팅커스 - 2010년 퓰리처상 수상작
폴 하딩 지음, 정영목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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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조지 워싱턴 크로스비는 죽기 여드레 전부터 환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첫 구절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퇴직하여 골동품 시계를 거래, 수리하며 살아가다 사타구니의 암, 당뇨, 파킨슨 병으로 인한 신부전증으로 인해서 배설이 되지 못한 채 거실의 한 가운데 침대에 누워서 임종을 기다리는 노인이다.  

그는 식구들, 즉 부인과 딸들, 손자들에 둘러싸여서 지난 자신의 과거속으로 여행을 시작한다.  

자신의 아버지인 하워드는 먹고살기 위해 짐수레에 도구상자를 싣고 땜장이 일을 하고 다니면서 가족 부양을 했으며 간질을 않고 있다.  

그의 아내인 캐슬린은 이런 남편의 발작을 아이들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스런 행동을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아이들에 대한 애정은 원망, 상실감에 시달린채 생활을 해 나간다.  

하워드는 자신의 무지를 이용한 컬런이란 사기꾼에게 매번 물건을 사고 팔면서 일정액의 수수료를 떼이면서도 반항을 하지 못하고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장을 서듯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이 필요로하는 물품을 팔고 생계를 지는 가장이었다. 

그런 어느 날 식탁에서 아버지의 발작을 보게 되고 아버지의 행동을 저지하려는 과정에서 아버지에게 손목을 물리게 된 조지는 엄마와 함께 닥터 복스에게 치료를 받게 되고 엄마는 남편의 간질사실을 박사와 의논하게 된다.  

아들 손목의 상처가 자신때문에 일어난 사실을 아내로 부터 들은 하워드는 부인이 자신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는 뜻을 알고 집을 나간다. 

항상 싸주는 점심을 아껴 먹으면서 집으로 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수레를 팔고 백보이로 취직한 그는 이름까지 숨기고 생활하던 중 승진을 하게 되고 두번 째 부인인 메건핀과 결혼생활을 한다.  

한편 아버지의 부재에 대해서 아버지 없는 가장격이 된 조지는 아버지의 행방을 찾게 되고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사랑하고 동정하고 미워한다는 사실에 화가 나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하워드 또한 자신의 아버지였던 목사님이 어느 날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설교를 하던 중 엄마로부터 사라졌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 회상에 젖는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메건핀은 자신의 엄마가 살아있단 사실을 숨긴 사실에 대해서 말하고 엄마를 보러 간 사이 하워드는 그간 자신의 가족들이 이사한 경로를 추적해서 알아낸 집을 찾아가 이젠 중년이 된 아들 조지와 해후를 하게 된다.  

소설의 기법은 조지의 회상속에 아버지인 하워드의 모습이, 하워드에겐 자신의 아버지인 목사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조지의 손자가 조지의 침대를 지키면서 책을 읽고 있는 4대간의 모습을 액자 속에 또 다른 액자가 들어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책이다.  

그다지 기복이 심하지 않는 심연속의 연못처럼 잔잔한 20세기 초의 미국인들의 삶의 모습을 투영했단 점에서 초원의 집을 연상케하고 숲 속의 은자와 거래를 하는 묘사하는 과정은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의 세상과는 동떨어진 마음의 여유와 그 풍경속으로 동화되게 하는 글의 묘사 솜씨가 압권이다.  

땜장이 뿐만이 아닌 돈이 되는 것이라면 사소한 일마저도 마다하지 않던 아버지 하워드의 생활고 속에서 자식들에게 간질을 보여주지 않으려 애를 썼던 그 부부간의 노력, 당신보단 좀 더 나은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시계수리공이 된 조지의 환상속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배어 나온다.  

아버지을 그리워하면서도 애증이 결합된 감정의 표현 묘사는 가족간의 갈등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을 충실히 묘사한 듯 하고 하워드가 부인에게 느꼈던 서운함의 감정 표현도 깊게 다가 온다. 부인은 자식들을 위해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진 몰라도 하워드가 느낀 것은 자신을 바보, 쓸모없는 땜장이, 간질병 환자로만 보는 그녀의 태도, 고개를 돌려서 그를 더 나은 것으로 보려 할 이유를 전혀 찾지 못한다는데서 왔다 (p154) 는 구절은 힘없는 한 인간애의 쓸쓸함이 전해져 온다.  

