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나는 내가 좋다
안디 홀처 지음, 여인혜 옮김 / 다반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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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 홀처-

 

 그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선천적인 실명으로 인해서 남들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일에도 많은 노력과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성장했다.

 

 위로 누나가 이미 같은 선천적인 병이 있어서 의사로부터 부모들이 같은 경고를 받았을 때는 이미 뱃 속에 있었던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보통인들이 누릴 수있는 일들을 똑같이 즐기면서 때론 다른 이들이 만류하는 위험한 운동에도 소질을 보이면서 두각을 나타낸다.

 

 부모의 끊임없는 헌신과 노력, 너도 할 수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면서 자라난 안디는 학교 또한 남들이 권유하는 맹인들이 다닐 수있는 학교를 거부하고 똑같은 보통의 학교에서 학업을 이수한다.

 

 아마추어 무선통신자격증을 비롯해서 아버지와 엄마와 함께 등반한 돌로미텐 산을 위시해서 자신의 뛰어난 폐활량을 이용, 장애인들로만 이루어진 킬리만자로 등반에 성공을 하면서 점차 유명세를 타게된다.

 

 사람이 태어나서 한 인생을 마칠 때까지 무수한 난관과 고난을 겪는다.

 

 이 모든 상황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서 내 자신의 인생은 물론이고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희망의 메세지를 던져주는 그런 인생의 모범이 바로 안디홀처가 아닌가 싶다.

 

 그가 밝혔듯이 그의 부모가 자녀을 위해서 애를 쓴 교육의 일환의 과정속엔 남들보다 힘든 점을 확실히 깨닫게 이야기를 해주고 그럼으로써 안디 스스로가 어떻게 세상의 편견과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면서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 역할이 컸던 것 같다.

 

또한 그 자신의 성격에도 크나큰 장점이 있으니 남들은 바로 자신의 불리한 점을 애써 외면하려하지만 그 자신은 똑바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왜 그래야만 하는지에 대한 정면도전의 정신을 뽑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우리가 본다는 시각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준 점이다.

 

우리가 눈으로 본다는 것은 뇌에서 이미 그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한 시점부터 편견과 고정의 관념이 생긴점을 안디는 그 자신이 보이지도 않으면서 오히려 볼 수있는 사람들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꼬집어 준점이다.

 

안디 자신은 눈이 안보임으로서 나머지 촉각의 4가지 기관을 모두 통합해서 이용하고 하나의 형상 이미지를 뇌에서 구축, 우리같은 사람들과 똑같은 이미지 형상을 그려낸다는 점이 새삼 놀라울 뿐이며 그의 적극적인 삶의 정신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그저 본다는 것의 차원을 떠나서 위험한 세븐 서밋 프로그램을 통해서 험난한 산을 정복해 나가는그의 여정은 하나의 위대한 신에 대한 겸손한 자세와 철저한 계산된 발자국의 행로, 아내를 위시한 그를 곁에서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다른 사람들이 있기에 오늘 날 안디홀처란 사람의 위대한 삶이 고스란이 우리의 눈에 들어온 것이 아닌가 싶다

 

위험한 암벽등반을 위시해서 산악스키, 안마 마사지사, 밴드까지 운영하면서 타인의 삶에도 행복을 전달해 주는 사람이자, 어느  못하는 것이 없는 이 인물의 이야기는 사실 누구나 접할 수있는 우리네 이웃의 아저씨 같은 인생 이야기일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으면서 새삼 내 자신의 나약했던 점이나 때론 하기싫어서 핑계를 대면서 외면했던 일들이 떠오르면서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안디의 불굴의 희망찬 의지의 삶을 엿보면서 그의 내면에 존재한 삶에 대한 확고한 의지, 시각이 주는 단순 일편적일 수있는 본다는 것의 의미와 그 한계를 평범한 사람들에게 다시금 그것에 대한 소중함과 그것의 허점인 위선과 편견에 빠질 수있다는 한 편의 경고같은 문구를 주기에 한 남자가 들려주는 인생을 들쳐봄으로서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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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세컨즈 1 - 생과 사를 결정짓는 마지막 3초 그렌스 형사 시리즈
안데슈 루슬룬드.버리에 헬스트럼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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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컨테이너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자신의 위 속에다 일정량의 마약인 암페타민을 복용하고 마약거래상에게 그것들을 토해내면서 운반의 책임과 함께 일정의 수고비를 받는 위험행위를 한다.

