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번의 시선 1 모중석 스릴러 클럽 2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검사보 스콧 덩컨은 생면부지의 죄수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그로부터 자신이 죽인 사람들 중에 스콧의 누이인 , 제리를 죽였단 말을 듣게된다.

 

3개월 후-

화가인 그레이스는 가족사진현상을 맡긴 사진가게에 사진을 찾으러 가게되고 사진들 중에서 처음 본, 남녀가 섞인 오래 된 사진이 끼여있음을 발견한다.

그 사진 속엔 젊은 시절의 남편얼굴로 보이는 잭의 모습과 함께 그를 쳐다보는 , 한 여인이 있었으며, 그 여인의 머리 위로 금이 그어진 상태의 표시가 있음을 알게된다.

 

퇴근 후 도착한 잭은 그 사진을 보게되고 이후 집을 나서면서 연락이 끊기게되고, 그레이스는 남편을 찾기위해 그의 누이를 찾아가는 일부터, 자신이 보스턴의 대학살이라 불린 지미 엑스가 소속된 밴드의 공연에서 누군가 총을 난사함으로써 군중들이 광란의 아수라장이로 변한 당시의 피해자로 다리를 절면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뒤로하고 그 당시의 현장에서 아들이 죽은 슬픔을 갖고 있던 마피아계의 인물인 베스파의 도움까지 받게되는 상황으로 번진다.

 

여기에 남편을 끌고 간 북한출신의 에릭 우가 자신까지 납치하면서 그간 그녀와 스콧의 만남으로 이어진 사건의 본 실체를 파악해나가는 과정이 긴장감을 조이면서 시종 독자들의 눈을 현혹시킨다.

 

 이 작가의 큰 특징이라고 한다면 결코 영웅을 내세우지 않는단 점이다.

 

일개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레이스만 해도 그렇다.

자신의 아픈 트라우마를 지닌 채 새로운 인생을 사는 그녀에게 잭이란 사람과의 사랑과 결혼의 생활은 보통의 가족들이 누리고 사는 그런 삶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장의 낯선 사진 때문에 모든일이 뒤죽박죽이되고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과거의 일이 사건의 본 실체가 드러나면서 다시 한 번 ,아니지, 두 번씩이나 범인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던 인물의 실체와 스콧이 말한 마지막 에피소드의 반전은 다시 한 번 곰곰히 생각을 해 보게 만든다.

 

젊은 시절, 푹 빠진 밴드의 공연이 있던 날에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스콧이 말한대로, 아니면 자신의 기억 속엔 알지못했던 사건의 실체를 보여주고있는 사진이 증명해주는 그것이 말한대로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두 권으로 이뤄진 책이지만 눈동자가 흐트럼이 없이 몰아치는 그 만의 속도 높은 가독성은  말 할것도 없거니와, 스릴이 주는 궁금증을 넘어선 독자들로 하여금 같이 사건에 동참하게 만드는 묘한 맛이 일품인 작품이다.

 

뭐든 첫 작품이 가장 끌리는 법일까?

 

이 작가의 작품은 결백을 먼저 읽었던 탓일지도 모르겠으나, 기존의 소설의 기법에서 크게 벗어난 점은 없지만 결백만큼은 못하단 느낌이 들었다.

 

한 등장인물의 설명이 너무 길고, 촘촘히 엮여져나가는 글의 마무리 단계에서 여지없이 독자의 상상을 허물다는 점에선 탁월하다 할 수있겠으나, 억지로 꿰어맞추어져간단 느낌이 들었으니까.

 

 

복수를 꿈꾸며 가석방이 된 사람이나, 유일한 동양인으로 나오는 에릭 우란 존재에 대해서도, 글쎄 미국독자들이 이 책을 읽었다면 아마도 북한에 대한 다른 상상을 할 수도 있었지 않을까 싶다.

 

용서와 후회, 고통과 좌절, 그리고 복수가 선사하는 보통 사람들의 한 단면을 드러낸 사건치고는 참으로 허망하단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 고통조차도 이겨내고 그레이스처럼 또 다시 일상의 삶에 스며들 듯 살아가는 것이 아닐런지...

 

스릴의 맛을 아는 독자라면 이 작가의 작품에 대해선 두 말이 없을 듯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뺄셈 - 버리면 행복해지는 사소한 생각들
무무 지음, 오수현 옮김 / 예담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현대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경쟁의 시대에 돌입한다.