거실 한 가운데에 누워있으면서도 집안을 묘사한 표현이나 자신이 열심히 일을 해서 죽더라도 뒤에 남은 가족들이 어려움 없는 생활을 해 주기 위해서 저축을 한 그의 모습은 가장으로서 책임을 완수하려는 근실한 태도가 엿보이며 그가 죽은 후에도 욕을 하면서도 그를 그리워하는 그의 부인의 모습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부부애의 전형적인 사랑을 보여준다.  

결코 번잡하지도 않고 크게 대두되는 사건이 연이어 오지 않는 인생의 기나긴 여정을 보여준 이 소설은 시계의 정교한 태엽 맞춤과정과 수레의 맞물리는 시점을 이야기하는 솜씨로  인간의 신체와 맞물려서 아주 정교히 돌아감을 표현한다.   

항상 가족을 생각하고 생활하던 하워드의 맘 속에 그리움으로 마주친 시간은 겨우 밖에 자동차 시동을 걸어 놓은 채   노인이 된 자신의 모습과 이젠 40대 중년이 되어버린 조지의 짦은 만남, 며느리, 손녀들과의 인사를 나누는 마지막 장면에서 안쓰러움과 애처로움의 장면으로 길이 남을 것 같다.

소설을 읽기에 앞서서 번역자가 누군지 살펴보는 나로선 무조건 이 사람이라면 읽어보는 기준이되는 손에 몇 안드는 사람들이 있다.  

이 책 또한 번역의 과정에서 나오는 우리가 생각하는 말,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문장의 연결성 면에서 실망을 주지 않는다.  

흔히 내 손목에 차고 있는 이 시계의 돌아감을 책을 읽고있는 동안 우리네 인생도 이렇게 서로가 맞물려서 돌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가족간의 긴 말이 필요없는 끈끈한 정과 유대가 돋보이는 작품이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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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란 이름의 편견 - 인간의 외모를 바라보는 방식을 리디자인하다
데버러 L. 로드 지음, 권기대 옮김 / 베가북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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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tv에서 안티에이징이란 이름으로 행하여지고 있는 여러가지 시술방법과 노화의 방지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시스템에 입각한 병원을 소개한 화면을 접해 본 것도 한 두번이 아니건만 유독 이런 기사만  보면 그다지 기분이 좋진 않다.  

바로 돈의 연결성 때문이다.  

이 기사에 따르면 최첨단 병원에서 하고 있는 가입조건은 1억이 넘는 보증금에 회원 차원의 돈으로 내는 것이 4000만원을 호가한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입자수가 이미 넘어섰단 보도에 이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노력과 그 실상엔 자본주의가 갖고 있는 있는자의 여유와, 미를 바라보고 기준으로 삼는 기준에도 변화가 있음을 알게된다.  

저자는 미국의 여러 실태를 조사하는 방법으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아름다움이란 단어가 얼마나 우리들에게 다르게 보는 미의 기준을 만들었으며, 이는 곧 오로지 한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여건이 아닌 범 국민적으로 여러가지 문제가 있음을 제기하고 있다.  

미국만 하더라도 한 해에 외모에 투자하는 비용이 2천억을 넘는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남.녀간의 외모에서 오는 나이듬을 표현한 말로써 그 차별성을 알 수 있는데,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남자들은 나이가 들어 머리가 희끗해지고 이마에 주름이 패게되면 "기품이 있어" 보인다고들 한다. 나아가 들어가는 여자들에겐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들에겐 "매력이 다 떨어져서" 가장자리로 밀려나고 나이어린 흉내를 내려든다고 조롱이나 받을 위험이 따를 뿐이다.] 란 것으로 대신한다.  

이는 여성들에게 더욱 더 외모를 중요시하는데 있어서 그걸 걱정하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근심이 된다는 말처럼 남자의 경우 키로써 그 사람은 아마도 IQ가 높을 것이며, 착할 것 같고 능력이 높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 편견을 지니게 되는 반면 여성의 경우엔 그 어떤 경우에 따라서도 쉽게 인정받가기가 어렵다. 즉 어떤 직업을 갖고 있으며 어떤 직위에 있느냐에 따라서 그 편견은 이미 정해져 있어서 우리의 머리에 새겨져 있고, 이는 비단 성별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인종, 계급, 민족, 성, 으로도 차별이 되어짐을 알려주고있다.  

