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작은 텃밭을 함께 가꿨다.
소리의 글은 그 문장으로 시작했다. - P183

"속이 깊은 아이예요."
칭찬이 분명한 말이 그녀는 달갑지 않았다. 교사와 헤어지고 나서 그녀는 차 안에서 소리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 글에빨려들어갔고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서야 자신이 울고 있다는 걸알았다. - P136

‘삼촌은 나를 귀여워해서 자주 웃어줬다.
그녀는 소리의 그 문장에 오래 머물렀다. 마지막으로 그의 웃는얼굴을 봤던 때가 언제였는지 떠올려봤지만 잘 기억나지 않았다. - P187

사람들은 그와 그녀가 전혀 다른 성격을 지녔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도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같은 천성을 공유하고있다는 것을. 그 또한 자신의 슬픔을 너무 쉽게 알아보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 P191

"그거면 돼."
시선을 피하는 그녀에게 그가 다시 말했다.
"그거면 돼. 민주야." - P193

오빠 믿지는 않지만 그런 게 있다면・・・・…… 영혼이라는 게 있다면 여기 더는 머무르지 마. 그냥, 다 잊고 멀리 가버려. 이쪽으로는 눈길도 돌리지 마. 그녀는 울며 생각했다. - P200

소리는 누워 있는 그를 보고도 우물쭈물하지 않았고,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달려가서 그를 끌어안고 울면서 그에게 말했다.
"기다렸어, 삼촌, 기다렸어." - P204

핸드폰을 집에다 두고 나온 채 이십 분을 늦은 친구에게, 내가좀 있다 연락할게, 기다려봐, 이야기하고 다시 전화하는 것을 잊은 애인에게 그녀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깊이 상처받았다. 기약 없이 기다리는 일이 꼭 버려지는 것 같아서였다. 눈물이 났지만 그마음을 누구도 이해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해서 그저 참았다. - P206

지난 일주일 동안 그녀는 매일 소리의 글을 읽었다. 읽을 때마다 눈에 새롭게 들어오는 문장들이 있었고, 그런 문장들에 그녀는오래 머물렀다. - P207

소리가 물었다. 그 말 앞에 ‘삼촌이 없는데도‘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는 걸 그녀는 알았다. - P210

시원한 바람이 소리와 그녀에게 불어왔다. 연한 나뭇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뭇가지가 흔들릴 때마다 봄볕이 눈을 따갑게 했다. 그녀도 소리를 따라 무릎을 세우고 앉아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바라지않아도 그 흔적은 사라지지 않을 거야. 그녀는 속으로 말했다. 푸른 무청이 가득한 텃밭을 그리면서. 그곳으로 찾아올 햇볕과 비와바람과 작은 벌레들을 기다리면서.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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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일하고 있는 곳부터 바꾸고 싶었을 뿐이다. 내가 본사를향해 지적한 문제는 결코 적지 않았다. 근로계약서를 제대로 적지 않았고, 적더라도 교부하지 않는 것이 일상이었다. 심지어 몇몇 근로계약서는 대필되곤 했다. 그뿐인가. - P137

"일이 많을 때는 굶는 일도 많아요. 예전에 한번은 너무 배고파서 밥먹으러 간다니까. 그럴 시간 없다며 옆에 떡 먹으라고 하더라고요."
"아..." - P129

.... 부당해고임을 인정한다. 이 사건 사용자는 이 판정서를 송달받99은 날부터 30일 이내에 이 사건 노동자들을 원직에 복직시키고 … - P123

계약 기간을 빠지고 나온 뒤, 이번에는 서울시 일자리 포털사이트에서 구씩 신청을 깨 직합상담사 소재로 방문 요양보호사 일을 했다. - P115

잡생각을 더 할 틈도 없이 기계처럼 몸을 움직인다. 금요일과 토요일은 가장 물량이 많은 날이다. 그래서 연장근무도 잦다. 15분 연장해도 다 임금으로 계산해준다니 좋았다. 미리 겁을 준 대로 양은 엄청났다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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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후렴부터 시작합니다 - P114

긴 울음은 이해가 되는데 긴 웃음은무서워서 - P115

빛은 두 사람의 몫만큼 밝고한 사람의 몫만큼 어두웠다 - P113

우리는 빛 밟기 놀이를 했다 밟으면빛이 발등 위로 올라왔다 - P112

영혼의 삶이란 한번 정해지면 어쩔 수가 없는 것인가생각했다 나무였다가 의자였다가살았다가 죽었다가 그럴 수가 없어서오늘도 나무의 영혼은 막연하게 앉아 있다 - P111