 

 피에트호프만- 일명 파울라 라는 가명을 불리는 그는 스웨덴경찰인 에리크 빌손에게 포섭이 되면서 자신이 저질렀던 비리의 죄를 면죄받고 경찰의 정보원으로서 뛴지 9년 째-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을 둔 가장이지만 덴마크 정보원 출신으로 마약거래상으로 분한 어떤 남성의 정체가 탄로나는 바람에 자신의 목숨을 위해선 어쩔 수없이 폴란드 마피아 일당들이 그를 살인하는 현장을 보게되고 이어서 경찰에 신고를 하게된다.

 

 에베트 그렌스 형사는 노장으로서 사건의 현장감식 결과를 토대로 폴란드 마피아와 관련이 있음을 짐작하게 되지만 그 어떤 증거는 확실히 갖고있질 못한 상태-

 

그러는 사이 에리크는 호프만으로부터 얻어낸 정보를 토대로 폴란드 마피아의 거대조직이 감옥이란 제 3의 장소에서 마약장악을 하려한단 정보를 입수하고 살인 현장을 목격한 호프만의 죄를 면죄받고 좀 더 강력한 처벌작전을 하기위해 그의 죄목을 좀 더 높이는 데 조작을 하는 승인을 법무장관, 경찰청고위간부들 앞에서 받는 동시에 호프만의 제 2의 삶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말을 듣는다.

 

 그런 사실을 호프만은 자신의 녹음기를 교묘히 숨겨와서 봉투 2개에다가 부인과 에베트 형사 앞으로 보낼준비를 한다.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서)

 

철저한 준비작업으로 법정구속량인 마약소지죄로 악명높은 감옥 중 하나인 아스프소스 교도소로 직행, 미리 대기하고 있던 보이테크마약 하수인들과 접선, 이미 감옥을 장악하고 있던 다른 재소자를 다른 곳으로 보내버리고 자신이 마약의 거점을 확보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는 곧 고위 간부들에게 그의 존재가 탄로가 났단 사실을 접하게 된 사실로 바뀌자 고위간부들은 그가 자신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존재란 사실을 내세우려 그가 단순히 감옥 안에서 죽은 것처럼 보이게 범죄조직이 알 수있게끔 상황을 만들어나간다.

 

 호프만은 이 사실을 눈치채고 독방에 갇힐 것을 요구,시도때도 없이 들려오는 "스투카치(끄나풀)" 이란 말을 들음으로써 미국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빌손에게 연락을 시도하지만 실패, 다시 고위 경찰청 간부마저 외면해버리자, 비로소 오직 믿은 것은 자신뿐임을 자각하게된다.

 

 감옥에서 마주보이는 교회의 종탑 아래에 이미 설치를 해 둔 송신기를 통해서 자신이 그들이 하는 대화를 엿들을 수 있게끔 조작을 해 둔 덕에 호프만은 교도직원과 또 다른 범죄조직의 한 명을 데리고 교도소 작업장으로 유인 , 에베트와 일대 대결을 벌인다.

 

결코 범인을 쉽게 제거하지 못하리란 걸 알게 된 그 시각, 에베트는 정부의 승인을 받고 저격수를 고용, 호프만을 죽이게되고 사건의 현장은 온통 화염에 휩싸여 시체의 흔적조차 찾을 수없는 현장으로 변해버린다.

 

 호프만이 자신 때문에 죽었단 사실을 괴로워한 에베트는 자신 앞으로 온 소포를 보게되면서 이 사건을 둘러싼 것이 고위간부들의 조작이었음을 미국에 있는 빌손으로부터 인정받고 윗 선들을 고발하기에 이른다.

 

 미국에 있던 빌손은 자신이 소유한 5대의 휴대전화 중 결코 받을 수없게 된 한 대의 휴대전화로 부터 온 음성을 듣고 그가 임무를 완수했음을 알게된다.

 

 저널리스트와 전직 범죄출신의 저자가 합동으로 내 놓은 "비스트"란 책을 통해 읽어 본 독자라면 이 소설 또한 그런 흐름의 긴박감을 저버리지 않았단 점에서 이미 높은 점수를 받게 될 것 같다.

