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사였던 아버지는 여름마다 내 사진을 찍어 사진관쇼윈도에 걸어두었다. 그건 아버지에겐 일종의 연례행사와 같아 나는 한해도 빠짐없이 카메라 앞에 서야 했다. 도복을 입고 품새를 선보이는 사진이나 커튼 머리에 브릿지를 넣은 촌스러운 사진, 돌잡이 사진 나의 성장기가 그곳에 다 전시되어 있었다. - P8

그런 것도 뭐 찍어줄 사람이 있어야 찍는다 아입니까. - P10

이래 입히노이 꼭 아삼륙 같네. - P18

얼굴에도 잡티나 주름이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허술하고 흠 잡을 부분이 많았으나 재하 얼굴의 흉터만큼은유달리 신경 쓴 것처럼 말끔히 지워져 있었다. - P21

사랑받지 못해 그카나, 주는 것도 이래 어렵다. - P30

글제. 날이 더븐데 눈치도 없이…………그때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들. 무안함과 서운함을애써 감추고 공연히 손부채를 부치며 덥네, 날이 참 덥다,
하던 모습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 P37

재하 모자가 두고 간 약간의 짐을 정리하고, 재하 어머니가 담가둔 장아찌를 처리하고, 사진관 쇼윈도에 걸린가족사진을 떼어내는 것으로 그들과의 사년은 정리되었다. 간단하고 허탈한 이별.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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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되는 과정은(또는 되지 않는 과정은) 아주 단순하게는 3막 구조를 가진다. 1. 환상에 빠지고 2. 환상이 깨지고 3. 환상을 만든다. - P103

피고는 누구의 허락을 받고 시인으로 활동하는가?
없다. 나를 인간으로 허락해준 이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 P105

나는 움직이지 않는다. 두 허벅지가얼음처럼 차다.
푸른 혈관이대리석처럼 도드라진다. - P106

브로드스키 주변의 젊은 비순응주의자들은 마치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처럼 보였다. 브로드스키는전례 없는 행위의 모델을 창조했다. 그는 프롤레타리아 국가가 아니라 자기 영혼의 수도원에서 살았다. 그는 체제와 싸우지 않았다. 그는 그저 체제를 인지하지않았을 뿐이다. 그는 정말로 그것의 존재를 제대로 몰랐다. 소비에트 삶의 영역 내에서 그의 지식 부족은 꾸며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예를 들어 그는 제르진스키가 아직 살아 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코민테른이 음악 그룹 이름이라고 믿었다. 그는 중앙위원회 정치국 구성원을 알아보지 못했다. - P109

다행히 나와 친구의 걱정은 쓸데없는 것으로 판명났다. 친구의 멘토인 연극치료사에 의하면 경외의 감정이 없는 것은 오만함이나 거만함보다는 공허함과 가깝다. 그것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났다는 감정이 아니라 세계에 의미를 둘 가치 있는 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태에 가까웠다. - P115

4 작가주의는 낡은 시네필리아의 주춧돌이었다.
작가라는 위치를 차지함으로써(트뤼포가 그랬듯이), 한작가의 최고 졸작이 작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의 최고 걸작보다 근본적으로 더 흥미를 끌었다. 작가주의는 교묘한 메커니즘이 되어서 한정된 영화창작자들,
주로 남성 창작자들에 관한 담론을 끊임없이 증식시켰다. 다시 말해, 작가주의는 쩍벌남들의 기관이었다. - P131

새로운 시네필리아는 남성 병리학에 관한 시네마에 자신을 계속해서 굴복시킬 아무런욕망을 느끼지 않는다. - P134

시네필리아와 동행하고, 같이 움직이고 같이 나아가는 그 순간에 접촉하는 것. 영화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얼마나 열정적이고 격정적이든 간에, 세계는 영화보다 더 거대하고 어마어마하게 중요하다. - P136

. <피너츠〉에 나온 샐리 브라운의 명언이 떠오른다. "누군가를 싫어하는 이유를 물어보는건 괜찮지만, 누군가를 좋아하는 이유를 물어보는 건안 돼. 왜냐하면 그게 더 어려우니까."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걸 말하는 걸 어려워하는 건 정말 그게 더 어려워서는 아니다. 나는 단지 작품 안으로 들어가 이 작품이 내적으로 얼마나 훌륭한지 증명해 보이는 것에 아무런 취미를 가질 수가 없다.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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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내리다 말다 하고 눈내리는 거리를 생각하며 어딘가 있을 두 개의 가게를생각한다. 정말로 화재로 타버렸을 고깃집과 저 너머로 이전한 불고깃집을 생각하고 왜인지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해버린 중년 남자를 생각하고 무슨 말인가를 지어낸 동네 주민을 생각하고 우리는 어디서 만나나 이전에 만난 그 길 위에서 만나는 것인가. 얼른먹어 타고 있어. 우리는 아주 많이 먹었다. - P28

세 마리의 닭은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내 머리카락과 소매의 냄새를 맡았다. 소매를 부리로 콕콕 쪼았다.
어떻게 날아다닐 수 있는 걸까? 김에서 나와서 가벼운걸까? - P30