 그것이 타의든, 자의든 간에 문명과 문화, 각종 IT가 발달이 되면서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면 태어나면서 부터 죽을 때까지, 어쩌면 저 세상에서까지도 계급층이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급박하게 살아간다.

 

 에세이스트인 무무란 저자가 지은 책을 처음 접해보았다.

기존에 나온 책이 좋은 호평속에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던데, 이 책을 접하고나서 그것이 십분 이해가 된다.

 

 처음 제목을 접하고선 어려운 수학문제를 좀 더 쉽게 적응할 수있는 방법의 노하우를 담은 내용인 줄 알았던 나에겐 이 책은 정말 여러가지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 준 책이다.

 

나이대에 따라서 느끼는 바가 다르겠지만, 글 속엔 생활 속에서 나오는 정말 내 이야기를 다룬것 같은 착각이 들정도로 소소한 일들을 가지고 그 안에서 우리가 미처 놓치고 바라보지 못했던 철학을 들려준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의 나의 기대치가 커짐에 따라 상대방을 바라보는 시각, 사랑의 여러가지 형태의 모습, 인생에서의 계좌잔액을 다룬 이야기들은 가슴이 뭉클하게 다가오게 만든다.

 

과거에 이런 일을 했더라면 좀 더 나았을텐데의 후회보단 현재의 즐거움을 느끼라는 말, 정말 앞만 보고 과거에 집착했던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러한 일들 때문에 후회를 하면서 지냈을 일들을 겪은 보통의 사람들 맘 속을 무무란 작가는 어쩌면 이리도 세심한 통찰속에서 글을 뽑아냈는지 놀랍기만 하다.

 

수학에서의 덧셈도 중요하고 인생에 있어서 나의 포트폴리오를 갖추어나가는 데 있어서 덧셈도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작가는 덧셈만 있다면 미처 그것을 채우다 못해 넘쳐서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삶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덧하는 삶이 있다면 거기에서 집착을 벗어나 포기를 할 줄 알아야함을, 그래서 오직 그 곳에 모든 것을 바친다면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있고 또 그러기위해선 인생에서 과감히 버릴 것은 버릴 수있는 뺄셈의 미학을 갖추어야 함을 알려주고 있다.

 

스님이 가르쳐준 두 개의 호수의 이야기가 있다.

갈릴리 호수와 사해 호수는 발원지는 같아도 다르게 제각각 다른 호수가 된 것은 갈릴리 호수는 물을 받아들여서 다른 곳으로 흘려보낸 반면, 사해는 받아들이기만 할 뿐 내보내지 않았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네 인생에도 버릴 줄 알아야 소중한 것을 얻게된다는 교훈적인 말은 경쟁에서 이겨야하고, 밀고들어오는 후배들에게도 선배로서의 자릴 지키려는 현대사람들의 생활에 어느 정도의 버리고 비워두기의 철학이 필요함을 각 짧은 소개의 글을 통해서 들려주는 이 책은 그간 내가 살아오면서 같은 경우도 있어 비교해 볼 수도있고, 깊은 생각을 더하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뺄셈 철학이다. 뺄셈 철학이란 소중한 것들을 잃기 전에, 필요치 않은 것들을 자발적으로 버리는 방식이다. 우리는 필요 없는 것들을 자신의 의지로 비움으로써 소중한 것들을 잃지 않을 수 있다. 뺄셈 철학은 세계관이다. 복잡한 것을 단순화해서 바라보며, 많아서 넘치는 것들 틈에서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찾아낸다. 그래서 뺄셈 철학은 우리 삶의 무거운 짐을 덜어내는 출발점이다.
- p60, 영혼을 위한 뺄셈 철학

 

저자가 말하고 싶은 뜻이 위의 구절로 통할 수 있는 이 책은 나와 나를 둘러싼 환경과 내 주위를 다시 돌아봄으로써 다시금 나의 맘 구석에 한 곳은 뺄셈의 공간으로 남겨두되, 다시 가득참으로 충만한 공간을 만들어둬야겠단 생각을 해 본다.

