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는 씩 웃었다.
"근데 여기선 괜찮아. 너도 그리고 싶으면 한번 그려봐.
재밌어." - P135

"아무리 산불이 났대도 휴교를 하면 어쩌냐."
클로이 아빠가 묵시록을 다시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 걸무시하면서 클로이 엄마는 말했다.
"이제 곧 시험인데." - P141

썸머힐 한인 교회에서는 말이 빨리 돌았다. 썸머힐 곳곳에 교인들이 포진해 있었고, 그들의 눈에 띄는 날에는 그주 내내 가십의 주인공이 되어야 했다. 누가 봐도 으슥한장소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엘리를 만났어야 했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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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눈이 천사와 천사의 자국을 완전히 뒤덮었고, 감나무 위에서 깜빡거리던 흰빛은 점차 희미해지다가 사라지고 말았다. - P47

양화대교 아래를 지나다가 다리에 불이 켜지는 광경을 보았다. 강가의 대기는 두텁고 침침했다. 빛은 번쩍이며 일순간에 둥글게 여물었다. 그러자 햇빛이 사위고 어둠이 짙어졌다. 인공조명 아래서 우리는 기어이 서로의 젊음을 깨닫고 말았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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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의 밀도를 높여가는 과정‘이 에디팅이라면, 우리 모두는 자기 삶의 에디터다. 쏟아지는 정보들에 휩쓸리지 않고 능동적으로 세상을 해석하며 나만의 관점을 갖고 싶다면,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나
‘만의 언어로 정의하고 싶다면,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막연한 불안으로부터 단단해지고 싶다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꾸준히 자신의 일과삶을 20년째 자기답게 에디팅하며 가꾸고 있는 선배의 조언이 여기 있다. 나다운 일과 삶을 찾아 헤매는 우리 모두에게 망설임 없이 이 책을추천한다.

"편집은 결국 의미의 밀도를 높여가는 과정이다.
데이터를 이야기로 바꾸고,
사실에서 통찰을 끌어내는 행위이다.
에디토리얼 씽킹에는우리를 더 높은 차원의 의미로 데려가는 힘이 있다."

이 이야기는 빛바랜 사진 한 장에서 시작한다. 내가 떠올릴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 중 하나다. 불에 그을린 필름을 영사기에 돌린 것처럼 드문드문 어둠을 밀고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생애 첫 시기의 기억들. 그 장면 속에는 늘 언니가 있다. - P11

외부의 인풋을 빠르게 소화해서 정보 관계를 재배열한 뒤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 일을 좋아하게 된 건 이런 생애 초기 밑그림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잡지 에디터는 바로 그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직업인이었고, 스물두 살에 상경해 이 직업을 택한 뒤로 천직을 찾아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일한다. - P13

이제 예술적 질문들은 ‘어떤 새로운 것을 우리가 만들 수 있는가?‘
가 아니라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다. - P15

기억이란 우리가 살아온 모든 순간을 공평하게 축적해놓은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애써 선별한 순간들을 조합해 만들어낸 서사이다. 설령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건들을 경험하더라도 우리가 똑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 P17

이처럼 새로운 의미를 빚어가는 행위는 지각, 패턴 인식, 연상, 범주화, 기억 검색, 추론, 맥락화 같은 복잡한 인지 작용을 통해 이루어진다. "저는 이 사안/작품/현상/데이터를 이렇게 읽고해석했습니다. 제가 가진 입장은 이것입니다"라고 선언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어렵기 때문에 소중하고 가치 있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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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솔아와 함께 살았다. 솔아의 팔이 나의 집이었다. 팔 한가운데에 짧은 다리로 잘 딛고 서 있기 위해 나는 최선을 다했다. 이전에 공룡으로 살아본 기억이 없지만, 이것이 성공한 공룡의 삶이구나 하는 감각이 들었다. 그곳은 포근하고 아늑했다. 부드러운 요람 같았고 너른 평원 같았다.

나는 눈꺼풀에 사는 동안, 솔아가 일하고 친구들을 만나며 보는 모든 것을 함께 봤다. 그런 구경은 신기했다. 비로소 솔아를 조금 더 알게 된 느낌이었다. 솔아는 이런 살아 있는 그물 같은 관계 안에서 사는구나. 그리고 솔아가 집으로 돌아와 잠에 드는 밤에, 눈꺼풀 속에 누워 그들의 표정을 복기했다.

