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도 혹여 네게 힘이 남아 있다면 - P128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서울에 작은 집을 구했다. 병상에 있던 할머니와 함께하느라 멈췄던 학업을 다시 이어가기 위해서였다. 하숙집과 기숙사를 전전하며 이미 독립한것과 다름없었지만 내 이름으로 계약한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건 특별한 일이었다. 작은 반지하 월세방이었다 해도 내 것을 가지게 된 건 처음이었으니까. 그 집에서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린 여름을 보냈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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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에서 장소로, 당신의 풍경은 - P121

"거의 모든 숏이 현재의 움직임에 대한 역숏, 그러니까 대화하는 형식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건 차라리 대화의 연결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왼쪽으로 향하던 문스톤호가 스핏파이어의 시공간을 거친 후 이어지는 장면을 보자.
처음으로 구축함을 스쳐 지나가는 문스톤호의 뱃머리는 어느새 오른쪽으로 향하고 있다. - P133

<사울의 아들>의 비겁함에 대해 장황하게 언급한 것은최근 몇몇 영화가 활용한 화면비율에서 <사울의 아들>처럼형식에 전도된 흔적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만약 시야를 극적으로 확장하는 VR과 의도적으로 제한한 1.33:1의 화면비가 본질적으로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면, 우리는 영화속 화면비의 문제를 좀 더 민감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 P141

지나간 것을 애잔하게 포장하는 것은 기억이 아니라 추억이다. 그리고 기억과 추억의 태도를 구분 짓는 결정적인요소는 결국 구체성이다. 주체가 설정되지 않은 공간은 추억이라는 보편타당한 감성으로도 충분히 구현 가능하지만장소는 구체적인 기억을 통해 성립한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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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호한 정서적 반응이 아니라 단단한 이성과 논리를기반으로 새로운 윤리를 쌓아야 한다. 건강한 논쟁을 통해 그답을 찾는 것이 우리 시대의 윤리적 과업이라 생각한다. 동물권이슈뿐 아니다. - P292

한 달간 여행을 다녔다고 해야 할지 한달살이를 경험했다고해야 할지 모르겠다. 서귀포에서 출발해서 한 숙소에서 사나흘가량 머물고 인근의 다른 숙소로 옮기는 식으로, 섬을 반시계방향으로 반 바퀴 돌았다. 여행과 생활의 중간이었는데, 바쁘지도지루하지도 않아 좋았다. - P297

소설가로 데뷔한 직후에는 독자 반응 하나하나가 신기했다. 당시에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었기에 내 이메일 주소를 알아내기가 어렵지 않았을 터라, 그리로 긴 질문을 보내오는 독자들이있었다. 특히 데뷔작이 청년세대의 무력감을 다룬 내용이어서이십대 독자들의 메일을 종종 받았다. - P309

안락사, 존엄사에 대해 고민하다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에까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과정이 신기했다. 아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경로였을까? 우리가 이뤄야 하는 존엄한 사회는 ‘민족의 영광‘ 같은 개념이 아니라 개개인의 존엄한 삶을바탕에 둬야 할 테니. -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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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왜 그러시죠?"
어색하다 싶을 정도로 빠르게 대답이 튀어 나갔다. 김승완이 이정연 사무실로 전화를 했던 모양이다. 받지는못했으나 메모가 남아 있었다고. 변민희 친구라고 소개한 덕분에 나를 떠올렸단다.무부 - P218

"엄마가 죽였잖아.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아?"
"너 비린가 보다, 방에 들어가 엄마 이거 마저 해야 해." - P228

"야, 그딴 건 별것도 아냐. 너 낳고 키운 거에 비하면."
변민희의 죽음은 조금 전까지 변민희 아빠의 탓이었다가 이제 내 탓이 되었다. 책임을 떠넘긴 엄마는 주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다급한 마음에 손을 뻗어 엄마의손을 잡았다. 내 탓하지 말라는 그 간단한 말은 왜인지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 P233

"엄마가 깜빡했어. 내일 사다 줄게, 그럼 됐지?"
"그건 아니지, 사과부터 하는 게 맞지." 와 - P250

입 밖으로 옅은 숨처럼 제발이 삐져나왔다. 나는 간절한마음으로 나의 엄마를 쏙 빼닮은 나의 딸을, 아직은 따뜻한 나의 딸을 한참 동안 안고 있었다. - P259

어떤 우연은 까닭을 생각하게 합니다. 2008년에 받았던 상과 2023년에 받게 된 상을 나란히 놓고 바라봅니다. 그사이를 흐르는 시간에서 무엇을 건져 올려야 할지알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그때처럼 작업을이어나갈 힘을 얻었다는 사실입니다. 15년에 걸쳐 두 번이나 큰 응원을 받았음을 기억하겠습니다. -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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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밤 산가에 일어나 앉아 말이 없네山堂靜夜坐無言쓸쓸하고 적막한 것이 본래 자연의 모습이러니寥寥寂寂本自然 - P49

그 후부터는 가끔 어머니 생각이 났다. 길을 가다 객주집에 들러 피곤한 다리를 쉬일 때 그집 안 부엌에서 나오는 저녁 짓는 그릇소리에도 문득 ‘내집‘과 ‘내어머니‘
가 그립곤 했다. - P53

서점에서 나는 늘 급진파다. 우선 소유하고 본다. 정류장에 나와 포장지를 끄르고 전차에 올라 첫페이지를 읽어보는 맛, 전찻길이 멀수록 복되다. 집에 갖다 한번 그들 사이에 던져버리는 날은 그제는 잠이나 오지 않는 날밤에야 그의 존재를 깨닫는 심히 박정한 주인이 된다. - P61

작가의 욕심으로는, 평론가는첫째 창작에 다소 경험자일 것둘째 인생관에 남의 것도 존중하는 신사일 것셋째 개념보다는 감성에 천재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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