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전 엄마와 함께 침대에 누워 바라본 보름달은 평소보다 훨씬 밝아 보였고, 달빛이 비추는 집 안 풍경은 낯설었다. 그날은 우리 집이 망한 날이었다. - P9

90년대는 ‘중산층‘이라는 키워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다. 88 서울올림픽 이후 살림 수준이 나아지면서 스스로 중산층이라 인식하는 시민의 비율이 60%에서 많게는 80%까지 되었다.
1991년 KBS 수목 드라마 <우리는 중산층>과 MBC 아침 드라마 <말로만 중산층>이 인기를 끌었다. 너도나도 ‘중산층‘인 시대였다. 서울역사박물관에는 80년대 중산층 아파트가 재현되어 있을정도이니 그만큼 ‘중산층‘이라는 개념은 경제적 지표를 넘어선 하나의 시대적 표상이나 다름없었다. - P13

이쯤 되면 우리 가족은 중산층이 아니라 상류층에 가까웠던 것 같다. - P26

아직 워커힐아파트에 사는 것은 아니었지만 부모님은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서 동질감을 느꼈다. 집에서 차로 1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해 있었기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워커힐호텔에 기분전환을 하러 갈 수 있었다. 어떤 날은 워커힐호텔 로비에서 차를 한 잔 마시고,
또 어떤 날은 워커힐호텔 뷔페에 갔다. 호텔에서 열리는 어린이날 행사도 빠뜨리지 않았다. - P28

학원 수를 점점 줄여나갔고, 내가 매년 받는 상장 수도 점점 줄어들었다. - P40

몇 주 동안 그렇게 일을 나가는가 싶더니 어느 날은 일을 그만두었다고 하고, 다시 일을 나간다고 하는 상황이 한동안 반복되었다. 엄마는 내가 스무 살이 넘어서야강남 아파트에 베이비시터 일을 나갔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목 디스크와 허리 디스크로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온 사람이 노동을 하는 것이 육체적으로도 고되었겠지만, 아파트로 돌아가리라는희망으로 버티는 사람이 아파트로 출퇴근하는 것은 정신적으로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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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성 없는 과거지사들을 가지런히 빗질하는 오후 - P69

허기는 식욕이 아니고 누차 헷갈렸던 것들을 처음부터다시 헷갈려 하는끈기로운 어리석음을 - P69

얼음 보리차를 한 잔 마시고 젓가락을 오른편에 나란히 놓는다 - P72

테이블에 박혀 있는 옹이와 눈 맞추기해가 질 때에 여느 사물들처럼 황금빛 테두리를 갖기 - P73

천사의 날개도 가까이에서 보면우악스러운 뼈가 강인하게 골격을 만들고 - P77

아무것도 쓰지 않은 날에낯빛과햇빛과오후와친구와거의 모든 것을얻을 때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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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가운거짓말을 지우러느릿느릿 밤이 찾아온다 - P83

그런 인사말 같은 것들이나를 추월해서 앞서가버릴 때까지속도를 늦춥니다 - P85

고마우나 달갑지 않은, 달지만 뱉고 싶은, 소중하되 떨치고 싶은 - P85

당신은 잘돼야 해요 당신이 잘돼야 해요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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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 갤러거에게,
아울러 존 가드너를 추억하며

그날 저녁, TV를 보다가 내가 우리도 뭘 좀 가져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프랜에게 물었다. - P13

"우리 달달한 과자를 가져가자." 내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프랜말했다. "아니다. 뭘 가져가든 난 신경 안쓸래. 이건 당신 체면치레니까. 법석 떨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러면 난 안 갈 거야. 라즈베리 커피링을 만들 수는 있어. 아니면 컵케이크나."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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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불운한 일들에 대해 자주 생각하곤 했다. 이를테면 중앙차선을 사이에 두고 마주 오던 자동차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정면으로 돌진해온다거나, 아파트를 나서는데 이십삼층에서 실수로 떨어뜨린 고무나무 화분에 머리를 맞는다거나 하는 일들에 대해. 그것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오랜 습관 같은 것이었는데 일부러 그만두려 하지는 않았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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