 

 이중 첩자생활을 하는 호프만이란 폴란드 태생의 스웨덴인이 겪는 자신의 정체성은 물론이고, 범죄의 심오한 부분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범죄자의 면죄부를 이용함으로서 조직을 일망타진한다는 경찰계의 작전은 그야말로 긴박감의 연속성이다.

 

 루슬룬드+ 헬스트럼의 콤비의 뛰어난 점은 바로 확실한 묘사부분에 있다.

 

표지에서도 볼 수있듯이 컴컴함이 전해져오는 감옥의 계단, 마약을 감옥 내에 들여오는 빈틈없는 과정과 빌손이란는 경찰과 호프만의 인간적으로 느낄 수있는 어떤 우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로가 필요에 의해서 한 일이지만 호프만을 생각하는 빌손의 감정은 동지의 어떤 흐름을 느끼게 해 준다.

 

 동유럽의 마약조직이 북유럽의 나라를 대상으로 장악하려한다는 모티브는 읽는 내내 비스트와는 또 다른 인간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고 오로지 조직의 한 기계처럼 대하는 방식, 네가 아니면 내가 죽기에 어쩔 수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그저 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던 호프만의 감정이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전달이 되어온다.

 

 철저한 계획하에 자신의 목숨과 교도관의 목숨을 살리되, 자신의 존재는 그 어디도 찾아 볼수 없게끔 일을 진행하는 호프만의 행동철학은 자신 외에는 결코 아무도 믿지말라는 교훈을 되새겨준 빌손의 애정어린 말로 나타내 보이기에 이 소설은 감옥에 있었던 경험을 토대로 상세한 감옥 내의 장악계기와 결코 안심하고 잠을 잘 수없는 시간상황의 포착의 순간, 자신의 부인과 아이들을 향한 호프만의 가슴아린 시도, 이 모든 요소들이 고루고루 갖춰져 있기에 3초 면 충분히 자신의 삶은 이제 영원히 없어질 거란 사실을 염두에 둔 한 범죄자이자 정보원인 한 사내의 운명적인 이야기를 다룬 이야기로 단숨에 독자들을 끌어모은다.

 

 저격수의 의견제시대로 에베트 형사의 집요한 추적은 경찰고위간부와 법부장관의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어 버리는 식의 계획을 작가들은 과감히 고발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법이 있어서 안심하고 살 수있는 안정된 국가가 있다는 말이 여기선 어찌보면 반대의 의견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법이란 테두리 안에서 정보원으로서 보호를 받아야 할 한 사내가 오히려 법 때문에 위험에 처한단 상황은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지...

 

 저널리스트답게 꼼꼼한 상황의 묘사와 감옥 안에서의 세밀한 묘사 장면은 이 둘의 작가가 아니면 나타낼 순없는 뛰어난 묘사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요즘 영미문학권의 인기가 아닌 북유럽에서 건네져오는 문학이 주는 또 다른 읽는 재미를 준다.

 

 교회 종탑에서 저격수가 총을 겨눈 자세와 호프만이 바라다 보는 교도소 내 작업장의 거리는 1.503m, 3초면 가히 그의 목숨이 날아가 버리는 긴박한 상황에서 호프만의 주도면밀한 계산법, 그걸 의심한 저격수의 말 한마디로 이 사건에 대한 심층취재를 하는 에베트 형사의 끈질김, 모든 것이 영화화 하기로 했다는 이 말로 대신할 것같다.

 

 살겠다는 의욕하나로 버텨온 호프만, 이미 죽은 사람이지만 또 다른 새로운 신분으로 태어날게 될 그의 운명 개척에 통쾌함을 느낄 수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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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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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헨리치나스키는 작가의 분신으로 나온다.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자면 우체국 직원으로 일한 전력, 노동자로 일한 전력답게 이 소설은 작가의 자신을 나타내주는 헨리란 남성을 통해서 그려본 여성에 대한 생각을 드러낸 책이다.

 

 시 낭독회나 강연회에서 자신의 글을 좋아하거나 전화를 걸거나 편지를 통해서 만나길 희망하는 여성들이라면 모두 만나는 헨리는 여성의 다리를 보면 흥분을 감출 수 없는 남성으로 나온다.

