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네트의 고백
카린 지에벨 지음, 이승재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매 작품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생김새는 후덕스러운 이미지의 푸근함을 전해주는 인상에서 어떻게 이런 글들을 쏟아낼 수 있는지, 궁금해지는 작가, 바로 카린 지에벨이다.

 

전작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도 않은 이 작품은 정말 책 몰입도를 높여주고 혈압이 끝까지 올라갈 정도의 내 내면의 분노를 느끼게끔 해 준 책이다.

 

자신들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를 대신해 학업을 포기하고 생업 전선에 뛰어들다 범죄의 길로 들어선 라파엘, 교도소를 내 집 드나들듯하다 막내동생 윌리엄과 다른 두 남녀와 함께 4인조로 구성된 보석상 강도 사건을 실행한다.

 

하지만 도망쳐 나오던 중 경찰과의 대립 끝에 동생은 총상을 당하고 예정된 은신처를 버리고 차량을 몰고 도망가는 처지에 이른다.

 

도착한 곳은 동생의 치료를 위해 일단 눈에 띄는 동물병원 간판이었고 그곳에서 여 수의사인 상드라를 위협, 그녀의 집에 가게 된다.

그녀의 남편은 일 때문에 출타 중이었고 응급처치로 동생의 치료를 맞게 된 상드라는 시종 알다가도 모를 행동을 함으로써 4명 사이를 이간질 시키고 급기야는 라파엘이  동료를 죽게 만드는 사건으로 몰아간다.

 

그녀의 남편 파트릭-

얼굴은 천사처럼 푸근한 인상의 중년의 남자로서 도저히 상드라 와는 부부 사이라고 하기엔 왠지 모를 분위기 조성과 함께 위급한 상황임이 분명함에도 결코 서두르는 법 없이 라파엘 일당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는 존재다.

 

은신처라고 들어온 곳은 알고 보니 어린 여자들을 납치해 성강간과 함께 온갖 자신의 욕정을 해소하고 가차 없이 죽여버리는, 상드라는 그에게 협조하는 그야말로 자신의 의사 자체는 결코 행하지 않는 꼭두각시 마리오네트 인형이었다.

 

 

 

세 사람의 심리적인 미묘한 흐름, 파트릭, 상드라, 라파엘은 각자 저마다의 아픔을 담고 기억에서조차도 없애버리려 하는 사람들이다.

 

어린 시절 어른들에 의해 폭행과 강간을 당하며 살았던 힘없는 파트릭은 그 보복에 대한 차원으로 자신보다 힘없고 여린 여자아이들을 상대로 자신의 우월적인 힘을 확인하려 애를 쓰는 자, 그것을 통해 쾌감을 느끼는 자였고, 상드라는 그런 그에게 삼촌이자 부모, 그리고 어린 시절 강간 당한 후 부부처럼 살아가는, 그야말로 한때는 자신을 이

곳에서 벗어나게 해 줄 그 누군가를 기다리고 구원을 원했으나 모든 것을 체념한 상태로 범죄의 동조자로서 살아가는 스톡홀름증후군의 증상을 보이는 여자였다.

 

 

이 둘의 인생 자체가 이런 극에 달한, 인간으로서 할 수없는 행동을 하는 반면 라파엘은 비록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었어도 가족 간의 정, 특히 막내 윌리엄을 향한 형이자 아버지 대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이 세 사람의 행동은 분명 사회질서를 무너뜨리는 악의 온상이지만 그들이 이런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들에는 독자들로 하여금 동정 내지는 연민을 불러일으키게도 하지만(라파엘의 경우), 파트릭의 경우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감정을 지니게 만든다.

 

환경 때문에 보통의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도 있었을 파트릭이란 인물의 묘사와 그가 저지르는 행동은 무고한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친 것뿐만이 아니라 연관된 사람들, 즉 납치된 소녀의 가족들까지 모두 피해를 입히고 그것을 즐기는 사이코패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되 작가는 정말 이렇게까지 묘사를 할 수밖에 없었나 하는 아찔함과 숨 막힘을 제대로 보여준다.

 

죄를 저지른 인간을 미워하지 말란 말도 있지만 사실 이 책을 읽고 난 후엔 파트릭의 죽음 과정이 너무 쉽게 어어졌다는 아쉬움이 들 정도였으니, 그를 묘사한 글귀는 상상에 맡긴다.