한 때 우리나라에선 보리고개가 있다보니 포동포동하고 뚱뚱한 사람이 잘 사는 것으로 인식이 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정반대다.  

오히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건강과 외모에 집중을 하게되고, 이는 곧 비만이란 적과의 싸움으로 이어져서 여유가 적은 사람들이 오히겨 자신을 관리를 못한 결과로 뚱뚱한 사람이 많아진다는 식으로 결론이 내려지고 있다.  

사회에서의 취업을 하는 과정에서도 비만체질인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엔 게을러서, 일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이롭지 못할 것이란 편견때문에 , 흑인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머리스타일 때문에 오히려 백인들을 선망하는 풍조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깡마른 모델들이 광고 사진에 연일 스타성 화보를 싣고있는 잡지를 보는 우리들 눈엔 이미 거식증이란 병이 생겨서 심하면 사망에 이르는 비운을 겪는 사건이 심심찮게 나온다. 

그렇다면 외모의 중요성과 세상에 순응하기 위한 댓가는 어떤 것이 따르는가? 

저자는 우선 돈을 꼽는다.  

다이어트에 드는 비용이 연간 47조 6000억원이라는 미국의 경우는 차지하고서라도 이는 우리사회에서도 만연히 번지고 있는 풍조중의 하나가 아닐까? 

두번 째는 시간. 

미국여성들은 화장하는데 일일 시간이 45분정도 투자한다고 한다. 중세 시대 때의 화장은 부정적적인 의미로 생각하던 것이 시대의 변화와 함께 점점 우리의 생활 속으로 침투했으며, 이는 이를 기다린는 남성들의 시간조차도 빼앗는 결과를 가져왔다.  

세번 째는 신체적인 리스크 

중국의 오랜 전통이었던 전족, 하이힐의 위험성을 알고 있고 이의 결과로 발가락 모양이 변형되는 모습이 보여도 참고 신는 여성들의 집착성, 할례를 통한 성기의 훼손, 코르셋, 풀스커트 같은 것도 이에 해당이 된다.  

네번 째는 성형시술 

무면허, 유방확대수술의 실리콘 삽입으로 인한 부작용, 몸짱이 되기 위해서 먹는 스테로이드 복용, 체중감량은 식이장애를 발생시키며 이는 곧 우울증, 불안, 자존감의 상실로 이어짐을 보인다. 

다섯 번째는 편견 

비만인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 흑인들이 백인을 따라하려는 행동 같은 것은 우리의 선입견 때문에 치러야 하는 댓가가 위험함을 알리고 줄여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말해준다.  

그렇지만 이것들이 우리들의 머리에 인식이 되기 위한 고도의 전술같은 사회전반적인 시스템도 유의해 볼 것을 말해준다.  

바로 시장의 흐름이다. 화장품 회사. 백화점, 쇼핑몰은 소비자가 관념을 강화시켜주고 살빼기 시장은 보험회사, 의사. 제품회사와 연관이 되어있으며, 헬스케어같은 것은 성형시술을 부추긴다. 

이밖에도 테크놀러지에 의한 성형수술, 염색발달, 사진성형술의 발전, 인터넷상의 마케팅,페이스북같은 것으로 인해 더욱 발전이 되어가고 있음을 말한다.  

미디어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여성잡지의 등장, 미인대회. 운동여자선수들의 미모에 대한 관심은 광고로 이어져서 우리로 하여금 실패할 수 밖에 없도록  상황을 만들고 이룩하지 못한다고 해서 스스로 책망하게 만드는 요술을 부린다고 쓴다.  

이런 아름다움에 대한 편견을 버리기 위해서는 포괄적인 이성을 고취시키고, 외로로 인한 차별 줄이기, 건강 강조하는 라이프 스타일 강조, 비즈니스와 미디어의 노력의 일환으로 책임을 져야하며 아름답다는 것에 대한 다양하고 건전한 현실적인 아름답다는 것에 대한 전략을 추구해야 함을 주장한다.  

아울러 기업은 물론 법률적으로도 과장광고의 제재, 외모에 대한 차별금지 정책실시, 식품산업에 대한 영향을 주는 재정정책및 규제정책이 필요함도 말해준다.  

