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꽤 오랫동안 아직 문을 열지 않은 비밀의방 앞을 서성이듯 울프에게 거리를 두고 멀어지지도가까워지지도 않았다. 그건 아직 내가 열지 않은 내 안의 여성성에 거리를 두는 것과 비슷했다. - P88

알았거나 몰랐거나 말했거나 침묵했거나 우리는 모두 우리의 몸이 불행의 근원이 되지 않도록 고군분투했으므로. - P121

엄마, 당신은 어떤 여성입니까?
이제 엄마, 당신이 대답해 주길. 당신이 자유로움을 느끼는 순간, 오롯이 혼자인 순간, 그때 당신이 느끼는 감정, 누군가와 연대하고 있다는 기분, 당신이 추고 싶은춤, 당신이 오직 자신만을 위해 부르는 노래. 엄마를 제외한, 아니 엄마를 포함한, 그러나 그보다 더 커다란 엄마의진짜 이야기를.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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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안전한 사람으로 여기고 커밍아웃한 친구들이 있어서 나는 차별에 더 예민한 사람이 되었다. 휠체어를 타는 친구들을 사귀고 보니, 전에는 차별인 줄 몰랐는데 알고 보니 차별인 것이 너무 많았다. 어떤 의미에서 차별은날마다 새롭게 발견된다. 그것을 바로잡을 때 세상은 날마다 평등에 가까워진다. 지금 내가 아는 모든 것은 각자 다른 길로 내게 왔고, 서로 합쳐지고 새롭게 해석되는 데는십수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역시, 이 정도로 실망한다면내가 너무 건방지다. - P213

가슴을 찢어놓는 것은 언제나 행복의 낱말들이다. - P216

언젠가 한 어린이가 책을 읽다가 장례식은 왜 3일이나하는 거냐고 물었다. "시간을 두고 슬픔을 나누는 거야"라고 설명했더니 다시 물었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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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연은 부쩍 과거에 했던 어리석은 일들이 떠올랐고 그럴때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밥을 먹고 햇볕을 쬐고 텔레비전을 보는 일상만 반복되다보니 자꾸 옛날 생각을 하게 되었다. - P253

"어머. 몇시니."
"빨리 가. 일찍 안 가면 오래 기다린다."
"너는 언제라고?" - P257

내일과 내일모레의 일을 생각하며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그러다보니 저절로 살아졌지. - P257

결국 버너를 켜고 압력밥솥에 밥을 지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밥솥 추를 보고 있는데 양 겨드랑이 사이로 하얗고 마른두 손이 불쑥 들어왔다. 수진이었다. 수진은 차연의 등에 뺨을댄 채 말했다. 엄마, 우리 다신 마당 있는 곳 살지 말자. 차연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그래 그러자 했다. - P261

"저는 아침에 눈이 안 떠졌어요."
"피곤해서?"
"아니요. 그냥 눈꺼풀이 올라가지 않아요."
"아이고. 다 늙어서 산다구 아등바등 힘들어. 그치?" - P263

"거기 가면 친구도 만나고 노래도 부르고, 시간 가는 줄도모르는데 물건 좀 사는 게 어때서."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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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냐?"
"약과 놓잖아."
"왜 비닐은 ‘안 벗겨." - P201

"저거, 다 죽은 땅이야."
"땅도 죽어?" - P202

곧 떠날 사람이라는 마음으로일하는 것은 골치 아프고 서러웠다. 이곳저곳 떠돌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 P203

"자기 연민이란 게 무서워." - P206

"그럼 나는."
"어?"
"날 위해서는 뭐 하는데."
"이게 널 위한 거야." - P209

대진은 스스로 많은 것을 이고진 채 살고 있었다. 기후 위기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농법까지 고안해가며 지속 가능한 세상을 꾸려나가는 사람이었다. 해나는 생각했다. 그중 나를 위한 노력은 얼마 정도 될까. 그저 생일이 되면 전화라도한통 해주고, 때때로 맥주 한잔하자고, 놀러오라고 말해주길바랐는데. - P210

