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포 코덱스
마티 프리드먼 지음, 김지현 옮김 / 글로세움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종교를 갖고있는 사람이라면  그 종교의 가르침이 나타나있는 책을 통해서 자신의 종교활동에  많은 위안과 그것을 읽음으로서 좀 더 나은 생활을 하는 데 도움을 받는다.

 

 모든 종교를 통틀어서 구전에서 구전으로 전해지던 시절이 있었고 이를 문자라는 것을 통해서 인간들에게 어떤 종교활동과 생활에서의 필요한 좋은 말씀들을 전하기 위해 인간들은 오랜 세월 동안 여러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왔다.

 

 이 책은 현재 이스라엘에 거주하면서 살고 있는 유대인 출신의 기자인 저자가 2008년도에 우연히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의 어두운 갤러리에 보관되어 있던 책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되면서 취재를 통한 역사적인 일들을 써 내려간 책이다.

 

책의 이름은 알레포 코덱스-

 

지금의 시리아 나라에 있는 알레포란 지방에 있던 완벽한 히브리어 성경책을 말한다.

 

서기 930년 경의 티베리아스의 필경사가 필경사의 우두머리이자 현자인 아론 벤아셰르의 지침에 따라서 만든 이 책은 기존의 두루마리를 펼쳐서 읽던 것과는 달리 현재의 우리가 알고 있는 책이라고 불릴만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 책은 유럽의 십자군 침략과 마이모니데스라 불리는 역사적인 인물의 자손이 여행을 떠나면서 이 필사본을 들고 간 후 알레포의 머물게 되고 근 600여 동안을 시리아의 알레포에 살고있던 유대인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하지만 1947년 플러싱메도우에서 결정된 이스라엘 건국이 확정이 되면서 시리아에선 폭동이 일어나면서 유대인들의 탈출과 함께 알레포 코덱스는 여러사람을 거쳐서 알레포 코덱스를 지키고 있던 랍비 2명이 시리아에서 추방당해 이스라엘로 향하던 치즈상인에게 이를 건네주게 되고 그 곳 랍비에게 줄 것을 부탁하게 되지만 이 치즈상인은 이스라엘 정부에게 이를 넘겨주게 되고 이 후엔 다시 알레포로 돌아올 수없게된다.

 

 이를 알게 된 유대인들과 이스라엘간의 법정 공방 끝에 서로 다른 주장, 그리고 거의 온전하게 보관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과는 다르게 낙장이 근 200여 페이지가 분실된 점도 알게되면서 저자는 역사적인 간략한 소개만 하고 끝날 줄 알았던 이 책 한 권에 얽힌 미스터리를 취재해 가는 과정이 사뭇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유대인의 디아스포라는 유명하다.

 

그런 그들이이기에 자신들의 나라 없는 한을 이어줄 구심점이 필요했었고 알레포 코덱스는 그런 유대인들의 한 부류였던 아랍권의 나라 안에서 살아가던 알레포 유대인들에게 하나의 성물이자 가르침이요, 보물이었다.

알고보면 알레포 코덱스의  이야기도 유대인의 역사와 맞물리면서 침묵의 길을 걷게 되는 주인공이다

 

 

이런  책이 사실은 필경사가 책이란 의미로 엮었을 때의 목적은 모든 사람들이 두루 보고 익히면서 유대인들의 가르침을 성서에 기준해 살아갈 뜻으로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알레포 코덱스는 사람들에 의해서 점차 법접할 수없는 귀중한 보물로 여겨지게 됬고  알레포 왕관이라고도 불리게 됬다.

 

이런 시리아의 폭동을 눈여겨 본  시리아나, 건국 초기의 나라의 기초적인 정당성과 권위를 내세우기 위한 일환으로 힘과 권력을 내세운 이스라엘은 유대인들의 정착지로서의 이 곳에서 이 책을 보관 할 정당성을 내세우는 주장, 알레포 유대인들과 랍비들이 알레포 코덱스를 지키려하는 이 과정은 역사의 숨가뿐 과정을 과거와 현재를 번갈아 가면서 그려낸다.

