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적 돌연변이, 즉 대다수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세계관의 근본적이고 전반적인 변화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아주 드물게만 나타난다. 예를 들자면, 기독교의 출현이 바로 그런 변화에 해당된다.
형이상학적 돌연변이는 일단 일어났다 하면, 이렇다 할 저항에 부딪히지 않고 궁극적인 귀결에 이를 때까지 발전해 간다. 그러면서 정치 경제 체제며 심미적 판단이며 사회적 위계 질서를 가차 없이 휩쓸어 간다. 인간의 어떤 힘도 그 흐름을 중단시킬 수 없다. 그 흐름을 중단시킬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형이상학적 돌연변이의 출현뿐이다. - P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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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할아버지 삶에 이상이 생겼음을 느낀 것은 작년 여름이었다. 8월에 접어들면서 할아버지는 평소답지 않게 몸이 아프다거나 힘들다는 이야기를 자주 꺼냈다. 할아버지는 큰 수술이 아니면 내색하지 않는 사람이라 백내장과 고관절 수술을 했을 때도 다 끝나고 나서야 할머니를 통해알게 되었다. 왜 내게 말하지 않았냐 물으면, 할아버지는 알아서 다했으니 걱정 말라고만 말했다.
할아버지는 알아서 제 삶을 꾸려가는 사람이었고, 덕분에 한 달에 한두 번 두 사람의 얼굴을 보며사는 동안 그들의 삶을 자주 모른 체하며 살 수 있었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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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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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의 영역을 부드럽게 확장하는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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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은 눈을 끝벅거리며 그대로 누워 있었다.
당신 배우잖아요. 일어나서 영화를 찍어야지요.
혹시나 싶어 숨을 죽이고 기다렸으나 물론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뭐가 그리 괴로우십니까. - P53

그러니까, 저는 오로지 저 한 몸의 보신만 생각했다는 말입니다. - P59

그래서 우울증에 걸린 거 아닐까요.
뭐가?
다들, 그렇게 생각해서요.
그러자 나이 든 쪽이 발끈하며 고개를 들었다.
뭐야, 그래서 그게 지금 내 탓이라는 거야? - P63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집에서 죽어가는 인간과 사라져가는 귀신, 그런 칙칙하고 음울한 것 둘이서 오래오래 웅크리고 있었다. - P69

그때였다.
뭔가 간지러운 것이 있었다. 내 속 깊은 곳에, 구체적으로 어디인지 집어내긴 어려우나 아마도배 속 어느 지점쯤이었다. 부드러운 깃털 같은 것이 스치듯, 짧지만 선명한 간지러움이 반짝하고지나갔다. 감각이라는 것을 느껴본 지 너무 오래되었으므로 깜짝 놀라 아랫배를 움켜쥐고 그 출처를 찾는데 다시 한번 반짝, 이번에는 더욱 확실하게 느껴졌다. 손으로 부여잡은 배 속 어딘가에따뜻하고 말캉한 뭔가가 있었다. 아주 작은 점이었지만 분명히 알 수 있었고 그 부위를 인식하자마자 깨달았다. - P77

얘기가 너무 길었네. 자네가 내 얘길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어. 그래도 말하고 나니까 속이 좀 시원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찾아와줘서 고맙네. 들어줘서 고맙고.
그래, 들어줘서 고마워정말 고마워. - P82

사라지기 직전, 마지막의 마지막으로 떠올린 것은 어떤 얼굴이었다. 살면서 보아온 모든 이들의 이목구비가 조금씩 섞여 만들어진 것 같은 낯익고 아련한 얼굴, 도망치고 외면하며 잊으려 애썼던 것들이 거기 다 모여 있었다. 그 얼굴에 내 얼굴을 가까이 대고 말했다.
꼭 다시 만납시다.
이번에는 좋은 곳에서.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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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하고 싶은 거 계속하란다.
그게 자기들에게도 힘이 된다며. - P19

노래도 방송도 삶도 마무리를 잘해야겠는데, 아직도 궁리궁리 중이다. 한 4년여 가라앉아 있었더니만 가슴에서부터 뭔가가 떠오르질 않는 게 답답하다. 그래도 얘기를 털어놓으니 기분이 좀 괜찮았다. 앞으로 시간을 두고 좀 더 생각해야지. 지금껏 무탈했지만, 마무리가 중요하니까 살얼음을 딛듯 조심조심 또 조심해야지. - P19

하루는 복닥거리는 라커룸에서 숨을 몰아쉬는 내게 "아유~ 뭐가 힘들어서 한숨을 쉬어요? 베짱이 아냐? 베짱이처럼 노래만 하는데 뭐가 힘들어. 나처럼 노동을 해야 힘들지~" 계속 말을 거는 이가 있었다. 더 듣다가 "자기가 모르는 남의 일에 대해 함부로 말하기 없기!" 크게 따박따박끊어 대꾸를 하니 헤헤거리며 사라졌다. 그런데 이내 다른 사람에게 "아니~ 무슨 운동을 했다고힘들다는 거야?" 하는 말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 사람 말투가 이런 식이구나. - P23

결국 아무리 가까운 듯 보이는 두 개의 작은 별도 서로 몇억 광년이나 떨어져 있듯, 사람끼리의한계가 그만큼이지 싶다. 그래도 이런 일이 내 가슴을 흔들어 남편 앞에서의 나를 되돌아보고, 허락된 시간만큼이라도 맺힌 것 없이 잘 지내야지 하고 마음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 P37

이튿날, 엄마가 해수 온천욕을 하고 싶다고 하셔서 동네 어귀 아주 작은 대중탕을 찾았다. 물이짭짤하질 않아 말만 해수인가 싶었는데 목욕 후 몸이 유독 개운해 물어보니 해수라서 그렇단다.
엄마도 가뿐해하셔서 애써 목욕탕을 찾은 보람이 있었다. 내내 기운이 없던 엄마가 여행 중에는무릎이 아프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으셨다. 늙은 딸들의 재롱에 엔도르핀이 돌아서인지 아픈것도 잊은 엄마를 보니 더 자주 모시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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