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왜 그렇게 가슴이 서늘해졌던 걸까. 느리디느린 작별을 고하는 것 같던 그 광경이, 헤아릴 수 없는 무슨 말들로 가득찬 것같던 침묵이, 여태 이렇게 생생하게 떠오르는 걸까. 마치 그 경험이 나에게 무엇인가를 대답해주었던 것처럼. 뼈아픈 축복 같은 대답은 이미 주어졌으니, 어떻게든 그걸 내 힘으로 이해해내야 하는것처럼. - P129

찬란한 것,
어슴푸레하게 밝은 것,
그늘진 것. - P129

어둠에는 이데아가 없어. 그냥 어둠이야, 마이너스의 어둠. 쉽게 말해서, 0 이하의 세계에는 이데아가 없는 거야. 아무리 미약해도 좋으니 빛이 필요해. 미약한 빛이라도 없으면 이데아도 없는거야. 정말 모르겠어? 가장 미약한 아름다움, 가장 미약한 숭고함이라도 좋으니, 어떻게든 플러스의 빛이 있어야 하는 거야. 죽음과 소멸의 이데아라니! 너는 지금 동그란 삼각형에 대해 말하고있는 거야. - P133

우리가 가진 가장 약하고 연하고 쓸쓸한 것, 바로 우리의 생명을 언젠가 물질의 세계에 반납할 때, 어떤 대가도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 - P135

그 쓸쓸한 몸은 이제 죽었니.
네 몸은 가끔 나를 기억했니.
내 몸은 지금 이 순간 네 몸을 기억해.
그 짧고 고통스러웠던 포옹을.
떨리던 네 손과 따스한 얼굴을.
눈에 고인 눈물을. - P140

그는 약간 혀를 내밀어 입술을 축인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긴사이를 둔다. 어두운 곳에서 글을 쓸 때, 윗문장에 아랫문장을 겹쳐 쓰지 않으려고 가능한 한 넓게 간격을 두는 것처럼. - P167

가끔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우리 몸에 눈꺼풀과 입술이 있다는 건. - P180

그것들이 때로 밖에서 닫히거나,
안에서부터 단단히 걸어잠길 수 있다는 건. - P181

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침묵이라면, 비는 하늘에서 떨어지는끝없이 긴 문장들인지도 모른다.
단어들이 보도블록에, 콘크리트 건물의 옥상에, 검은 웅덩이에떨어진다. 튀어오른다. - P195

심장과 심장을 맞댄 채, 여전히 그는 그녀를 모른다. - P204

마침내 첫 음절을 발음하는 순간, 힘주어 눈을 감았다 뜬다.
눈을 뜨면 모든 것이 사라져 있을 것을 각오하듯이. - P213

혀가 없는 말이어서지워지지도 않을 그 말을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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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는 서울 외곽을 돈다. - P109

커피도 마시고요. 빵도 먹고요. 창고에 탁구대도 있어요. 피아노를 쳐도 되고요. 오전 10시부터 한밤이 되기전까지는 늘 열어두니까. - P111

교회에 와서야 털어놓는 이야기라는 것이 대개 먹고사는 문제와는 관련이 없으나 그 나름대로는 충분히 무거운 것들이라 이들의 장황한 이야기는 붕 떠올라 당사자만 아는 리듬대로 흘러갔다. 그들 곁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것은 주로 목사와 사모뿐이었다. - P115

기은씨, 자꾸만 장례식에 오게 돼서 어떡해요. - P120

기은이 유일하게 외는 성경 구절이 있다. 예수의 안수를 받은 맹인이 무엇이 보이느냐는 예수의 물음에아직 완전히 밝아지지 않은 눈으로 "나무 같은 것들이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고 말하는 구절. - P122

