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전시실은 권은이 개인적으로 찍은 사진들로 채워져있었다. - P221
그 사진과 사진에 대한 권은의 설명이 실려 있었다. 권은은 이렇게 썼다. ‘각기 다른 공간에서 찍은 후지사의 반자동 필름카메라는 열두 살의 내게도 살 자격이 있다는 걸 알려준 사물이다.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촬영을 떠나기 전날이면 이 필름카메라를 한 장씩 찍으며 내가 왜 사진을 찍기로 결심했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잊지 않으려 했다. - P222
네가 이미 나를 살린 적 있다는 걸...... 반장, 너는 기억할 필요가 있어. 승준은 ‘시작‘이라는 제목의 그 사진 앞에서 한참 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 P223
전쟁으로 인한 물가 상승과 그 피로감을 우크라이나에서 온 난민들에게 전가하는 영국 사람들얄궂게도 그들은대개 나스차 자매처럼 이민자들이었다-을 대할 때, 아무도전쟁을 완전히 끝내기 위해 나서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할 때, 목이 졸리는 듯한 두려움에 잠식된다고도...... - P225
"왜, 초조해?" 민영이 물었다. "그래 보여?" "초조하면 두 손으로 괜히 무릎을 쓸잖아. 몰랐어?" ・그랬나." - P227
반장 때문에 권은이 죽었다는 반 아이들의 상상 속 목소리가 무서웠던 것도 맞지만, 권은의 방에서 나와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그는 다음번 권은에게 갖다줄 무언가를 이미정해놓곤 했다. - P229
"실은, 난민 캠프 촬영을 마치면 혼자서라도 가자지구로 넘어갈 생각이에요." "거긴 작년 10월부터 국경이 봉쇄됐다고 들었는데, 가능한일이에요?" - P235
"그래, 양쪽 다 하고 싶은 말이 있겠지. 하지만 민간인이특히 아이들이 죽어가는 걸 보면, 지금은 전쟁이 오히려 명분이 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어. 범죄에 대한 명분 말이야." - P299
한 발 더 다가온 살마가 그녀의 두 손을 잡으며 다치지 마, 라고 말했다. "다시는, 절대로..…………" 그 말은 단순한 당부가 아니라 그녀의 시간을 호위하는 주문이 되리란 걸, 그 순간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 - P241
그녀와 그는 발맞춰 걷기 시작했다. 눈은 아직 쌓이지 않았지만 자신이 지나간 자리에 새겨지는 발자국을 상상하는 건어렵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면, 열두 살의 그녀가 빛을 담은조각배 같은 오목한 발자국을 골똘히 들여다보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으리라. - P242
어딘가에서 셔터를 누르는 순간, 카메라 너머 누군가를 감싸주기 위해. 그 사람의 슬픔을 나눠 갖기 위해. - P243
그 사랑이 늘 평탄한 건 아니었어. 도망치려 한 적도 있었지. - P246
"교체한 부품만 빼면 다 멀쩡하더라고. 스크래치도 거의 없고. 오래 썼을 텐데, 그만큼 앞으로 또 오래 쓸 거야." 카메라를 건네며 그가 말했고, 그녀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 P250
거울 속 세상과 그녀를 위해, 영원에서 와서 영원으로 가는 그 무한한 여행의 한가운데서, 멜로디와 함께…빛이, 모여들었다.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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