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죽음과 장례를 숱하게 보거나 간여하다가 정작 자신의 죽음 이후는 자신만 전혀 모르고 가는 것이,
사람과 물 생명의 결국이다. 죽음은 그 자체로 당사자에게 종결이다. 생애의 모든 긍과 부, 기쁨과 고통과 걱정은 죽음을 통해 완벽하게 끝나고, 나머지는 산 자들의몫이다. 죽음과 장례를 관음하고 있는 자신을 알아챈 저자는 차라리 그 안으로 들어가 기록하기로 작정하고, 장례 노동자가 되어 목도하고 경청하고 만지며, 시선과 인식을 벼려가며 끈질기게 죽음 이후를 탐구했다. - P4

그러니 사람은 말기 암을 선고받고도 다음 날 출근을 하고, 메일을 열어 거래처와 일정 조율을 하고, 장을 보고 밥을 하고, 주말에는 요양원을 찾아간다. 혼자 살아가는 사람은 없으니까. 유언이라는 걸 남기고 마지막 인사를 준비한다. 내가 죽음에 관해 아는유일한 한 가지는, 혼자 죽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이다. - P16

밖에서 엿보는 사람이 되기 싫다면, 길은 두 가지가 아닐까. 보는 일을 멈추든가, 아니면 그 안으로 들어가든가. 그래서 장례지도사 직업훈련을 신청했다. 300시간을 수료하면 장례지도사 국가 자격증을 주는 교육 과정이었다. 수강 신청을 하고 교실에 들어서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철제 침대에 누인 마네킹 몇 구였다.
시신을 대신할 연습용 도구였다. 그곳에서 두 달 넘게 머물렀다. - P19

귀가 열린 고인 앞에서 좋은 말을 얹는 장례지도사가 있고, 그래서 더욱이 입을 열지 않는 장례지도사도 있다. 물론 누워 있는이를 개의치 않고 제 하고 싶은 말이나 하는 지도사도 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안치실 안. 마음 쓰는 만큼 손과 입이 움직일 뿐이다. 그러니 각양각색이다. - P27

이렇게 많은 말에도 불구하고 죽음이 말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건, 사람들이 모두 ‘같은‘ 죽음을 바라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다들 ‘좋은 죽음‘을 원했다. 다들 한목소리로 말하다 보니 생기는일종의 착시 효과였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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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방에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다음에 써야 할 글을 의논하느라 바빴다. 대단히 엄숙하고 중요한 일을 하는 것같았다. 대가가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쓴다는 건 뭘까.
어째서 저렇게 열심인 걸까 궁금해졌다. 자기 이름을 좋아하는 마음도, 자기가 사는 곳을 책임지려는 다짐도,
글을 쓰고 싶은 욕망도. 그러다가 그런 것들을 궁금해하는 내가 낯설어졌다. 뜻을 모르겠는 시처럼. - P40

그날 내가 애인에게 화를 내지 않았던 이유는 나 역시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가만히 둬도 자라는 마음이 있고, 가만히 둬서 죽어버리는 마음이 있다. 그런데 마음은 비명을 지르며 죽었던가. 그 시절을 생각하면 귀에물이 들어간 것처럼 모든 소리가 멀게 느껴진다. 우리가나눴던 모든 말이 극과 극에서 서로에게 닿지 못하고 사라져버린 것 같다. - P43

상대방이 화를 내며 전화를 끊었다. 나도 말하고 있었는데. 이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 하나가 있다.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 말도듣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 - P55

식사를 마치고 다시 자리에 돌아와 오후 내내 전화를받았다. 사람들은 다채롭게 미쳐 있고, 비슷하게 절망하며 산다는 걸 매일 타인의 목소리를 통해 확인한다. - P58

절망 마케팅이라고 들어봤니?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사수가 물었다. - P59

달리는 버스 안에서 가만히 제자리에 있는 것들을 본다. ‘여기‘라고 말하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저기‘라고말하는 결심은 무엇일까.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모두버스에서 내렸다. 이제 원도심으로 가는 버스 안에는 노인들과 나뿐이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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걔들은 유칼립투스 씨앗을 먹고 살았는데그 나무 한 그루도 없잖아요.
나무가 다 죽자코카투는 떠났죠. - P129

