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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들을 끌어내라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53
힐러리 맨틀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1월
평점 :

울프홀에 이은 2부에 속하는 작품-
캐서린 왕비를 폐위시킨데 이어 앤을 왕비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힘쓴 크롬웰, 이제 다시 헨리의 마음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앤을 다시 폐위시켜야 하는 운명에 처했으니 참 기막힐 노릇이다.
헨리왕의 끝없는 여성관심은 뭐라 해야 할지....
캐서린과는 또 다른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앤 왕비가 딸을 낳았을 때만 해도 다음 승계자에 대한 희망이 있었지만 반복되는 유산, 여기에 제인 시모어에게 눈길을 돌린 헨리를 바라보는 그의 관점은 독자들과 함께 이 난항을 어떻게 헤쳐나갈지에 대한 궁금증이 들게 한다.
이미 우리들은 결과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고 있지만 만일 당 시대에 궁정에서 살아갔다면 고도의 흐트러짐 없는 궁정의 내밀한 숨 막힘을 이겨내기도 힘들었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총 3권을 읽기 전에 알고 있었던 영국사와는 별개로 이 시대에 벌어졌던 배경들을 알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던 점과 매끄럽게 읽히지 않은 문장들은 이번 작품에서는 전작의 흐름 영향 때문인지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다.
크롬웰이 추구하는 정치적인 판은 조선시대 정도전을 떠올리게 한다.
신으로부터 위임받은 자리에 위치한 성직자들의 권위와 수도원의 부패함, 이미 교황과 반목의 길에 들어선 헨리와 영국의 재건을 위해 수도원의 재산을 몰수하면서 개편한 점, 재산의 부 축적을 통해 영국 안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새롭게 개편한 점들은 각국의 간섭을 신경 쓰면서도 집요한 고도의 계산이 깔린 정책을 밀어붙인 점은 놀랍다.
여기엔 귀족세력의 정적들과의 심리전과 권력다툼은 가톡릭과 반대파 간의 싸움, 이중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에 따른 자신의 성공과 안위를 좀 더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두뇌 플레이는 여전히 긴장미가 넘친다.
특히 이 작품에서 제목이기도 한 시체들을 끌어내란 말이 앤을 비롯한 연관된 자들의 형집행을 위해 웨스트민스터 홀로 호송하는 말을 의미하듯 가장 압권인 앤의 재판 과정이 이루어지기까지 앤이 그동안 저질렀던 치명적인 단서들을 잡기 위해 그동안 조금씩 모아놨던 정보들을 관련 당사자와의 대화에서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한계까지 밀어붙인 장면은 울프 홀에서 보인 그냥 지나칠 수 있었던 문장들이 이 작품에서 모두 사용되었다는 점이 허를 찌른다.

캐서린과는 다른 방향으로 앤의 부정을 이용한 상대 남자들을 취조하는 과정에서 겉으로 보인 정치적 행보 외에도 진짜 숨은 내막인 울지 추기경을 죽음으로 몰아간 그들에게 복수를 다짐했던 크롬웰이 가면을 벗으며 진실의 얼굴을 보인 부분들은 아마 이 작품 속에서 크롬웰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중의 잣대를 평형의 저울로 옮겨 놓음으로써 결코 한순간도 흐트러짐 없는 행동을 보인 그의 삶은 정치속성상 오르막이 있다면 내리막이 있다는 것, 그 또한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 행동들은 정치권력에 대한 강한 야망 이면에 씁쓸한 권력의 허무함을 잘 알고 있는 모습을 그린다.
비천한 신분으로 권력의 최정점에 오르기까지 때론 온화함과 미소를 내보이며 헨리의 총애를 받은 그지만 변덕스러운 왕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자세는 정치권력의 판에서 귀족 정적들의 주요 타깃이 되었다는 점은 모두에게 인정받기 어렵다는 점을 인식시킨다.
피바람이 부는 궁정 내의 권력유지를 위해 자식을 저버리는 사람들, 적어도 크롬웰은 그런 귀족보다는 훨씬 인간미가 넘치는 인물이었다고 생각한다.

앤 블린이 어떻게 몰락해 가는지, 시모어 집안에서 어떤 일들을 도모하는지에 대한 흐름들을 함께 지켜보면서 인간의 끝없는 권력에 대한 야망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는 사실, 배경만 중세 영국이지만 현대로 옮겨놓고 읽어도 전혀 어색함이 없는 정치세계의 스캔들을 그린 작품이다.
*** 절판이 되고 새롭게 출판사 이름을 바꿔서 출간된 작품인 만큼 3부작 완성을 모두 출간했으면 더 좋았겠단 생각이다.
기존 구판을 읽었거나 이번 개정판을 읽은 독자들에겐 이런 식의 출간은 반갑지 않을뿐더러 읽는 맥을 끊어놓으니 읽었어도 읽지 않았다는 기분은 왜 들게 하는지...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런 연작작품들은 한 번에 출간하는 것이 독자들의 선택 폭을 더 넓혀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