 

특히 챕터 1의 "마음속에 차오른 슬픔을 빼내고", 와 마지막 챕터의 "릴리 이야기"는 눈물이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두고두고 읽어도 소중함이 느껴지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라하의 묘지 1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830년 이탈리아 피에몬테에서 태어난 시모네 시모니니는 "나는 증오한다. 고로 존재한다"란 삶에 전철된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이다.

 

 그가 관심을 갖는 대상은 오로지 음식, 그가 다니던 레스토랑의 음식이며 조리법의 나열을 하는 그가 얼만큼 미식가인가를 알 수가 있을 정도로 훤하다.

 

그런 그는 할아버지가 죽으면서 아버지와는 상반된 이념 사이의 두 어른에서 낀 자신의 유년시절을 보내게되고 할아버지의 유산을 공증인 해 준 사람이 위조 문서로 자신의 재산을 가로챈 것을 알고 그 밑에서 직원으로 일하는 것을 시작으로 세월이 흘러 역으로 그를 곤경에 빠드리고 위조문서가로서 생활을 해 나간다.

 

 어느 날 그의 명성을 듣고 찾아 온 사람에 의해서 그는 위조문서가로서, 전방위적인 활동을 펼치는 가운데 프랑스로 망명을 하고, 거기서 소개로 만난 사람들에 의해서 역사의 한 장면으로 기억될 히틀러가 자행해 온 유대인 대 학살의 전조의 시작을 알리는 문서를 만들기까지의 모든 일생을 담고 있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세계적인 석학인 움베르토 에코가 6년 만에 내 놓은 신작이란 말이 과연 나올 법하다.

 그가 써온 소설의 흐름을 보더라도 이번엔 전혀 색다른 관점에서 관망 할 수있는 소설의 흐름은 독자들로 하여금 한 번만이라도 흐름을 놓치면 다시 되돌아가서 읽어야하는 수고스러움을 아끼지 않게 만들었다.

 

어느 날 깨어보니 신부 님의 옷차림으로 있는 자신을 본 시모니니는 그것을 추적하기 위한 일환으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식의 일기를 써 나가가고, 그와는 다른 피콜라라는 신부가 또 다른 화자로 나서면서 시모니니가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을 채워서 이어져주는 형식으로 이끌어 나간다.

 

여기에 다시 제 3자인 화자가 이 둘의 이야기를 들여다봄으로써 다시 독자들에게 글의 흐름을 이끌어주는 식이기에 소설에서도 서로 다른 글씨체로 구분이 되어져있고, 시모니니가 거둔 거짓 위서문서가 어떻게 역사의 한 흐름 속에 한 획을 긋게되는 과정이 그 자신만 제외하고 실제에 존재했던 다양한 층의 이름있는 사람들을 등장시켜서 서로 연관이 되어지고 있기 때문에 읽어내려가면서 이것이 허구인지, 실제인지를 구분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시모니니의 가장 두드러진 점인 위조문서의 활약을 이용한 당시의 유럽의 정치세계인 프랑스, 러시아, 독일의 움직임이 서로 연관이 되어 이들이 노리는 대중의 눈을 어디에 쏟게 하는 것이 권력유지에 도움이 되는지을 두고 벌이는 그의 활약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살인도 서슴지 않는 그의 행동에도 눈길이 간다.

 

나폴레옹의 제정시대를 유지하려는 자들은 공화주의자들의 체제 전복위협에 직면을, 러시아 당국은 차르를 향한 민중의 두려움을 피하기 위한 일환으로 그들이 필요로 하는 적이 필요했는 바 바로 유대인을 대상으로 삼는다.

그들은 위조의 위력을 발휘하게 만들어내게 된 원동력이 나중에 그 유명한 훗날 시온 장로들의 프로토콜이란 위서로 만들어지게 되는 경위를 그려낸다.

 

 평소 프리메이슨, 유대인, 카톨릭, 예수회를 미워한 시오니니에겐 더 없는 기회였고 그는 이 기회를 이용해서 프라하의 공동묘지에 모인 유대인들의 세계지배의 사악한 음모를 꾸미고 있단 이야기를 만들어내게 되고, 이것은 뒤이어 유럽에 유대인들을 바라보는 시각과 역사의 한 획을 긋는 데에 일조를 담당한다.

 

그렇다면 하고많은 위조 중에 어떤 것을 대상으로 삼아야 대중에게 먹히는가?