 

실제 자신의 강연에서 살인을 저지른 죄수들과 강도 전과를 가진 죄수들이 서로 어떻게 바라보는지 생생한 증언을 토대로 만들었다는 이 책은 그래서 더욱 실감 있게  와 닿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극에 달하는 극한 지경에까지 다다른 인물들의 심리 묘사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는 신경전, 결국 상드라의 고백처럼 자신의 온전한 인생의 자유를 찾게 해 준 라파엘에게 대한 그녀의 편지는 정말이지 이 세상에 선과 악이 공존하는 미지의 힘마저도 제대로 이행이 되질 않는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한 책이다.

 

짧게 끊어지는 매 장마다의 장면 전환과 과거의 회상이 겹쳐지면서 진행되는 순간의 몰입이 쉽게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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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틸라 왕의 말을 훔친 아이
이반 레필라 지음, 정창 옮김 / 북폴리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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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간혹 성장동화라든가 우화소설들을 접하면서 느끼는 감동은 실제 정통적으로 나열된 작품 속의 내용을 읽는 것 보다 훨씬 그 강도가 세게 다가올 때가 있다.

 

비유적인 언어, 그 안에서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자 함일까를 연신 생각해보게 하는 특성상 독자 나름대로의 해석들이 틀릴 수도 있겠지만  이 소설에서 다루는 내용들은 두 가지 함측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배경은 우물 안-

깊어도 정말 깊은 우물 안속에 두 형제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빠져있다.

 

 "아무래도 불가능해. 하지만 꼭 빠져나가고 말거야." 로 첫 문장이 시작되며, 엄마가 챙겨 준 빵과 말라가는 과일들을 먹고 싶은 유혹으로 몸부림치는 동생에게 형은 냉정하게 나중에 먹을 것이라고, 엄마가 준 것이기 때문이란 말로 동생의 말을 거절한다.

 

하늘의 해와 달과 구름이 비치고 사라지고 비가 내렸다가 쨍쨍한 하늘이 보이는 가운에 우물 안에서 생활하는 그 두 형제의 기나긴 살기 위한 투쟁은 그야말로 처절하게 그려진다.

 

지렁이, 흙 속에 파묻힌 벌레 먹기, 목말라 흙에 고인 물을 먹는 것은 다반사요, 나중엔 정말 해골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변해가는 동생을 보면서도 형은 자신의 체력을 다지기 위해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에겐 한 가지 목표가 있었으니까-

어떻게든 동생만이라도 우물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집념은 동생의 섬망증, 혼란에 어린 이상한 중얼거림, 환영의 존재를 보는 모습으로 변해가는 과정들이 두 형제가 당하는 극한 상황에 몰입을 최대치로 이끈다.

 

누가, 왜, 무슨 이유로 두 형제들을 우물에 빠뜨렸는지에 대한 이유와 설명은 없다.

처음부터 갇힌 상태에서 벌어지는 두 인물들의 초점에 맞추어지면서 진행되는 이 이야기는 끝에 가서야 그 범인이 누구인지, 왜 형이 그토록 그런 행동을 해야만 했는지에 대한 동기부여가 이해가 되지만 이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의 핵심은 두 가지로 읽힐 수도 있다는 책 뒤편의 해설 부분에 가면 보다 정확하게 그 상황 설정이 이해가 된다.

 

철저하게 그냥 잔혹 동화로 읽힐 수도 있고 보다 근원적인 작가의 뜻에 의한 바대로라면 당시 작가의 나라인 스페인에서 벌어졌던 시대상황을 빗대어서 보면 적절한 이야기구나를 알 수 있게 된다.

 

가끔 역사가 ~되었더라면... 하는 가정을 해보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아틸라 왕의 습격사건이다.

그 당시만 해도 게르만족이 최고의 야만족이라고 생각했던 유럽인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동양에서 온 기마민족 출신의 아틸라의 존재는 그야말로 태풍전야의 폭풍은 저리 가라 할 정도일 만큼 우는 아이라도 금방 울음이 그치게 할 정도의 악랄한 보복자이자 침략자의 대명사로 통했던 인물이다.

