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설을 듣는 내내 내가 얼마나 갈등했는지 전희수는 모를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엄마가 물고기가 되는상상을 하며 들었다. 내가 그 물고기를 죽일까 봐 겁났다. 소설이란 게 뭘까. 거짓말인데 진짜 같고, 진짜 같은데 다 거짓인 이야기가 아닌가? 그 안에 진짜 희수의 이야기는 얼마나 될까? 나는 희수라면 물고기가 된 아버지를 위해 어항 청소를 하고, 물고기 밥을 제때 주며 키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라면 어땠을까. 언젠가그 어항을 깨버렸을까? - P105

니나의 질문에 모두 웃었다. 행복한 핵심은 없는 거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다 누군가가 지금 우리가문제를 복잡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라며, 이 이야기의교훈은 장거리 연애는 하지 말자, 사랑할 때는 뜨겁게하자, 라고 정리해줬다. 우리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니나는 그것이야말로 행복한 핵심에 가깝다고 말했다. - P110

니나는 내가 들은 말들을 어떻게든 내보내야 한다고했다. 쌓아두지 말고, 흘려보내야 한다고. 껍데기 같은말을 품고 살면 내 속이 쓰레기장이 되어버린다고.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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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한번 더 살폈다. 큰 짐은 미리 부쳤고 이 밖에 필요해지는 것들은 그때그때 단에게 부탁하면 된다. - P235

다 같이 가시는구나. 좋으시겠어요. 잘 다녀오세요. - P236

할머니 머리가 나보다 까마네.
바다 보러 가니까. - P238

유일하게 내가 잘했다고 여기는 일을 부정하는 단의 얼굴을나는 조용히 바라보았다. 내가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을 이어가려다 멈추고 이내 잘한 선택이었다고 결론지었다. 남편을 만난 일도, 단과 현을 낳은 일도. - P243

부탁했잖니. 그거 하나. 고작 그거 하나.
어차피 헤매봐야 섬 안이지. - P247

단이 놀란 듯 나를 쳐다봤다. 단의 소설에서 나는 항상 죽어있거나 부재중이었다. 반대로 죽은 남편은 살아 있었다. 단이그건 픽션이라고, 소설일 뿐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나는 기어코 한마디 더 하고 말았다. - P249

그때 바람 한 점이 불어왔다. 돌층계 주변에 흩어져 있던 붉은 껍질이 나비처럼 살랑거린다. - P258

고소하다. 더 올라가야 해. 숨이 차오른다. 천천히, 천천히 다올라왔는데 여전히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기다릴 텐데. 내곁에 있던 따듯한 것.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바다만 보고 돌아갈게. 곧 갈게. - P264

망설이는 사이 선택지는 점점 줄어들었다. 노래자랑만은 피하고 싶어 소영은 엉거주춤 손을 들었다. 축구라고 해봐야 테이블 게임기였다. 소영과 동시에 누군가 손을 들었다. - P268

"그것만 부탁할게."
돈을 보내면서 누나가 항상 덧붙이는 말이었다. - P276

"제가 가진 게 시간밖에 없어서요." - P281

딸이 함께 있어 감사하다.
세끼를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오늘도 - P283

"어떤 상처든 회복되기 위해서는 마지막으로 마음을 통과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아마도 그때가 제일 아프겠죠. 보이지않는다고 상처가 다 나은 건 아니니까요."
" - P291

십일월이 지나면 겨울이 온다. 그들이 자신할 수 있는 미래란 그것뿐이었다. -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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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이 빠진 채 팔딱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남아 있는 소소한 물건들을 주섬주섬 챙겼습니다. 시계와 나침반, 수첩들, 설탕, 차와 과자 그리고 다정한 어밀리아가 만들어 준 과일 잼 단지.
그것들을 보자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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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쏟고 말았습니다. 노트북 자판 위에요. 엄마와 성지순례를 갔던 바티칸에서 구매한 모카 포트로 막 내린, 아주 뜨거운 에스프레소였지요. 그 핑크색 맥북을 당신도 본 적이 있을 겁니다. - P199

언젠가 당신은 나의 학창시절이 어땠는지 물었지요. 나는 수업시간에 공부를 열심히 하지도 그렇다고 졸지도 않는 학생이었어요.
다만 편지를 썼습니다. 옆자리 친구에게,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 P201

죄를 고백하십시오.
형지는 침묵을 지켰다. 삼 분여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간신히 입을 열었다. - P203

그제야 형지는 마치 결계가 쳐진 것처럼 사람들이 여자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서 있다는 걸 알아챘다. 그리고 여자에게서익숙한 냄새가 난다는 것도. - P205

둘째 주 수요일은 찜질방에서 자는 날이에요. 한 달에 한 번은 목욕하거든요. - P207

왜 여기로 오게 되는 걸까요.
형지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에 예나가 대답했다.
나는 늘 여기 있었어요. - P205

아직도 붕어빵을 파는군요.
바람이 차니까 괜찮을 거예요. 당분간은. - P209

버리다니, 잠깐 안아본 건데. 도로 놓아주는 거야.
고양이라고 믿으면 고양이지. - P211

그리고 나는 그 의심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마이라, 가난은 벗어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약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룰 수 없는 것을 믿기 때문일지도요. - P223

오늘은 죄의 이름을 말할 수 있을까요? 한 번도 제대로 믿은 적이 없다는 것. 그것이 나의 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P230

형지는 엔터키를 여러 번 눌렀다. 줄 바꿈이 되지 않았다.
광장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와 구호로 소란스러워지기 전에다음 문장을 적어야 했다. 아직은 쓸 수 있으니까. 믿음도, 사랑이라는 말도.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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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처럼 텅 빈 시월에 사장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래. 여기에 적힌 이름들은 지금 우리가 아니지. - P72

변했다는 뜻인가요?
사는 게 내가 나로부터 멀어지는 일 같다는 뜻이에요. - P73

모든 일에서극단에까지 가고 싶다.
일에서나 길에서나마음의 혼란에서나서둘러 흐르는 나날의 핵심에까지그것들의 원인과근원과 뿌리본질에까지. - P77

무슨 뜻인지는 알고 불러?
내가 물으면 동이 씨는 말했다.
보이지 않는 사랑. - P85

나와 너무 다른 동이 씨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방 안에 유튜브 광고 소리가 들렸다. 동이 씨는 휴대폰을 꼭쥐고 화면을 바라봤고, 나는 다시 책으로 시선을 옮겼다.
"존재에 앓고 있다"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존재에 앓는다는 건 뭘까. 절실하고 긴박하게 생과 사를 집요하게생각한다는 것, 그런 게 가능한 삶은 어떤 것일까. - P91

엄마가 갔다. 하나도 슬픈 일이 없는데 속에서 몇 번씩이나 울컥하는 게 올라왔다. 뭘까? 이런 마음은. 써볼까? 쓰고 나면 선명해진다고 했는데. 아닐 것 같다.
이건 영원히 모를 것 같다. - P95

그런 마음을 알아요?
나는 조금 놀라서 물었다.
페른베, 그걸 독일어로 페른베라고 해요.
페른베요?
먼 곳을 향한 동경 같은 건데요, 전혜린은 먼 데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번역했어요. 여기 아닌 다른 곳을 향한마음 같아요. 만날 수 없어도, 갈 수 없어도 나도 모르게향하는 마음 같기도 하고. 나는 그런 마음을 나한테 느껴요. 여기 아닌 어딘가에 진짜 내가 있을 것만 같거든요. 그런 나를 그리워하고 있고.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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