 

 책에서도 나오는 모든 부분들이 사람과 사람간의 감정 교류라든가 이성간의 어떤 사랑의 감정이 아닌 날 것 그대로 오로지 말 그대로 섹스로 시작해서 섹스로 끝난다.

 

 술과 마약, 경마에 찌들은 헨리는 이와 함께 자신에게 오는 여자 막지않고 가는 여자 붙잡지도 않으며 연령대도 자신과 비슷한 나이가 아닌 20대에서 심지어는 10대 후반까지  관계를 맺으며 표현의 수위방식도 날 것 그대로 보인다.

 

남녀간의 성 행위의 묘사는 읽으면서도 붉어지게 만들고, 책 소개처럼 말 그대로 포르노그래피 일색이다.

 

처음 리디아 밴스를 만날 때도 시 낭독회인 것처럼 세 명의 여성들을 만나도 차례대로 관계를 가지고 또 그러다가 서로 헤어지고, 여성들 또한 그런 면에서 아주 성이란 면에 대해선  자유로운 생각을 가진 여성들이 등장하지만 그런 여성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솔직한 말투와 행동은 읽는동안 헨리의 이런 솔직한 면 때문에 여자들이 그야말로 소설가로서 시인으로서 흠모를 하다가 빠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만든다.

 

모든 만나는 여성들마다 자유분방하다 못해 대놓고 욕설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그러다가 다시 만나 섹스를 하다가 사라란 여성을 만나면서 헨리는 기존의 다른 여성들이 보여줬던 행동과는 다른가치관을 가진 점을 발견하고 그녀와 만남을 갖지만 그러면서도 또 다른 여성을 만나고 사라에게 솔직하게 말하기도 하면서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도 하는 인물이다.

 

그러다가 로셸이란 여성이 걸어온 전화를 끊어버림으로서 기존의 자신이 가진 여자들에 대한 취향을 버림으로서 비로소 진정한 사랑의 대상인 사라만을 생각하는 헨리로 거듭나는 과정이 이 책의 주요 골자이다.

 

그렇다고 일관되게 자신의 감성을 타 소설처럼 감성의 기류에 힘 입어 이렇게 반성하고 저렇게 구구절절 표현하기 보단 한마디로 화끈한 남성이다.

 

어느 날 문득 일어나 보니 이런 생각이든 헨리다.

 

....... 이제는 내 삶을 바로 잡아야 해.

한 남자가 많은 여자를 필요로 할 때는 그 여자들이 다 쓸모가 없을 때뿐이다.

 이 여자 저 여자랑 붙어먹으면서 너무 많이 돌아다니다 보면 남자는 정체성을 잃게된다.

사라는 내가 이제까지 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여자였다. 그건 이제 내게 달렸다. ....

 

어떻게 보면 이성간이 처음 서로간을 볼 때 느끼는 감정을 이리재고 저리재보고 결정 한 후에 만남을 지속하기보단 이 소설속의 작가 분신인 헨리는 일단 자신을 좋아하는 여자들은 무조건 만나고 섹스를 하고 헤어지고 경마장에 같이 가보고, 배팅도 해보고 마약도 같이 하고, 그러다가 진정으로 만난 사라란 여인을 통해서 깨달은 바가 있어서 이제는 눈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지 않겠단 생각을 가진 철든 헨리로 거듭나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있겠으나, 다른 면에서 보자면 아주 솔직하다 못해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이런 소설도 나올 수있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한 소설이었다.

 

아마도 번역하시는 분(많은 책에서 이미 이름이 익숙한 분이지마)도 한국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어떻게 날 것 그대로의 작가의 느낌을 전달하는가에 따른 많은 생각이 교차했을 성 싶다.

 

그 만큼 적나라한 표현수위와 자신의 자유분방함속에 점차 나도 모르게 빨려들어가 그의 행보에 같이 동행하게 되어지는, 그래서 그의 소설이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한 책이기도하다.

 

읽으면서 위안을 삼자면 헨리의 정신차기기쯤 되지 않을까 싶은데, 사라란 여인(실제론 두 번째 부인의 모델이란다. )을 만나면서 로셸이란 여인의 전화를 거부한 것으로 헨리의 방황하기는 종지부를 찍었단 점에서 숱한 여자들을 만나면서 한 남성이 겪은 이야기를 여지없이 생생한 묘사로 독자들을 이끈 작품이라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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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초난난 - 남녀가 정겹게 속삭이는 모습
오가와 이토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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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도쿄의 서민 정취가 묻어나는 야나카라 지역에서 앤티크 기모노 장사를 하고 있는 이혼녀 시오리는 어느 날 자신의 친정아버지와 목소리와 닮은 남자소님 기노시타 하루이치로를 맞게된다.