미의 기준은 시대가 변하면서 달라진다.  

고대의 클레오파트라, 마를린먼로,... 우리 조상들의 미인조건이 반달눈썹에 흰 피부, 포동하단 느낌의 몸체격 ( 현 시대의 미인상은 이 시대로 가면 그야말로 도저히 미인이라고 할 수 없느 축에 끼고, 오히려 우리네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체구가 각광을 받는 시대가 아니었을까 하는 잠시나마 행복에 겨운 시간을 가져봤다. )

그 시대를 대변했던 미인들의 표상이 달라졌듯이 우리도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이름아래 행하여지고 있는 위의 다변한 변화에 맞서서 진정한 각자의 고유한 특징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사회로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대중매체에 나오는 너무 마른 사람들을 기준으로 하는 미의 대상이 아닌 속을 들여다 볼 줄 아는 지혜를 가질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함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하지만 상대를 평가할 때 첫번 째 단추가 수 초 안에 결정되어버린다는 말이 있드시 겉 모습으로 평가되어지는 사회가 아닌 그 안에 그 사람만이 갖고 있는 향기를 맡을 수 있는 노력은 나 혼자만의 노력이 아닌 전 세계적인아름다움의 기준은 이렇다란  편견이란 울타리를 걷어차고 밖의 새로운 세상을 평등하게 바라볼 줄 아는 모든인류의 간절한 바램이 이루어 질 때에야 가능할 것이란 생각에 잠시 많은 시간이 필요함을 느끼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대로 아름다움은 한낱 가죽 한꺼풀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이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치러야할 대가가 두텁다. 이러한 불의를 제거할  수는 없지만 개선을 할 수있다. 외모를 단순히 심미적인 이슈로만 취급하는 것이 아닌 법적 정치적 이슈로도 취급해야 할 것이다.란 말처럼 우리에겐 개선해야할 의무가 있고 이를 이룸으로서 보다 나은 미를 바라보는 건강한 사회가 올 것이란 희망아래 노력을 해야겠단 생각이 든다. 

미국의 사례들로만 모아놓은 자료와 이를 박차고 나와서 싸운 사람들의 사례라서 다소 우리나라와는 다른 점이 있긴 해도 지금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는 기준조건이 다르지 않다는 점을 두고 볼 땐 많은 생각과 다각적인 모색방법을 제시한 점이 눈에 띄는 책이란 점에서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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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산드라의 거울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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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쟁이, 마녀, 그리고 점성술가, 예지자, 예언자... 

 일반 사람들은 때론  자신들의 과거, , 미래 관해서 알고 싶어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종교에서 말하는 카르마란 것으로 해서 자신의 전생이 돌고돌아서 현재의 모습으로 살아지고 있다는 것에 대부분이 그렇구나 하는 식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의문이 든다. 흔히 말하는 미래에 대한 정확한 예측을 하고 그것이 정말로 그렇게 맞아떨어지는냐 하는데서 오는 혼동과 의문이 앞선다.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는 마음... 

카산드라 카젠버그는 13살 이전의 자신의 삶을 모조리 기억을 하지 못한 채 17살의 소녀로서 이롱델이라고 불리는 특수한 재능을 지닌 자폐아 아동을 기숙하고 교육시키는 학교에 다닌다. 그런 그녀는 자신의 과거는 알고자 하나 전혀 알 수는 없지만 미래에 일어날 일을 보게 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 그녀가 학교에 화재 경보를 알리는 와중에 학교장인 필리프 파파라키스로 부터 자신의 이름인 유래가 깃든 얘기를 듣게되고 자신을 가두려는 그에게 도망쳐 쓰레기하치장으로 가게 된다.  

그 곳엔 사회에서 버려졌거나 스스로 나온 4명의 사람들이 제각기의 사연으로 같이 살고 있다. 만작이라 불린 전 외인부대 출신이자 부인을 폭행하고 딸마저 연락두절이 된 알콜중독자 오를랑도, 전직 미인대회 출신으로 공작이라 불린 영화배우였던 에스메랄다 , 세네갈 출신으로 의사이자 주술사 역을 맡고 있는 페트나, 그리고 북한 출신으로 프랑스로 부터 불법체류자 신세로 살고 있는 탈북자  17세의 김예빈이란 컴의 천재이자 기술적인 기술을 갖고 있는 그들이다.  

