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가 스스로를 메이저라 칭하기 전에는 샘슨 메이저였고,
샘슨 메이저Mazer이기 전에는 샘슨 매서Masur였으며 단 두 글자를 바꿈으로써 겉보기에 멀쩡한 유대계 청년에서 세계 창조 전문가로 변신했다-어린 시절에는 샘이었고, 할아버지 가게에 있는 <동키콩> 오락기 속 명예의 전당에는 S.A.M.으로 올랐지만,
어쨌든 대체로는 샘이었다.

막 시야에서 사라지려는 찰나, 세이디가 돌아서더니 샘에게 달려왔다. "샘! 너 아직도 게임하니?"
"그럼." 샘은 좀 과하다 싶게 열정적으로 응답했다. - P25

"자." 세이디가 3.5인치 디스켓을 샘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거 내가 만든 게임이야. 아마 넌 무시무시하게 바쁘겠지만 혹시시간 나면 한번 플레이해봐. 네 의견이 무척 듣고 싶거든." - P26

헤어질 때 마지막으로 던진 말이었다. "자네에겐 놀라운 재능이 있어, 샘. 하지만 무언가를 잘한다는 게 꼭 좋아한다는 것과 동의어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둘필요가 있지." - P27

마크스가 코트를 걸쳤다- 세이디 것처럼 낙타색 코트였다.
"네 친구 진짜 죽인다. 어쩌면 천재일지도. 그런 놈은 또 어떻게알게 됐어?" - P29

샘을 처음 만난 날, 세이디는 언니 앨리스의 병실에서 쫓겨난상태였다. 앨리스는 열세 살답게 기분이 오락가락했고, 한편으론암으로 죽어가는 사람답게 기분이 안 좋았다. 이들 자매의 어머니 섀린은, 하나의 몸뚱이로 사춘기와 암이라는 이중 폭풍 전선을 붙잡고 싸우는 건 감당하기 벅찬 일이라며 앨리스에겐 아주많은 양의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고 했다. 아주 많은 양의 자유란세이디에게는 앨리스의 기분이 풀릴 때까지 대기실에 있어야 함을 뜻했다.

세이디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너 진짜 잘한다. 난 네가 죽은다음에 하지 뭐." - P34

"너 좀 이상한 애구나." 샘의 말투에 흥미와 관심이 묻어났다.
"나도 알아." 세이디가 말했다. "발을 절단해야 할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빌어, 샘. 그나저나 우리 언니는 암이야."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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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 말을 좀 믿겠어?
"아니, 갑작스럽게 무릎 속에서 말해 봤자 누가 믿어요, 그걸." - P213

그런 건 인간의 기준일 뿐이야. 우리에겐 훨씬 더 심도 깊고 유능한 선별 시스템이 있었지. 시스템의 결정은언제나 옳아. 선택된 자들은 선택되지 않은 자들보다 공동체에 덜 기여한다. 그건 확실해.
"확실하긴 뭐가 확실해요. 고등하다더니 순 엉터리네 - P215

…………너는 정말로 지구인이구나. 그래, 내가 지켜본 지구의 역사도 그랬다. 옳지 않은 것이 있으면 따지고 덤비고, 흐르는 피를 아까워하지 않고 싸웠다. - P217

딱히 어려운 일은 아냐. 그냥 지금처럼 달리기만 하면된다. 운동에너지는 내가 알아서 흡수할 테니까. 정말 조금만 있으면 된다. - P219

아니다. 거길 오가는 많은 사람들을 지켜봤지만 너는꽤 잘 달렸어. 그런데 매일 뛰어서 어디로 가고 있었던거지? 그 늦은 시간에.
"어딜 가긴요. 그냥 달렸죠. 할 일이 없으니까." - P221

달리기는 보통 해가 지고 나서 시원해진 시간을 택했으므로 아침엔 아르바이트를 했다. 무릎에 외계인이 사는 것과는 별개로 나도 먹고살아야 했으니까 - P226

"어딜 가냐니까요?"
이번에도 대답은 없었고 그제서야 깨달았다.
"다 모인 거예요?"
그래, 이 정도면 지구의 중력쯤은 충분히 벗어날 수있어. - P231

