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누스 9세를 위협한 것은 게오르기우스 마니아케스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뒤에는 더욱 큰 위협이 들이닥쳤다. - P540
제2차 니케아 공의회의 결의에 시명하던 열일곱 살 때까지도 황제 콘스탄티누스 6세는 여전히 허수아비였다. - P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