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은 사춘기 - 명진 스님의 수행이야기
명진 스님 지음 / 이솔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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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 자신에게 누가 이런 질문을 한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스승은 무엇인가"- 

글쎄 언뜻 여러가지 생각이 많이 들어서 뭐를 우선 순위로 꼽아야할지 막막함을 느낀다.  

이 책을 쓴 봉은사 주지스님인  명진스님은 "죽음" 이라고 말씀하신다. 

과연 죽음이란 무엇인가?  

생.노.병.사의 근본적인 탐구를 해 가며 끊임없이 물음에 물음에 꼬리를 물고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해답을 얻어가는 종교인 불교란 것에 비춰볼 때 당연시 되는 중요함을 차지한다.  

스님의 자신 스스로가 겪어온 인생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풀어낸다.  

6살에 명을 버린 엄마의 장지에서 오면서 느꼈던 삶에 대한 물음, 끊임없는 방황과 몸 싸움을 하던 학창시절, 대학을 보내준단 사촌형님의 말에 무주 구천동 관음사에 가서 대입공부를 하던 중 같은 방을 쓰게된 지나가던 스님으로부터 내가 나를 알아야된다는 말을 듣고서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하지만 고등학교만이라도 졸업하고 출가하란 아버지의 말씀에 이를 따르게 되고 곧이어서 월남전 파병으로 군 복무를 마친다.  

단 하나의 혈육이던 동생의 군 입대를 해군 군악대로 추천하게 되고 면회를 가야겠단 생각으로 있던 차에 사고로 인해 동생이 먼저 생을 지게되는 일을 겪는다.  

견딜 수 없는 슬픔을 뒤로 한 채 출가를 하게되고 성철스님으로부터 계를 받기 닷새전에 여기에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란 생각이 들면서  해인사를 뒤로 하고 나오게 된다. 

이후 탄성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각 도처에 있는 절에 선방을 다니면서 언뜻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하던 시기를 사춘기처럼 겪었던 때와 같다고 생각하고 나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에 정진하게 된다. 

 춘천에 있던 절에 몸담고 있던 때시절  광주 민주항쟁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면서 생사문제와 사회 불의의 관계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감옥에 가면 독방이 생기고 공부하기에 좋을 것이란 어떤 수배자에 말에 전국규모의 규탄대회에 앞장섬으로써 구속이 된다.   

구속이 풀린뒤로는 개운사 주지를 시작으로 봉은사 주지스님이 됨으로써 그간 자신이 생각했던 불교와 신자간의 관계를 더욱 곤고히 하고 좀 더 발전될 수 있는 계획을 세워나간다.  

1000일 기도 행진과 불전함의 돈을 신도들에게 공개하고 맡김으로써 투명성 있는 절의 혁신적인 개혁을 시도한 스님의 행로는 오늘도 여전히 사춘기적 방황의 길로 진행중이다.  

모든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있는 대상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복종을 한다.  

세계의 주요종교는 그런면에서 우리의 연약한 맘에 강한 심성을 심어주고 이를 토대로 어려운 역경을 헤쳐나가는 데에 얼마간의 위안과 안정을 준다.  

이 책을 읽고 난 소감은 뭐랄까? 

한마디로 가슴이 찡한 뭉클한 사연과 종교에 의지해 끊임없이 나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수행의 끈을 놓지않고 있는 종교인의 모습이 보인다.  

삶의 회의를 느꼈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어렸던 6살적의 충격은 동생의 죽음이란 것과 맞물리면서 더욱 곤고히해진 결과를 낳았지만 종교인이기에 전에 세상에 의지 할데라곤 서로의 한 몸뿐이었던 동생의 죽음을 다룬 글에선 주체할 수 없는 죽음의 고통과 이별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49재를 홀로 행하고 돌아오는 그 당시의 감정, 한 때나마 자신을 좋아했던 친구의 여동생을 마다했던 젊은 날의 청춘의 시절은 누구나 겪었을 삶의 일부를 보는 것 같기에 더욱 가까움을 느끼게 해 준다.  