 

-인간은 저마다 뭔가를 열망한다. 운명의 여신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일 수록 갈망도 크다. 사람이 불행한 것은 그 자신이 무능한 탓일 수도 있으련만 아무도 그런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자기들을 불행하게 만든 죄인을 찾아내려 한다. (음모론의 요체)

 

- 어떤 음모를 만들어 팔아먹으려면 독창적인 내용을 구매자에게 제공해서는 안되고 오히려 구매자가 이미 알아낸것이나 다른 경로를 통해 쉽게 알아낼 수 있는 것만을 제공해야한다.

사람들은 저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만을 믿는다. 음모론의 보편적인 형식이 빛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P147

 

- 민중이 어떤 새로운 정치적 행동 노선에 눈뜨지 않도록 우리는 체육 대회, 여가 활동, 다양한 취미 생활, 음주 문화 등 온갖 종류의 오락거리로 그들의관심을 딴 데로 돌려야 하고, 그들이 예술 경연과 운동 경기에 참여하도록 권장해야 합니다. ....우리는 대중이 과도한 사치를 좋아하도록 부추길 것이고 노동자들의 봉급을 올려주되 작황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식량과 생필품 가격을 함께 올림으로써 그들의 부담을 경감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노동자들 사이에 무질서의 씨앗을 뿌리고 애주의 성향을 부추김으로써 그들의 생산성을 근저에서 약화시키고자 합니다. 우리는 일견 진보주의나 자유주의와 비슷해 보일 법한 갖가지 이론을 지어내어 여론을 그런 쪽으로 몰아갈 것입니다. -p726~727 (시모니니가 자신의 문서의 장점을 설명하는 부분)

 

결국 시저가 말한대로 대중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싶어한다는 그 점을 이용한 위정자들의   대중심리파악의 눈은 대중의 눈을 어디에 둬야 그 관심 밖에서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할 수있음을 보여주는 이 소설은 비단 유대인들만 나쁘게 보아서가 아닌 가짜를 진짜처럼 믿게 만듬으로써 대중들이 허구 자체을 진실로 믿어버리게 만드는 매커니즘에 초점을 맟추어 글을 쓴 작가의 오랜 노력의 결실이라고 볼 수가 있겠다.

 

출간이 되고서 고국인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 전역에서도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고도 하는 이 소설은 소설이 갖추는 형식은 제쳐두고서, 작가의 역량에 걸맞게 현란한 지식의 향연으로 초대를 함은 물론 실제의 역사에서 일어난 사건을 시모니니가 곁에서 활동을 함으로써 그런 결과를 초래하게끔 만드는 허구의 세계가 실제의 역사란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읽는다 하더라도 그의 창작의 촘촘한 짜임은 혀를 내두르게된다.

 

 실제 당시의 삽화를 간간이 삽입을 하고 19세기의 레스토랑의 모습, 거리의 모습의 표현이 아주 자세하게 묘사가 되어있기에 새삼 그 당시의 시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도 들게한다.

 

피콜라와 자신이 자아분열이 된 상태임을 책 두권을 엮어나가면서 둘 사이를 시종 궁금증을 일으키게 만들고 프로이트를 남색자로, 뒤마를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임을 모네의 그림솜씨를 혹평하는 일색, 뒤프레스 사건, 그 밖의 유명인사들이 시모니니와 만나고 그 안에서 모종의 글을 발췌해서 위조로 엮어나가는 과정을 보는 것이 실감이 나게 만든다.

 

다만 유럽의 역사의 한 면을 장식하고있다보니 읽는 도중 이 19세기 격동의 이탈리아의 통일과정과 프랑스의 혁명과 제정시기의 대립, 러시의 정치, 독일의 첩보전 같은 것의 내막을 좀 더 알고 접했더라면 그 맛을 더 느끼면서 읽지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남는다.

 

책 2권의 뒤편에 작가가 글의 이해를 돕기위해 실제와 허구의 사이를 쉽게 알 수있는 표 참조는 읽기 전에 다시 한 번 훝어보고 정독을 한다면 이해면에서 도움을 받을 수있지 않을까싶다.