주차장 뷰 호텔 방에베개는 왜 이리 많고잠은 또 왜 이리 대성당처럼 멀리 있을까 - P133

눈보라 몰아치던 날이었죠. 광장을 지나가던 당신이 멈춰서서 시계탑의 시간에 손목시계를 맞추는 걸 보았어요. 늦지 않게 기차에 올랐나요? 오래전이었죠. 당신은 어느만큼갔을까요? - P144

요. 터미널에서 포옹하는 이들이 있죠. 마중 나온 사람은 발랄하고 배웅하는 사람은 침울할까요? 인생의 종착역이 죽음은 아니겠죠? 나는 혼자 오가는 게 좋아요. 혼자 깨어나고가만히 혼자 잠드는 데 익숙하죠. - P130

쪼개 놓아도 오이는 오이고 마늘은 다져 놓아도 마늘이에요. 끈이 떨어져도 장갑은 장갑이고 털실이 다 풀려도 스웨터는 스웨터이고 마구 찢어져도 마음은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의 파편은 필연적으로 증식해요. 당신의 손뜨개실력은 별로였던 것 같아요. 나의 시 창작 실력이 그런 것처럼. 기껏 진심 어린 선물이라고 주는데, 받는 사람을 아프게하죠. - P132

당신이 잠시나마 내 노래를 들어 줘서 고마워요. 누군가당신에게 어린아이를 이 세상에 던져 놓고 떠난 거라고 해도, 무책임하다고 해도 그런 말에 상처받지 마세요. 당신의세상은 물결쳐 오는 파도 너머 봄날 같기를. 때때로 그 나라에도 폭풍우 치겠죠. 새들이 당신 머리 위로 날아간다면 내가 보내는 사랑인 줄 아세요.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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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년 첫날의 복도에선 방학 내내 갇혀 있던 먼지 냄새가 난다. 하지만 그 냄새는 아이들의 재깔거림에 맥을 추지못하고 사라져 버린다. 수천 마리 참새 떼가 동시에 지저귀는 것 같은 소리는 먼지뿐 아니라 학교 지붕도 날려 버릴 기세다. - P7

나는 새 학교에 정을 붙이지 못했다. 전 학교에다 두고 온5년의 추억이 더 그렇게 만들었다. 그때 친구가 되어 준 아이가 소라다. 같은 중학교에 배정된 우리는 운 좋게도 계속해서 같은 반이 되었다. 나는 남매 중 맏이고 소라는 삼남매 중 막내다. - P9

소라는 31번, 나는 32번이 되었다. 2학년 6반 32번. 줄여서 ‘2632‘가 1년 동안 나를 대표할 번호다. 우리는 다시 교실로 들어가 번호 순서대로 자리에 앉았다. 물론 다른 아이들도 소라와 나처럼 키보다는 우정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자리는 처음과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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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 사람들은 보통 때라면 결코읽지 않았을 책에 관심을 갖게 된다. - P104

책은 침대를 연상시킨다. 사람들이 그 안에서 꿈을 꾸기 때문이다. - P107

가끔 책을 읽는 사람의 시선이 글에서 벗어난다.
시선은 공중에 머물다가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다시 책으로 돌아온다. 책 읽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승객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의 시선은 원래는 어딘가 다른 곳에 존재하는 공간을 잠시 여행하고 있는 것이다. - P106

그 일은 지금으로부터 오십 년 전 어느여름, 비가 오지 않던 해에 일어났다. 온 땅의 풀이말라붙자, 풀의 귀신들은 고향을 버리고 각자 마음대로 서로 다른 장소에 정착하려 했다. 그해에 태어난 아이들은 모두 초록색 우유를 마셨고, 공통된 성격을 보였다. 감정들은 처음에 강한 알칼리성을 띠었다. 조심하지 않으면 그것은 이른바 질투심이나 죄책감으로 이어졌다. 초록은 초록 속에서 얽히기 시작했고, 빠져나오려 할수록 더욱 깊이 빠져들었다. 물론 그 일에 대해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 P117

이 인터뷰를 읽고 나자 사진 책의 마지막 사진을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어떤 신발 가게에서 촬영한 것이었다. 배우는 막 가죽신을 신어보는 참이었다. 뒤편으로 스무 켤레의 신들이 있다. 이 신들은 거의 독자적인 자기 삶을 가진 듯 보였고 그래서 위협적으로 보였다. - P147

지금은 나의 성스러운 그 사진 책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그 책은 나의 눈이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자마자 저절로 사라져버렸다. 사진들은 이제 얇은 막이 되어내 망막의 한 층을 만들었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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