행자시절에 보인 입바른 소리와 거칠 것없이 높은 스승 앞에서 말하는 행동은 천상 종교인이란 생각을 하게 한다. (정말이지 별종이란 생각이 들 만큼 무서운 것 없고 거칠 것 없는 행보를 보이신다. ) 

불교에서 이뤄지고 있는 교리를 배우는 과정과 하안거, 동안거를 통한 스님들의 참선과 화두에 대한 공부에 대한 과정은 TV에서 보던 것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보는 즐거움과 경외심을 드러내 준다. 

또한  주지로서 불교에 대한 신도들의 믿음을 더욱 다지기 위한 행보의 실천, 뭣보다 타종교가 현 시대에 맞는 행보을 보인단 점에 대해서 불교인으로서 그간 불교가 지닌 소극적인 태도에서 좀 더 대중들과 사회가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순 없는지에 대한 생각을 내포한 점은 같은 종교인들이라면 깊이있는 생각을 하게 해 준단 느낌이 든다.   

***** 세상에 대한 문제, 존재에 대한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면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간들 그게  무슨 영예가 될 것이며 극락에 간들 무엇이 그리 즐겁겠는가 ***** 

***** 우리는 죽음이 나의 일이 아니라고 , 먼 훗날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루를 산다는          것은 하루만큼씩 죽음에 가까이 가는 것임을 알아야한다. ***** 

***** 죽음을 스승으로 삼아 삶과 죽음의 문제를 물어야한다.  

'삶은 무상함- 

영원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변하는 것은 내 것이 아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무상한 것에 집착하면서 괴롭게 살아야하는가' 라고 물어들어가야 한다.  

이러한 진실한 물음이 바로 삶과 죽음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다.  *****

***** 종교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통하는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옳다고 생각한는 것이 과연 옳은지 끊임없이 회의하고 성찰하는 것이다. ***** 

***** 마음에서 힘을 빼라! 

        이는 마음을 비우라는 뜻이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모든 고정관념, 오랫동안 익혀온 지식과 정보, 깃들여져 있는 습관을   모두 버리라는 뜻)

주지로서 그간 신자들에게 쉬운 불법을 행하는 과정에서 수행이란 즐겁게 해야 힘도 덜 들것이란 생각에 당신 스스로 말하고 싶지않았던 개인적인 일을 말함으로써 더욱 가깝게 느낄수 있도록 한 법문을 묶어서 내 놓은 것이기에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친근감 있는 책이란 생각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불교의 용어 자체가 생소한 것이 많은 까닭에 책 뒤편에 주석을 달았지만 차라리 책 본문 아래에 위치를 두었거나 한 단어의 뒤에 괄호를 치고 해설을 달았다면 읽어나가는데에 많은 수고가 덜해졌을 거라 생각이 든다.  

 

***** 깨질 듯 차가운 겨울  

         하늘에 솔개 한 마리가 날고 있다. 

         먹이는 찾았는가? 

         허공을 비행하느 날개짓이 걸림 없다.  

         도터재를 넘어온 북풍 찬바람이 삼십 리를 쏟아져 내려온다. 

         천 년세월의 이끼 낀 탑전에 멈추어 

         부지런한 스님들 비짓을 피해 뒹굴던 겨울 

         낙엽 몇 잎을 휘감는다. 

         찬 기운이 정수리를 찌른다.  

         다시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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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2 - a True Story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2
페르디난 트 폰쉬라크 지음, 김희상 옮김 / 갤리온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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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살다보면 정말 각본에 의해서 쓰여졌다해도 이렇게까지... 라는 말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는 인생의 다양한 경우를 두고 변호사로서 그간 자신이 담당했거나 있었던 일들을 전작인 1편에 이어서 2편에 다시 실었다.  

1편과 같이 정말 이런 경우라면 어디다 하소연을 해야하며, 아니, 하소연이 아닌 최상의 심판을 내려주는 법의 호소에 맞추어서 나온 공판의 결과에 과연 내 인생을 맡기고 수긍을 할 수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다시 제기하게 만든다.  