 

새해맞이 다도회모임에 입고 갈 기모노를  구입하기위해 들른 그는 그녀가 권해주는 옷을 구입하게되고 수선할 부분이 필요함에 따라서 다시 들른 재 방문을 계기로 만남을 갖게된다.

 

 하지만 그는 10살짜리 딸을 둔 유부남-

그런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 동네에서 행해지는 다양한 축제나 이름이 붙여진 다리를 건너면서 나누는 이야기, 카페에 들러서 차를 마시면서 듣는 그의 음성은 차츰 시오리의 마음속 한 켠을 차지하게된다.

 

자신이 감기로 몸살을 앓을 적에 간호를 해주는 그의 마음씨를 알아가는 시오리는 자신 또한 남편의 불륜을 용서하지 못해 이혼한 전력을 알기에 자신 또한 그의 가정에 폐를 끼치고 싶지않아 그의 방문을 거절하게된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그의 생각은 나지만 애써 잊으려할 즈음 그가 나타나게되고 그의 손에 끼워진 반지의 변화를 알게되지만 그녀 또한 그에게 더 이상은 아무런 말도 묻지않은 채 피곤에 쌓인 그의 어깨를 보듬어 준다.

 

초초난난-

 작은 목소리로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주고 받는 모습이나 남녀가 정답게 속삭이는 모습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말의 발음상 예쁘게 들리는 말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엄연히 불륜을 다룬 소설이다.

유부남과 이혼녀간의 이루어질 수없는 사랑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애절하다거나 끈덕거린다거나 지저분한 분위기가 아닌 이런 불륜을 다루는 감성의 소설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하는 잔잔함을 전해주는 책이다.

 

무엇보다 둘 간의 감성교류를 진한 애정의 표현수법이 아닌 아주 점쟎은 남성으로 표현되는 하루이치로와 이혼의 상처와 전 남편이 이혼 후에도 꾸준히 엽서를 보내는 정성에도 답장을 보내지 않는 여성으로 나온는 시오리란 여성의 대비는 점차 자신의 마음을 허물고 그와의 대화를 통해서, 장소를 바꿔가면서 나누는 감성의 기류를 통해서, 뭣보다 일본음식에 대한 글의 표현이 맛깔스럽게 나온단 점이 두드러진다.

 

자신은 음식을 해먹지 않고 사먹는 편이란 말로 둘러 말한 것이 거짓으로 들통나게 되지만 이 책에서 표현되는 전래 일본의 전통축제의 모습이나 음식을 만드는 과정은 작가가 음식에 관심이 있다는 말로 대체가 된다. (전 작은 음식을 다룬 책이라고 한다.)

 

음식과 사람간의 교류를 통한 따스한 감정이 자칫하면 분명 불륜을 다룬 소설임에도 시오리란 여성의 올바른 자신의 행동처리 때문에 더욱 빛나보이는 것이 아닌가싶다.

 그 자신이 남편의 용서를 비는 말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결심한 것이 바로 불륜때문인데, 하루이치로를 향한 자신의 감정이 아마도 자신이 또 다른 여인을 자신때문에 상처를 입히고 싶지않은 마음이 앞섰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불륜이란 단어를 가지고도 얼마든지 나름대로의 상상의 나래를 펴서 할 수있는 극대화를 아주 작고 조심스럽게 다가서는 두 남녀간의 감정교류를 기조로 쓸쓸하지만 비난을 할 수도 없게 만든 작가의 글 솜씨 역량에 이런 작품이 나왔겠구나 싶다.

 

피곤에 절은 그의 어깨를 보면서 그 후에 그 둘의 사랑은 어찌어찌 했다라는 결과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현 방향대로 자연스레 흘러가길 바라는 시오리란 여성의 바램대로 소설은 이 단락에서 끝을 맺지만 작가가 아마 다음의 연작을 생각하고 있는 작품이라면 그 둘의 방향은 아주 많은 독자들이 궁금해 할 것같단 생각이 든다.

