69
한참이 지나, 나는 소창을 정련하는 행위가 글을 쓰는과 다르지 않았음을 느낀다. 기저귀에 배출을 멈춘 아기와나. 이제 우리 가족은 내가 글로 상처와 눈물을 닦듯이 그때만들어놓은 소창으로 식탁의 얼룩을 닦는다. 어떤 얼룩도 푹삶으면 다시 하얘지는 소창 행주로. - P78
해가 아직 중천인데 바람이 유난히 찼다. 그런데 바람을피할 곳이 없었다. 그래서 그 섬에는 길고양이도 살지 않는모양이었다. - P105
"큰일이라니? 고양이가 산다니까?" 나는 완벽해 보이는 이 인공섬에 나 말고도 외면받는 존재가 산다는 것에 대한 기쁨으로 들떠 있었다. - P109
전업주부가 어린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다는 행위에는 아직도 딱지가 붙는다. 업무태만, 아니 ‘엄마태만‘ 같은. 나는부정적인 주위 시선에 무너지지 않으려고, 나를 위해 처음시작한 이 공부를 취미로 끝내지 않으려고 눈만 마주치면 아이들을 붙들고 ‘꿈‘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다 컸는데 왜 아직도 꿈이 있어?" 수업을 갈 때마다 헤어지기 싫어 울어대던 첫째가 물었다. - P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