이들로부터 거절과 방문을 거듭하다 마침내 입단 허가를 받게되고 그들과 동화되어 함께 살게 되지만 번번이 자신의 미지적인 예지력으로 인해서 지하철 폭파사건을 이들과 함께 막으면서 자신의 과거와 존재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알고 싶어지게 된다.   

이에 교장으로 부터 자신의 아버지와 엄마가 계획적으로 자신과 오빠를 자폐로 만들면서 실험하고자 했던 미래의 연구에서 희생됬음을 알게 되고 오빠마저도 자신이 보는 앞에서 빌딩옥상에서 투신함으로써 카산드라는 오빠를 죽인 범인과 학교 방화범으로 몰리면서 더욱 쫓기는 신세가 된다.  

보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세력들로 부터 자신들의 본거지가 탄로나고 생명에 위협을 느끼게 되지만예빈과 자신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려는 의지로 이를 극복하게 된다.  

우리나라만큼 베르베르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없을 것 같다. 나오는 책마다 책 뒷장에 인쇄매수를 보더라도 말이다. 가히 폭발적인 고정적인 광팬이 있단 소릴 것이다.  

끌리는 이유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뭣보다 상상력의 대가답게 풍부한 읽을거리와 비판 , 그리고다양하게 섭렵한 지식의 맛을 보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 또한 미래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그것을 볼 줄 아는 카산드라라는 여자아이를 내세워서 우리가 현재 행하고 있는 극히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을 깨우쳐주고 있다.  

소재의 지역은 파리지만 인간들이 필요에 의해서 사용하고 남은 것, 쓰레기라고 불리는 처리장의 용도폐기에 따른 넘치는 쓰레기의 처리문제, 악취의 문제는 오히려 위 4인방을 이 세상으로부터 억압과 세금으로부터의 해방을 주는 역할을 하게도 하지만 결국엔 미래에 살게 될 우리의 후손들에게는 더 없는 과중한 과제를 물려주게 됨을 경고하고 있다.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딸인 카산드라는 신의 힘으로 예언력을 받게 되지만 또한 자신의 예언력을 사람들이 믿지 않는 고통을 당하는 힘을 지니게 된 여인이다.  

현대의 카산드라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미래를 보게 된 현상을 말해주지만 그 누구도 인정하려들지 않고 오히려 사회에서 소외된 4인방들만 이를 받아들이고 테러의 활동에 제재를 가하는데 같이 행동을 하게 되는 현상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보지만 주의깊게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듣지만 귀 기우여 듣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알지만 진정으로 깨달은 것은 아니다란 구절처럼 사람들은 현재의 생활만을 인정하려 들고 미래의 다가 올 위험이나 풍부한 자원의 약속은 무시해 버린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을 알린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이들 중 특수한 영역에 대한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점에 착안한 설정엔 "나를 보내지마"에서 나오는 폐쇄된 학교를 연상시키며 아나키스트를 자처하는 예빈의 모습에선 같은 하늘 아래서 살고 있지만 서로 다른 이념을 갖고 살아가는 우리의 또 다른 민족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안타까움과 좀 더 성격의 인물이 주인공급 답게 자세하게 묘사되었음 더 좋지 않았을 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된다. (예빈을 내세운 것도  한국을 사랑하는 그의 표현법이라 생각된다.)  

기존의 자신이 써 온 책의 제목이나 내용면이 들어있어서 상상력의 나래는 신선하단 느낌은 많이 줄었지만 액션적인 행동이 그려졌단 점에선 또 다른 재미를 준 것 같다.  

거울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행위를 의식하게 해주는 도구야 라는 구절처럼 우리도 우리의 거울을 통해서 볼 수 있는 행위에 대한 책임의식과  좀 더 밝은 미래를 위해 아니 책에서 처럼 카산드라가 꿈꾸는 와중에 재판을 받은장면-  미래의 아기들이 배심원으로 나와서 미리 막을 수도 있었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는 장면에서 처럼 원망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좀 더 책임있는 행동을 해야 겠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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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조절구역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장점숙 옮김 / 북스토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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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전통과자 전문점 3대 주인인 77살의 우타니 구이치로는 나라에서 정한 제도인 실버배틀, 일명 노인 상호처형제도란 것에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이 채택이 되는 바람에 70세 이상의 노인은 한 달간의 유예기간 동안 서로 죽이되 최후 순간에 1인만 남아야 한다는 규칙을 받게 된다.  