내가 여기서 죽어도 아빠는 후손 생각을 할까. 이상하게 아픈 와중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해나는 자신이 다친 만큼 대진또한 그만큼의 흠집이 나길 바랐다. 대진이 그런 무른 사람이길 바랐다. 하지만 동시에 그 흠집을 견디고 다시 자기가 하고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랐다. - P213

대진이 수배당하던 시절 그를 숨겨줬다던 여인들도 떠올랐다. 대진은 그 여인들이 하나같이 자신을 좋아해서 숨겨줬다고 했다. 하지만 그게 아닐 수도 있었다. 그저 그 여인들은, 대의를 생각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대진이 자꾸 뭐라고 외치는소리가 들렸다. 여전히 구급차는 오지 않았다. - P215

태수씨와 엄마는 모 대학 사학과 85학번이었는데, 동기들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들을 민주85라고 불렀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성식이 형, 민재 형, 의식이 형과 같은 형 이야기를 많이 했고 그들이 다 민주85라고 했다. - P221

나는 바지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냈다. 그리고 성식이 형이름 아래 있는 문장을 읽었다. 최대한 연습한 대로.
"울지 마쇼. 태수씨의 지령이오." - P224

"대신 부탁이 있어요.‘
부탁? 성식이 형이 되물으며 불안한 모습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우리집 개를 장례식장에 데려와주세요. 그러자 성식이형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러더니 아직까지도 미행을 당해, - P229

오후가 되자 장례식장은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나의가까운 친구들부터 먼 친구들까지 알음알음 찾아왔는데 태수씨의 친구가 가장 많았다. 나는 몽롱한 정신으로 조문객을 맞이했고 수첩을 펼친 뒤 SNS나 사진 등을 통해 알아둔 얼굴을매치시켜 태수씨의 말을 전해줬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울었고 어떤 사람은 웃었다. 또 어떤 사람은 더러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영문을 모른 채 내가 들고 있는 수첩을 뺏으려 들었지만, 나는 결코 내어주지 않았다. - P235

누구보다 태수씨를 잘 알고 사랑했던 맏딸이 여기 있는데. 하지만사랑을 증명할 길은 달리 없었다. 누구의 사랑이 더 크다고말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한 트럭의 미움 속에서 미미한사랑을 발견하고도 그것이 전부라고 말하는데. - P235

"차장님도 요즘 여자들이 그렇게 싫으세요?"
"요즘 여자들? 우리 회사 요즘 여자들은 다 괜찮아. - P243

어쨌든 유자는 태수씨를 졸졸 쫓아다녔다. 태수씨가 올 때면 어떻게 아는지 엘리베이터 소리만 들려도 꼬리를 흔들고낑낑거렸다. 태수씨는 유자의 두 앞발을 들어 함께 춤을 추기도 했다. 노래도 없이 추는 그 춤은 신기하게도 경쾌하게 느껴졌다. 그런데도 나는 유자를 태수씨의 장례식장에 데려오는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태수씨에게 꼭 그래야 하냐고묻자 태수씨는 꼭 그래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내게 말했다. - P247

"니들 진짜 미쳤니?"
나는 수첩을 들어 엄마에게 해야 할 말을 찾았다. 그리고 해오던 것과 같이 최대한 태수씨의 말투를 흉내내며 말했다.
"공여사, 자중하시오. 우리의 적은 제도잖아."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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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실 벽에 붙인 고리가 시원찮았다. 끈끈이의 접착력이 약해졌는지 수건을 자꾸 떨어뜨리고 자기도 밑으로 고꾸라졌다. - P7

"En qué trabajas?" 당신은 어떤 일을 합니까?
"
Soy periodista de cine. 저는 영화기자입니다. - P9

맡은 일의 종류가 늘어나도 결국 공통키워드는 영화이고,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일은 글쓰기다. - P11

아무튼 다 잘하고 좋은 고리. 가장 센고리. 여기서 십 년이 더 흐른다 해도 어쩌면 그것이 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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