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습게도 그 순간 미루는 자신이 준회와의 관계를 더 이어갈 수없었던 이유도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때, 평범하고 행복했던 어느 날들에 작은 다툼을 끝낼 때마다 그가 미루에게 장난삼아, 작은 동물을 대하듯 그녀를 귀여워하며 "정신 나간 여자 같으니"라고 말했던 것. 아무런 악의 없이 반복되었던 그 말. 그녀의 가장큰 두려움이었던 그것. 바로 어머니의 세계에 속해버리는 것. - P205
이야기 속에서 집이라는 중심이 비어 있는 그 거대한 공간은 인간의 영혼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은 자신들이을 소유한다고 착각하지만, 실은 집이 사람을 갖는다. 집은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집어삼킨다. 집은 대가를 원한다. 점유자는 그 - P204
어느 집이나 버는 사람 따로 있고 쓰는 사람 따로 있지 - P209
염사장은 무뚝뚝한 얼굴로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명식은 기분이 좋은 나머지 되도록 말을 적게 하라는 미루의 조언을잊어버리고 혼자 쓸데없는 말들을 계속 이어나갔다. 귀가 잘 들리지 않게 되면서 명식은 말이 많아졌다.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은채 떠드는 거라 대화라기보다는 본인의 뜻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의 말하기였다. 염사장은 이미 그걸 깨달았는지 그냥 묵묵히 들으면서 몇 번인가 고개를 움직거릴 뿐이었다. - P211
*수전 손택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아는 한 지적이거나 독립적이거나 활동적이거나 열정적인 여자 중에 어린 시절 소년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 어린 소녀들은 항상 이건 못 한다 저건 못 한다. 이런 소리를 듣게 되어요. 그래서 더 큰 자유를 누리는 성이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겁니다. 대다수 소년들은 여자아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대략 십육 개월 무렵부터 남자아이인 게 ‘낫다‘는 걸알게 되죠." (수전 손택의 말』, 김선형 옮김, 마음산책, 2015, 118쪽) - P213
괴담의 종류는 여러 가지로 제시될 수 있다. 그중 이 업계에서 가장 선호되는 것으로는 실현되지 못한 천재 건축가의 독창적인 설계 같은, 약간의 비극적인 요소가 가미된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비화가 있다.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여전히 많이 존재한다. 어쩌면 학교나 병원, 도서관, 박물관처럼여백이 발생하는 공공시설에는 인간의 상상력으로 채워넣어야 하는 어떤 공통적인 결핍 같은 게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 P221
그러나 가끔씩 유명한 감독의 영화가 상영되면 백 명의 관객이 몰려왔다. 미술관 극장이 소화할 수 있는 최대인원이었다. 사람들은 유명한 배우가 나오는 유명한 감독의 유명한 영화를 좋아한다. 영사기사는 그런 경향에 대해 어떠한 코멘트도 하지 않는다. 그에게 중요한 문제는 어찌됐든 매일 오후 네시에 영화를 시작시킨다는 루틴뿐이다.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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