선생님 제 영혼은 나무예요 여자는 셈이라면제 꿈은 언젠가 나무가 되는 것이에요 - P110

나는 미친 사람처럼묻고 또 물었다 - P107

다시 말해볼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지키지 못해서 - P105

상상해본 적 없는 나라의인사말 - P104

안미옥의 이번 시집은 말 그대로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여러 방면에서의 시적 탐색이라고 할 만하다. - P118

이처럼 삶을 공간적으로 사유할 때 시가 그려 보여주는 세계의 차원은 달라진다. 대개 그러하듯 삶을 시간적으로 사유할 때 삶은 발전과 성장과 성숙이라는 목표를 지향하게된다. 좌절하고 실패해서 갔던 길을 되돌아오더라도 과거와현재를 딛고 미래를 지향하는 삶에서 그런 경우는 예외적으로 치부된다. - P119

집과 같은 공간으로서 삶을 사유하고 감각할 때 저마다의삶은 지극히 사적이면서도 보편적으로 말해질 무엇이 된다.
개인과 가족의 내밀한 역사를 담고 있다는 관념적인 이해와는 다르게 집은 우선 물리적으로 일정한 구조와 구획을 갖고 있는 공간이다. - P120

얼음의 살갗을 가진 얼굴도 있다녹아 흐르면서 시작되는 삶도 있다 - P121

아주 열린 문. 도무지 닫히지 않는 문. - P123

매일 저 나무의 다름을 보고 있었을까나무는 달라지고 있었을까 - P125

때문에 처음 방문한 누군가의 집에서 본 사소한 ‘다름‘들과 거실에서 마주한 "크고 오래된 나무"는 일정하게 있지않는 것들을 화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는 계기가 된다.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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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도 앞집 주인을 봤지만 역시 뒷모습뿐이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골프 가방을 끌고 다니는 키 큰 여인을복도 끝에서나 멀리서 몇 번 본 기억이 났다. 어쨌거나 우리처럼 집에만 있는 분은 아니었다. - P39

상추와 오이, 고추 같은 것들이 꽉 차게 들어 있는 비닐봉지 위에는 매직으로 쓴 숫자 네 자리와 한글 한 자뿐이었다. 비닐봉지는 우리 층 각 세대의 문고리마다 선물처럼 달려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1006호인 앞집 주인을 만날 기회는 없었다. - P41

우리가 이사온 뒤 빈집처럼 조용했던 두 달 동안 앞집은 남편을 보내고 있었다. 둘이 살려고 장만한 집에서 혼자살아 내는 시간이 얼마나 고독했을까. 그나마 골프를 함께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싶었다.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했을 테니까.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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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매우 힘들었다. 아침부터 한밤중에 이르기까지 녹초가 되도록 일했다. 여러 가지 뼈아픈 경험도 했고, 머리를 감싸 쥐고고민했던 일도 있었고, 실의에 빠지는 일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정신없이 열심히 일하는 사이에, 점차 점원을 고용해서 채산을맞출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20대 끝을 맞게 될 무렵에는, 가까스로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 - P51

소설을 쓰자고 생각을 하게 된 날짜를 정확히 기억해낼 수 있다. 1978년 4월 1일 오후 1시 반 전후였다. 그날, 진구 구장의야석에서 나는 혼자 맥주를 마시면서 야구를 관전하고 있었다.
진구 구장은 내가 살고 있던 아파트에서 금방 걸어갈 수 있는 곳에 있어서, 나는 그 당시부터 꽤 열성적인 야쿠르트 스왈로스의팬이었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봄바람은 따뜻하게 스쳐 지나가는 더 바랄 것 없는, 아주 기분 좋은 봄날의 하루였다. - P52

그렇게 지리멸렬한 상태에서 소설을 쓰다 보면, 어느 정도 재미있는 것, 혹은 새로운 경향의 소설을 쓸 수 있다고 해도, 깊은 내용을 담은 무게 있는 소설은 쓸 수 없다. 모처럼 소설가로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만큼(말할 것도 없지만, 누구나그런 행운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고싶다, 나 스스로도 ‘이 정도라면‘ 하고 만족할 수 있는 소설을한 권이라도 좋으니까 완성시키고 싶다 그런 욕심이 우러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 P57

그러고 나서 얼마 있다가 담배를 끊었다. 매일 달리게 되면,
담배를 끊는 것이 자연스런 일이었다. 물론 금연은 간단한 일이아니었지만 담배를 피우면서 달리기를 매일 계속할 수는 없다.
‘더 달리고 싶다‘는 자연스런 욕구는 금연을 계속하기 위한 중요한 동기가 되었고, 금단현상을 극복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담배를 끊는 것은 이전 생활과의 결별을 의미하는 상징 같은 것이었다. - P61

