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한 나의 이야기가 내가 어린 시절에 들었던 전쟁 이야기처럼 들리지는 않았을까. 그랬을지도 몰랐다. 이
‘들에겐 믿기지 않을 정서였지만 나에게 희생은 별다른 의
‘심을 품어본 적 없이 자연스러운, 그저 흔하디흔한 기본이었다. 생존보다 더 숭고한 가치가 있다고들 믿었다. - P19

우리를 지켜온 것이 사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줄곧 사랑을 찾아 헤매는것과도 같은 피로 속에 살았다. 피로가 사랑보다 조금 더짙은 얼굴을 한 채 표면을 차지한 때도 많았다. 우리는 우리의 피로를 우리의 사랑만큼 사랑했다. - P21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하다 여겨지는 많은 것들을 욕망하지 않기로 했다. 윤미와 나는 그것들을 함께 포기했다. 포기한 욕망들이 포기한 이후에도 계속 우리 앞에 나타났지만 요일에 맞춰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듯 우리는 버린 것들을 또 버리기 위해 함께 현관문을 열었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서로를 돌봤다. 그게 더 사랑 같다던, 열일곱의 윤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윤미는 기억도 못 하던 말.
나는 멀찌감치에서 밝게 빛나는 파초 숲의 야광 버섯들을바라보았다. 한 발씩 다가갈 때마다 더 먼 곳의 버섯이 나타났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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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모는 울고 있었다. 울고 있는 진모에게 나는 악착같이 전화번호를 불러주었다. - P155

빨리 돌아오란 말야. 왜 이리 꾸물거리니? 네 발로 경찰서에 가서 자수해. 더 이상 졸개들 고생시키지 말고 보스답게 당당히 굴라구. - P155

지난 몇 년 동안의 평화를 어떻게 견디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어머니는 이 불행을 해결하는 데 온갖 신명을 다 내고 있었다. - P156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솔직함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솔직함은 때로 흉기로 변해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부메랑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 P157

마침내 나영규의 입에서 결혼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나, 진진씨 좋아해요, 라고 말한 지 석 달 만에, 나, 진진씨를 사랑해요, 라고 말한 지 두 달 만에 그는 정식으로 결혼을 입에 올렸다. 나영규는 정확히 청혼의 수순을 밟고 있었다.
- P159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살아가야한다는 사실을주리는 정말 조금도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 P170

"니네 아버지, 킹콩 같아." - P171

"너 이런 말 알아? 결혼은 여자에겐 이십 년 징역이고, 남자에겐평생 집행유예 같은 것이래. 할 수 있으면 형량을 좀 가볍게 해야되지 않을까? 난 그렇게 생각해. 열심히 계산해서 가능한 한 견디기 쉬운 징역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 P175

그건 옳지 못한 거야, 라는 주리의 관용구. 주리는 바로 그 관용구 밑에 숨어서 더 이상은 세상 속으로 나오지 않을 모양이었다.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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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싯 몸이 말하는 ‘좋은 문장‘의 정의를 단서로본서에 담긴 고다 아야의 문장의 매력을 조금 더 자세히 서술해보겠다. - P221

그에 비해 좋은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의 솔직한 문장은 저자에 대한 두터운 신뢰를 불러일으킨다. ‘예의를 존중하고‘는 어떠한가. 저자는 나무를보러 갈 때마다 많은 친절을 경험한다. - P223

‘너무 고지식하지 않은‘ 성격은 여기저기서 조금씩 볼 수 있다. "꼴찌는 약한 몸으로 간신히 살아가는 허약하고 열등한 나무", "만약 나무가 떠들기 시작한다면 바로 이때일 것 같다", "비는 삼나무에게주는 선물" 등 일상적 표현의 묘미를 보여주는 구절은 인용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다. - P224

그들은 일가를 이루고 생활하고 있다. 가장 연장자를 중심으로 아이들, 겨우 첫 잎이 막 돋아난 아이들은 그저 어쩐지 일대에 죽 늘어앉아 결코 서로 이별하는 일 없이 살아가고 있다. - P226

