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규는 이날 밤 오 킬로미터가 넘는 서울 거리를 두 발로달렸다. 동북쪽 변두리에 있는 의붓아버지의 지물포에서부터이곳 중심가까지 달려오는 동안 그는 세 군데의 유흥가와 그사이의 어두운 인도를 통과했다. - P201
인규의 손바닥에는 오 밀리미터가량 면도칼로 그어놓은 것같은 두 개의 흉터가 있었다. 그 흉터는 넘어져서 다치거나 날카로운 물건에 베여서 생긴 것이 아니었다. - P204
"눈이, 눈이 많이 왔지 않느냐, 간밤에 말이다. 그래서 그냥, 그냥 생각나서 걸었다......" - P207
"아프지 않으십니까?" "이 자석아, 아프다, 왜 안 아프겠냐......" - P208
개구쟁이였던 인규는 이제 옷을 더럽히지 않았다. 방을 깨끗이 치우고 제 속옷을 빨아 입었다. 먼지 하나, 머리카락 한올만 보여도 방바닥을 닦고 또 닦았다. 주먹을 아프도록 쥐게된 것도, 이를 악물고 웃게 된 것도 그즈음부터였다. - P215
그러나 어떻게 생각한다 해도 새벽을 기다리는 일 외에 그가 할 일은 없었다. 덫에 걸리지 않았다 해도 언젠가는 그 새벽을 만날 것이 아닌가? 인규는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할 수있을 뿐이었다. - P221
"다시 너를 낳고 싶구나, 돌아오겠느냐? 나에게 돌아오겠느냐?" - P224
이십층가량 되어 보이는 병동에는 층마다 한두 군데에만불이 밝혀져 있었다. 죽은 사람들의 방에서는 환하게 불빛이새어 나오고 있었는데, 앓는 사람들의 방은 어두웠다. 마치 하나하나의 창이 지쳐 눈을 감은 것 같았다. 덫에 걸린 수많은짐승들이 새벽을 기다리며 잠을 청하고 있는 것 같았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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