나 오늘 비눗방울 되는 약 먹었어.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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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예감은 결국 현실로 닥쳐왔다.
진평강 하류에 떠내려온 두 사람의 시신을 처음 발견하고 신고한 건 여름 보충수업에 등교 중이던 진평고 학생들이었다. 두 남녀의 시신은 엉켜 있어 끌어안고 있는 듯 보였고 사체를 뜯어먹는 다슬기가 얼굴을뒤덮고 있었다. 8월 초 무더운 여름날 높은 수온으로 부패가 빠르게 진행된 상태였다. 남자는 진평 소방서구조대 반장 최창석이었고 여자는 작년에 진평으로 이사 와 미용실을 운영하던 전미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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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럴파크가 왜 중앙공원이냐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만) 맨해튼 중앙에 있는 공원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센트럴파크가 계획될 때는 조금 더 동쪽에 치우친 66번가에서 75번가 정도의 위치였고 규모도 훨씬 작았다고 한다. 후에 많은 논의를 거친 끝에 크기도 커지고 위치도 도시 중앙으로 결정되었다. 덕분에 동쪽에서도 서쪽에서도 남쪽에서도 북쪽에서도 누구나 접근하기 쉬운 모두의 공원이 될 수 있었다. ‘중앙공원‘이라는 명칭은 이 공원의 정체성 그 자체이며 꽤 정확한 번역인 것이다.

베데스다테라스를 지나 서쪽으로 가면 존 레넌이 살던 아파트 더다코타(The Dakota)가 보인다. 그리고 그 앞으로 스트로베리 필즈(Strawberry Fields)가 있다. 존과 요코가 중앙공원을 산책했다면 반드시 지나갔을 법한 위치다. 여기에는 언제나 비틀스 팬들이 모여 있다. 누군가 비틀스의 음악을 연주하고
‘IMAGINE‘이라고 쓰인 모자이크 위에는 존 레넌을 추모하는 꽃이 놓여 있다. - P123

감시하는 사람이 없는 땡땡이란 역시 좀 싱겁다. - P128

재즈는 무규칙적이고 즉흥적이면서 지적이다. 화음과 코드 진행은 늘 우리의 예측을 벗어난다. 자유롭고 다른 장르와의 융합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무한히 확장한다. 이 음악은 뉴욕이라는 도시를 닮아 있다. 뉴욕에서 재즈가 발전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 당연한 인과관계처럼 느껴진다. 지난 세기 내내 7번 애비뉴 한구석 피자집과 세탁소 사이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던 오래된 재즈 클럽의 문을 열고 열다섯 개의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생각한다. 현재의 뉴욕에 사는 나도 지금 재즈 역사의 한 장면을 목격하고 있는 증인일지도 모른다고

상대의 모든 면을 나열하고나면 귀납적으로 어렴풋하게나마 감정의 형체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이란 그 대상에대해 조금 더 장황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는 사랑의 가장 사소한 답을 찾아내는 일이다. 나는 지금, 누더기같이 콜라주된 이 모순된 도시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중이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이 리스트를 계속 이어가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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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공항은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일종의 관문 같다. 새로운 세상에 이제 막 도착해 앞으로어떤 일이 펼쳐질지 알 수 없어서 막연한 두려움, 미래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으로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동시에 뒤에 두고 온 모든 것이 벌써 그리워지는 느낌, 공항은 이런 감정을 증폭시키는 공간이다. 공항에는 떠남과 돌아옴이 있고 만남과 헤어짐이 있고 기다림과 허전함이 있다. 물론 이 같은 감정들은 세상 어디에나있다. 하지만 모든 곳에 균질하게 분포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감정들은 특정 장소에서 더 밀도가 높다. 공항은 사랑과 그리움, 설렘, 그리고 내가 속한 도시로 돌아왔을 때의 안도감, 보고 싶었던 사람을 다시 만나는기쁨의 밀도가 높아지는 곳이다.

뉴욕이라는 도시는 어떤 개인을 망가뜨릴 수도, 행운이 따르기만 한다면 성취감을 줄 수도 있다. 스스로 이런행운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만 뉴욕에 와야 한다.*•E. B. White, Here is New York」, Little Bookroom, 2000. - P23

그리고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생존은 중요한 문제이다. 거대하고 불안정한, 예민하고 냉정한 뉴욕에서 살아남는 데는 정말 운이 필요하다. 뉴욕은 그 운이 자기 것이라고 믿는 운명론자들을 위한 도시일지도모른다.

