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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제국 ㅣ 복복서가 x 김영하 소설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평점 :
작은 출판업을 하던 김기영은 10년만에 갑작스런 연락을 접한다. 사실 김기영은 남파간첩으로 남한 대학에 입학해 주사파의 일원으로 활동하다가, 북한의 총책이 숙청당하면서 북측 연락이 끊기게 되어, 10년간 평범한 가장으로 살아왔었다. 하지만 10년만의 갑작스런 귀한 명령으로 인해 그는 분주한 24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 소설의 김기영은 북한의 대학, 그리고 1980년대의 남한, 그리고 21세기 남한의 시간을 지낸다. 사실 그 시간들은 남한에 민주정부가 들어서고, 세계적으로는 냉전체제가 무너졌으며, 남북한 체제경쟁도 결국 의미가 없어지는 시간들이다. 즉 신념과 가치의 세계는 무너지고, 결국은 인간 실존의 문제만이 남는 것이다.
24시간동안의 경험을 통해 김기영은 자신의 정체가 진즉부터 간파되었으며, 자신과 같은 북파간첩이라 믿었던 사람들도 이미 남한정부와 협력하고 있음도 알게 된다. 그리고 기영 또한 자신조차 일종의 불법체류자이며, 결국 어쩌다보니 남한 사회에 적응하게 되었고, 열심히 생존하는 것이 자신의 삶의 목적이었음을 깨닫는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한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무하마드 깐슈, 한국명 정수일이 생각났다. 그분의 삶 또한 냉전체제 하에서 분열적 삶을 살아가신 거 아닌가? 원치않게 삶의 자리를 옮기게 되고,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외국인의 모습으로 살아갔던 그가, 결국은 체포되고 본명을 되찾아, 한국의 중앙아시아 연구의 큰 업적을 남기게 된 것은, 아마도 우리 한국사의 비극이자 아이러니일 것이다.
한국정치사의 특수성에 얽매어있긴 하지만 김기영의 삶과 정수일의 삶은 분명 인간의 삶의 모습이고 비극일 게다. 그리고 한강 소설가처럼 김영하도 이렇게 우리 역사를 한 편의 훌륭한 소설로 완성시켰으니 이 소설 또한 우리 문학의 뛰어난 성취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