 

하지만 결국 알레포 유대인(랍비)과 이스라엘간의 협약하는 과정은 "결국 힘은 정권을 잡은 자에게 있었다. 그 일은 더러운 협잡이었다."라는 한 의원의 고백처럼 좌절을 그리고 저자는 갈취해 간 것이라고 일갈한다.

 

 저자의 다양한 사람들과의 취재에서 온 결과는 알레포 코덱스의 낙장 마저도 실은 절묘한 시점에서 사람이 죽거나 굳이 나서서 알려지길 원치 않는 모두의 침묵한 결과로 이어진다.

 

그 이후의 낙장을 찾으려는 이스라엘의 노력과 시리아 회당에서 화재로 소실됬다고 소문을 퍼뜨려 알레포 코덱스를 보존하려했던 랍비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에 보존하게 된 여정의 발자취는 모든 유대인들, 특히 알레포의 유대인들이 믿고 의지했던 책 한 권의 역사가 인간의 탐욕과 권력의 힘에 맞물려 힘없이 쓰러져가는 안타까움을 그려낸 과정이 역사의 진실된 한 순간을 마주하고 있자니 참으로 뭐라 말 할 수없는 씁쓸함이 밀려온다.

 

결국은 인간의 탐욕으로 고이 보전되던 책 한 권의 역사가 이렇듯 여러 손을 거치면서 깊은 침묵 속에 들어갔단 사실이 하나의 귀중함을 모두가 공평히 다루어야함을 잊은 인간들이 빚어낸 비극이 아닐까 싶다.

 

아직까지 낙장이 어디서 어떻게 분실이 되고 누구의 손에 있는지조차도 확인이 안된 사실 앞에서 저자는 이스라엘에 보존이 되고 있는 이 코덱스가 다시 알레포의 유대인들 희망처럼 예전의 장소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해도 이 책이 가지는 귀중한 가치와 더불어서 낙장의 보존에도 좋은 소식이 들여오길 바라는 심정이 우러나오는 책이다.

 

 알레포 왕관에 담겨져 있다는 전도서에도 나오는 글인,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게도 이미 있었느니라.'

 

훼손당하게 한 당사자들이 누구인지는 모르나 (취재 당시 인터뷰 대상들이 당시의 노령들이 많아서 사망한 사람들이 인터뷰 후에 사망한 사람들도 나왔다. ) 신앙의 구심점인 책을 그렇게 한 데에는 많은 책임을 져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레포 코덱스의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그것을 보호하는 사람과 파괴하는 사람. 옳은 이유로 알레포 코덱스를 찾는 사람과 음흉하고 비도덕적인 욕망으로 알레포 코덱스를 찾는 사람. 이 모든 이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행동 동기가 알레포 코덱스 안에 담겨져 있다. 인간의 실패를 다룬 카인가 아벨의 이야기와 황금 송아지 이야기에서 이런 모습들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있다. 수천 년 격동의 역사 속에서 살아남은 책이 우리 시대에 이르러 그것을 지키던 사람들에 의해 팔려나갔다.

알레포 코덱스는 단련시키고자 했던 인간 본능의 희생양이 되었고, 구원하려던 그 피조물에 의해 파괴되었다.- p 402~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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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9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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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근처의 주택가에 위치한 쇼핑몰에서 원인을 알 수없는 사고가 발생한다.

 

 처음엔 화재가 났다는 말이 들리더니 곧 이어서 유독가스 누출이 났다는 소리가 들리고 엘리베이터에서 사람들이 허둥지둥 내려오다 사람들이 겹치면서 사상자가 발생하게된다.

 

 이 사건의 원인을 두고 은밀한 인터뷰가 진행되는데,

 

그럼 지금부터 몇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여기서 하신 말씀은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질문에 대해 당신이 본 것, 느낀 것, 아는 것을 솔직하게 마지막까지 성심껏 대답해주신다고 맹세 하시겠습니까?

 

처음부터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주 인터뷰 대상이 당시의 사고 현장에 있었던 사람, 기자, 소방대원, 쇼핑몰 회사의 법률 변호사,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상처 하나 없이 살아난 어린아이를 둔 엄마까지, 각개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본 것을 토대로 그 당시의 상황과 자신들이 생각하는 사고의 원인, 그리고 곁들여서 자신의 트라우마까지 이야기를 덧대어 말한다.