 

전통적인 기모노차림을 고수하고 있는 시오리란 여성이 일본의 전통문화 생활을 엿보게하는 데 많은 이해를 주고있고, 특히 특유의 일본음식이 연상될 만큼 다양한 생활에서 묻어나오는 음식의 장만과 조리과정는 읽는 내내 신선한 맛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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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 성석제 장편소설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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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지는 모르나 강이 있고  그 주변엔 지천벽이라고 하는 절벽이 있는 곳이 있다.

 

 그 앞 용소에 불법으로 낚시질 을 하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처음 이 곳에 발을 들여놓은 여산이란 사람이다

 

이 일대 근처엔 방송국에서 드라마 세트장이 세워진 채로 한 동안 방문객이 오다가 방송 종영이 된 후론 무용지물이 된 곳도 있고 그러다보니 연적으로 세상과는 거리가 먼 곳으로 인식이 된 곳이다.

 

 그런 곳에 서로의 각기 다른 사연을 안고서 들어온 사람들이 있으니  여산을 비롯해서 부잣집 도련님으로 태어났으나, 졸지에 할아버지, 부모가 돌아가시자 모든 재산을 친척인 변호사에게 법으로서 빼앗기다시한 채 울분을 못참아 시도때도 없이 찾아가 돈을 요구한 죄(?)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전력이 있는 박영필, 그런 그가 부인이 죽고 자식들도 나몰라라 하자 전국을 돌아다닌 끝에 소희여사를 만나고 그녀를 따라 들어온 처지, 소희여사는 초혼인 상태로 자식이 있는 남자와 결혼을 하고 온갖 정성으로 가정을 꾸렸으나, 남편이 남긴 것은 자신에게 조차 일절의 재산을 주지않는단 유서 한 장_

 

 울분을 삭이면서 집을 태우게되고 현주 건조방화로 몰리지만 경찰의 눈가림으로 이 곳으로 여산을 따라 들어오게 된 여인이다.

 

 한편 여산을 바라보는 백이령은 남편의 정신이상적인 폭행과 강간, 아이마저 죽게되자 이 곳으로 흘러 들어와 해바라기 사랑을 하고 있고, 새미 남매는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속 사정을 말하지 안하고 그들 삶 속에 섞여들어오게 된다.

 

이들은 암암리에 서로가 묵인한 채 가족이란 울타리처럼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가며 살아가고 있던 중 새미가 어느 날 마을 근쳐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조폭인 대장 정묵을 위시해서 부하 일부를 만나게되고 촌 구석에 젊은 처자가 드문데다 뽀얀 피부에 아름다운 처자라, 한 순간 나쁜생각을 먹게 되면서 사건은 시작이 된다.

 

 가까스로 몸을 피신한 새미지만 이내 정묵의 부하인 세동에게 들키고 세동이 겁탈하려는 찰나 새미의 말을 잘 못하는 동생 준호의 손에 큰 부상을 당하게된다.

 

자신의 부하의 몰골을 확인한 대장 정묵은 휘하의 부하들을 훈련시키면서 재차 그 마을을 찾기위해서 애를 쓰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새미를 짝사랑하는 36살의 노총각 산림감시원인 정용석은 마을 사람들에게 보고를 하게된다.

 

 그 동안 자취조차 인식못하고 살아 온 마을사람들은 새미 남매가 마을을 떠나가 주길 바라는 마음이 되지만 의논의 결과 없었던 일로 결정을 짓는다.

 

 조폭의 선발대로 4명이 영필의 노련한 행동으로 자연의 거름으로 쓰고자 모아놓은 야외 변소에 빠지는 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게되고 조폭의 대장인 정묵을 위시해서 쳐들어온 그들 일당은 준호를 잡는 것을 계기로 마을 사람들과 일대 대결의 결전을 치르게된다.

 

마을 대표인 여산과 정묵의 최후의 대결에서 여산의 공격으로 마무리된 일처리는 영필의 말대로 그들이 나룻배를 타고 떠남으로서 마을은 평온을 되찾는다.

 

유머의 지존인 성 석제가 돌아왔다. -

 

 확실히 그의 문학은 유머와 위트를 갖추지 않고는 읽을 수가 없는 매력을 지닌다.

이 책도 9년 만의 장편이란 반가운 소식답게 읽는 내내 킥킥과 푹의 의성어를 연발시킨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진정한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되세겨보게한다.