이를테면 뮤지컬 <렌트> 속 스콰터(Squatter)들이 이스트빌리지의 주인이었던 시절. 빈집을 점유하고사는 스콰터는 부동산을 사랑하는 한국 사람의 감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굉장히 미국적인 현상이다. 미국에서는 타인 소유의 집을 무단으로 점거하고 일정 기간 거주하면 집주인이 그 사람의 물건을 치울수도 마음대로 내쫓을 수도 없게 된다(퇴거를 위해서는 법원 판결이 필요하다). 왠지 사문화된 법조문처럼들리지만 꽤 역사가 깊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스콰터들이 일으킨 크고 작은 문제들을 심심치 않게 뉴스에서 접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스콰터들은 이스트빌리지 특유의 서브컬처의 토대가 되었다.

그로서리 스토어에 장을 보러 갔다. 하지만 매대는 정말 비어 있었다. 화장실 휴지도 파스타도 없었다. 자본주의 최첨단의 도시 한가운데에서 생필품이 없어 사지 못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공포스러웠다. 집으로돌아와 배달 앱을 모두 열어서 휴지를 검색해봤다. 역시 재고가 있는 곳이 하나도 없었다. 집에 쌀이 얼마나있는지 확인하고 미리 주문을 해두려 했지만 가장 가까운 배달 가능날짜는 3주 뒤였다.

언젠가부터 이 그림 속에 있는 두려움을 읽어낼 수 있는 사람과 아무런 불안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나뉘어지기 시작했다. 차별과 혐오는 사실은 공기 같은 것이다. 막상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마치 기압처럼 언제나 나를 둘러싸고 일정한 압력을 만들어내는 무언가이다.

『뉴요커』에서 ‘Crying in H mart‘라는 글의 제목을 보고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이 제목이 가진 힘은 굉장하다. H마트는 외국에 사는 사람이 자신의 뿌리와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깨닫게 해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고국에 대한 향수를 가장 많이 달래는 곳이면서 동시에 고국에 대한 향수를 가장 많이 느끼게만드는 아이러니한 공간이다. 가족과 떨어져 미국에서 살고 있다면 언젠가 한 번쯤은 H마트에서 눈물 맺힐일이 생긴다.

"이걸로 두 근 주세요."
"한우 등심이라서 꽤 나올 것 같은데요."
"그냥 주세요. 가격표는 떼어주시고요."

하지만 뉴요커라면 알고 있지. 어스름에서 살아남았다면 밤도 견뎌낼 거라는 것을.**
도로시 파커(Dorothy Parker, 미국 태생의 작가). - P66

"뉴욕 사람들이 지겨워지면 언제든 타임스스퀘어에 가면 돼. 거긴 뉴요커들이 없거든."

타임스스퀘어는 여전히 전 세계 곳곳에서 도착한 광고들을 쏟아내고 있는 자본주의의 나이아가라폭포이며 동시에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어쩌면 세계의 중심일지도 모른다‘는 환상을 주는 곳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환상을 직접 보고 느끼고 싶어서 뉴욕에 온다. 이건 오직 뉴욕만이 할 수 있는 일이고 어쩌면 내가 뉴욕에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요즘도 ‘bottomless brunch‘라고 쓰인 입간판을 보면 문화유산을 지키려는 식당의 노력에 연대를표하는 마음으로 갑자기 들어가 브런치 칵테일을 한잔이 아니라 여러 잔) 마시고 싶어진다.

여행자와 이민자와 뉴욕 토박이 들이 길바닥에 뒤섞여 8달러짜리 무슬림의 음식을 먹고 있다. 이 풍경 속에서는 누구나 뉴욕이라는 거대한 모자이크의 한 조각이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이 장면보다 더 뉴욕이라는 도시를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하겠다. - P107

‘햄버거‘라는 이름을 걸고 행해지는 모든 이교도적 행위에 계속 분노할 것이다. 햄버거를 두 동강 내고날카로운 이쑤시개까지 꽂아 내는 잔인한 행위를 규탄한다. 마치 냉정한 외과 의사처럼 포크와 나이프로 햄버거를 해부하는 행위에 반대한다. 햄버거를 손으로 들고 먹지 못하게 하는 갖가지 채소와 소스를 거부할 것이다. 얼렸다 녹인 것이 분명한 마른 패티는 퇴출당해야 한다. 푸아그라를 쓰고 트러플을 올리는 탐욕스러운햄버거는 회개하라.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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