 

 하지만 사고의 원인은 도통 알 수가 없는 가운데 사람들은 인터뷰 속에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요즘의 변화하는 세태 속에서 한 순간 허물어져 형태 조차도 알 수가 없게 된 쇼핑몰에 대한 당시의 충격은 잠시, 곧 바로 방송은 방송대로, 작가는 작가대로, 일반인은 일반인대로 자신들 논리와 관음증에 어필할 호기심에 우러난 말들을 하고 실제 이것을 폐허 투어나 게임,  영화 같은 소재에 사용할 생각까지 하는 사람들로 이어진다.

 

 

 대형사고가 나도 일순 한 순간의 큰 충격일 뿐, 이는 곧 내 일부분과 가족만 아니라면 가슴을 쓸어내리게되는 현실과 그런 것에 나아가서 미안함을 느끼는 감정, 참사 현장에서 살아난 아이를 대상으로 또 다른 형태의 죽은 이를 위로한다는 차원에서 이용하는 사람들의 속성을 작가는 건물참사라는 사건의 실체를 가지고 이를 죽음, 공포, 음모, 환상을 넘나들면서 독자들에게 질문과 대답을 하게한다.

 

 정부의 음모론서부터 이를 무마하기위한 유일한 선택으로서 '신'을 선택하는 일련의 과정은 책 속에서 처럼 우리가 봤다고 믿었던 현실은 존재 조차도 하지 않았고, 다들 자기가 아는 허구 속에 살고 있을 뿐(P265) 이란 말이 가슴에 와 닿는 책이다.

 

다들 텔레비젼, 드라마등 영화를 보면서 이런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등 불평하쟎아. 그렇지만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술집 같으데 가 보라고. 보통 사람들이 훨씬 더 거짓말 같고 텔레비젼 드라마 같은 말을 지껄이거든.

요즘 세상은 허구하고 현실이 완전히 반전되 있어. 그러니 농담 같은 일이 사실이라도 전혀 놀라울 거 없어.

정부는 늘 뒤에서 수상쩍은 짓을 벌이고 있고 세상엔 언제나 음모가 만연해.

어떤 의미에선 그게 사실이고 또 거짓말이기도해.

 

 그래. 인간은 말이지, 나쁜 건 자기 탓이라고 하기 싫거든. 기분 나쁜 일, 불쾌한 일은 남 탓으로 돌리고 싶어 해. 사람을 죽이는 건 나쁜 일이잖아? 하지만 안 죽이면 곤란한 경우라든지 죽이는 게 그 사람한테 유리한 경우가 아주 많단 말이지. 그때 신이 있으면 아주 편리하거든. 신이 명령했다, 신을 위해서, 신의 이름으로,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으니까.
사람을 죽일 때만 그런 게 아냐. 아주 나쁜 일이 있었을 때 남 탓으로 못 돌리면 괴롭잖아? 절대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 누구 다른 사람 잘못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주 편하지. 후회하고 반성하는 것보다 남을 미워하는 게 훨씬 편해. 그런 때를 위해 신이 있는 거야. 난 알았어. 사람은 타인을 죽이는 동물이야. 그렇기 때문에 남을 죽이기 쉽게 하려고 신을 만든 거야.-P 302~303

 

한 사람 한 사람의 인터뷰 속에 드러내는 인간의 심성 포착은 정말 세심한 관찰과 그 부분을 파고 들어가지 않는 한 어찌 이리 신랄하고 정곡을 찌를 말만 쓸 수있었는지에 대해 작가에 대한 필치를 다시금 느끼게 한다.

 

***** 그럼 지금부터 몇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여기서 하신 말씀은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질문에 대해 당신이 본 것, 느낀 것, 아는 것을 솔직하게 마지막까지 성심껏 대답해주신다고 맹세 하시겠습니까?

 

과연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당신들은 자신이 본 것에  솔직하게 자신할 수 있을 만큼 말 할 수가 있나요?
 

마지막 장면은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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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똥별 - 가장 낮은 곳에서 별이 된 사람, 권정생 이야기
김택근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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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주로  출.퇴근하면서  책을 읽는다.

 

 읽다보면 여러가지 감상에 젖어들면서 읽게되는데, 정말 주체할 수없는 눈물이 흘러 내려 읽기가 어려웠다.

