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 고명재 산문집
고명재 지음 / 난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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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무슨 책이 페아지마다 사람을 울려요ㅠㅠ시인님 무슨 마음을 품고 있으시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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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도의 차이는 있으나색상과 순도純度가 없는,
있지만 없고 없지만 있는,
비존재存在있고 없음 사이에서 존재하는,

이 글은 순전히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고 너무너무 보고 싶어서 썼던 글이다. 처음 김민정 시인을 만났던 날 그는 물끄러미 내얼굴을 들여다보더니 갑자기 "명재씨는 무채색으로 글을 써보면좋겠어요"라고 했다. 그때 사실 속으로 많이 놀랐다. 나는 비구니들이 업어서 키운 아이였으니까. 매일매일 회색빛 승복을 보면서 내 무릎은 팝콘처럼 부풀었으니까. 그때부터였다. 그 말이귀한 씨앗이 되어 무채, 라는 말이 내 안에서 뿌리를 뻗었다. 결국 무채로 쓰다보니, 글이 아니라 사랑의 곳간만 열려버렸다. - P13

느껴져서 쥐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언젠가는 이 사랑도 비울 것이다. 그때까진 용감하게 사랑을 줘야지.
그럼 지금부터 이야기를 해볼까. 색을 열고 색을 삼키고 색을 쥔채로 나를 키운 사람들의 마음 이야기. - P15

사랑은 화려한 광휘가 아니라 일상의 빼곡한 쌀알 위에 있다.
늘어난 속옷처럼 얼핏 보면 남루하지만 다시 보면 우아한 우리의 부피. 매일 산책하는 강변의 기나긴 길과 일렁대는 강물과 버드나무 줄기들. 이 글을 쓰는 동안 나는 그런 아름다운 걸 ‘무채‘
라고 퉁쳐서 불러보았다. 배앓이를 하듯 자꾸 보고 싶을 때 무채무채 말하다보면 좀 나아졌다 - P14

나는 절에 들러서 오만 원을 불전함에 넣었다.
며칠 뒤 동짓날 저녁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신춘문예 당선 전화를 받았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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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계의 가장 끝에, 제일 작은 막내가 명왕성이라는 이름으로 있었다. 너무 멀고 작아서 제대로 된 사진도 없었던 명왕성은 2006년 더 이상 행성이 아니게 된다. 왜소행성으로 강등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는 어색하기 짝이 없게 ‘수금지화목토천해‘에서 멈춰야한다. - P14

그렇게 플루토를 소환했나 싶기도 한 것이다. 물론 이것도 억지다. 잘 안다. 사장에게 한 번만 물어보면 해결될 것을, 그걸 하지 않고있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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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바뀌어 암묵적인 사상적 사면의 분위기 속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에 자리를 잡게 된 경애는 자신이 찾아 들어온 틈이 다시 나갈 수 없는 절망의 입구인 줄 몰랐을 것이다. 다시 정권이 바뀌고 종북 프레임이 되살아나면서 요행히 들어온 줄 알았던 그 구멍은 재앙처럼 닫혀버렸다. 캐비닛에서 서류가 쏟아지고 사람들이 줄줄이 잡혀간다. (37~38쪽) - P254

사랑해서 얻는 게 악몽이라면, 차라리 악몽을 꾸자고 반희는생각했다. 내 딸이 꾸는 악몽을 같이 꾸자. 우리 모녀 사이에 수천수만 가닥의 실이 이어져 있다면 그걸 밧줄로 꼬아 서로를 더단단히 붙들어 매자 함께 말라비틀어지고 질겨지고 섬뜩해지자. (79쪽)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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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이 일이 있고 나서 우리는 좀 달라졌다. 파업이라기엔 거창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우리 나름대로 단체행동을 펼친 첫 경험이었다. - P65

대리운전을 처음 시작했을 때 느낀 당혹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운전을하는 내내 소변이 급했다. 술 취한 고객에게 차를 잠깐 세우겠다고 양해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 P58

너무도 가혹한 운명 앞에 놓였다. 가끔 허공에라도 대고 말하고 싶다. 제발 우리 좀 살 수 있게 이 살인적인인원 배치 기준을 조정해달라고, 학교에 학생과 교사만 있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저 구석에도 사람이 있다고. - P57

정신없이 튀김을 하느라 잊고 있던 통증은 조리가 끝나니 올라왔다.
이번 여름엔 가슴 밑이 헐어서 고생했다. - P53

나는 홀서빙 아르바이트였지만, 손님이 없고 한가하다 싶으면 주방의 일도 이리저리 해주곤 했다. 그런데 하루가 되고 1~2주가 지나자너무나도 당연한 내 일이 되었다. 어느 날은 홀에 손님이 너무 많아서바쁜 와중에도 쪽파 한 단을 내가 끝까지 다듬고 있었다. - P47

창밖의 맑은 가을 하늘이 안방 한쪽으로 햇살을 비추고 있다. 어느덧집 안에서 책을 읽고 햇살을 만끽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커피를 한잔 내려 향긋한 내음을 즐기며, 바삭한 토스트에는 달달한 누텔라크림을 바르고 건강이라도 생각하듯 바나나를 썰어 올린다. - P45

얼마 전 진짜 지진이 났을 때 학교 비정규직이 홀로 교무실에 남았다는 기사를 보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비정규직’이라는말에 생명과 안전도 보장받지 못하고 아이를 가져도 축복받지 못한다는 의미까지 포함되어 있진 않을 텐데 말이다. - P44

오늘도 추위에 떨며 정신없이 일하고 있는데, 반장이 겨울작업복을가져왔다.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만 쭉 나눠준다. 바쁜 와중에 잘 맞나입어보고 난리다. - P21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두 달에 한 번씩 나오는 상여금 명세표를 손mois에 쥐고 기쁜 표정을 짓는 정규직 노동자들 옆에서, 겉으로는 태연한척했지만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삼키며 일했던 내 모습을 나는 그런 파견 노동자가 아니라 생각했지만, 어느새 내 모습이됐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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