 

장미의 이름 이후에 그의 매력에 빠진 이후 그간 그가 써온 지적의 세계를 다루는 폭의 넓이에 나의 많은 모자람을 느끼게 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지만(푸코의 전자 같은 경우 극도로 나를 미치게 만든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뭔지 모를 오기가 생겨 끝까지 정독하게 만드는 그의 힘은 뭔지...)이 책의 경우에도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도중에 끊지않고 쭉 읽어보길 권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도로 아미타불이 되어 다시 새로 시작되어 찬찬히 시모니니의 발자취를 더듬어야하므로, 하지만 확실히 그의 글은 정말 도무지 뿌리치지 못하는 힘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존자
이창래 지음, 나중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6.25가 터지고 단란했던 준의 가족은 아버지가 총살, 오빠는 끌려가고 엄마와 언니, 그리고 쌍둥이 동생들은 부산에 있는 외가에 가는 길에 엄마와 언니는 폭격에(그것도 처참한 상황에서  굴욕을 당하려는 순간) 그들 모두를 잃고 홀로 11살의 몸으로 쌍둥이 동생들을 데리고 부산으로 향한다.

 

이마저도 기차에 제대로 탈 수가 없어서 기차지붕에 올라탔다가 동생들마저 죽게되고, 홀로 떠돌다 미군 병사 헥터를 만나고 그와 함께 고아원으로 향한다.

 

 미군 병사 헥터는 술만 대면 싸움에 주정을 하는 아버지를 한 순간 모른 척 하고 다른 일에 관심을 쏟다 아버지의 시체를 보게되고 그 죄책감에 몸부림치다 군에 자원입대, 한국전쟁으로 파병된다.

 

그 곳에서 전사자 처리부대에서 일하다 주선으로 한국의 고아원으로 일하러 가던 중, 준을 만나게되면서  그 곳에서 온갖 고아원에서 필요로하는 잡일을 하며 살아가던 중, 미국에서 한국의 고아원을 맡고 선교를 하러 온 실비와 그의 남편을 만나게된다.

 

실비 비네- 1935년 만주에서 선교생활을 하던 부모와 함께 있던 중 중국계 영국여권을 가지고 있던 엘리트 벤자민 리를 좋아하던 14살의 그녀는 일본군의 침입으로 벤자민이 중국 공산당과 연관된 인물임을 알게 된 일본군의 혹독한 고문끝에 동료들을 고발하는 과정에서 실비의 부모가 사망하게되는 사건과 연관이 된다.

 

자신의 눈 앞에서 죽은 부모를 본 순간 실비의 맘 속엔 이미 모든 것들은 죽은 것들이 되었으며, 이후 자상한 남편을 만남으로서 자신의 구원자로서 같이 생활할 것을 기대하고 온 상태, 하지만 헥터와의 만남은 둘 사이를 두고 지켜보던 준의 눈길과 준이 계획하고 있던 실비에 의해 입양이 되길 바랬던 모든 계획의 훼방꾼으로 밖에 여겨질 수밖에 없는 상대로 보인다.

 

세월은 흘러 1986년 미국에서 골동품 가게를 하며 자릴 잡고 있던 47살의 준은 자신의 아들인 니콜라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영국을 기점으로 유럽여행을 떠나면서 간간히 엽서를 보내오고 돈을 송금하는 세월이 8년이 흘렀고, 소식이 뜸해지자 아들을 찾기위해 사람을 고용하면서 미국에 자신을 신부로 데려왔고, 짧지만 불행했던 결혼생활의 대상자이자 아들의 아버지인 헥터를 다시 만나서  아들을 같이 찾기위해 노력을 한다.

 

 여전히 자신이 쓸모없는 인간이란 생각과 어디에도 맘을 둘 곳없이 살고있었던 헥터는 준과 함께 자신의 아들이라고 하는 니콜라스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탈리아로 같이 여행을 하면서 준이 암 말기 환자란 사실, 이것이 그녀에겐 마지막 여행이 될 수도있단 생각과 함께 다시는 엮이고 만나길 원치않았던 두 사람간의 운명을 야속해하면서도 그녀의 지시대로 여행의 동반자로 나서는 과정이 그려진다.

 

 작가의 작품으로 처음 접한 것이 네이티브 스피커란 제목으로 만나고 이번이 두 번째이다.