영재였던 한 소녀가 마을의 축제 아르바이트로 맥주 서빙을 하던 중 분장을 하고 술에 취한 채 악기를 다루던  동네 아저씨들의 여러명의 손에 비참히도 성폭행을 당하고 무대 뒤편에 떨어진 것을 양심의 가책을 느낀 한 일원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서 구조된다.  

하지만 생명을 구하기위한 응급조치로  당시의 혈흔이나 정액체취, 옷등은 다른 종이 커피컵과 함께 섞여버리고 소녀는 분장한 그들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 채 법원은 아무런 판결을 내리지 못한다.  저자 자신이 처음 맡았던 사건이었던 만큼 불만과 회의를 가져봤자 아무 소용이 없단 현실이 기이하게 느껴지던 당시의 심정을 말한다.  

다만 쓸쓸히 소녀의 아버지의 하염없는 모습만 눈에 들어올 뿐- 

- 뜻하지 않은  노인의 행동에 자신을 보호하다  죽이게 된 두 남녀는 오랜시간이 흐른 뒤에 정상으리 부부로서 살아가지만  당시의 담배꽁초에 의해서 DNA가 결정적인 증거로 제시되 범행을 자백하고 자살하게 된 이야기 

- 외로이 떨어진 기숙사에서 동떨어진 외톨이로 생활한 한 소년이 같은 동급의 소년들의 그릇된 일루미나티의 형식을 고스란히 받다 끝내는 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나사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게되는 이야기,  

- 교사였던 부인에게 자신만 사랑해 줄 것을 기대한 8살 어린 제자의 말 한마디에 남편은 아동 성추행혐으로 기소되 3년형의 복역을 마치고 마침내 소녀로부터 자백을 받게되지만 이미 부인은 떠나고 국가로부터 받은 보상금은 달랑  4600만원.- 

- 금실 좋은 부부가 어느 날 흔히 말하는 스와핑에 중독되 광고를 내면서까지 그 일을 하던 중 남편의 동창과 관계를 맺게되는 현장을 지켜보아야만 했던 남편 

그는 결국 동창생을 죽이려다 행동을 멈추게 되고 변호사인 부인의 적극적인 법의 테두리안에서 교묘히 풀려나게 되는 이야기(일명 황금다리라 불리는 법) 

- 공허에 찬 생활을 견디다 못한 부인의 도벽이 끝내 가족들은 모른 채 지나가버린 갈망- 

하지만 뭣보다 극적인 인간적인 이야기는 바로 14살의 소녀가 이웃 아저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임신의 징후조차도 임신이란 걸 모르고 지나치다 변기에 아기를 쏟아버린 이야기는 먼 훗날 법의 심판으로  그 남자는 형을 받게되지만 그 어린 소녀가 자신의 가정을 꾸려나가는 중에도 문득 지을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려 살아가는 이야기는 인간 본연의 감추고 싶은 욕망에 대한 일환으로 비춰진다.  

또한 정말 사랑해서 결혼한 남편으로부터 변태적인 폭행과 원하지 않는 성폭행에 시달린 알렉산드라의 이야기는 법이라 할지라도 어떤 면에서 법의 구형을 내리고 심판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실례를 보여준다.  

자신의 생활을 알게 된 이웃의 남자를 사랑하게되면서 시시각각 조여오는 남편의 폭력과 끝내 자신들의 분신인 딸마저도 같은 방법으로 취할 것이란 남편의 말에 잠들어 있는 남편을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알렉산드라는 퇴직을 앞둔 노 판사로 부터 이런 얘기를 듣는다. 

"나는 피고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고 싶지 않소. 

물론 살인을 했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요. 그러나 반드시 사건을 달리 볼 가능성이 있을 겁니다. "

이는 어디까지나 예외적이고 일회적인 판결이라고 못을 박은 뒤 검사에게 다시 항소하지 말 것을 종용하고 설득한 장면은 진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그녀의 변호를 맡았던 저자 자신은 뒤늦게야 지문감식 전문가의 파일을 검색하는 과정에서 내리친 무기로 사용된 석상의 무게는 알렉산드라보다 약간 무겁고 지문이 없었단 점, 그녀의 옷에도 피가 묻지 않았단 점을 알고서도 노련한 재판장은 넘어갔단 사실에서 그 만의 법의 포용성을 우리에게 일러준다.  

