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업원이 뜨거운 우동 두 그릇을 내온다. 수저통을 뒤져숟가락과 젓가락을 꺼내는 딸애의 얼굴은 조금 지친 것 같기도, 마른 것 같기도, 늙어 버린 것 같기도 하다. - P7
그래. 너도 알다시피 남은 건 그 집 하나가 전부잖니. 변두리 좁은 골목에 썩은 이처럼 다닥다닥 붙은 집들. 주인을 닮아 관절이 닳고 뼈가 삭고 서서히 앞으로 고꾸라지는이 층짜리 주택. 하루가 다르게 의기양양해지는 세상의 모든집들과는 아무 상관 없는 집. 그게 남편이 내게 남긴 유일한것이다. 실체가 분명한 것. 내가 통제력과 소유권을 가질 수있는 단 하나뿐인 것. - P9
여름밤에는 창 너머로 들이치는 소음 탓에 잠들기가 어렵다. 배달 오토바이의 굉음과 텔레비전 소리, 고함을 내지르며싸우는 2층집 부부의 목소리. 나는 텔레비전 불빛에 의지해무릎에 파스를 붙이고 어깨에 연고를 바른다. 그런 후에는 냉장고에서 수박 반통을 가져와 숟가락으로 허겁지겁 떠먹는다. 그러고 나자 더는 할 일이 없다. - P22
고맙지만 올 필요 없어요. 이건 우리 가족 일이에요. - P42
아시겠지만 저도 제 몫의 월세를 내고 생활비도 부담해요. 심지어 넉 달치 월세를 미리 냈고요. 불편하다고 하시니까 조심은 하겠지만 저한테도 그만한 권리가 있는 건 알고 계셔야할 것 같아서요. 명백한 사실, 반박할 수 없는 말. - P47
내가 한 거라곤 연단이 올려다보이는 이곳에 앉아 남들이엿들을지도 모를 말들을 가만히 손으로만 매만지면서 침묵을키운 것뿐이다. 하고 싶은 말, 해야 하는 말, 할 수 없는 말, 해서는 안 되는 말. 이제 나는 어떤 말에도 확신을 가질 수 없다. 이런 말을 도대체 누구에게 할 수 있을까. 누가 들어 주기나 할까. 할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말. 주인이 없는 말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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