아, 제가 이 말 했던가요? 저희 교회 목사님, 제 아버지예요. - P129

김병철 낙서 찾기는 오늘 하루 안에 끝나야 했다. - P134

세 곡 중에 앞의 두 곡은 항상 같은 곡이었고 마지막곡만 매주 바뀌었다. 기은으로서는 모르는 곡이 훨씬많았지만 찬송은 대개 4절까지 계속되기에 1절은 배우는 마음으로, 2절은 연습하는 마음으로 부르다 보면3절과 4절은 곧잘 부를 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한번귀에 익힌 찬송에는 더 이상의 주저함 없이 진입할 수있었다.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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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삼춘들에게 우도에서 하루 묵는 사람에게 무얼 권하겠냐고 물었다. 삼춘들은 첫 배가 들어오기 전 일출, 마지막배가 나간 후 일몰을 보라고 하셨다. 아름다운 일출과 일몰을 볼 때마다 이걸 보지 못한 채 돌아간 여행자들 생각이 종종 난단다. 그리고 마을에서 운영하는 보트도 추천했다. 보트를 타고 섬 주변을 돌며 우도 8경을 볼 수 있는 투어로 30분정도 소요된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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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는 오므라이스가 나오기만을 기다렸어.
(그렇게 우리는 집에 도착했다. 곧장 부엌으로 가 우리는 음식을 차리기 시작했다. 밤새 먹을 작정이었다.) - P94

엄마는 여행 계획을 짜는 게 취미였다. 엄마의 노트에는 스페인 남부 7박 8일 코스부터 중남미 20박 21일 코스까지 다양한 여행 일정표가 적혀 있었다. - P106

소설의 제목은 신카이 마코토의 영화 <날씨의 아이>의 영어 제목 ‘Weatheringwith You‘에서 따왔다. - P130

. 그렇다고 해도 거기에서 그와 인선이 마주칠 확률은 얼마나 될까. 하지만 어젯밤 확인해본 대로라면 전갈자리와 천칭자리 별의 움직임이 나쁘지 않았다. 인선에게는 그 정도만으로도 우연을 기대할 만큼 미련이 남아 있었고 그것은 종종 자기암시로 이어졌다. - P139

아이들은 당연히 그를 싫어했다. 기욱은 예외였다. 그는 까다롭고 변덕스러운 음악 교사에게서 예술이 가진예민함과 괴팍함을 보았고 그의 폭력성까지도 자신이 막눈뜨게 된 클래식 음악의 권위에 포함시켰다. - P145

최대한 예의 바르게 대꾸했다. "아, 그럼 누구지휘가 좋은가요? 한번 들어보려고요." "나는 대체로 마음에 안 들어서 이렇게 악보로 들어요." 노인은 자신이 내뱉은 말의 뜻을 설명하듯 덧붙였다. "나이가 들면 소리를듣는 게 느려져서, 나한테 맞는 속도를 찾게 되는 거요.
시간을 이겨내는 사람은 없으니까." - P151

음악을 전공하고 또 직업으로 삼으면서 기욱에게는 이따금 그를 떠올리는 순간들이 있었다. 대학생 때 명왕성이 태양계의 아홉 번째 행성에서 떨어져 나가 왜행성이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충격을 받은 것도 음악 교사의 말이 생각나서였다. 국제천문연맹의 결정에 따라 태양계의행성은 여덟 개가 되었고 홀스트의 행성은 다시 지구를뺀 모든 행성을 포함하는 곡이 되었다. 하지만 음악이 그런 과학자들의 분류에서 영향을 받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음악 교사의 말대로였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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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궁궐이야. - P15

우리 서로 죽었다고 생각하면서 살자. - P19

당분간 떠나 있을 예정입니다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누나, 급하면 전화할게 - P27

다른 사람들도 다 그래. 나도 그래.
그녀가 말했다. 그래서 정말 그래?라고 물었더니 정말 그렇다고 했다. 그러고는 내가 준 장미꽃을 들고 천부
천히 멀어졌다. - P29

우리 친구로 지내자. 다만 유인한 삶의내가 뭘 하자고 한 것도 아닌데 그런 말이 왜 나오나. 내가 또 말이 없으니 그가 말했다. - P33

어떤 사람들은 인생을 포기했기 때문에 집에서 구더기가 나오는 줄 안다. 하지만 의외로 구더기는 의욕이 바닥났을 때가 아니라 다시 막 샘솟을 때 나오기도한다.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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