총 15편의 이야기 속엔 위의 이야기외에 정말 허리우드 영화의 한 편을 본다는 느낌의 웃음이 나오는 이야기도 전해지며 위의 이야기처럼 가슴 찡한 사연과 억울함 속에 어디에다 말 할 수도 없는 기막힌 갖가지 사연들이 등장한다.   

법을 상징하는 정의의 여신상은  눈을 가리고 한편의 손엔 칼과  다른 편의 손엔 저울을 지니고 있다.  

이는 곧 공평한 심판을 내림으로써 누구나 법에 대한 숭고한 판결에 복종을 한다는 의미를 내포함과 동시에 인간으로서 인간을 심판한단 것에 대한 경계를 나타냄이리라. 

하지만 인간사의 일이 뜻처럼 되는 것은 아니어서 위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본다면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보상금을 받은 차원의 액수나 (3년간의 복역한  액수에 비해  그 자신이 쌓아놓은 명성. 지위. 재산. 부인이 떠나간 점 )  범인이 누구라고 밝히지 못한채 평생을 자식을 그리며 살아가야하는 아버지의 심정엔 법의 딜레마를 느끼게 해 준다.  

 또한 자신들 안에 내재된 성적인 욕망출구로 인한 살인 미수사건을 변호사란 직업을 이용해 법적인 망을 이용해서 전혀다른 색깔의 형태로 형 집행을 살게한다는 점에서도 180도 달라지는 인생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씁씁함을 지울 수가 없게 만든다.   

간단하게 서술된 식으로 이어지는 15편의 각양각색의 이런 이야기는 비단 이 곳 사람들만의 이야기만이 아닌 바로 우리네가 살아가는 생활속에 일어나는 연속성의 삶이란 것을 의식할 때 과연 법은 만민에게 모두 공평한 것인가를 다시금 묻게 만든다.  

*****   재판에는 두 가지 차원이 얽혀있다. 

          검찰이 제시하는 증거가 유죄여부를 판단 하는데 충분한가 하는 문제가 첫 번째다. 그것은 

          도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유죄여부를 판단하면서 목사처럼 접근 할 수는 없다.  피의자가 범인이라는게 확정되었다  

          면 형량을 얼마로 보아야 하는가가 두 번째 문제다. 

          범인의 범죄가 얼마나 위중한 것인지 그에 알맞는 형량운 어느 정도인지 판단하는 일에는 

          언제나 도덕이 끼어들게 머련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인생에서 어떤 경험을 했으며,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펴야 하는 것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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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야생화 여행 내 마음의 여행 시리즈 1
이유미 글, 송기엽 사진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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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친 자연적인 환경이 인기다.

인위적인 것이 아닌 천연의 혜택인 햇살과 바람, 공기, 수분이 영향을 받고 자라는 우리나라의 야생화에 대한 책을 접했다. 

 갇힌 조그마한 공간인 아파트 실내 안에서 그나마 정화의 일조를 한다는 여러 화분이나 나무를 그것도 반 강제적으로 잘라서 좁은 공간인 화분에 심어 놓고 관상용으로 바라보는 기분이 아닌 책 안에서 실로 오랜만에 자연의 향기를  받는다. 

 
각 계절별로 속하는 야생화의 실로 고귀한 모습의 포착은 오랜만에 맛보는 무소유 개념의 맛을 느끼게 하기에 충족감을 주고 있으며 이렇게 우리나라 온 산하에도 이런 모습의 꽃들이 있단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인간도 언젠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기에 한 풀기라도 소중히 여겨야 한단 느낌도 들게하고 무심코 아파트 화단이나 걷기에 좋은 개천가에 이름없이 제 계절에 나타나 소리없이 자릴 지키다 서서히 자취를 감추는 그네들의 책임감 있는 모습이 사뭇 경건하기까지 하다. 