아주 가까운 친구를 권총으로 죽이게 되고 이후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신은 왕년의 형사출신인 사루타니 진이치와 함께 서로 돕는 동지가 된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로 이런 과정을 겪어야만 몇 십년간은 이런 제도를 당하지 않는다는 정부의 방침에 따라 자신의 살 길을 모색하게 된다.  

스스로 죽기를 원해서 대학교수의 집에 들어가 하녀처럼 살다가 죽은 할머니, 무기를 소지하려 야쿠자와 거래를 트게 되는 과정,  가족을 방패삼아 자신을 보호하려는 할아버지, 죽여서 자신만 남았다고 생각한 순간 뒤에 예기치 못했던 사람에게 무참히 죽게되는 사람, 전직 프로레슬러 출신인 난쟁이 이누이는 자신의 신체를 이용해서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하수구 맨홀 뚜껑을 열고 그 속에서 생활해 가는 등... 예기치 못한 각종 현상이 벌어지고 이런 사건의 연속은 방송국에서 취재차 나온 사람들에 의해서 고스란히 전국에 전파를 타게된다.  

약국에선 수면제가 없어지고 같은 목적으로 모임을 결성하게 된 무리들은 한 목표물을 정해서 죽이되 그들 사이에서도 서로가 불신의 늪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죽고 죽이는 상황이 벌어진다.  

빨리 죽이라는 정부 관리의 협박에 따라서 자신이 살기 위한 조처로 자신 조차도 인정할 수 없었던 자신의 잔인성과 희열감, 그리고 반복적인 무의식의 행동에 치를 떨게 되지만 결국 살아남은 자들은 뒤늦게 이런 제도는 없어져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정부에 항의하고자 모임을 갖고 거사를 치를 것을 결정하게 되지만 이마저도 실패로 끝나게 되고 마지막까지 목숨을 부지하게 된 구이하라만이 그 현장에서 벗어나는 아찔한 순간을 모면하게 된다.  

 새해에 들어서 각종 매체나 신문에서 연일 우리나라 인구의 비율이 노년층으로 가고 있다는 보고를 읽어보게 된다.  

각종 선진국들이 행해오고 있는 최상의 복지 실현의 이상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조치로서 연금이나 의료복지혜택에 있어서의 각종 문제점과 해결점을 제시하기 위한 사설로서도 그 문제의 심각성은 깊다고 할 수가 있다.  

이 책은 일본의 폭발적인 중대한 노인인구조절 정책의 일환으로 젊은이 1명당 7명의 노인을 부양해야하는 현실, 이에 따른 경비경감과 국민연금유지, 저출산제도를 해소시키는 일환으로 행해진다는 것에 착안한 제도를 소설이란 것에 맞춰서 그 상황을 빗대어 보여주고 있다.  

읽으면서 아주 심각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블랙의 유머와 상황설정이 픽 하는 웃음이 나오게 하지만 이것이 웬지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 반드시 없다고는 할 수 없는 가까운 미래의 일일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노인이 노인인 것- 그 자체가 죄란 말로서 이 소설은 이 주제를 가지고 우리에게 물음을 던진다.  

늘어만 가는 노인만 없다면 과연 이 세상을 살 만한 세상일 수 있는가?  그렇단 확신이 있다면 어떤 근거로서 이를 확인할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해답을 요구하고 있단 생각이다.  

우리의 과거 고려장이란 제도도 생각이 나게 하고 비단 이것 뿐만이 아니라 노인들이 있음으로 해서 세상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세상에 대한 지혜를 배울 수 있음에도 현실의 비관적인 생각때문에 이런 끔찍한 일이 생길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내가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행동의 연속으로 살인의 맛에 길들여져 가고 있는 인간 본성의 내면에 깃들여져 있는 악마의 근성도 보여지고 이런 행동속에서 마침내 일본인 다운 생각대로 이럴바엔 죽을 사람들이 운동장에 모여서 서로 죽이는 경쟁을 벌여(마치 로마시대의 검투사 대결을 연상 시킨다.) 그것을 구경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모금함을 모이게 하고 이 돈은 가족들에게 나눠주는 방안을 제시한다는 점은 그들만이 가진  민족성의 현실감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라는 유명 애니메이션으로도 유명한 작가답게 전혀 생각할 수 없는 기발한 소재의 채택과 더불어서 그 자신이 스스로 70대가 되어서야 이 글을 썼다는 점에서 아마도 자신이 직접 그 연령대에 속하고 느낄 수 있었던 어떤 현실성에 닥친 절박감이 아주 실감나게 그려지게끔 써 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하게 한다.  