그래서 나는 선캐처에 달라붙기로 했다. 내 절취선 같은 까만 선들은 이미 첫 이동 때 사라졌으니 파랑 초록 노랑의 빛으로만 달라붙으면 되었다. 나는 솔아가 듣는 소리와 솔아가 받는 빛, 그것들이 넘어 드는 창가, 그곳에서 빛을 색으로 굴절하고 변형시키는 유리 조각의일부가 되었다. 유리 속은 단단하고 따뜻했다. 나는 일정한 거리에서 솔아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솔아의 얼굴, 앉은 자세, 걸음걸이까지. 내가 여기에 없다고, 사라져버렸다고 솔아가 믿는 동안에도 나는 솔아와 함께 있었다. 솔아가 나를 생각하지 않을 때에도 솔아를 생각했다. 우리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과 그 마음에 가장 열렬한 시기에도 시차가 있다. 늘 같지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혼자인 것 같고 외로워지고,

답장을 다 쓰고 고개를 들어 다시 부채를 봤을 때, 부채에 푸른 물이 든 걸 발견한 솔이는 그걸 펜에서 번진 잉크가 묻었다고 생각할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솔아는 이미 그게 나인 것을 안다. 솔아의 글을 읽고 나는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창문 근처 내가 살던 섬세하게세공된 작은 유리 조각을 본다. 삽시간에 완전히 저문 하늘. 멀리서 너를 보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친구가 필요해서 소설을 읽고 쓰게 된 건 아닐까 생각한 적이 많다. 읽고 있는 소설에서 친구가 되고 싶은 인물,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인물을 발견하면 무척 든든하고 좋았다. 여기에는 없지만 거기에 있구나, 하는 마음이 되어서 책을 펼치면 언제든 만날 수 있고 책을덮으면 순식간에 혼자가 되는 것. 현실은 숭덩 잊어버리고 몇 초 사이에 하나였다가 여럿이었다가 하는 경험이 마법 같았다.
친구가 없다가 친구가 생기고 친구와 헤어지게 되는 사건 혹은 흐름 혹은 나날 들을 매번 잘 이해하지 못한 채로 살아온 것 같다. 항상충격이고 항상 신비로웠다. 그것이 되풀이되는 삶 자체는 더욱 충격이고 더욱 신비롭다. 이유 없이 훌쩍 다가가고 싶었거나 내게 다가와던, 제각각의 이유로 나를 떠났거나 내가 떠나보낸 친구들을 생각한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지. 하고 곱씹는 것은 나의 오랜 취미다.

누가 누구를 더 좋아하는 마음은 슬프고 안쓰럽다. 누가 누구를 덜 좋아하는 마음은 슬프지만 어쩔 수 없고, 가끔 삶을 사는 방식이 더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가 덜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가 기우뚱거리는 것이 전부인 것 같을 때가 있다. 어쩐지 소설은 그럴 때 쓰는 것 같기도 하다. 혼자서 이 마음 마음 옮겨다니다보면, 그 궤적이 소설에 남으면 제법 뿌듯하고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지 하게 된다.
2023년 여름,
김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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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많이 상했던 저는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낳은 아이들도 아닌데 왜 이렇게 속을 썩어야 하나…………. 마음을 몰라주는 후배들 때문에 속을 썩다 문득 예전의 저를 돌아보게 됐습니다. 그랬더니 보이더군요. ‘나도 선배들 속을 무지 썩였구나. 선배들께 나는 참 싸가지 없는 애였겠구나.‘

매우 고전적인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 방문했을 때 어느 청소부를 보고 물었다고 합니다. "당신은 여기서 무슨 일을 하십니까?" 그러자 그 청소부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는군요. "우주비행사를 달에 보내는 일을 하고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이 뭐라 답했는지는 듣지 못했지만 이 대화의 핵심은 청소부의 답변이니 이걸로 충분합니다.

이 회장의 관점은 달랐습니다. 장치 산업이라는 겁니다. "호텔 방 하나에는 1,300개 정도의 비품이 들어가고, 그 비품의 질에 따라 호텔의 성패가 좌우되니 호텔업은 장치 산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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