 세심한 카메라의 포착과 더불어서 조예가 깊은 글의 맛은 진지하면서도 가볍고, 무심코 넘기지 않게 배려한 사진의 배치구도가 정말 좋단 생각이 들게 한다. 

 책을 읽다 보면 출판사별로 어떤 경향을 지니고 책을 출판하고 있는지를 알 수있는 색깔별의 모습을 지닌다.

그런면에서 이번 진선 출판사가 내놓은 야생화의 여행은 실제로 계절별로 같이 보고 듣고 느끼는 여행을 함에 있어서 몸소 체험했단 느낌이 들 정도로 감흥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앞으로도 도심속에 파묻혀 쉽게 접할 수 없는 이런 책자가 많이 나왔음 하는 바램이다. 

실로 오랜만에 다리 쭉 펴고 망중한을 즐기기에 모라람이 없었던 독서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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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계단
루이스 베이어드 지음, 이성은 옮김 / 비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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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818년 루이 18세 재위23년 째인 해는 이미 왕정 복고가 이뤄져서 왕이 다시 다스리고 있던 시대_ 

의대에서 강의하고 있던 엑토르 카르팡티에는 어느 날 전설적인 명탐정인 비도크라고 밝힌 사람으로부터 크레티엥 르블랑이란 사람을 알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받는다. 

이미 죽은 그 사람의 사체로부터 자신의 주소가 적혀있는 것을 본 카르팡티에는 비도크와 함께 사건을 해결해 나가기위해 자신도 모르게 사건에 빨려들어간다.  

알지도 못하는 프레발 남작부인으로부터 죽은 르블랑이 자신에게 주고 간 아기젖물리개를 보여줌으로써 그 물건의 주인이 루이 샤를, 즉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의 둘째 아들임을 알게된다.  

이에 확실한 신분을 밝히기위해 르블랑은 자신외에 이 사실을 증명해 줄 사람인 카르팡티에를 찾아가다가 변을 당했음을 알게 된다.  

즉, 르블랑은 자신이 찾고자 했던 인물인 카르팡티에가 현재의 카르팡티에가 아닌 그의 아버지인 같은 이름을 쓰고 있던 카르팡티에를 찾고 있었던 것. 

어릴 적 안경을 고치던 일만 하던것으로 알고 있던 이미 고인이 된 아버지 카르팡티에는 이후 같이 살고 있던 시간의 어른이라 불리는 하숙하는 사람으로부터 아버지가 실은 루이샤를이 혁명이후 죽음의 감옥이라 불렸던 탕플감옥에 수감되 있던 그의 주치였으며 보조로 일했던 사람이 르블랑이었음을 알게된다.  

이후 비도크의 조사로 루이샤를이라고  확신되는 사람이 살고 있던 생드니로 가지만 그 곳에서 괴한에 의해 그 사람은 죽게 되고 오히려 같이 살고 있었던 다른 사람을 루이샤를로 의심하게 되면서 데려오게 된다.  

정신의 이상적인 혼미성을 보이면서도 어린애 같은 여린 심성을 드러낸 샤를이란 이름을 가진 그 사람과 같이 생활하면서 다각도로 그의 존재에 대한 확인을 하기에 애를 쓴다.  

이 와중에 루이 16세의 동생이자 현 루이 18세의 동생인 아르투아 백작의 왕의 세습욕심이 드러나면서 샤를을 해치려는 음모로 인해서 위험에 빠지게 된다.  

튈르리 정원에서 부르봉 왕가의 리본을 파낸 행동과 누이와의 대화를 통해서 그들만이 알 수 있었던 회상을 통해서 자신들이 찾고자 했던  샤를임을 확신하게 된 두 사람은 극적으로 처형장에서 비도크의 변장술로  목숨을 건지게 된다.   

연이은 위협속에 비도크의 수사로 인해서 프레발 남작부인으로부터 사건의 전말을 알아낸 두 사람은 샤를의 목숨을 조여오는 그림자와 본인 자신이 스스로 왕이 되기를 거부하고 새로운 삶을 살길 원한단 말에 남작부인과 함께 미국행으로 가는 배를 마련해 이별을 고하게 된다.  