그것은 다른 사람이 먹었다. 기회가 갔어. 너가 먹을수도 있겠지 나중에. - P31

모든 고기 먹으러 가는 길은 어떤 사람을 만날지 누구의 말을 듣게 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정신을 바짝 차리고 모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고 고깃집을 쉽게 찾고 맛있는 고기를 금방 먹게 될까요? 고기를 먹는 일이 쉬운 일일까요? 맛있는 것을 배부르게 먹는 것은언제 가능한 일일까요? - P33

그날 금이 했던 말 중 하나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왜냐면 기록해두었기 때문이다. - P39

"저는 정말 개가 되고 싶어요."
"개를 키우고 싶어요" - P41

자서 동면에 들어가거나 동면 기간을 짧게 설정했다.
가이드는 동면자를 잘 살펴봐주면 되었다. 해야 할 일은 많지 않지만 신뢰가 가능한 사람에게만 맡길 수 있는 일이었다. - P72

"뭔가 굉장히 좋은 꿈을 꾸면 좋을 거 같애."
"치아교정 마스터가 된다든가?"
"교정왕." - P85

1월 1일 1일 차동면을 시작했다. - P85

선생님을 배웅하며 왠지 허은의 일기가 생각났다.
거기에 그런 말이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과학자 같은 말이었는데, 나는 새롭게 시작하는 것들에 늘 관심이 있고 그것을 정확하게 받아들이고 싶다. 동면을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같은 말이었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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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앞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겪고 있는 감정과 타인의 감정이 끝내 포개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더없이 예민해지고, 슬픔이 단 한 사람씩만 통과할 수 있는 좁고 긴 터넌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 P112

"그럼 내가 집에 가서 화환 보낼까? 두 개 보낼까?" - P119

나이 마흔둘에 내일모레 일흔인 엄마로부터 "쟤랑놀지 마라"라는 말을 들은 사람과 나이 마흔하나에 친구엄마에게 "쟤랑 놀지 마라"의 ‘재‘로 찍힌 사람, 둘 중 누가 더 우스운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두 사람이서 전화기를 붙잡고 특히 "포교 잘할 인상" 부분에서는 거의 흐느끼듯이 웃느라 말이 잠시 끊어지기도했어요. - P123

큰 점수 차로 게임을 지고 나서아마 제가 사과를 했던 것 같아요.
명백히 저 때문인 패배였으니까요.
제 파트너였던 선배님은 아주 심상하게 얘기했어요.
"아유,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요? 이게 다 뭐라고."
내내 공을 쫓느라 시린 눈이 조금 촉촉해졌습니다.

며칠 전에는 ‘품다‘나 ‘위로하다‘라는 뜻을 가진 懷(회)자를 익혔는데, 옷에다 눈目을 올린 형상으로 ‘눈물을 가슴에 묻고 있다‘는 뜻을 표현했다고 해요. 네이버 한자사전에서는 해설에 눈물 흘리는옷 그림을 넣어두었더라구요. 자주 사용하는 ‘감회感懷가새롭다‘ 같은 말을 앞으로 듣게 되면 눈물 흘리는 옷 그림과 더불어『논어』공부를 한 이 시기가 떠오를 것 같아벌써 감회가 새롭네요. - P151

"군자 너무 별론데? 그거 하지 말자, 군자비추." - P152

"아유, 참, 나도 임산부였어요!" - P163

얼마 전엔 한 모임에서 이제 막 임산부가된 분께 다른 분들이 그나마 2호선은 자리 비켜줄 확률이높으니 조금 돌아가더라도 2호선을 이용하라는 정보 같은 걸 나누는 걸 보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현실이 슬펐습니다. - P167

오늘의 편지를 마무리하며 소리 높여 외쳐봅니다. 우리에게는 군자비추, 공자에게는 임신강추. - P167

가끔씩 툭툭 던지는 유쾌한 농담들이 사람답게 살고싶다는, 이왕이면 선하고 어진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꿈을 계속 꾸게 만들어요. 그래서 누가 오해받기 쉬운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왜 술을 사랑하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답하고 싶습니다. 술은 언제나 저를 조금 허술하게 만드는데, 허술한 사람에게 세상이 좀더 농담을 잘 던져서 그렇다고요. - P187

한 시절 저의 든든한 절기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P207

그런 내가 이렇게 열 통의 편지를 쓰다니 놀라운 일이다. (몇몇 친구들은 "이야,
너한테 편지를 받으려면 계약을 해야 하는 거구나?"라고 마구 놀렸는데 맙소사, 나는 정말 자본주의의 쓰레기다……)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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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축복은 해줄 수 있지?
흉내는 낼 수 있지 - P16

이게 나의 전부라고 털어놓았을 때나도 그래요 나도그가 말했다 - P18

빛나는 것은전부 두 손 안에 있는데어째서 자꾸만 숨기고 싶어지는 걸까 - P23

기쁨 같은 거몰라도 괜찮다 - P27

잠깐세계가 사라진다 - P29

한 대 맞고 웃는 일은 너무 쉽다 - P32

어느 날은중력은 무엇이든 떨어뜨리니까빛과 무관하게 나는 아플 수 있어서다행인 날이었다 - P14

경직된 빗금이 얼굴로 쏟아져내렸다 - P32

나는 약간 웃고 약간 운다 라이그러려고 여기 왔으니까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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