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얼마나 달콤한 일이었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운일이었을까. 이미 오래전 지나왔으나, 그런 시기가 틀림없이 내게도 있었다. 그리고 그건 언제 누구에게 찾아오든 존중받아야 마땅했다. - P71
나루카와 유타는 늙고 고요한 기린 같았다. - P75
아직 스물여섯 살이었던 그녀에게 이십대의 가난은 자연스러운 것이었지만 마흔 살에 가까운 남자의 가난이란 초라한 것이었다. - P80
"아, 미안해. 그런 일이 있었구나. 전혀 몰랐어." "당연하지. 내가 말하지 않았으니까." - P85
"아깝긴. 그렇게라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일인데. 할머니는 이 세상에 남은 내 유일한 가족이고, 국숫집 하느라 늘 바빴던 엄마 아빠 대신 내가 좋아하는 돼지고기생강구이를 도시락에 싸주고, 감기에 걸리면 계란을 풀어넣은 유부우동을 끓여준 사람인걸." - P86
어떤 사랑은 그런 식으로 예측할 수 없이시작되기도 했다. 발을 담그기만 해도 휩쓸릴 급류인지, 서서히 젖어갈 빗줄기인지 미처 알지 못하는 채로. 그것이 상호적인 감정이었는지 개는 들어 올려지면서도 저항하지 않았고, 그녀의 품에 기꺼이 안겼다. - P88
그녀는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할머니가 네 덕분에 행복하시겠다" 하고 말했다. 그건 진심이었고, 그 말에 유타의입꼬리가 부드럽게 위로 올라갔다. "그러시면 좋겠어." - P92
"어머나, 아직도 그래요?"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 P97
겹벚꽃과 철쭉이 만발해 있던 그 봄밤 그녀의품에 안겨 있던, 이제 엉덩이뼈가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로말라버린 천사 같은 개는 모처럼 고개를 빼고 코를 킁킁거렸다. - P103
하지만 유타는 그녀의 말을 듣고 잠시 침묵하더니 놀랍게도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는 존재를 잃은 슬픔은 극복이 안 되지." 아주 부드러운목소리로. 그녀는 유타가 그 밤 해준 말을 오래도록, 시간이또다시 아주 많이 흘러 유타와 더 이상 연락을 할 수 없게된 이후에도 기억했다. 그 봄밤의 모든 것을. - P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