 

바로 그런 책이다.

 

한국 문단의 어린이를 위한 동화를 쓰신 권 정생 선생님의 생애를 그린 동화형식의 쉬운 글로 쓰여진 책-

 

태어날 때부터 어려웠던 가정형편, 그 가운데서 근면한 부모의 영향과 머리는 좋았으나 시대와 금전적인 것이 따라주지 않았던 불우한 시절의 성장기, 친구의 죽음과 자신에게 찾아 온 병마는 평생 그의 친구요, 지울 수없는 삶의 고통의 원천이었다.

 

 교회의 종지기로 일하면서 어린이를 위한 동화를 쓰신 인세를 고스란히 다음 세대의 어린이에게 돌려주신 유언은 감히 누구도 따라 할 수없는 그 분의 품성을 나타낸다.

 

 소원이 있다면 죽음이 빨리 찾아왔으면 좋겠단 말씀에 너무도 힘든 병마와의 삶에서 지친 모습도 보이고, 사람이 살다가는 인생 길에서 각기의 나이에 맞는 사랑도 해보고, 결혼, 자식까지 건사할 행복을 그 분은 지니고 살다 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너무도 순수한  그 분의 마음을 따라가다보면 내 자신의 조금만 욕심도 부끄러워지고 , 그래서 어른의 눈으로는 쓸 수없는 순수한 우리네 몽실언니같은 이야기가 탄생하게 된 것이 아닌가한다.

 

 당신의 먹고 사는 것에 필요한 아무런 가식없는 소박한 삶은 너무도 어려웠던 그 시절의 그 분의 인생 전반기에 걸쳐 형성된 영향도 있겠지만 뭣보다 전쟁과 삶의 힘든 여정을 고스란히 한국의 역사와 같이 한 분이기에 유언 자체도 그런 결단을 내리신게 아닌가 싶다.

 

 

 

 

 

 

 

 

 

 

 

                        (선생님이  생 전에 사용하셨던 물품들)

 

지금도 아이들 책의 필독독서에 포함되는 동화책을 통해서 그 시절의 순수함과 가난함을 통해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은 아마도 이 분의 글을 통해 조금이나마 한 단계 성장하는 맛을 보지 않을까 싶다.

 

 어린이는 말할 것도 없이 성인이라도 닮고 싶은 그 분의 잔잔한 미소가 보이는 얼굴을 본다면 이 책을 집어든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20대에 찾아 온 병마를 70대에 비로소 해방이 될 수있었던 그 분의 소박한 다음 생애 소원이 아직도 뇌리에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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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 케이스북 셜록 시리즈
가이 애덤스 엮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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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니, 일드니 하는 드라마들 속에 영드가 차지하고 있는 인기는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 중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읽어보았던 셜록홈즈에 대한 인기는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한 추리의 동심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시대가 변하면서 셜록에 대한 향수와 함께 셜록이 가지는 이미지가 180도 변했다!

 

바로 영드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다.

처음 주인공을 봤을 때 조카의 말,

"왜 이렇게 못생겼어?"

 

그래 나도 이하 동감이다...

그런데 배우는 이미지도 중요하지만 정작 이 셜록을 맡은 주인공에 대한 나의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너무나도 까도남이요, 매사에 냉정함을 잃지않고, 더군다나 새로이 해석한 이 케이스북에 나타난 왓슨과 나눈 대사는 다시금 낄낄거리게 만든다.

 

노란 색과 연두 색의 포스트 잇을 붙여서 다시 드라마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들고 그 동안 셜록의 재탄생 과정과 배역을 맡은 인물들과의 인터뷰, 그리고 뭣보다 원작과의 비교를 한 부분은 현대적인 해석과 곁들여져 읽어보는 맛이 쏠쏠하다.

 

 

 

 원작자인 코난도일의 인생이야기를 엿보는 것도 하나의 보너스!

 

 

 

 처음에 이 셜록시리즈를 계획할 단계부터 캐스팅까지, 그리고 기존에 방영되었던 이야기들을 어떻게 현대에 재해석을 해서 방영하는지에 대한 차이점 들여다보기가 이미 드라마를 보았지만 책으로 접한 느낌은 또 다시 셜록 앓이가 되게한다.