루이 17세라 불린 샤를이란 인물에 대해선 역사에서 쓰여진 바에 의하면 10살이란 어린나이에 삶을 마감한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그 후 자신이 샤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여럿 나타나면서 이후 사실은 죽지 않았고 다른 곳에서 삶을 살았다는 설이 오르내리고있는 이 점을 작가는 역사적인 사실과 자신의 상상에 살을 붙여 멋진 역사소설을 만들었다.  

사치적인 삶에 찌들어 살고 있던 왕정이란 체제를 무너뜨리고 공화정 체제로 가다 다시금 왕정복고의 시대로 접어든 시점에서 자신이 겪었던 사건의 일말을 회고형식으로 돌아보게 만드는 기법은 중간에 그의 아버지인 카르팡티에가 자신이 적어내려간 샤를과의 만남과 트로이의 목마란 기법으로 샤를을 감옥에서 빼 내오게 한 행동을 서술한 부분과 겹치게 하면서 그 당시의 분위기에 흠뻑 젖어들게 한다.  

철가면이란 책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이 소설은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아이를 어른들의 이기적인 계산과 자신의 체제를 유지하려는 악습적인 행보로 서서히 몰락시켜나가는 과정이 못내 아픔을 전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신출귀몰한 변장술의 달인 괴도루팡적인 모습과 치밀한 주위사람들을 이용한 수사적인 기법의 홈즈를 연상케하는 인물인 비도크의 모습은 이 소설에서 핵심적으로 기둥을 이끌어 나가는 주인공이지만 그 과정을 헤쳐나가는 데에 보이는 서술적인 면에선 약간의 허술함도 보여진 단점이 아쉬움을 준다.   

미국으로 간 샤를이 정말로 아버지가 바꿔치기한 인물인지, 아니면 양심의 가책에 따른 계획의 변경으로 인해 다른 아이를 다시 되나오게 한 것인지, 진정 감옥에 있었던 아이가 바꿔치기해서 나왔단 한들 지금의 샤를이란 이 사람이 프랑스 왕가의 샤를인지, 아니면 프레발 남작부인의 주도면밀한  계획하에 이뤄진 전혀 다른 인물인 샤를을 왕자로 내세운 것인지, 그렇다면  누이와 함께 생활했던 일련의 일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독자의 몫으로 남겨 놓는다.  

역사적인 사실과 그 안에서 이뤄지고 있었던 권력과 야망, 그 안에서도 죽지않고 살아남으려는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의 표현이 시종 궁금증을 품게 만들고  다시금 실제 그 사건을 뒤져보고 싶단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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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1 - 미천왕, 도망자 을불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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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의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가장 가깝고 쉽게 기억이 되는 시대가 바로 조선시대가 아닐까한다.  

흔히 말하는 조선왕조 500년이란 말이 그냥 흘러들어도 잊어버리지가 않는것은 근대에 들어와서 가장 가깝고 오늘날의 국가의 기틀이 되는 최근의 왕조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TV에서도 역사소설 쟝르로서 가장 빈번이 나오고 있는 왕조 탓도 있고....

그런 면에서 고구려라고 하는 왕조체계 자체는 우리의 역사 근간을 이룬 한 뼈대의 한 부분으로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은 되어 있지만 쉽게 떠오를 정도의 확고한 역사관은 조선보단 못하단 생각이 든다.  

 따라서  이번 김진명 소설가의 오랜 자료조사 끝에 탄생한 이 소설은 고구려의 강대국으로 가기위해 발판을 마련한 미천왕의 일대기를 다루었단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큰 아버지였던 봉상왕의 위협속에 자신을 죽이고 살았던 아버지의 모습속에서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을불의 신분위치는  왕권을 지키기위해서 혈이 낭자했던 궁정의 모습이 조선시대까지 이어져내려오게 됨을 알려주는 서사격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이런 가운데 창조리란 국상은 자신이 모시던 사람을 죽이고 주위의 충신들마저 죽여야만 하는 대의의 일에 앞장서는 인물로 그려진다.  

