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나 논문이나 강의에서 에세이에 대해 설명할 때는 항상 이 단어의 어원을 알려준다. 에세이는 ‘시도’라고. 그래서 완벽함을 자처하지도 않고 철저한 논의를 추구하지도 않는다고. 이런 말은 에세이 형식에 대한 비평적 설명이라기보다 그저 클리셰를 되풀이하는 잡담이라서, 에세이에 관해 알게 해주기보다는 오히려 에세이의 많은 것을, 그리고 시도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지 못하게 만든다. 모색할 뿐 확정하지 않는다는 에세이의 한 속성이 과하게 확고한 사실로 정립된 탓이다.

나의 생산량 강박은 좀 더 근본적인 진실을, 내가 생산 중독자라기보다 과잉 생산 중독자라는 진실을 외면하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글 쓰는 삶이 이렇게 분열적이고 상황 의존적이며 비정기적이라는 사실이 나는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다.

한편 에세이는 부분적, 미완적이라는 특징 탓에 폄하되기도 한다. 에세이라는 형식에는 모종의 가벼움이 필수이고, 가벼움의 지지자 중엔 무려 오스카 와일드, 이탈로 칼비노, 조르주 페렉 같은 작가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벼움은 나쁜 평판에 시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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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게 사는 것처럼 당연한 거지 뭐. 별날 것 없는."
느닷없는 잠실댁의 한 마디에 우리는 모두 말없이 웃었다. 아니, 웃고 싶었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내리려면 곱게 내리지 뭘 굳이 날 끌어당겨 앉히느냐는 뜻이었다.

아는 사람인가?’ 몰래 얼굴을 살폈지만 생면부지의 40대 남자였고 그는 분명히 내게 자리를 양보한 것이었다. 버스고 지하철이고 자리를 양보받아 본 적이 없는 나는 내가 자리를 양보했던 경우를 생각했다. 모든 경우의 수에서 지금 내게 해당되는 항목은 한 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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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신사 신 씨는 문을 열고 탕 내로 들어섰다.

신 씨는 자신이 한 일을 후회했다. 아침에 아들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아들은 돌멩이를 던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무력해졌다. - P27

왜 한계 앞에 무너진 사람의 등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커지는 걸까. 잘하지 못하는 것을 잘하기 위해 헛된 꿈을 꾸는 사람의 손은 왜 잡아주고 싶은 걸까. - P57

막막하고 하염없어도 눈을 미워하는 사람은 되지 말아라 - P156

"이렇게 아름다운 세계가 꿈이라면깨지 않는 것도 괜찮겠는데요~

"삼만 원."
소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신 씨를 바라봤다. 신 씨는가격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 P23

도서관이 있어야 한다는 자리는 황량했다. 바위들과 멋대로 자란 앙상한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P의눈은 절벽이 아닌 더 먼 곳, 더 먼 시간을 향해 있는 듯 보였다. - P37

P의 얼굴이 창백해졌고 굳게 다문 입술이 부들부들 떨렸다. J는 팔짱을 끼고 의자에 기대 앉아 차분하게 대답을기다렸다. 너무 아름다운 날이었다. - P51

"힘들지 않아요. 에이징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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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는 눈을 감았다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 P104

거기 몰두하느라 검은 거위가 길을 따라 내 옆에 선 것도 몰랐다 내가 눈을 주자 검은 거위는 기다렸다는 듯 울기 시작했다 - P100

영화가 끝나자 스탭롤이 올라갔다 그는 죽어 가는군인이 휘파람을 불 때 조금 울었다고 했다 - P99

남자애들이 돌아오지 않고, 앙상함이 돌아오지 않고, 보랏빛이 돌아오지 않는 그런 오후의 내가 있었다 - P87

물 위의 빙판이 좁아지려고 한다 - P86

중간이 끊긴 대파가 자라고 있다 멎었던 음악이 다시 들릴 때는 안도하게 된다 - P46

통통거리는 소리는 도마가 내는 소리다 여기로 보내라는소리는 영화 속 남자들이 내는 소리고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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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춘희에게 있어서 안타까운 점은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두 자매가 아무리 어르고 옹알이를 시켜보아도 춘희는 그저 멀뚱하게 쳐다보기만 할 뿐 도통 입을 열 생각을 하지 않았다. - P169

그리고 그날 이후, 춘희에게 다시는 젖을 물리지않았다.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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