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명이 넘는 여섯살반 아이들을 한장의 사진 안에넣느라 사진을 찍은 사람은 애를 먹은 것 같았다. - P8

오전 내내 아이의 사진을 보고 또 보았지만 아이의 얼굴이 선명하게 나온 사진은 찾을 수 없었다. 할 수 없이작년에 썼던 사진을 도로 찾아 꺼냈다. - P11

전철역 출입구 위로 남편의 모습이 나타났다. 버스를발견한 남편의 보폭이 커졌다. 양복 저고리를 들지 않은손에 소담스럽게 핀 흰 국화 한다발이 들려 있었다. - P13

"거길 갔다 오시는구먼. 한 삼년 장사가 잘된다 했더니,
올해는 보시다시피 파리만 날리고 있네요." - P23

중년 여자는 주인 사내의 말을 묵살해버렸다.
"이그, 귀신 같은 인간, 어서 들어가 잠이나자"
주인 사내가 슬리퍼를 질질 끌고 쪽방으로 들어갔다. - P27

"우리 아이도 분명히 거기 있었나요? 틀림없나요?"
김선생이 고개를 깊이 주억거렸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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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부모님하고 싸운 거, 애인 때문이었어요."
"부모님이 반대했어요?"
천주안은 반대, 반대하고 입 속으로 반복하더니 피식 웃었다. - P27

"……… 애인이 보고 싶어요."
불빛이 사그라진 먼 곳을 바라보며 천주안이 나직이 말했다. - P29

차라리 아까처럼 눈물이라도 뚝뚝 흘리면 내 속이라도 시원하련만, 천주안은 울지도 않고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도 그 사람이 그럴 수 있길 바라야겠죠." - P31

어느새 바깥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그 눈이계단참에 소복하니 쌓이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유리문 너머로 제법 거센 눈발이 흩날리는 모습이 꽤나 볼만한 광경이라 넋을 놓고 있는데 드디어 천주안이 현관문 가운데로 스윽 빠져나왔다. 올려다보니 얼굴이 퉁퉁부은 천주안이 조금 머쓱한 표정을 하고 서 있었다. - P37

나는 느긋하게 걸으며 앞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발 옆으로 눈 녹은 물이 돌돌돌 소리 내며 흐르고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포근해, 이리 보나 저리 보나 산책하기 그만인 날이었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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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빈 아파트를 메울 침대 하나를 샀고 (그들에게 다른 가구를 살 여력은 없었다.) 마흔 살이 넘어 새 인생을 시작하는 사람처럼 미친 듯이 일에 몰두했다. - P51

우울했던 아름다운 이틀 동안 그의 동정심이 (감정적텔레파시라는 이 저주) 쉬고 있었던 것이다. 어린 노동자가 주 중의 고된 일을 마치고 월요일에 다시 격무로 돌아가기 위해 일요일에 잠을 자 두듯, 동정심도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 P57

그러나 누군가를 미친 듯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창자가 내는 꾸르륵 소리를 한번 듣기만 한다면, 영혼과 육체의 단일성, 과학 시대의 서정적 환상은 단번에 깨지고말 것이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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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선’이라고 하는 것은 ‘나도 괜찮지만 다른 사람들도 만족시킬 수 있는‘ 그런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나쁘지않다고 생각한다. - P187

가족을 우선시하는 것도 자의적인 선택이다. 내가 그러고 싶으니까, 그게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니까 자책감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 P191

정답은 없지만 누가 나의 생각을 물어보면 나는 항상 낳으라고 대답하는 사람이다. 육아는 일반적으로 어렵지만 평생 육아하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흐르면 지나간다. - P192

부모님이 구속하거나 내 인생의 선택에 일절 터치하지 않았기에 어렸을 때부터 상당히 자율적으로 선택하며살아왔다. 친구들의 압박이나 그들과의 비교도 없었다.
오랜 기간 아웃사이더의 정체성을 가져서인지 ‘인사이리‘가 되어야겠다는 강박에 매이지도 않았다. - P195

우리 인생에 완결된 성취 같은 것은 없다. 그저 계속가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은 참 많은것을 성취한 사람이라고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정작 그사람은 또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도 모든 선택의 순간에 고뇌가 있고 그 결과를 짊어지면서 또 앞으로 걸어나가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렇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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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저는 이때부터 작곡 면에서도 오선지의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던 것 같습니다. 오선지는 음악이 시간 예술이라는 약속 아래 편의에 따라 구성된 것입니다. 제가 종종 설치 작품을 발표하는 것은 역시 그런 규제에서 벗어나고 싶은 바람과 깊이 관계되어 있습니다. 적어도 갤러리 안에서의 소리의 표현은 일반적인 음악처럼 시작이 있고, 같이 있는 이야기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 P111

참고로 제가 처음으로 친해진 한국인은 소설가 나카가미 겐지 씨의 소개로 알게 된 김덕수였습니다. 한국의 음악집단 사물놀이의 창시자이자 장구연주자로, 저와 동갑이기도 해서 금방 가까워졌죠. 장구는 한국의 전통 타악기입니다. 김덕수의 파트너는 재일교포인 리에 (김리혜) 씨로,
한국무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울에 갈 때마다 이 두 사람과는 거의 항상 만납니다.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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