 

동생의 섬망증 대사 중에 자신이 아틸라 왕의 말의 말굽을 훔쳐 신을 만들려고 했다는 것에서 아마도 이 제목이 지어진 듯한데, 자신들을 이 지경까지 몰아넣은 대상에 대한 보복 내지는 새로운 변화적인 모색을 원했던 저자의 생각이 깃들어진 작품이 아닌가 싶다.

 

열린 결말의 특성상, 다시 돌아온 동생의 선택은 과연 어떤 결말로 이끌었을까에 대한 생각은 독자들이 저마다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다.

 

가벼운 책이지만 결코 가볍게 읽히지 않은 잔혹동화-

모든 감정들이 동반된 책의 내용이 잊혀지질 않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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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에게서 온 편지 : 멘눌라라 퓨처클래식 1
시모네타 아녤로 혼비 지음, 윤병언 옮김 / 자음과모음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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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인생이 끝날 때 그 사람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겐 죽은 자는 어떤 평가를 받을까?

모든 사람들이 한 사람에 대해 같은 느낌을 가질 순 없겠지만 적어도 나쁜 평가만은 받

지 않으면 그 사람의 인생은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

멘눌라라-

일명 아몬드를 줍는 여자란 별칭이란다.

시칠리아 로카콜롬바 마을의 알팔리페 가문에서 하녀이자 그 집안의 재산을 관리하고

있던 멘눌라라가 병으로 죽었다.

 향년 55

그녀는 죽으면서 유언장을 남기는데, 마침 자신의 집에서 마님인 아드리아나와 함께 살

고 있던 차라 아드리아나의 자녀들인 아들 잔니, 첫째 딸 릴라, 둘째 딸 카르멜라와 그

녀의 남편까지 그 소식을 듣고 모여들게 된다.

다름아닌 멘눌라라가 죽기 전까지 자신들에게 일정한 배당금을 주었고 그녀 사후 자신

들에게 남겨질 유산이 있을 것이란 저마다 다른 생각들 때문에 겸사겸사 모이게 된 것-

 하지만 멘눌라라가 남긴 유언장에는 그 어떤 유산분배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단지 자

신의 죽음을 알팔리페 가문의 이름으로 온 동네에 알려줄 벽보에 붙일 내용을 부탁한

것뿐이다.

삼 남매는 각자 분통을 터트리게 되고 우체국까지 가서 그 출처를 알고 돈을 받으려 하

지만 거절을 당한.

 

이후 삼 남매들은 멘눌라라에 대한 욕설과 비난이 난무하는 말들을 쏟게 되고 뜻대로

하질 않자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다는 듯한 제2의 멘눌라라에게 온 편지를 받게 된다.

어린 시절 지독히도 가난한 삶 때문에 병든 엄마와 언니의 수발과 병 간호를 해야만 했

던 멘눌라라는 그 이후 아몬드를 줍는 노동에 가담하게 되고 여차하여 알팔리페 가문의

하녀로 들어감으로써 그 오랜 세월 동안 그 집안의 실질적인 지배인처럼 골동품을 사

모으고 가문의 재정적인 문제까지 해결해 나가는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다른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제 각각이어서 근면하고 성

실하단 얘기를 하는가 하면 피해를 봤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험

담을 나누기 바쁘다.

더군다나 알팔리페 가문 사람들이 벌이는 행동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하나의 일이 터질

때마다 방앗간의 참새처럼 모두 모여서 소문의 내막에 대한 이해와 추측 성들이 난무하

는 가운데, 그녀의 장례식 당일 마피아의 대부인 돈 빈첸초 안코나가 참석을 한 것을 계

기로 그녀의 재산에 대한 이래저래 말들이 다시 많아지게 되는데…..

 

 

한 사람의 인생, 더군다나 배경이 1963 9 23일 월요일부터 10 23일 수요일까지

1달동안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로카콜롬바란 지역에서 멘눌라라란 이름으로 불린 한

여인의 인생이 그녀 인생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 여러 사람들에게 어떻게 흘러가는지

평생 하녀로 살다 간 그녀의 아픈 사랑과 자신이 몸 담고 있던 가문의 후손들을 위해  

 시종 모호한 편지로만 전달하는 형식의 미스터리를 취한 그녀의 냉철함, 그리고 후손

들이 뭔가를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취한 행동들은 자신의 희생은 제쳐두고 현명하

