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6시. 조용한 잔디밭. 아직 날카로운 여름 햇살. 야외용 탁자에 사람들 몇 명이 모여 있다. 이 모임의 주된 볼거리는 개들이다. 각기 저 좋을 대로 달리고 까불고 뒹구는 개들이다. - P110
사실은 그들이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점뿐이고, 그들이 나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 사실도 그게 거의 전부다. 저 여자는 멋진 개를 키워, 자기 개를 잘 돌보지. 이 단순한 문장에서 우리는 깊은 가치에관하여 많은 걸 읽어낼 수 있다. 다른 동네에서 이웃들끼리 "저 여자는 정원이 멋져" 하고 말하는 게 이것과 같은 말 아닐까. - P113
이런 두려움은 이해할 만하다. 부모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자기자신의 두려움을, 자신이 무섭게도 ‘고아‘가 되리라는 데 대한 두려움을 함께 떠올리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 P121
하지만 사실 아버지는 없다. 크리스마스에 갓난이 조카의 기저귀를 가는 언니를 서서 지켜볼 때 나를 휩쓸고 간 감정이 그것이었던 것 같다. 같은 방, 전혀 다른 이야기. 아홉 달 전에는 슬픔의 장소였던 곳이 지금은 기쁨과 새 시작의 장소였다. 그러니 그때 본아기의 모습은 내게 연속성을 일깨워주었던 것 같다. 아버지의 무력함이 아기의 무력함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아버지를돌보았고, 우리는 아기를 돌볼 것이다. 아버지는 갔지만, 아기는 여기 있다. - P127
내가 왜 거리를 두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시각의 사람이 아니라 ‘단어‘의 사람이었고, 어머니보다는 아버지의 삶에 더 깊이 얽매여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던 것을 이제 후회한다. 나는 많은 것을 놓쳤다. 어머니의 삶의 큰 부분을 어머니와 함께 나눌 수 있는기회를 놓쳤다. - P137
하지만 집 전체를 비우는 것은 다른 얘기다. 그것은 세부를 상자에 꽉꽉 담아서 쓰레기장으로 실어 보냄으로써 말 그대로 그것을 없애버리는 일이다. 이 과정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아프다. 그리고 나는 이 일이 싫다. - P1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