"생사의 경계, 윤회의 무참함을 봤다고 해서 그렇게집착할 필요는 없다. 죽음의 순간은 찰나다. 죽은 후에도 이처럼 온기를 품을 수 있다면 그걸로 괜찮다.
이 온기를 남은 생의 선물이라 믿으며 살아가야겠다"고 결심하는 부분은 그 깨달음이 잘 드러나는 단락이라 할 수 있겠다.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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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살인‘만 인정하고 ‘미수‘는 무시해버렸다. - P152

우리들은 아버지의 자식들이었고 그랬으므로 푸르른 일몰의 시간은 숙명적인우리의 아킬레스건이었다. - P153

사건은 명백했다. 비둘기가 주먹깨나 쓰는 새로운 남자를 만난것이 화근이었다. 그 남자는 비둘기에게 진모보다 훨씬 세련된 조직폭력배의 세계를 보여주었을 것이다. 여기에도 비둘기의 잘못은 없었다. 내가 보아도 진모의 조폭 흉내는 어설펐으니까. - P153

그럴때 마주치는 진실의 얼굴은 얼마나 낯선가 말이다. - P154

죽지는 않았어. 해결할 만한 일이야. 너는 돌아오기만 하면 돼. - P154

"불러주는 전화번호 받아 적어. 거기다 자수하면 되니까."
"474......." - P155

보스답게 돌아와 네 졸개들이 다 불었어. 돌아와서 졸개 교육다시 시켜.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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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추 무더기의 이곳저곳에 렌즈를 들이대면서 김장우는 어쩔 줄을 모른다. 나는 그늘에 서서 그가 일하는 모습을 구경한다. - P116

"산이 있어 편안한 거야. 도시가 아니라서 그런 거야."
그는 마치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말한다. - P117

그 밤, 어디로 어떻게 달려서 집으로 돌아왔는지 나는 모른다.
대문 앞 외등에 비춰 본 내 손목시계는 아직 열시도 채 되지 않은시간이었다. 사랑의 인사를 나누었던 젊은 남자와 여자가 헤어지기에는 너무도 이른 시각이어서 나는 잠시 어이가 없었다. - P120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 P122

이모가 그 높은 소프라노로 이렇게 반박하면 어머니는 쇳소리로 악을 쓰다시피 격렬하게 이모의 말을 부인했다. - P131

낯선 곳에서 낯설게 만나는 혈육은 언제라도 늘 안쓰럽게 보이는 법이었다. - P134

"엄마, 오늘 또 뽀끌래 미장원에 갔었구나! 제발 그 집에서 파마하지 말라니까 왜 또 거길 갔어요?" - P139

"공부만 한다는 아이가 언제 귀에 구멍은 세 개씩이나 뚫었누."
"구멍 하나 뚫는 데 일 초밖에 안 걸려요." - P143

그때 이모가 식탁으로 돌아오면서 아들의 둥근 머리통을 아주잠깐 정답게 쓰다듬었다. 이제 나는 괜찮아, 라는 말 대신이었다.
아들도 그런 어머니를 향해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것으로 푸른 원피스의 이모는 다시 푸른 나무로 완전 회복되는 듯이 보였다. 이모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 P145

소소한 불행과 대항하여싸우는 일보다는거대한 불행 앞에서차라리 무릎을 꿇어버리는 것이훨씬 견디기 쉬운 법이다. - P148

어머니는 ‘살인‘만 인정하고 ‘미수‘는 무시해버렸다. 내가 ‘살인‘
은 무시하고 ‘미수‘만 인정한 것과는 정반대였다. 하지만 나는 애써 어머니를 설득하지 않았다. 어머니야말로 가장 흥감하게 ‘미수‘를 받아들였을 것이 분명했다. ‘미수‘가 아니었다면 어머니는쓰러져버렸을 테니까. - P152

불행의 과장법, 그것이 어머니와 내가 다른 점이었다. 내가 어머니에게 진저리를 치는 부분도 여기에 있었다. 그렇지만 어머니를 비난할 수는 없었다. 과장법까지 동원해서 강조하고 또 강조해야 하는 것이 기껏해야 불행뿐인 삶이라면 그것을 비난할 자격을가진 사람은 없다. 몸서리를 칠 수는 있지만.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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