 

시즌1.2가 끝나고 곧 3이 시작된다고 하던데, 어떻게 다시 다른 까도남으로 돌아올지, 왓슨과의 절충의 묘한 조화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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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하우스
캐슬린 그리섬 지음, 이순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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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있음

 

1791년 여덟 살의 아일랜드 소녀 라비니아는 배에서 엄마와 아빠를 잃고 오빠마저 다른 곳으려 팔려가면서 제임스란 남자의 손에 이끌려 버지니아 주 톨 오스크 담배농장에 계약노예로 오게 된다.

 

 그 곳엔 제임스가 흑인 노예와 사이에 낳은 벨이란 여자가 흑인들이 거주하는 노예숙소와는 별도의 장소인 키친 하우스란 곳에서 살고 있었고  제이콥 흑인 아저씨는 라비니아를 그녀에게 맡긴다.

 

 처음엔 피부색이 다르고 적대적이었던 벨과 라비니아는 어느 새 서로 의지하면서 다른 가족인 흑인 부부 마마 마에와 파파 조지, 도리, 쌍둥이 소녀들인 비키와 파니와 어울리면서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가족애를 느끼면 성장한다.

 

 집을 많이 비우는 주인이 없는 사이 20년의 나이 차가 나는 마사 마님은 그들의 자식인 아들 마셜과 딸 샐리를 키우되 도통 살림에 관심이 없고 마셜은 벨을 아버지의 여자란 생각으로 그녀를 미워하는데, 여기엔 가정교사인 워터스의 잘못된 학대와 노예 감독관인 백인 랭킨의 사악함이 박자가 맞아 떨어져 더욱 잘못된 성장의 길로 커간다.

 

 어느 날 딸 샐리가 그네를 타다 마셜 때문에 죽게되고 이로 인한 충격으로 마사 마님은 아편에 중독, 이를 고치기 위해  요양을 가게된다.

 

 이러는 일이 발생되는 일과 연이어서 마셜은 랭킨이 보는 앞에서 벨을 강간, 벨은 아이를 임신하고 제이미란 아이를 낳게된다.

 

 당시 나이도 어렸고 모든 사람들이 함구하는 바람에 아무것도 모르던 라비니아는 주인이 죽자 마사 마님의 언니가 있는 윌리엄스버어그로 같이 가게되고 그 곳에서 대학에 다니던 마셜을 만나게된다.

 

 16살이 되던 해 라비니아는 마셜과 함께 결혼을 하게되고 곧이어서 꿈에 그리던 키친 하우스에 오게 되지만 그들은 깍듯하게 마님 대접을 하며 거리를 두게된다.

 

 딸 엘리를 낳아 행복한 시기도 잠시, 점차 심해지는 마셜의 폭행과 비키 사이에 낳은 아들 셋을 바라보는 심정, 윌이 벨과 벤의 가족을 데리고 자신의 농장으로 가버린 일들이 벌어지면서 그녀 또한 아편에 중독되다 자신의 의지로 극복하지만 마셜의 행동을 더는 참을 수없어 키친 하우스 가족들과 함께 계획을 세우게된다.

 

 

이 책은 남 북 전쟁이 발발하기 전의 이야기를 다룬다.

 사실 미국의  개척시대에 온 백인들 사이에서도 이런 계약노예가 있었다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됬고 라비니아가 겪고 자란 인생의 풍파는 어릴 적 봤던 "뿌리"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연상시킨다.

 

 천애고아가 됬고 기억을 잃어버린 소녀가 성장하면서 자신의 가족과도 같은 느낌을 공유하면서 생활해 간 흑인들의 생활장소인 키친 하우스와 백인 주인이 거주하는 집 빅 하우스의 대조는 이 책에서 극명한 대조를 나타내고 , 그 가운데 라비니아란 백인 소녀가 거주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과 결혼과 출산, 남편의 비 정상적인 행동이 드러나면서 원만치 못한 결혼의 말로, 알고 보면 배다른 누나였을 벨을 대하는 방식과 자신의 아들이기도 한 제이미를 팔아 넘기려하는 파렴치한 , 어찌보면 인간의 성정으로선 할 수없는 모든 행동들을 보이는 인물로 나오는 마셜을 통해서 당시의 노예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비판이 담겨있다.

