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씨인가요?"
"네."
"반갑습니다." - P146

아무튼 위현의 나이와 외모에 대한 그녀의 상상은 일찌감치 어긋난데다 혹시 시인이 아닐까 했던 예측마저 보기 좋게 빗나가고말았다. 그녀는 잠깐 망설이다 컵에 소주를 다시 붓고, 어떻게 소설가 이름이 위현일 수 있는가, 원망하듯 생각했다. - P148

"그런 지경이면 소설보다 시가 더 낫지 않나?" - P151

"8대8, 동점입니다!" - P155

그가 얘기하는 동안 호로로록 하는 새소리가 그쳤다. 그리고 그녀는 그가 언제부턴가 자기 자신을 ‘저‘가 아닌 ‘나‘로 칭하는 걸느꼈고 그것만으로도 그와의 거리가 좁혀진 듯한 느낌이 들어 기뺐다. - P171

"이를테면 이 정도 전작을 한 후에 위스키를 마시게 되면 말입니다."
그가 얼음을 채운 잔을 살짝 흔들었다.
"매초 매초 알코올의 메시아가 들어오는 게 느껴집니다." - P172

그가 물었다.
"강도처럼 내게서 차분한 체념과 적요를 빼앗으려는 당신은 누굽니까? 은은한 알코올 냄새를 풍기면서 내 곁을 맴돌고 내 뒤를따르는, 새파랗게 젊은 주정뱅이 아가씨는 대체 누굽니까?"
놀란 그녀가 손을 빼내려 했지만 그는 놓아주지 않았다.
"신도 없는데 이런 나쁜 친절은 어디서 온 겁니까?"
그리고 그는 무엇을 기다리는 듯 아니면 뭔가를 음미하는 듯 잠시 그녀의 냄새를 맡았다. - P173

그 만남이 행인지 불행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떤 불행은아주 가까운 거리에서만 감지되고 어떤 불행은 지독한 원시의 눈으로만 볼 수 있으며 또 어떤 불행은 어느 각도와 시점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불행은 눈만 돌리면 바로 보이는 곳에 있지만 결코 보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 P17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디션 조 나누자며, 제비를 뽑아야 나누지. - P103

천사는 관계에서 태어나처음 시놉시스를 보여주던 날 항아는 말했다. - P106

응. 그래도 난 굴하지 않고 계속 애써야 하는 거잖아. 그렇지? - P1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시 한번‘,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 P57

이것은 오늘날 극장이 어떤 공간, 무엇을 위한 장소로 변모해 가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지점이기도 하다. - P90

사랑에 빠진다는 건 그런 거다. 선과 악, 옳고 그름 바깥에서 기꺼이 어떤 다른 열망에 몸을 불사르는 상태. 그리하여 아이스맨은 상식의 세계에서 제독이 되었고, 매버릭은주변의 시간을 붙들어 맨 채 여전히 대령의 자리에 남아있다. 이것은 실패가 아니다. - P69

공간에서 장소로, 당신의 풍경은 - P121

영화나 게임은 물론, 대다수의 미디어가 뒤섞이고 있는 흐름을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경계가 얇아지고 서로를 닮아갈수록 당부하고픈 것이 있다. 함부로 관객을 상상하지 말 것. 멋대로 대상을 판단하지 말 것. 무엇보다 주어진 형식의 가능성을 먼저 고민하고 할 수 있는 것부터 챙길 것.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는 자신의 정체성을 잊지 않는 태도로부터 싹을 틔운다. - P17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이가 든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이미 해답을 얻었거나 발견한 단계를 사는 것이다. 그래서 다들 나이 든 사람은 으레 다알고 이해하려니 한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답을 얻은들 질문이 마를쏘냐. - P36

옛날 서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은 입문 의식을 통과하고 죽은 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영성의 구현으로 중요하게 여겼다. 1960년에 말리 출신 작가 아마두 앙파테바는 "노인 한 명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탄 것과 같다"
고 했다. - P3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모는 내가 그 등허리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걸 알아차렸다.
"그 사람은 장이 안 좋아서 참외씨를 먹으면 안되는데 단걸 좋아해서 참외 속은 먹고 싶어했지. 그래서 참외씨를 하나하나 발라내야 했어. 내가 대리를 달았을 때니까 스물여섯이나 일곱쯤 됐을 때다. 그때 만나서 4, 5년쯤 사귀다 헤어진 사람인데, 회사 다니는 사람은 아니고 공부하는 사람이었지." - P94

그땐 아래아한글이 없어서 보석글을 썼다. 너는 모르겠지만 내가 하이텔이니 천리안이니 하는 통신을 시작한게 서른대여섯쯤이었고, 한때는 통신중독에 게임중독이기까지 했다. 블로그는 귀찮아서 하다 말았고, 싸이월드 좀 하다가 트위터와페북으로 갈아탔지. 사실 나는 가족들과 관계를 끊는 것보다 온라인 관계를 끊는 게 더 힘들 정도였다. 그건 주어진 게 아니라 내가선택한 거였고, 오로지 내가 쓴 글, 내가 만든 이미지만으로 구성된우주였으니까." - P97

그녀는 서둘러 술과 안주를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인터폰 벨소리는 멎어 있었고 수도꼭지에서는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기진맥진하여 반찬가게에서 사온 돌게장을 꺼내놓고술을 마셨다. 조금씩 술이 오르면서 그녀는 세운 무릎 위에 손을엇갈려 얹고 그 위에 턱을 고인 웅크린 자세로 기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 P101

어쩌면 기억이란 매번 말과 시간을 통과할 때마다 살금살금움직이고 자리를 바꾸도록 구성되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 P106

통장에 입금된 여덟자리 숫자를 보고 나는 몹시 마음이 아팠다.
한달에 35만원씩만 쓰던 그녀가 9년 5개월을 살 수 있는 돈이었다.
오래 들여다보고 있자니 그 숫자들은 그녀와 세상 사이를, 세상과나 사이를, 마침내는 이 모든 슬픔과 그리움에도 불구하고 그녀와나사이를 가르고 있는, 아득하고 불가촉한 거리처럼도 여겨졌다. - P107

관희는 멍한 얼굴로 앉아 있다가 갑자기 탁자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손으로 눈가를 짚었다. 탁자 왼편의 햇살은 어느새 반짝이는얇은 끈의 두께로 줄어 있었다. 문정은 여기까지만 얘기하자고 생각했다. 그후에 그와 더 만난 건 얘기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어차피헤어졌으니까. - P123

"다르죠. 달라요."
"뭐가 그렇게 달라요?"
"그앤 믿을 수가 있으니까요."
"믿을 수가 있다?" - P127

"그렇게 꽉 쥐지 말아요, 문정씨. 놓아야 살 수 있어요." - P135

관희의 말대로 관주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작년에 어마어마한 돈을 주고 산 캐논 600D 카메라는 돌고 돌아 오늘 오후에 문정에게 도착했다. 문정은 카메라를 조심스레 집어들었다. 돌길의 포석만 한 크기지만 무게는 그보다 훨씬 가벼웠다. 흔적도 없이 지워진 그들의 아이와 달리 카메라는 흠집 하나 없이 말짱했다.
메모리는 아무도 살지 않는 작은 마을의 버려진 헛간처럼 텅 비어있었다. - P15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