 

한국계 작가로서 영어를 모국어로 쓰고 그것이 다시 한국어로 번역이 되어 나오는 이민세대의 작가로서의 글 치고는 너무나도 선명한 전쟁이 남긴 상처를 드러내는 데 아픔을 많이 준 책이다.

 

그 자신이 겪지도 않았던 우리 동족상잔의 아픔이라고 일컬어지는 6.25의 전쟁부터, 멀게는 실비가 겪었던 1935년대의 일본의 극랄한 행동의 묘사,(읽다가 소름이 끼칠정도로 무서움이 쳐진다.), 전쟁으로 오직 살아남아야했고, 그래서 살아남은 자들의 아픔이 각 세 사람의 모습으로 그려진 소설이기에 어느 누가 더 아프고 덜 아프고를 따질 수가 없는 전쟁이란 재앙이 주는 환경에서 인간이 인간에게 더 이상 어떻게 잔인하고 혹독할 수있으며, 그 안에서 살아난 자들의 아픔이 시대를 건너뛰어도 여전히 그들의 가슴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로 남아 괴롭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삶에 대한 투영이 그려진다.

 

 전쟁의 광기가 주는 영향 아래서 자신들 만의 치유와 성적인 갈망, 이래선 안된다 알면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굶주린듯 달려드는 실비와 헥터의 동물적인 몸부림, 술과 마약을 주사기로 투여해 잣자신들을 다스리는 방식,  그들을 지켜보는 준의 시선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삶의 짐을 이고가기엔 너무도 힘겹게만 보여 작가가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른 전쟁의 참상이 독자들에게 전달된다는 점에서 아주 독특한 우울한 시선을 주는 소설이기도 하다.

 

전혀 알지도 못했던 자신의 혈육인 아들이 있단 소릴 들으면서도 무덤덤할 수밖에 없는 삶의 의지를 전혀 갖지 못하고 준의 말 처럼 오로지 자신만을 가장 잘 알수 있는 사람이 헥터 , 당신만이 나를 가장 잘 안다고하는 말은 곧 헥터에 대해서만은 준이 가장 잘 알고있단 소리로도 들리며, 역으로 아들이 죽었음에도 그것을 인정치않고 아들을 찾아나서는 여정이 전쟁이 주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 스릴의 성격도 포함된 소설의 구성을 지니고 있기에 자칫 따분하게만 여겨질 수도있는 전쟁의 이야기를 독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장으로 끌고 가기도 하는 소설적 느낌이 아주 좋은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실비가 건넨 책에서 나오는 솔페리노로 최종적으로 향하고 그 곳에 도착한 준으로선 어쩌면 그것이 자신이 그리던 마지막 희망지로 머물 곳임을,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전쟁으로 인해 생활했던 가슴아픈 가족과의 이별도 더는 없음을, 이제는 오로지 웃을 일만 남았단  최종 정착지는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비에 대한 사랑의 방식이 서로 달랐고, 준에게 있어선 실비만이 하나의 희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헥터와의 상반된 감정을 가진 두 사람간의 감정들이 또 다시 아들로 하여금 인연의 끈을 가지게 하지만, 죽음으로 향하는 길에 비로소 헥터 자신도 준의 행동을 이미 용서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로 다른 전쟁을 겪음으로서 파생된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인간이 부린 가장 악날하고 용서할 수없는 광기를 겪은 세 사람을 통해서 독자들은 누가 과연 이들의 인생에 용서를 하고 구원을 하고 다시 자유의 의지로서 살아 갈 수있단 말을 한다는 것 자체도 이들에겐 하나의 사치에 해당하지 않을까 라는 물음을 던져본다.

 

책 제목이 생존자이지만 원제는 SURRENDER 이란다.

 

극한 상황에서 굴복해서라도 살아남아야만 했던 사람들의 아픔이 전해져 오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러시아 할머니의 미제 진공청소기 NFF (New Face of Fiction)
메이어 샬레브 지음, 정영문 옮김 / 시공사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 스포일러/ 미리니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외할아버지 아하론은 우크라이나 마카로프에서 19살에 팔레스타인으로 오게됬다.

유대인들의 이주 정책의 일환인 제 2차 알리야시절(구 소련이나 동유럽권의 정치불안과 반유대주의에 불안을 느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이주한 일이란다. )에 오게된 할아버지에겐 형이 있었으니 이름은 예샤야후였다.