 아무런 혈연의 인연은 없지만 소희를 어머니로 부르는 여산이나 두 갈래의 해바라기 사랑을 하는 박영필과 백이령의 존재가 갖고 있는 아픔들,  구도자의 길을 나선다면서 일체의 속세와는 떨어진 듯 하면서도 조폭이 마을의 입구를 물어볼 적엔 뜬금없는 말로 혼동에 빠뜨리는 스님의 존재,  의붓아버지에게 당하고 집을 빠져나온 새미 남매를 거두어 준 것은 진정으로 그들이었다.

 

새미의 출현으로 마을이 일대 곤궁에 빠지게되자, 영필의 제안대로 그들 남매의 존재에 대한 흔적을 없앨 요량으로 남매가 스스로 나가주길 바라지만 다른 한 쪽의 진정어린 가족에 대한 의견제시로 무마된다는 것은 어쩌면 현대가족관계에서 바쁘단 핑계로 하루에도 얼굴을 볼까말까한 점을 비추어보건대, 진정한 뭉클함을 전해준다.

 

"사람이 귀하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마주 보인는 내가, 네가 가장 귀하다. 사람 많은 곳에서는 사람 귀한 줄 모른다. 사람들끼리 싸우고 상처를 입히고 죽인다. 몇 명 안 사는 여기서는 그래서는 안된다.  무슨일이 있어도 서로를 위해주고 서로를 보호해야 제가 산다. -p59"

 

소설 속의 가족의 의미를 함축하는 이 말로서 작가는 아마도 우리들에게 가족들이란 친 혈육간만이 아닌 진정으로 하나의 속속들이 서로의 아픈 상처를 보듬어주고 가려주면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가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해준다.

 

조폭 또한 다르지않다.

 나날이 자신의 위로 치고올라오는 후배들의 무리들 틈 속에 가족이 무엇인지, 정묵 또한 그 조폭들 나름대로의 가족구성원을 이루고 있기에 처음엔 재미삼아 새미에 대한 호기심의 발로에서 시작된 일이 세동의 상처입은 모습에 분개해 다시 쳐들어가는 행동은 조푹들간에도 그래도 믿을 것은 자신들만이다라는 일종의 또 다른 가족의 모습을 비춰주고 있는 것 같아보인다.

 

 성 석제 작가의 유머는 여기서부터 빛을 발한다.

 사실 심각한 상황에서 몰릴 수도 있는 죄를 짓고 들어오거나 상처가 깊어 사람들을 쉽게 믿지 않는 심성의 나약한 사람들과 힘이라면 일가견 있는 사나이들의 대결은 아주 핏빛이 낭자하게 흐를 수도 있는 상황을 자연이 주는 재활동의 유산인 분뇨라는 것을 통해서 심각성의 숨막힘을 트여주고, 여산과 정묵간의 대결은 그야말로 박장대소를 날려준다.

 

 서로의 처한 상황상 빨리 떠나주길 바라는 마을사람들의 심정과 자신의 중요한 부분의 치료가 급한 정묵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순간은 성작가가 아니면 누가 이런 글을 쓸 수있을까하는 생각을 읽어본 독자라면 할 것이다.

 

위급한 상황에 몰린 여산이 들은 것은 바로 준호의 "화뿌이"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친 자식도 아닌 준호의 입에서 바로 아빠란 소릴 듣는 순간 여산의 힘은 온 몸의 기를 모아서 정묵의 중요자릴 급습하는 일대 효과를 가져올 만큼 그 정겨운 소리는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우린 가족이란 사실을 의심없이 각인시켜주기에 확실한 소리였다.

 

서로가 아무런 상처없이 살아갈 순 없겠지만, 아마도 멀리서 포클레인과 불도저와 또 다시 힘겨운 싸움을 겨뤄야함을 익히 알고있는 마을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여지없이 강은 흐르고 그 강 앞에서 그들은 정묵 일행을 배웅하며 내일을 기약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기존의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겨지던 가족이란 의미를 새삼 되새겨보는, 그래서 그 어느 가족보다도 더 위풍당당하단 소릴 듣기엔 충분한 흐뭇한 이야기다.

 

위풍당당하게 유머의 지존으로 돌아온 성 작가다운 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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