게 처신한 행동들이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잣대를 들이대며 평가를 내리는

얄팍한 사람들의 심리를 꼬집어 보는 책이면서 희생을 함으로써 자신의 마지막 유종의

미를 위해 철저하게 계획된 삶을 실천한 여인이란 인생을 다룬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강한 미스터리는 아니지만 하나의 에피소드가 아닌 연이어서 이어지는 궁금증을 유발

하게 하는 글의 구성과 당시 시칠리아의 삶의 터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계급적인 삶

의 상황들을 같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이자 죽어서도 끝까지 알팔리페 가문에 남길 원

했고 또 그렇게 하고자 노력했던 한 여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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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종
미셸 우엘벡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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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소설이라고 해서 저자도 모르고 제목도 모른 채 읽어 나갔다.

제법 묵직한 소재라나 할까?

아무튼 현재 유럽 권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시적인 문제점또는 드러나지 않는 부분들까지 보여주는 책이란 생각이 든다.

 

읽어 나가면서 누굴까?를 연신 생각하면서 읽게 된 책은 미셸 우엘베크의 작품이 아닐까이었다

알고 보니 제목도 '복종'-

 

처음엔 표지에 눈만 드러내놓은 이미지라 이슬람의 어떤 여성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으나 그 내용은 한층 더 심층적인 주제를 드러낸다.

 

오늘 아침에도 마침, 방송 뉴스에서 프랑스의 관용(톨로랑스)에 대한 정책의 일환으로 이슬람의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되그들의 저소득층 생활의 모습, 파리 외곽 지역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인터뷰 내용이 나오던데, 아마도 이런 현상은 프랑스만이 아닌 전 유럽권의 문제가 아닐 수가 없을 것이다.

 

자신들의 인구 수는 증가세를 보이기는커녕 점차 노령 인구 층으로 대변되는 현상과는 반대로 오히려 이런 불법 이민자들, 취업자들, 그리고 이슬람이란 종교로 대표되는 이들의 인구수 증가에 대한 걱정스런 시선이 따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 책의 연도는 2022년으로 나타난다.

아무래도 아무런 정보도 없이 읽다보니 처음엔 책 내용 중 2017년 대선 이야기가 나와서 오탈자인 줄 알고 착각했었는데 나중에 가서야 연도의 확실한 시기가 나오는 바람에 작가의 의도를 알게 됐다.

 

2022년도는 이슬람력으로 라마단에 해당된다고 한다.

 

 

화자인 나, 프랑수아는  40대를 넘어선현재  조리스카를 위스망스가 썼던 작품을 가지고 논문을 발표, 대학 교수로서 생활한다.

문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저자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드러내듯 시종 냉철하게 유지하는 가운데 프랑스 자체의 국내 문제, 정확히는 정치문제에 대한 , 즉 선거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극우 정권이 정권을 쥐게 되는 우려 속에  좌파와 우파 정당들이 이슬람 정당과 연합하여 새로운 당이 탄생하게 되고 이는 곧 많은 사회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이슬람 정당이 내세우는 대부분의 협정 중 하나인 교육면에서 그 변화는 뚜렷이 감지되는데, 바로 아이들 교육이다.

 

그네들 생각에 아이들을 장악하는 자가 미래를 장악한다. (p94)

 

고로 정교분리 원칙이 깨지고, 공립학교가 이슬람 학교로 바뀌게 되고 길거리에서 만나는 여성들의 옷차림을 짧은 바지차림은 볼 수가 없게 되고 자신 또한 대학에서 해고를 통보 받고(단 개종을 한다면 계속 연임이 가능하단 이야기를 듣는다.), 여성들의 교육은 초등교육을 마친 후에 가사교육, 그리고 결혼을 하게 되며 일부다처제가 수용이 된다는 변화의 물결을 이룬다.

