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는 떨리는 눈으로 J를 위아래로 훑어본 뒤 물었다.
"혹시 나를 알지 않소?" - P34

사서와 마주 앉은 P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사서가마치 고해성사를 들어주는 신부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 P42

그는 두껍고 뿌연 안경을 코끝에 걸치고 구부정한 몸을 느리게 움직여 책이 담긴 수레를 끌며 다가왔다. - P42

"이야기를 소리내어 두 번 읽고 눈을 감으세요. 이야기가 감은 눈 위에 떠 있다고 생각하며 고요히 잠을 청하세요. 그러면 이야기가 눈과 코와 입과 머릿속으로 흡수될 겁니다." - P43

"만약 그때라도 멈췄더라면, 그 계약서를 제대로 읽어봤더라면, 이 지경까지 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 P45

"글쎄요. 답하기 어렵군요. 일단 저는 고통이든 행복이든 끝이 없다는 걸 믿지 않습니다."
"둘 중 하나를 골라야지. 그래야 재미있지. 시시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군." - P46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소.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났고 지금은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요…………. 나는 몰랐어요. 사람은 어떤 순간에도 나쁜 것을 찾아낸다는 것을. 아무리 좋아도 지겨워진다는 것을. - P47

"실패한 가수의 실패한 노래 잘 들었습니다." - P55

"취직이라고 하는거로 가치 있는 유물이라는 뜻이다.
쉽게 말리 계곡은 판가뜨리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악기를가지 있는 유물로 만드는 과정인 거울, 고귀하게 재탄생시키는 거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에이징된 악기는 소리부터 - P63

펜션은 나쁘지 않았다. 절벽 위 우뚝 선 모습이 근사했고 그 아래로 펼쳐진 풍경에는 아아, 소리가 절로 났다. - P66

해가 지는 군청색 해변, 수평선 너머로 태양이 사라지며서서히 물드는 저녁. 수상한 자가 겨울 바다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 P71

그는 감자칩 몇 개를 들어 입에 넣었다. 실제로 감자칩이 사라졌다. 뭐야. 유령이라면서.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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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 추측에 지나지 않지만, 서로 말은 하지 않아도 우리아버지가 주지의 자리를 잇는 것이 가장 타당하지 않을까 하는 애매모호한 총의가 또는 가족 전체의 막연한 기대가 주변에 있지 않았나싶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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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에서 이야기로, 일기에서 편지로. 고백에서 함성으로 그림에서 문장으로 산책에서 여행으로 비명에서 음악으로, 혼잣말에서 귓속말로. 새벽에서 아침으로 끝에서 시작으로, - P8

그렇게 조금씩 달라진 것들이 더 좋아졌다고 자신할수 있습니까? 라고 누군가 물었을 때 소설에게 물어보세요, 라고 답할 수 있는 여유와 유머가 내게도 생겼으면. - P9

이제 더는 소설이 좋다느니 소설을 계속 쓰겠다느니 같은 다짐과 결심은 하지 않을 테다. 다짐 없이도 살고 결심하지 않고도 쓰는 이 삶이내게 읽을 것과 쓸 것을 계속 줄 것을 알고 있으니까. - P9

손님이 없는 한가한 수요일 오전 11시, 신 씨가 좋아하는 시간이다. 채널을 돌려 동물을 보며 고구마와 삶은 계란을 먹었다. - P17

"돈 주고 때 밀어본 적 한 번도 없지?"
소년은 고개를 돌리고 가만히 있었다. 신 씨는 알았다. - P21

. ‘이러려고 그동안 그렇게 열심히때를 밀었구나‘ 생각했다가 ‘이러려고 내가 열심히 때를미는 거지‘ 고쳐서 생각했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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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미옥 시의 반복과 계속은 과격함을 지양하는 방식을 추구한다. 이를테면 "잠의 호흡"처럼, 여름 하늘과 대지에서서서히 부풀며 생겨났다 사라지는 것들처럼.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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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뭘 잘못했는데. 무책임하게 멋대로 뒈져버린 건너잖아.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해?" - P79

"죽어도 끝나는 거 없어. 사라지는 것도 없고. 나도 안 사라져. 나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한 어디도 갈 수 없더라고, 형이 나 생각하면 나는 형 옆에 계속 있게 되는 거야.
몸 없이 사는 거. 영혼이 되는 거. 자유로운 거 절대 아니야. 그러니까 형. 내 생각 좀 그만해. 아니, 하더라도 다른생각 좀 해. 좋았던 것들도 있잖아." - P80

눈을 떴다. 눈앞에 닥터. 눈을 감는다. 닥터의 목소리. 나는 말한다. 제발 좀 내버려둬. 차분한 닥터의 목소리. 선생님. 진정하세요. 진정하라고?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얼굴 근육을 부들부들 떨며 그에게 차가운 감정을 내비친다. - P84

비 내리는 새벽의 편의점.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위아래로 회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갈색 모자를 쓴 남자였다. 점원은 게임을 하다 말고 어서오세요, 라고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자는 편의점을 한 바퀴, 두 바퀴,
천천히 거닐었다. 점원은 하품을 하며 창밖을 봤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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