내 생각에는, 정말로 젊은 시기를 별도로 치면, 인생에는 아무래도 우선순위라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해가야 할 것인가 하는 순번을 매기는 것이다. 어느 나이까지그와 같은 시스템을 자기 안에 확실하게 확립해놓지 않으면, 인생은 초점을 잃고 뒤죽박죽이 되어버린다. - P65

* 지금 생각해도 무엇보다 행운이었던 것은 내가 건강한 몸을타고났다는 사실이었다. 거의 사반세기에 걸쳐서 일상적으로 계속 달렸고, 수많은 레이스에도 출장했으나 다리가 아파서 뛸 수없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스트레칭 같은 것도 제대로 하지않았지만 부상 하나, 상처하나, 병 한 번 앓은 적이 없다. 뛰어난 러너는 전혀 아니지만 튼튼한 러너라는 것만은 틀림없다. 내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아주 작은 자질 중의 하나다. - P68

그러나 그와 같은 생활을 오랜 세월에걸쳐 해가는 동안, 새로운 수맥을 찾아내고 단단한 암반에 구멍을 뚫어 나가는 일을 기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효율성 있게 할수 있게 된다. 그러니까 하나의 수원이 메말라간다고 느껴지면과감히 바로 다음으로 옮기는 것이 가능하다. 자연의 수원에만의지하고 있던 사람은 갑자기 그렇게 하려고 마음먹어도 그리쉽게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 P72

인생은 기본적으로 불공평한 것이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가령 불공평한 장소에 있어도 그곳에 있는 종류의
‘공정함‘을 희구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에는 시간과 노력이 들지도 모른다. 어쩌면 시간과 노력을 들였지만 헛수고가 될지도 모른다. 그런 ‘공정함‘ 에 굳이 희구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가 어떤가를 결정하는 것은 물론 개인의 재량이다. - P72

건전한 자신감과 불건전한 교만을 가르는 벽은 아주 얇다 - P87

오로지 앞만 보고 계속 달린다. 태양은 그 온전한 모습을 내앞에 드러내고, 믿기 어려운 스피드로 충천을 향해 솟아오르고있다. 너무나 목이 마르다. 땀을 닦을 겨를조차 없다. 공기가 너무 건조한 탓에 땀은 피부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증발하고, 그뒤에는 하얀 염분만 남는다. 구슬 같은 땀이라는 표현이 있지만,
구슬이 될 틈도 없이 수분이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온몸이 소금기로 따갑다. 혀로 입술을 닦으면 안초비 소스의 작은 생선을 소금에 절여 만든 소스 같은 맛이 난다. 얼어붙을 정도로 차갑게 식힌 맥주가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기 때문에, 대체로 5킬로마다 차를 타고 옆에서 따라오는 편집자로부터음료를 받아서 마신다. 달리면서 이렇게 많은 물을 마시기는 처음이다. - P99

골!
드디어 결승점에 다다랐다. 성취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 내머릿속에는 ‘이제 더이상 달리지 않아도 좋다‘ 라는 안도감뿐이다. 주유소의 수도를 빌려서 온몸의 열기를 가라앉히고 몸에 달라붙은 소금을 씻어낸다. 인간 염전이랄까. 온몸이 소금투성이다. 사정을 들은 주유소의 아저씨가 화분의 꽃을 꺾어서 작은 꽃다발을 만들어 나에게 건네준다. "수고했어요. 축하합니다!" 이국 사람들의 그런 작은 마음 씀씀이에 가슴이 뭉클하다. 마라톤은 작고 친절한 마을이다.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마을이다. 이런곳에서 수천 년 전에 그리스 군이 처절한 전쟁 끝에 페르시아의원정군을 배수진을 치고 물리쳤다니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마라톤 마을의아침 카페에서 나는 마음이 내키는 대로 찬암스텔 비어를 마신다. 맥주는 물론 맛있다. 그러나 현실의 맥주는 달리면서 절실하게 상상했던 맥주만큼 맛있지는 않다. 제정신을 잃은 인간이 품는 환상만큼 아름다운 것은 현실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 P103

그렇지, 어떤 종류의 프로세스는 아무리 애를 써도 변경하는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 프로세스와 어느 모로나 공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가정하면, 우리가할 수 있는 일은 집요한 반복에 의해 자신을 변형시키고(혹은 일그러뜨려서), 그 프로세스를 자신의 인격의 일부로서 수용할 수밖에 없다.
아, 힘들다.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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