 

또한 정말로 이슬람을 믿는 대통령이 선출됨으로써 주변 국가들, 즉 이슬람을 믿는 아프리카의 대륙을 아우를 수 있는 유럽 통합권내의 가입 실현을 위한 계획이 차례차례 진행된다는, 이른바 유럽인들이 알게 모르게 회피해 온 본격적인 새로운 종교전쟁을 생각하게 하는 미래의 프랑스 사회를 대표로 하는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유럽의 역사 속에서 기독교를 배제할 수 없는, 끝까지 지키기 위해 치러졌던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를 겪은 그들로서는 당연히 이슬람의 침공을 반길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거부할 수만은 없는 인권존중의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에 실제로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으로 대변되는 이러한 대립적인 현상은 유럽인들을 다시 이슬람 공포증으로 몰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극우세력이 대두될 수밖에 없는 현 실정과 맞물려 저자는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이면서도 실제적으로는 진정한 가톨릭을 믿는 국민 수가 줄어드는 현 상황에서 한 때 니캅이나 부르카를 입지 말라는 공고에 대한 이슬람을 믿는 이민자들의 항의로 이어진 복잡한 문제들을 연상 떠올리게 한다.

 

이런 가운데 저자의 이런 시선은 화자인 프랑수아의 개인적인  삶이 어떻게 이런 정책과 맞물려 변화를 해나가는지에 초점을 맞추면서 한편으로는 이슬람을 믿는 대통령이 꿈꾸는 제2의 로마제국을 계획한다는 가상의 시나리오로 독자들의 흥미를 끈다.

 

 

정치가 어떻게 변하든 오로지 결혼 보다는 섹스에 몰두하는 프랑수아의 삶도 이슬람으로 개종이 되면서 자신이 누리게 될 혜택을 받아들이게 되는, 스스로 두 번째 삶의 기회가 왔다는 독백식의 말이 변화의 흐름을 거부만은 할  수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조금은 이런 식으로 몇 년 전에 내 아버지가 혜택을 입었듯, 내게도 새로운 기회가 찾아올 것이었다. 그것은 이전의 삶과는 그다지 상관없는 두 번째 삶의 기회가 되리라.

후회할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을 터였다.p357

 

다음은 전체적인 모습의 새로운 유럽권 가상의 구도실현-

먼저  터키를 유럽 권에 가입 시키고 점차 아프리카 대륙 권을 유럽 존에 가입시킨다는 계획은 설사 이 책이 저자가 그리는 가상의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전혀 헛된 꿈만은 아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출간 당시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에서 동시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고 하는데 그 만큼 유럽 권내에서도 관망하고 바라만 볼 수는 없는 현 시점을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철저한 개인주의로 고립된,  일관되게 내 위주로 생활하는 사람들의 모습(섹스나 결혼이나 부모간의 유대)과 철저하게 가족주의로 생활하는 공동체로서의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의 비교는 제목에서 말하는 복종의 범위는 무엇인지, 민주주의 체제 아래에서 이뤄지는 모든 일들을 반대로 뒤집어서 보게 하는, 지금의 유럽권의 사회적인 구조적인 변화와 의식의 전환이 필요함,  그럼에도 이 책에서 전해주는 여러 가지 정치활동에 관여를 하는 사람들의 생각, 3의 경제변혁을 외치는 사람들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함께 어울리는 사회로 가기 위해선 어떤 취지의 협조와 변화된 사회질서가 필요할지는 이 책을 읽는 사람들 마다 모두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겠지만 우리나라의 다문화 가정에 대한 생각도 함께 곁들여서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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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아이 고 - 내 남편의 아내가 되어줄래요
콜린 오클리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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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간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들은 인지를 못하고 살아간다.

그것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어차피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는 자명한 사실, 특히 나이를 먹어가면서 체감적으로 느끼는 강도는 점점 더 가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철모르고 어느 분이 돌아갔다는 말 한 마디를 무심코 넘길 수 없는 나이가될 때는 더욱 그렇다.

 

특히 아무런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닥친 주위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선 그 어떤 표현조차도 사실은 사치이며 그 순간이 지나가기만을, 그저 시간이 어서 흘러 주기만을 바랄 뿐인 나약한 인간의 한 존재로서 살아가야 함을 느낄 때가 많다.

 

그렇다면  만약 주어진 삶에 대한 시간을 안다면 우리들의 삶에는 큰 변화가 있을까?

여기 그 생각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

 

올 해 나이 27살인 데이지-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먼저 가신 후 엄마와 단 둘이 살다가 멋진 남편 잭을 만나 결혼한 여인이다.

잭은 그야말로 자신의 분야에선 철저하고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실 생활에선 별로 완벽하지 않는, 데이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데가 없는 사람이다.