봉상왕을 피해서 목숨을 보전코자 민간인에 스며들어 소금장수까지 해야했던 을불은 낙랑까지 가서 그 곳에서 알게된 양운거로부터 무술을 배우면서 그의 딸 소청과 가까워지게 되고 소청을 맘에 둔 방정균의 질투로 인해서 그 곳을 나오게 된다.  

이어서 숙신의 아달휼과 고구려 출신의 상인 주태명과 그의 딸 주아영으로 부터 도움을 받게 되면서 철의 중요성과 고구려를 다시 일으키고자 하는 불의를 태우면서 다시 고구려로 돌아가게된다.  

자신과 형제처럼 우정을 나누게 된 여노와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의 도움으로 봉상왕을 물리치는 장면, 선비족의 모용외와 아영간의 줄다리기, 천하의 지략가로 이름을 날리면서 장차 진나라의 왕 자리를 노리는 최비와 그 주의사람들의 활약상은 잠시도 눈을 돌릴 수 없게 만드는 긴박감을 준다.  

대의를 위해서 소의를 저버린 과정에서 양운거를 이용해 소청을 죽여야만 했던 여장부 주아영의 지략과 이를 모르고 스스로 백제의 왕을 죽이고 명을 다한 양운거의 모습은 안타까움도 느끼게 해 준다.  

마지막 숙원이던 낙랑과의 대 혈전은 총 3권으로 이뤄진  미천왕 부분을 다룬 부분에서 단연 압권을 이룬다.  

병법에 능한 최비를 대상으로 창조리가 말하는 전술과 전략에 자신의 뜻을 세워서 전혀 뜻밖의 전장지를 택한 을불의 병법은 놀라움과 흥미, 각 장수끼리 싸우는 병법작전은 마치 그 시대로 돌아가서 한 명의 무명인 병사로서의 활약을 하고 있단 생각을 하게 만든다.  

평생의 숙원이었던 낙랑을 차지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바친 장수들과 을불의 합심작전은 10여 년의 세월을 둔 치밀한 계획이었으며, 이는 낙랑에서 소외되어 살아온 고구려 유민들은 물론이요, 기존의 숙신마저 자신의 아래에 둠으로써 뜻을 이뤄나간 덕왕으로서의 을불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시대은 영웅을 만들고 또 영웅는 시대를 잘 만나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바, 이 고구려란 나라 이름하에 이뤄진 대 역사적인 사건들은 또 다른 우리나라의 모습을 접할 수 있었단 점에서 설렘을 줬다.  

거대제국 중국에 맞서고 그 주의의 선비족, 숙신이란 오랑캐와 아래의 신라, 백제와 힘을 견제해야만 했던 고구려가 위치한 배경으로만도 이 책은 미천왕이란 한 인물이 낙랑을 차지함으로써 자신의 오랜 숙원이자 고구려가 북으로, 남으로 더 넓은 영토를 다질수 있게 기초를 마련했단 점에서 탁월한 지략가요, 덕을 갖춘 왕으로서의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해 보여준다.  

총 고구려에 대한 역사적 소설을 집필하기 위한 작가의 노고가 곳곳에 스며들었단 점에서 우리에게 역사란 무엇이며, 지금까지 대한민국이란 나라를 이루고 있는 근간의 저변에는 오랜 세월의 이런 과정이 있었단 숙연한 맘을 들게 한다.  

작가는 서두 말미에 중국이 행하는 과정도 유심히 배울점도 있지만 이에 앞서서 우리의 역사를 알아야하지 않겠냐는 물음에 전적으로 동감을 한다.  

내 나라의 역사를 바로 알고서 주위의 정세를 바로 볼 줄 아는 시야의 눈을 높일 때 비로소 우리의 역사는 더욱 찬란한 빛을 내기 위한 무지개 발판을 이루는 뿌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크게 든 소설이다.  

책장을 덮고서도 다음 고구려의 역사를 기다리게 되는 이 소설은  앞으로 역사란 실체를 소설로써 승화해 고구려란 나라를 새로운 조명을 비추어서 보게 한 작가의  글을 기대하게 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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