 

하지만 그는 미국으로 이주를 했고 이름조차도 샘이라고 바꾸면서 미국의 자유주의적 경제에 입각한 사업을 시작해 정착해나간다.

그런 형을 바라보는 아하론은 사회주의와 시오니즘으로 정착한 자신과는 다른 길을 걷는 형을 이중의 배신자라 부르며 사이가 좋지 않게 지낸다.

 

할아버지의 배필인 우리의 주인공인 외할머니의 이름은 토니아-

할아버지가 이미 아들 둘이 있는 상태에서 배다른 언니이자 할아버지의 첫 부인이 죽자  18살에 14살 많은 할아버지의 두 번째 부인으로서 결혼을 하게되고 그 둘 사이에 자식을 낳고 기르면서 이스라엘의 나할랄에서 정착을 하고 산다.

 

할아버지가 집 안의 소소한 남자로서 할 일(연장을 쓰는 일)에 관심이 없고 글에 관한 일에 소질이 있는 반면, 할머니의 특징이라면 바로 깨끗함의 정도를 넘어선 청소 결벽증이라고 할 수있는 완벽한 청소에 있다.

 

우선 집 안에 화장실 겸 욕실이 있어도 바깥 외양간 벽에 호스를 설치해 놓고 "훌륭한 샤워실"이라 부르면서 목욕을 하게하는 일, 문고리와 창의 문고리마다 헝겊을 씌어서 먼지를 방지한다는 일, 왼쪽 어깨에 천을 대고 수시로 때가 묻었다 싶으면 바로바로 닦고 문지르는 일이다.

 

부엌이 있되 식탁이라고 하는 곳에선 식사를 해 본적이 없고 바깥의 베란다에서 모든 식사를 해결하는 청결의 대명사로 자릴 잡았다.

 

생리적인 현상의 해결을 위해선 할아버지가 심어놓은 감귤나무 아래에서 했으며 볼 일이 끝이나면 쓰레기의 처리도 모두 완벽을 요하는 할머니였다.

 

그런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18살에 예루살렘 모샤브 운동 신학교에서 만난 교사이자 시인인 맏 사위인 이츠하크 샬레브의 직업과 글쓰기 행동을 가족간에 이야기거리로 생각하며 지내고, 할아버지의 형인 예샤야후는 미국에서 들려오는 이스라엘의 정착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동생에게 도움을 주고자 돈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돈은 바로 화가 난 할아버지에 의해서 되돌림을 당하고 그런 일이 몇 차례있자 예샤야후는 제수인 토니아의 결벽증 청소를 생각하고 궁리끝에 미국의 일렉트릭 제너럴사에서 만든 진공청소기를 도저히 되받아 받을 수없을 만큼의 철저한 계산으로 그들에게 보내게된다.

 

 전 세계를 돌리고 돌리고 돌아서 온 그리운 내 누님의 품이 아닌 이스라엘, 그것도 나할랄에선 듣도보도 못한 진공청소기(vacuum cleaner)임에도 할머니는 당신의 고집대로 청소기(sweeper :스페이르)라 부르고, 이것은 곧 집 안에서 그렇게 불린다.

 

못마땅해하는 할아버지는 아랑곳 않고 청소기가 주는 실험에 돌입한 할머니는 우선 청소기로 집 안의 먼지를 쓸어놓은 다음 손으로 걸레질을 하고 걸레를 짰을 때 하얀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검사를 한 행동대로 해 보니 너무나 깨끗해진 것을 확인한 결과 할머니는 만족스런 얼굴을 짓는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 미제청소기는 미국의 실정에 맞는 먼지의 농도와 성격을 모두 흡수하지만 이스라엘의 나할랄에서 만져지는 먼지는 먼지라기보단 사막의 모래처럼 여름엔 땅이 메마른 땅이요, 추운 계절이면 진흙창으로 변한단 사실을 예샤야후 할아버진 깨닫지 못한거였다.

 

 할머니의 오빠로부터 청소기 내부를 뜯어보고 청소기도 청소를 해 줘야한단 말에 할머니는 사용하면 더러워진단 이유로 그 길로 청소기 사용금지를 했으며 그 후 청소기는 집 안에 열쇠로 잠근 문 안에서 고이 잠들어야했다.