 

그녀 자신은 심리상담 사가 되기 위해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고 잭은 자신의 전공 분야인 동물학과에 적을 두고 의사와 박사를 진행하고 있다.

머지 않아 5월이면 잭은 박사학위를 수여 받게 될 것이고 그러면 자신들의 시간을 좀 더 충분히 갖게 된다는 희망, 또 사랑스런 아이들을 낳게 될 것이란 계획이 이 순간적인 통보에 무너지고 만다.

 

완치됐다고 믿었던 유방암의 재발이라니~

그것도 온 몸의 주요 장기인 뇌종양, 간, 뼈, 폐까지 펼쳐진 적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살 수만은 없다는 데이지는 가장 중요한 것이 떠오른다.

자신이 먼저 가게 되면 잭 혼자 남게 될 것이고 잭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살펴줄, 진정한 짝을 찾아주겠노라고~

 

그 때부터 온 신경이 그에 쏠리게 된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만남의 창을 두드리고 잭에게 어울릴 만한 여성은 누구인지, 잭과 함께 가는 파티에서 만나는 여성들마다 모두 대조를 하고, 대학 캠퍼스에서 오고 가는 여대생들을 눈여겨 보는 행동까지....

 

죽음을 목전에 둔, 그것도 얼마 남지 않았단 시일까지 통보 받은 병에 대해 생각해 보면 무척 무거운 소재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 소설 속에 나오는 데이지는 그 모든 것들의 절차들을 가볍게 제 자신 나름대로 넘겨버리면서 본격적인 남편 반려자 찾기에 나선다는 이야기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각 인물들의 심리 상태는, 만약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우리들의 문제라면 과연 이렇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흔히 말하는 죽음에 대한 몇 단계를 이야기하지만 그에 앞서서 데이지가 느끼는 감정들, 잭을 두고 자신이 먼저 떠나갈 경우에 대비한,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는 시종 따스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엔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휩쓸려 잭을 먼저 가까이 하지 않았던 자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원망하고 미워하는 솔직한 자신의 감정 앞에서 한없이 나약한 여인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안타까움을 전해준다.

 

내가 죽으면 누가 그 양말을 치워줄까?

내가 죽으면 누가 잭의 어깻죽지 바로 아래를 긁어줄까?

내가 죽고 나면 누가 창문 틈을 막아주고, 바닥 업자를 부르고, 바닥을 쓸고, 도시락을 싸고, 청바지를 찾아주고, 식기세척기를 돌리고, 장을 보러 가고, .....-p136

 

 

서로가 사랑해서 결혼이란 형식에 빗대어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오랜 세월 동안 함께 했기에 서로 눈만 쳐다봐도 무엇을 얘기하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상대를 두고 떠나가야 한다는 죽음이란 실체 앞에서 과연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 줄 수 있을까?를 읽으면서 연신 생각하게 한다.

 

긴 눈물을 흘릴 것으로 예상했던 책이었지만 그다지 어둡지 않다는 분위기로 이끈 저자의 글이 오히려 더욱 슬픔을 가져다 준다.

 

차근차근히 자신의 죽음 뒤에 올 홀로 남겨질 잭을 위해서, 더는 미룰 수도 없었던 박사학위 졸업식 때까지 살아 있어야 했던 데이지란 여인의 사랑 법은 잭에 대한 사랑을 진정으로 느끼면서 오히려 내칠 것이 아니라 지금, 바로 이 순간 정말 사랑하는 사람 곁에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기억을 머리 속에 고이 간직하고자 하는 시간이 필요함을, 눈썹 한 올 한 올, 약간 삐뚤어진 입, 그리고 남들이 보면 어긋나 보이는 치아까지..사랑스럽게 느끼는 순간을 느끼고 곱씹어 보려는 장면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하다.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힌 이런 경우를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마치 내 이웃의 아픈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도록 글은 그저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고 무슨 계획을 세우면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일깨움도 그렇지만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잠시만이라도 따뜻한 미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기억에 남을 일인지, 앞 일을 모르고 살아가기에 이런 작은 일상의 소중함을 간절히 일깨워 주는 따뜻한 소설이 아닌가 싶다.

 

지금 이 순간,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그리운 사람이 있다면, 아니 문득 안부 전화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어서 행동해보라고, 소리 없는 글이 내게로 전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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