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의 풍속은 영 - P134

황인찬이 가진 아이러니는 그가 바라 마지않는 영원이 이러한 폭력적인 시적 현실에서 실현되도록 하는 재현의 방식에 있다. 의미의 층위에서 삶과 죽음, 상실과 부재, 인식과재현이 서로의 자리를 엎치락뒤치락하며 사랑의 역설을 만들어냈다면, 시적 재현 그 자체의 층위에서 황인찬의 아이러니는 이미지의 세계에 머물고 있다. - P134

고착된 이미지는 움직이지 않지만 시인의 목소리에 의해 그것은 흐르고, 정지와 운동이 충돌하며발생시키는 이 아이러니가 바로 죽음을 불가능하게 만든다(시의 제목을 다시 떠올려보라). 시와 서정, 그리고 퀴어가만나 만들어내는 새로운 서정은 바로 이런 것이라고, 황인찬은 말한다. 이곳에서 사랑은, 드디어 영원하다.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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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오세요. 저희는 두 시간마다 공간값을 받고 있고요. 음료를 주문하시면 자리로 가져다드려요. 결제는 나가실 때 해주시면 됩니다." - P74

스스로 커지지도 작아지지도 못하는 풍선처럼 나는 손님 한마디에,
별거 아닌 몸짓에, 주변의 소음에, 주방기기의 미세한 진동에도 지나치게 수축하거나 팽창했다. - P75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초대장을 흩뿌린 뒤 도착한 첫 답장이었다.
뭐든 처음은 하늘이 내린 인연이라 믿기에 무조건 처음 요청서를 보내준 분을 반드시 첫 손님으로 모시자고 마음먹고 있었다. 이메일을읽고 링크로 보내준 개인 블로그의 글들을 훑으며 어떤 사람일지 퍼즐 조각을 맞추어나갔다. 그러는 사이 오후 세시가 되었다. 앞마당인기척에 고개를 돌리니, 한 여성이 제 몸집만한 캐리어를 끌고 서재의 유리문을 열고 있었다. - P80

이십구 년을 사이에 두고 치른 두 번의 큰 가족행사에서 철저히 비존재가 되었던 경험, 그 긴 시간의 틈에서 어떻게든 존재를 증명하려 살아온 이야기를 J는 하나씩 꺼내놓았다. 어느새 자정이 지났다. - P84

무엇보다 이곳까지 찾아온 귀한 손님이 멀리서 왔다고 말하며 활짝 웃는 소리. 그 손님이 읽을거리를 고를 때 책의 두툼한 모서리가나무 책장에 둑둑 내려앉는 소리. 그리고 가게 어딘가에서 책장이 넘겨질 때마다 들려오는 종이의 여린 마찰음. 아마도 책이 있는 공간을 운영하기에 주워담을 수 있는 특권 같은 소리일 것이다. - P90

몇천 원 대신 건네받은 한 장의 편지에 값진 하루의 문이 닫혔다.
노곤해진 다리를 주무르며 빈 소파에 철퍼덕 누워 웅얼거렸다. ‘첫서재하길 잘했어. 그래도 내일은 손님이 조금은 더 왔으면 좋겠어.‘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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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내가 세상에서 배운가장 분명한 기도 - P91

몸을 잃어버린다는 건 기쁜 일 - P90

망가진 천국보다 온전한 지옥을 택하는완벽주의자 - P103

나는 가끔 신과 유사하고 모든 것을 동시에 보고 겪는다고 - P85

전력으로 페달을 밟는다 - P93

가라앉는데 왜 떠오르는 것 같은지 - P92

겁도 없이 혼자 여기까지 왔니여자가 물었다 - P92

괜찮아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 P140

희망과 함께 손을 잡고 걷는다나 있잖아, 더이상 살고 싶지가 않아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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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어, 진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든 가르치려 드는모어의 태도는 마뜩지 않았지만 나보다 아는 게많으니 별수 없었다. 어쨌든 모어는 이번에도나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줬다. 이 깨달음이 어디필요한진 모르겠지만…………. 모어는 가르치고 나는배운다. 이것이 우리가 연인 사이를 유지하는암묵적인 프로토콜이었다. - P77

모어는 파운데이션에 죽은 남편이 냉동 보존되어있다고 말했다. 새해에 그를 부활시킬 예정이었다.
오늘은 12월 29일이다. 그러니까 3일 후면 내여자친구의 전남편, 아니 이혼한 건 아니니 남편이돌아올 예정이었다. 죽음에서 말이다. - P80

그러니까 너도 너무 당황하지 마. 모어 같은여자랑 만나려면 그 정도는 감당해야지. 니가전남편보다 나은 점도 있잖아.
뭐?
살아 있다는 거.
몰랐네, 나한테 그런 장점이 있는 줄…………. - P85

하지만 정말 그녀 곁에 있는 사람이 나일까. 왜그는 죽었지만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나는 살아있지만 죽은 것처럼 느껴지는 걸까. - P89

그럼 심장 이식수술을 한 사람은요? 전신성형을한 사람은?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사고로 뇌에 손상이생겨서 성격이 전혀 달라진 사람이 있다면 그는 다른사람인가요? 나를 나로 만드는 건 무엇일까요? - P95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의 영생이니 불멸이니 이딴이야기는 다 엿 먹으라고 해요.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있으니까. - P107

닥터 쉬멜이 말하며 나와 포옹했다. 그의 체온이느껴졌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문득졸탄이 한 말이 생각났다. 정신의 엑기스를 다른 DNA에덧씌울 수 있다. 그때 머릿속에서 FM의 말이 들렸다.
지금 어디 있어요? 내 말 들려요?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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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은 기억을 떨치기 위해 두 눈을 깜빡였다.
민기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콧날이 오똑하게 서있었다. 펑퍼짐했던 콧볼도 갸름하게 바뀌어 있었다. - P47

"이상한 사람이 누군데."
"민영아, 이거 잘 익었다."
민기는 고추장아찌 하나를 민영의 밥그릇에올려놓았다.
"그래 민영아. 너 그거 한번 먹어봐." - P53

"언니가 저렇게 나이 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누가 할 말인데." - P55

정화가 답답하다는 듯 성큼성큼 걸어갔다. 달걀을향해 손을 뻗었다. 닭은 정화가 달걀을 꺼내는 것을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정화는 민영의 두 손에 달걀을올려놓았다. 달걀이 따뜻하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바깥으로 나오려는 닭들을 정화는 닭장 안으로몰아넣었다. - P66

"언니, 해볼래? 자기가 운전하면 멀미가 안 나."
"안 한 지 오래됐는데."
"그냥 해봐. 달걀 꺼내듯이." - P69

비상등을 켰다. 한쪽 손을 정화의 손 위에 포갰다.
"걱정 마. 아무렇지도 않아."
민영은 민기에게 배운 말을 뱉었다. 정화가 고개를끄덕였다. 더는 손이 떨리지 않았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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