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올라가기 전까지 20년을 살아온 집, 평생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던 공간이 한순간에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은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담배를 꺼내 물었다. 당장 올려다본 하늘은 조금 흐릴 뿐이었다. - P124

그리고 서서히 갈변하는 풍경. 살가죽만 남은 앙상한 팔로 빗자루를 든 채 시든 꽃잎들을 산 중턱에서부터 쓸어내리던 여학생을 기억하고있었다. 곡기를 끊어가며 언젠가 죽는다면 추자 씨가죄책감을 느끼기를 바라던 사람, 그러면서도 동시에추자 씨의 관심을 바라던 사람………… - P125

- 어디 다쳤어?
내 물음에 추자 씨는 손목을 흘깃 보더니 아거, 하고는 거침없이 밴드를 뜯어 운전대에 붙였다.
밴드가 뜯겨 나간 손목에는 물결 같은 글씨체로 레링 타투가 새겨져 있었다. 글씨를 읽어보려 했지만어느 나라 말인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뭐야, 안 어울리게.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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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리마다 놓인 뜻밖의 행운과 불행, 만남과 이별 사이를 그저 묵묵히 걸어나간다. 서로 안의 고독과 연약함을 가만히 응시하고 보듬으면서. - P31

미래 쪽으로만 흐르는 시간은 어떤 기억들을희미하게 만들어버리기도 하지만, 장소는 어김없이 우리의 기억을 붙들고 느닷없이 곁을 떠난 사랑하는 것들을 우리 앞에 번번이 데려다놓는다. - P21

지난해 봄 이후, 동네 주변은 무척 소란스러워졌다.
재개발 추진 동의서를 받는다는 현수막과 벽보가 곳곳에붙었는데, 대부분은 좁은 골목과 낙후한 주거환경의 불편함을 토로하는 내용이었다. 그들의 불편함은 실재하는 것이고, 그것은 틀림없이 개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인근 동네의 재개발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근심하는 우리 동네 이웃들도 존재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 P89

이에너지가 넘치고 말썽꾸러기다보니 위험한 일을 겪은 적도 많았다. 자장면 빈 그릇을 할머니가 잠깐 베란다바닥에 내려놓은 사이 자장 소스를 깨끗이 핥아 먹기도 하고-강아지는 짠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져, 우리가 먹다 버린 치킨 뼈를 씹어 먹어서-잘게 부서져서 삼키다 식도나 내장에 손상을 입힐 수 있는닭 뼈 역시 개들이 절대 먹어선 안 되는 음식으로 알려져있다-우리를 기겁하게 만들기도 했다. - P113

다정한 강아지가 혹시 나를 걱정해 나비의 모습으로 내 곁에 머무는 걸까봐 나는 다시 힘을 내보기로 한다 - P123

쇠락한 벽돌 담벼락 위로 일렁이는 가을빛을 나침반 삼아 걷는 날들이 쌓일수록 나뭇잎의 색이 바뀌고 하늘의 색은 깊어졌다. - P139

킁킁 냄새를 맡을 때면 세상 모든 것에의
기쁨을 느끼는 것 같았으니까. - P147

할머니, 잘 있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는 8년이 되었다. 나는 더이상할머니를 생각하며 울지 않을 수 있고 그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내가 이제는 시도 때도 없이 그리움에 사무쳐울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면 슬퍼지기도 한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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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경험한 세계 바깥을 상상해 보지 못한 채 좁아진 엄마의 삶은 직접적으로 딸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남편이 벌어 오는 돈으로 살림만 하고 살면 얼마나 좋아." 그런 엄마를 조롱하며 싸웠지만, 엄마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주부‘로 살 때였고, 그래서딸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그 말에 담겼음을 뒤늦게 헤아리고 한참을 후회했다. - P27

왜 그렇게까지 술을 마시느냐고 묻는다면 역시 최선의 이유는 ‘세상 탓‘일 테다. "설명하기 어렵군요. 하지만 굳이 이유를 대자면, 제가 이렇게까지 술을 마시는것은, 이 빌어먹을 세계 때문이죠." - P39

십대: 이쁘다고 말해 주고 싶다, 너에게. 그때 그불만투성이의 노여움과 서러움으로 가득한 내 눈빛을 보고 이쁘다고 해 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때문에 더더욱. - P55

뒤늦게 찾아본 법에 비친 시대는 ‘아비 없는 자식‘과
‘남편 없는 여자‘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투성이였다. 1995년까지 형법 제32장은 성폭력을 ‘정조에 관한 죄‘로 규정했다. 성폭력이 여성 개인의 존엄이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기보다, 그 여성에 대한 남성의 독점권을 위반한 범죄로 간주한 것이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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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푸르름 위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며누런 땅속이 얼마나 깊은지 모른다내가 아는 것은 단지 달은 차갑고 태양은 더우며둘 모두 인간의 목숨을 갉아먹는다는 것곰 고기를 먹는 자살이 찔 것이며개구리를 먹는 자 여위어가리라 - P69

"영혼의 서쪽 벽에 걸린 그림"이라고 게르하르트 마이어는썼다. - P151

안개, 축축한 날들이 이어졌다. 비 온 다음날 테라스 앞 정원에는 연한 회색의 안개모자버섯이 마치 알류샨 열도처럼 긴활 모양을 이루며 소복이 솟아났다. - P171

나는 꿈에서 묘지에 있었다고 말했다. 이제 다가올 죽은 자를 위한 만성절을 특별하게 보내고 싶다고, - P207

"비행기를 납치했죠. 물론 그 와중에 사람이 죽는 일도 있었고요. 하지만 그녀의 주된 혐의는 국가 전복 기도와 무정부주의 테러리즘이었죠." - P224

세상의 다른 많은 일들과 마찬가지로, 사랑은 시작도 끝도없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아마 한 권의 책도 그렇지 않을까요.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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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머리를 풀어요오래도록 그것을 놓지 않습니다 - P97

나는 머리를 잘랐습니다 - P96

흑과 백이 첨예하지 않다 - P91

몸을 잃어버린다는 건 기쁜 일 - P90

당신이 내내 뒤적인 건 나의 심장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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