 

여기엔 또 하나의 인생들을 들여다 볼 수있는데, 바로 벨과 라비니아의 사랑이다.

 

벨은 흑인 벤과 서로 사랑하지만 주인이자 아버지인 제임스의 명으로 벤이 위험에 빠질까봐 그를 가까이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랑을 한다.

거기에다 벤은 노예숙소의 루사와 결혼함으로써 자신의 임신과 함께 무너져내리는 비참함을 맛보지만 서로의 사랑은 벤이 자식들을 낳는 동안에도 이어지고 이는 곧 어느 새 두 여자 루사의 묵인과 벨의 같은 여성으로서의 벤을 대하는 일심동체의 행동을 보이는 세월의 연륜을 보여주는 과정이 불륜이라고 손가락질 할 수없는 어떤 인생의 흐름을 용인하게 만든다.

 

 라비니아 또한 12살에 본 윌 스티븐슨이란 11살 연상의 남자에게 미래에 신부가 되겠다고 호언하지만 뜻하지 않는 오해로 인해 마셜과의 불행을 자초하게되고 , 다시 돌아 온 뒤에도 여전히 윌에 대한 사랑을 느끼는 감정을 주저없이 행동으로 나서는 면을 보인다. (이마저도 무너지지만...)

 

노예란 것 하나로 주인인 마셜의 겁탈에도 항의조차 할 수 없었던 비티의 인생은 벨이 루사와 같이 한 인생이나 자신과 비티가 앞으로 같이 갈 인생임을 암시하는 과정은 작가의 필치에서 하나의 아픔과 감동으로 다가오게 만든다.

 

용서할 수 없는 악인 마셜의 죽음 뒤에 찾아 온 평화는 마마의 죽음과 바꾼 격이됬지만 새로이 태어날 집에 대한 희망과 자신의 가족이라고 생각되는 흑인노예들과의 교감, 비티와의 화해와 용서는 또 다른 새로운 세대들의 사랑들을 기대하게한다.

 

따뜻한 가족애를 느낄 수가 있는 이 소설은 모처럼 가슴이 뭉클하고 푸근함, 그리고 뒷 편의 이야기가 좀 더 나왔으면 하는 아쉬움을 많이 남긴 책이다.

 

 진정한 핏줄을 나누고 태어난 가족들이라도 서먹하거나 감정의 교류가 없는 가정이 있다고 볼 때 여기 라비니아는 한 순간도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이 행복한 유년의 시절을 보내는 과정이 따뜻하게 그려진다.

 

2010년도 무명의 작가가 써 놓은 글이 출판사에서 거절당하다 출판이 되고 이 소설은 미국의 소규모 독서클럽을 통해서 널리 알려지게 됬다고 한다.

 

하마터면 이 좋은 소설을 놓칠 뻔 했다는 생각이 든 소설이다.

 

라비니아와 벨이 바라보는 시각을 교차해서 소설의 전 과정을 끌고 가는 점도 특이하고 나이대에 맞게 바라보는 시선들이 독자들로 하여금 저도 모르게 빠져들게 만드는 책이다.

 

  “아비니아,(책에선 흑인들이 두 가지 이름으로 주인공을 부른다.)  분명히 말하마. 피부색이 어떻고, 아버지가 누구이고, 엄마가 누구이고는 하나도 중요한 게 아니야. 우리는 가족이고, 그래서 서로를 걱정하는 거야. 가족은 힘든 일이 있을 때 더 강해지는 법이지. 우리 모두 똘똘 뭉쳐서 서로 도와줘야 된다. 그게 가족의 진짜 의미란다. 어른이 되면 너도 가족의 의미를 알게 될 거야.” - P206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마마 마에가 위에서 하고자 한 말이 아니었을까?

노예제도 안에서 서로 기대고 의지하고 파티와 음식장만해서 같이 먹는 정겨움 속에 깃든  오고가는 가족애 앞에서 피부색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다시 돌아온 톨 오스크의 재건에 의지를 굳히는 라비니아와 그의 진정한 가족들의 의지가 아직도 가슴에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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