잔인한 처형장면의 묘사나 코끼리를 대동하고 막판에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고자 애를 쓰는 등장인물들의 묘사는 아마도 영화나 만화로 나오게 된다면 책에서 읽는 그대로의 감성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줄 수 있을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웃고 넘어가기엔 읽는 독자로 하여금 언젠가 나도 이런 연령대가 닥칠 것이고 장수의 비결을 제시하는 각종 건강비결이 더욱 많아질 시기가 연이어 몰아쳐 온다고 가정한다면 인구조절을 한다는 명목하에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게한다.  

동물의 세계인 고래나 레밍이란 쥐들의 세계, 또 다른 동물들은 자살이나 임신 가임기간을 의도적으로 피함으로써 그들 자신들의 생태계 영역을 보전하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어쩌면 인간들은 이런 사실조차도 인식하지 못하고 연륜있고 인생의 선생이라고 할 수 있는 노인들을 없애는 방식으로 인구를 조절할 수 있다고 믿는 어리석은 행동에 일침을 가하고 있지나 않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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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카르테 1 신의 카르테 1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채숙향 옮김 / 작품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24시간 365일 대응이라는 모토로 운영되고 있는 , 시나노대학 의학과를 나온 후 대학에 머물지 않고 교외에 있는 혼조 병원에서 5년째 근무를 하고 있는 구리하라 이치토는 자칭 그 자신이 사악한 천사로 부르고 있는 간호사들 사이에서 '환자를 끌어당기는 의사'란  별명으로 불린다.  

당직을 서는 날이면 어김없이 응급환자가 몰려오는 통에 간호사들 사이에서 그리 달갑지 않은 처지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 근방에서 이 병원만큼 큰 곳이 없기에 온갖 증상의 환자들로 넘쳐난다. 자신의 주 전공이 내과계통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진료과목을 곁들여서 해야하는 처지는 그 옆에 무수히 많은 카르테(진료카드)가 이를 말해준다.  

어느 날 같은 학과 친구면서 대학에 있다 이 곳에 온 동료 스나야마 지로로 부터 대학병원에 한 번 쯤은 근무를 해봐도 좋을 경험이라는 말과 함께 시나노대학으로부터 소화기내과로 와 달라는 청을 받고 고민을 하게 된다.  

같은 시기 췌장암 환자의 급속히 나쁜 상태로 이별을 맞이함과 때를 맞추어 담낭암 환자로 대학병원에 추천서를 써 줘서 치료의뢰를 넘겼지만 대학병원으로 부터 가망이 없다는 통보를 받은 아즈미란 환자가 다시 입원을 청하면서 더욱 그 고민은 커진다.  

아무런 가족도 없던 그녀는 항상 밝은 미소를 보여준 환자였으며, 그 자신은 계속 상태가 나빠짐에도 마지막 희망으로 일본의 알프스란 명칭으로 불리는 산 구경을 하는 것과 동시에 어릴 적 먹던 카스테라를 그리워한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힘든 병마와 싸우는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구리하라는 병원 옥상으로 데려가 그녀의 소원을 들어준다. 하지만 이틀 후 그녀는 영원한 안식처로 돌아가고 그녀의 마지막 부탁인 남편이 사준 모자를 머리에 씌워줌으로써 그녀와 약속을 지킨다.  

작가 자신이 의과 대학출신이자 의사로서 현장에서 경험한 이야기가 아주 실감나게 그려져 있는 책이다. 

오랜 현장의 경험상으로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이 없는 베테랑 간호사, 1년차 간호사로서 아직까지는 환자의 아픈 모습을 어떻게 바라봐야하고 치료를 해야하는지 방황하는 간호사 미즈나시 요코의 모습,  거구의 모습임에도 미즈나시를 짝사랑하다 자신의 뜻대로 데이트를 하게된 친구 스나야마의 모습은 촌각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의 현장에서도 피가 끊는 생생한 청춘들의 모습과 따뚯한 인간의 모습이 보여진다.  