 

한 때 내가 데리고 잠을 할머니 집에서 잤던 애버게일이란 미국 여성으로부터 할머니는 청소기의 연도가 오래됬음을 알게된 그녀로부터 많은 금액의 제시를 받고 많은 다른 전기제품과 함께 받는 조건으로 넘길 것을 제시하지만 이 또한 할머니의 고집대로 근 40여 년간을 고이 지내게된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모든 짐을 정리하던 중에 그토록 보고팠던 비밀의 장소 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간 순간, 청소기는 온데간데 없고 모두들 모른단 말만 할 뿐 유일한 용의자로 지목된 나 또한 청소기의 행방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작가의 실제 할머니 이야기를 이모와 엄마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자신 또한 할머니와의 추억에 잠긴 이야기를 작가는 고난과 개척의 시대의 어른들이 그랬듯이 할아버지와 할머니 세대의 이스라엘의 생생한 삶을 같이 포착한다.

 

우리네와 다를 것이 없던 할머니의 세대처럼 토니야 할머니 또한 집 안의 일과 자식들 건사, 그리고 일하다 아기를 낳을 경우 밭에 바로 복귀해 일한 우리네 할머니들의 모습과 많이 흡사한 장면들이 나온다.

 

때론 할머니와의 의견충돌로 사이가 멀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할머니가 주는 고유한 느낌의 표현과 실 생활에서 나오는 묘사포착은 손자만이 느끼는 그런 아련한 향수의 세계로 독자들을 이끈다.

 

"사실은 이랬어"란 말로 통용이 되는 작가의 집 안의 말투 속엔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갖고있던 한계적인 상황의 극복 속에 이뤄진 유대인들의 이동역사와 그 안에서 이뤄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애착, 각종 유년의 기억들이 들어있어서 간만에 즐겨읽은 동심의 세계를 기억하게하는 책이다.

 

같은 형제간의 이념적인 차이로 인해서 멀어진 형과 아우간의 사이가 형의 집요한 유대인다운 공세로 진공청소기란 기계를 맞이하게됬지만 도리어 기계에 종속되어 다시금 청결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 할머니의 돌발적인 행동의 결과가 웃음을 유발시킨다.

 

 할머니의 눈을 피해서 요리조리 다른 장소로 가서 자신만의 일을 하고자 하는 할아버지를 기어코 찾아내 집에 들어오게하는 할머니의 행동, 작가 아버지를 빗대어 가족들이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각들이 여전이 따뜻한 가족의 품을 그리게 한다.

 

사는 곳이 달라도 할머니가 주는 인자함이 이 소설 속에선 그다지 나타나지 않으나, 척박한 땅에서 살다보면 그 나름대로의 삶의 지헤로 할머니대로 터득한 삶의 노하우인 청소의 대가답게 여전히 눈에 그리듯 할머니 집이 보인다.

 

구세대일 것 같으면서도 여자친구를 사귀는 일엔 아주 개방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할머니의 침대 제공은 역설적인 포인트를 날리지만 이마저도 귀엽게만 보이는 것은  지나칠 정도의 청소결벽증을 갖고 있는 할머니만의 특허가 아닐까 싶다.

 

지금은 모두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추억과 이야기거리들이 아직도 작가의 집 안에서 흘러나온단 자체가 이미 할머니는 당신만의 뜻 깊은 행동을 자손들에게 깊이 각인을 시켜주고 가신 것은 아닐까 싶다.

 

수표를 받고 되돌려주고, 청소기를 꽁꽁 포장해 보내는 예샤야후 할아버지 대 아하론 할아버지의 대결은 웃음코드이자 할머니의 청소기 사용으로 그 힘을 잃어버린 아하론 할아버지의 심정, 그리고 꾸준한 청소기 사용을 기대했던 예샤야후 할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린 할머니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두 분들은 무승부를 거두었음을 느끼게 해 주는 이 소설은 체험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소설이 얼마나 독자들을 더욱 즐거운 시간으로 이끄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문학이 주는 맛을 느끼게 해 주는 책이다.

 

그나저나 작가 자신도 도대체 그 청소기의 행방을 모른다고 하니, 일단 유력한 용의자는 있지만 증거가 없고, 그저 대대로 이런 전설로만 내려올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 p 269- 닭을 잡았느니.... 닭을 잡았으니(오타가 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