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왜 나는 십 년 만에 정원의 추모 모임 단체대화방에 경애를 초청했을까. 모르겠다. 나는 휴대전화를 꼭 쥔 채 결국 아무데도 전화할 데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오래전처럼 쓸쓸해졌다. - P11
정원이 이거 오래 굶주렸네. 난리 났다. 아주지 생일이다. - P35
어디로든 들어와. 그리고 가버렸다. 사슴벌레를 대변하는 듯한 그 말에 나는 실로감탄했다. 너 어디로 들어와, 물으면 어디로든 들어와, 대답하는사슴벌레의 의젓한 말투가 들리는 듯했다. - P21
정원과 나는 이런 대화법을 의젓한 사슴벌레식 문답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뒤집힌 채 버둥거리며 빙빙 도는 구슬픈 사슴벌레의모습은 살짝 괄호에 넣어두고 저 흐르는 강처럼 의연한 사슴벌레의 말투만을 물려받기로 말이다. - P22
그때 나는 ‘사슴벌레‘가 불어로는 얼마나 아름다운 발음일까 생각했던 것 같다. - P27
어디로 들어와, 물으면 어디로든 들어와, 대답하는 사슴벌레의말 속에는 들어오면 들어오는 거지, 어디로든 들어왔다. 어쩔래? 하는 식의 무서운 강요와 칼같은 차단이 숨어 있었다. 어떤 필연이든, 아무리 가슴 아픈 필연이라 할지라도 가차없이 직면하고 수용하게 만드는 잔인한 간명이 ‘든‘이라는 한 글자 속에 쐐기처럼박혀 있었다. - P29
어느 새벽 경애도 삼십년전 안개 가득한 강변을 걷던 과거를 기억하려 애쓰면서 현재 자신의 모습도 함께 떠올릴까. 그런 기억의 순간을 경애도 견디며 살고 있을까. - P41
갇힌 기억 속의 내 옆에 쌍둥이처럼 갇힌 지금의 내가 웅크리고있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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