구리하라가 살고 있는 주택에 같이 세 들어 사는 학자님이라 불리는 사람과 남작이라 불리는 화가와의 우정은 학자님이 떠날 때 보여준 눈 내리는 겨울에 온통 벚꽃이 만개하는 그림을 그려주는  그들의 모습에선 우정과 사랑은 이별 앞에서 언제나 새로운 희망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다.   

가벼운 말투속에 자신의 경험을 쌓기 위해서 더 나은 물로 들어가 좋은 시설과 함께 많은 경험을 쌓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이 조그만 병원에서 열악한 환경을 견디면서 정 많은 나이 든 환자와 같이 보내는 것이 좋은 가를 결정하는 기로에 섰을 때, 그의 스승격인 왕너구리, 여우선생이라 불린 소화기내과 부장과 부부장의 견해는 주인공에게 앞으로 어떤 의사가 될  것인가에 대한 멘토가 되주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뭐니해도 눈물이 찡하게 흐르게 하는 장면은 아즈미를 살리기 위한 일초를 다투는 그 순간이 아닐까 싶다.  

의사의 입장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행동이 과연 이 환자에게 유익한 것인가? 하는 갈등이  찰나의 순간 속에서 구리하라가 생각하고 있던 말들은 일말 우리 모두에게 묻고 있는 것- 

-약물이나 항생제 등을 이용하여 끊어지는 목숨을 연장한다는 건 오만한 사실이다. 원래 수명은 인간의 지혜를 벗어난 영역이다. 처음부터 운명은 정해져 있다.  

흙에 묻고 정해진 운명을 파내어 빛을 비추고 보다 나은 임종을 만들어 간다. 의사란 그런 존재가 아닐까. 

-죽어가는 사람에게 가능한 모든 의료 행위를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사람들은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야한다.  

"전부 해달라"라고 울면서 소리치는게 미덕이라는 식의 생각은 슬슬 버려야한다.  

살아 날 가능성이 있다면 의사는 가족의 요구와 관계없이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치료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살아나지 않을 사람, 즉 노환으로 누워있는 고령자와 말기암 환자에게 행하는 의료이다. 

- 생명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감상적으로 " 모든 치료를" 하고 외치는 것은 이기적이다.  

환자 본인의 의사는 존재하지 않고 그저 가족이나 의료 담당자들의 자의적인 이기심만이 존재한다. 누구나 이 이기심을 갖고 있다.  

현장에서 근무한 의사로서 그간의 겪고 생각한 바의 일부를 아즈미란 환자를 보내면서 빌려 쓴 구절이기도 하지만 폭 넓게는 안락사라는 것도 생각을 하게 한다.  

인간의 존엄한 귀한 생명 앞에서 안락사를 주도하다 체포된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구리하라가 말한대로 환자의 의사를 반영해서 그 행동을 실행했다 할지라도 생명이란 테두리 안에서 그것이 과연 허용될 수 있는 도덕적 가치가 있는지, 아니면 고통조차도 어떤 형태로 말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계속 생명의 연장을 위해서 기계적인 호수에 물리고 약물 투여를 해서라도 생명 연장을 해야만 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생각하게 한다.  

굳이 자신만이 아니더라도 다른 의학도들이 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에 자신은 잠도 못자는 이 혼조병원에 남기로 한 구리하라의 행동에 박수를 보내게 되는 것은 비단 이것이 진료를 하는 의사로서의 행동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 아닌 진정으로 환자와 간호사  그 밖의 모든 것들에 소통을 하고 있었던 구리하라이기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다.   

또한 아즈마가 남긴 편지에 적힌 병을 않는다는 것은 정말 고독한 일이며, 병든 사람에게 가장 괴로운 일은 고독하다는 구절엔 환자를 보살피는 과정과 그들에게 어떤 따뜻한 말을 해 주어야 하는 가에 대한 행동에 대한 생각도 하게 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일본의 유명 소설가인 나쓰메 소세키를 흠모한 나머지 그의 작품을 읽고 그 속에 빠져서 말투가 나스메 소세키를 닮았다고 표현이 되고 있는데, 그 뉘앙스가 어떤 것인지 알수 없기에 이것의 느낌을 같이 가지고 읽고 내려갔더라면 더욱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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